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88화 (188/201)

188화 ― 이게 왜…… 지금?

* * *

LGA컴퍼니 3층.

지문을 찍고 안으로 들어가니 회의실 안에서 나를 발견한 단풍 삼촌이 내게 말했다.

“정우야, 좀 일찍 좀 와라. 주인공이 이렇게 늦어야 되겠냐?”

지금은 업무 시간이 훌쩍 지난 밤 9시.

그래서인지 단풍 삼촌은 나를 편하게 이름으로 불렀다.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테이블 위에는 팝콘과 빨대 꽂힌 콜라까지 놓여 있었다.

내 인생에 큰 변화를 줄 오늘의 일정.

바로 LGA컴퍼니 임원진들 그리고 오진아가 모여 조촐한 상영식을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원래 주인공이 늦는 법이죠. 다들 준비하느라 고생하셨어요. 같이 해도 되는데.”

지연이가 피식 웃으며 자신이 앉은 옆자리에 앉으라는 듯이 툭툭 치며 말했다.

“팝콘이랑 음료수 준비하는 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얼른 앉기나 하세요 대표님.”

“그럴게요. 연결만 하고요.”

나는 빔 프로젝터에 연결된 노트북으로 내 개인 이메일에 접속해 넷플렉스에서 보내준 미리보기 링크를 클릭했다.

미리보기 링크를 클릭하자 넷플렉스 오리지널 콘텐츠를 상징하는 붉은색 ‘N’자 로고가 나오며 두둥— 하는 효과음을 냈다.

그러자 권미현이 깜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어어! 뭐야, 바로 시작하네. 뒤로 가기! 뒤로 가기 해서 처음부터 다시 봐요. 전 오프닝부터 각 잡고 보는 거 좋아한단 말이에요.”

권미현의 말에 단풍 삼촌이 한소리를 덧붙였다.

“그래 인마. 불도 끄고 회의실 문도 닫고, 어? 분위기 조성 좀 해두고 봐야지. 무드 없게.”

단풍 삼촌의 입에서 무드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괜히 묻기 꺼림칙해 묻지 않았지만 권미현의 말에 단풍 삼촌이 저렇게 즉각 반응하는 것을 보니 그간 두 사람 사이에서 무언가 말이 오간 모양이다.

보기만 해도 웃긴 상황이었지만, 나는 말없이 회의실 불을 끄고 재생 화면을 가장 앞으로 돌린 후 말했다.

“이제 다 됐죠? 다들 준비되셨으면 재생하겠습니다.”

“넵!”

“해주세요!”

지연이와 권미현이 눈을 빛내며 외쳤고 오진아는 건조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팝콘만 무릎 위에 조용히 올려 놓았다.

모두의 준비가 끝난 상황.

나는 스페이스바를 누르고 용수철이 튕기듯 자리에 앉았다. 한쪽 손으론 팝콘을 잡은 채로.

웅장한 오프닝 음과 함께 내 소설 원작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 불 지르는 파이어맨이 시작됐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전직 소방관인 주인공.

그리고 바퀴벌레의 DNA에 감염되어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들. 그리고 이제는 불을 끄는 사람이 아닌 모든 것을 불사르는 악마가 된 주인공.

이미 소설로 그리고 이지연의 웹툰 팀이 만든 웹툰으로 두 번이나 봤던 내용이다. 하지만 글로 봤을 때 그리고 그림으로 봤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기분이 든다.

내 소설 원작이 영상으로 나온 것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로 나왔던 ‘인턴사원 회장님’과 비교해서 영화로 나온 불 지르는 파이어맨은 확실히 남다른 몰입감이 있었다.

‘오……. 영상으로 보니까 느낌이 또 다르네.’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여주인공인 민소희가 등장하자 처음엔 아는 사람이 나와 신기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하지만 미래에 월드 스타가 될 민소희는 역시 떡잎부터 남달라서인지 금세 나와 삼겹살을 먹으며 소맥을 기울였던 사람과 동일한 사람이란 것을 잊게 됐다.

