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 내 인생에 큰 변화를 줄 일정.
* * *
타다닥— 타닥— 타다다닥—
안녕하세요, 궁민연금 작가님.
보내주신 <수의사는 목소리가 들려> 기존 원고 그리고 추가 원고까지 잘 읽어보았습니다.
<수의사는 목소리가 들려>는 흔히 전문가물에서 자주 다루는 변호사, 검사, 의사 등이 아니라 수의사를 다루는 독특한 소재의 작품이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동물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면서 독특했던 소재가 조금 더 매력적으로 세공되었다는 느낌을…….
편집자로서의 나의 하루는 빠르게 흘러간다.
담당 작가들에게 교정한 원고 전달과 함께 작품의 피드백.
그리고 런칭 일정이 확정된 작가들에겐 작가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표지 제작 일러스트레이터를 협의하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
“……예? 원고 작성을 다 하셨는데 에러가 생겨서 파일이 모두 날라갔다고요? 저장은요? 아니…… 작가님. 내일 주말인데 내일 주시면 제가 어떻게 봐드립니까. 편집자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제발!”
물론 옆자리에서 울부짖는 조팟처럼 간혹 돌발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내게는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얼른 마무리하시고 퇴근하세요. 다들 주말 잘 보내시고요.”
“팀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우렁찬 목소리의 황건일 매니저.
그리고 시든 잡초같이 맥아리 빠진 목소리를 내는 조팟을 뒤로한 채 나는 사무실 밖으로 나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편의점에 들렀다.
‘음…… 오늘은 어떤 걸 먹어볼까.’
간단히 저녁으로 때울 편의점 도시락을 하나 사서 챙긴 후, 나는 곧장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소 집에 도착하면 뱀 허물 벗듯이 샤워를 하는 것과 달리 오늘은 편의점 도시락을 전자렌지에 돌리고 대충 손만 씻고 나왔다.
책상에 앉아 밥 먹을 공간을 확보하니 띵— 소리와 함께 도시락이 덥혀졌다. 빠르게 편의점 도시락을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흡입한 후 나는 곧장 집필에 시작했다.
남들이 퇴근 후 여가시간을 보내는 지금이야말로 내게는 본격적인 하루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이니까.
타닥— 타다닥— 타다다다닥—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소재가 신선하고 사건 전개를 흥미롭게 구성하는 게 내 장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작가로서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속도다. 웹소설이란 하루에 한 편이 올라와야 하는 스낵 컬쳐.
대개 5,000자를 한 화의 기준으로 잡는다.
타다다다닥— 타다닥— 타다다다닥—
누군가는 하루종일 혹은 5시간, 3시간 걸릴 일을 나는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끝내는 이점이 있다.
오탈자를 잡지 않고 초고를 쓰는 기준으로 내가 한 화 집필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30분. 미리 플롯을 짜 둔 채로 집필을 진행한다고 해도 상당히 집필 속도가 빠른 편이다.
다만 오늘 같이 집필이 막히는 경우에는 대략 1 시간에 한 편 정도를 완성할 수 있다. 5,000 자를 기준으로 했을 때 10분에 1,000자씩 활자를 모니터에 찍어내면 사실 50분 정도면 완성하긴 하지만.
타다다다닥— 타닥— 타다다다닥—
코즈일로 연재 중인 글을 빠르게 몰아 쓰고 이제는 노원지귀로 연재할 글을 쓸 차례.
깍지 낀 손을 뒤집어 시원하게 기지개를 한번 쭉 편 후 나는 본격적으로 ‘혁명적인 스타생활’의 비축분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럼 아이돌 공화국의 대국민 공개 오디션! 성좌님들이 찾으시는 그 별을 지금 바로 찾아보도록 시작하겠습니다!”
‘별이라…… 재미있구나 기래.’
삼팔선 위쪽에서 별이라 칭할 수 있는 것은 인공기에 달린 별을 지칭할 때 그리고 위대한 수령 동지를 일컬을 때 뿐.
하지만 이곳에선 내가 지닌 능력만으로 스스로 하늘의 별이 될 수가 있다. 이곳은 북이 아닌 남조선이니까.
“동그란 맘속에 피어난 How is the life? 아이돌로 살기엔 피곤한 난 여린 몸.”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참가자 나와 주세요.”
성좌들의 함성과 함께 본격적인 오디션이 시작 되었다. 예선은 오디션은 노래와 춤, 랩 자신의 매력을 뽐낼 수 있는 장르면 그 어느 것이든 구애 받지 않았다.