민소희가 자신의 배역에 완전히 몰입했듯, 나 또한 영화에 점점 몰입해 갔다. 스크린에 나오는 세계는 내가 만든 세계였으나 또 다른 세계였다.

원작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하진성 감독의 말처럼 작품 속의 세계관은 내가 상상하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막상 숨을 쉬는 사람들이 실제로 뛰어다니고, 괴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타죽는 모습을 볼 때는 나도 모르게 들이쉰 숨을 참기도 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이 괴물들에게 둘러싸여 위급한 상황이 되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쥐어졌고, 잃어버린 가족의 이름을 외치며 절규할 때는 마음 한편이 욱신거렸다.

그리고 주인공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족과 조우하던 그때, 회의실 책상 밑으로 지연이의 손이 내 손 위에 포개졌다.

나는 손을 돌려 지연이의 손을 맞잡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나는 지연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회귀를 하면서 그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작가들에게 불합리한 계약을 강행하는 출판사들의 정산 조건과 계약을 뜯어고치고 작가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신인 작가들을 위한 무료 아카데미를 도입하고 단풍 삼촌의 도움으로 테일랜드, 웹월드, 소설피아의 독점을 가로막을 웹소설 플랫폼도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최근 있었던 일처럼 여전히 작가들은 작품 검열을 당하기도 하고 다른 출판사의 편집자들은 염전 노예처럼 굴려지고 있다.

BS북과 LGA컴퍼니 그리고 에르미스까지.

적들을 향한 보이지 않는 선전포고는 충분히 전해졌을 테다.

테일랜드가 소설피아를 인수했다.

이제 에르미스도 더는 선전포고만 하면서 간만 보진 않을 테다.

신인 작가들과 지망생들.

또한 출판사에서 맷돌로 갈리고 있는 편집자들까지.

에르미스는 그들을 이끌 수 있는 요새이자 인도자가 될 것이다. 출판계를 바꾸기 전까지 그들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 * *

어느덧 다가온 봄.

5월 중순이 됐다.

보름 전이었던 5월 1일.

넷플렉스 독점작이자 한국 영화 사상 최초 넷플렉스 영화 그리고 전세계 동시 개봉하게 된 불 지르는 파이어맨은 보름 동안 이곳저곳을 빨갛게 달구고 있었다.

[ ‘불 지르는 파이어맨’이 쏘아올린 작은 공 OTT의 시대를 여나? ]

[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독점 공개 후 넷플렉스 국내 이용자 100만 돌파 ]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작되고 개봉되는 넷플렉스 오리지널 컨텐츠여서인지 온갖 기사는 넷플렉스와 내 원작을 기반으로 한 불 지르는 파이어맨에 관해 도배되어 있었다.

[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여주인공 민소희, 아역의 티를 벗다 ]

[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민소희 그녀의 성장은……. ]

[ 민소희, 할리우드에서 뜨거운 러브콜! ]

또한 주연 배우들에 관한 관심도 뜨거웠는데 주인공보단 비중이 적었음에도 대중들이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건 민소희였다.

원래 월드 스타로 발돋움할 그녀였지만, 내 작품을 통해 그녀가 빛을 보는 시기를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었다는 것에 큰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 외에도 불 지르는 파이어맨으로 입봉하게 된 하진성 감독에 관한 기사들도 올라오긴 했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기사의 헤드라인은 이것이었다.

[ 대한민국 최초 넷플렉스 오리지널 영화 ‘불 지르는 파이어맨’ 2주 연속 1위 대기록 행진 ]

하루에 한 번씩 유사한 제목의 기사를 보지만, 이를 볼 때마다 내가 대단한 일이라도 한 것처럼 마냥 가슴이 두근거렸다.

‘2주 연속 1위라니…….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네.’

기사를 보고 책상 아래로 슬쩍 내린 폰으로 넷플렉스 앱에 접속했다. 5월 15일인 오늘까지도 여전히 부동의 1위!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 넷플렉스 오리지널 드라마나 예능 등은 전 세계 1위를 한 작품들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내가 10년 전의 과거로 되돌아오기 전까지도 넷플렉스 독점 ‘영화’ 중에서는 단 한 작품도 1주 이상 1위를, 그것도 전 세계에서 1위를 3주나 유지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넷플렉스의 한국 시청자들의 수는 아직 고작 100만 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아직 사람들이 넷플렉스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넷플렉스 1위가, 그것도 3주 연속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1위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경이롭고 앞으로 두 번 다시 없을 영광의 순간이란 것을 알지 못할 테다.

절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느라 몸이 들썩였는데, 남 일일을 제 일처럼 신경 쓰는 조팟놈이 나를 보며 물었다.

“팀장님,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일을 특출나게 잘하고 있다기보단 반복된 OJT와 당근 요법으로 칭찬을 좀 해줬더니 이제 내가 편해진 모양이다. 어찌 보자면 이제 나를 완전히 자신의 상사로 여기는 것일 테고.

“불 지르는 파이어맨 영화가 잘되고 있어서요.”

“음…….”

원래 조팟놈이라면 여기서 ‘팀장님이 쓴 글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작가만 좋은 거지.’라고 하거나 ‘코즈일 작가 결국 엘가로 넘어갔잖아요. 뭐, 이제 BS북이나 엘가나 같은 회사니 상관없긴 하겠지만’ 같은 헛소리를 지껄였을 텐데.

“잘되고 있다니 좋네요. 축하드립니다.”

“네, 고마워요.”

확실히 사람이던 동물이던 후두려 패면 성장하긴 하는 모양이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이런 말을 하는 게 뭐 대수냐 하겠지만, 입사 첫날부터 지랄 맞았던 조팟놈이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하는 모습이 내게 큰 감동을 안겨다 준다.

조팟놈이 별소리 않고 다시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이번엔 황건일 매니저가 말했다.

“와……. 그런데 3주 연속이면 엄청난 거 아닌가요? 다른 기사 보니 불지파 제작 투자 비용이 6천만 달러라고 했는데, 벌써 그걸 다 깠다고 하더라고요. 코즈일 작가님한테도 얼마 떨어지긴 하려나?”

“흠,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팀장님은 뭐 들은 것 없으세요?”

황건일의 말을 받은 조팟놈이 내게 물은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네요. 안다고 해도 계약 내용은 기밀이라 제가 알아선 안 될 테고요.”

황건일이나 조팟 등 다른 사원들은 여전히 코즈일이 내 지인인 줄로만 안다. 내가 동일인물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테지.

그리고 내가 지난 3주간 수시로 넷플렉스 순위를 확인하면서 미소 짓는 것은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영화 판권 계약시 내가 요구했던 계약 내용 때문이다.

손익분기 넘기고 순수익의 1%를 원작자인 내가 러닝 개런티로 갖게 된다는 내용 때문에. 그것도 회사 명의가 아닌 내 개인 명의로 들어오는 돈이다.

아시아권 회원을 늘리려는 넷플렉스에서 러닌 개런티를 지급한 건 앞으로도 나를 포함해서 몇 되지 않을 테다.

물론 러닝 개런티를 받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더라도 불 지르는 파이어맨 같은 성과를 내지 않았다면 치킨값이나 벌 정도였을 테고.

하지만 불 지르는 파이어맨은 지금 3주 연속 1위를 찍고 있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달리 말하면 이제 나는.

‘부자…… 부자가 됐다.’

코끝에 진동하는 진득한 돈냄새를 음미하며 기분 좋게 하루 일과로 소설피아에서 빼올 괜찮은 작품이 없을지 마우스 휠을 드르륵 내리는 그때.

“어?!”

나도 모르게 짙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팀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조팟과 황건일이 물었지만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부터 12분 전.

단 한 번에 5개의 작품을 연참한 작품의 제목이 내 가슴을 두방망이질 치듯 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게 왜…… 지금?’

5연참을 한 신작의 제목.

3인칭 관찰자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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