“아이돌이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단풍 삼촌과 동일한 이름의 주인공 리무진.
단풍 삼촌의 허락을 받고 집필 중인 혁명적인 스타생활은 북파 간첩인 주인공이 한국에서 아이돌로 시작해 배우 등 다양한 스타로 성장해나가는 성장물이다.
혁명적인 스타생활에서는 시청자들을 성좌라고 부르는데, 그건 팬들을 하늘의 별처럼 우러러 본다는 뜻이 담긴 의미.
또한 방송 자체가 인터넷 방송으로 생중계가 되는 포맷이다보니 팬(성좌)들에게서 미션을 요청받을 수가 있다.
타다다닥— 타닥— 타다닥—
그리고 지금은 주인공이 본격적인 아이돌 서바이벌 경연에 진입한 상황이다.
“성좌 곰탕재료푸우 님이 229,085번 참가자에게 [오빠 존잘이에요! 오빠같이 피부 하얗고 사슴같은데 귀여운 춤 짧게 보고싶어요] 이라고 말하셨습니다. 229,085번 참가자는 성좌의 명에 따르겠습니까?”
귀여운 춤이라.
웬만한 악기, 노래와 연주 그리고 춤까지는 수준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그건 북조선에서에서의 실력이었는지 남조선 기준에 맞춘 평가에는 상당히 박한 점수다. 특히 내 춤 점수는 남조선 기준으로 고작 C.
남조선 스타일로는 아직 자신이 없다.
하지만 어떤 걸 사람들이 귀여워하는지 정도의 안목은 있다.
남조선 대중 앞에서 기량을 선보이는 건 처음이다만, 같은 한민족인데 귀여움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다르지는 않을 테니까.
“229,085 참가자. 성좌님의 요청을 거부하시는 겁니까?”
성좌의 요청을 거부해도 직간접적인 패널티는 없다.
결국 나중엔 투표를 통해 순위에 들어야 하는 만큼 성좌 애미나이에게 눈도장을 찍을 필요가 있다.
내게 합격 목걸이를 건넨 심사위원은 덤덤히 성좌의 말을 읊었고, 나 또한 비장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아뇨, 노래와 같이 해도 되겠습니까?”
“성좌 곰탕재료푸우 님이 [꺄아앟! 너무 좋아요!]라고 전해주셨습니다. 그럼 바로 진행하시죠.”
“예, 시작하겠습니다.”
성좌TV를 통해 지금 이 모습이 남조선 전역, 아니 인터넷망을 타고 전세계에 생중계 될 터.
나는 짧은 날숨을 내쉬며 호흡을 바로잡고는 결연한 얼굴로 필승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글동글 왕감자, 대홍단 감자아. 너무 커서 하나를 못다묵겟쬬오….
남조선으로 넘어오기 전 내가 배웠던 건 남조선의 최신 가요. 가창력이나 안무에 중점을 뒀었지 귀여운 노래는 조금도 준비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겐 대홍단 왕감자가 있다.
북조선 인민들이 모두 열광했던 그 노래가.
간나들이나 하는 춤을 추려니 상당히 부끄럽긴 하다만, 지금 중요한 건 성좌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뿐. 나는 열과 성을 다해 오므린 무릎을 앙증맞게 꿈틀거렸다.
—호박만한 왕감자, 대홍단 감자아. 장군님 사랑속에 풍년들었찌효오. 야하아~ 감자! 감자! 왕 감자아!
“오케이, 거기까지. 성좌 곰탕재료푸우 님께서 거기까지만 봐도 괜찮겠다고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예선 합격.
무난하게 끝난 줄로만 알았던 이날의 오디션이 어떤 파급력을 불러 일으킬지, 이때의 난 알지 못했다.
타다다닥— 타다닥— 타닥—
“음…… 너무 과한가?”
소설 안에서 주인공의 배경을 다시 상기해 캐릭터성을 보여주면서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너무 개그에 치우친 것 같다는 우려가 들어 나는 황급히 백스페이스를 눌렀다.
이렇게 글이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는 빠르게 집필이 진행 되지 않는다.
“뭐가 있을까…… 유머스러운 부분을 놓치지 않으면서 주인공의 가창력을 부각시킬 수 있는 곡이.”
작중에 넣은 대홍단 왕감자의 경우, 재미는 잡을 수 있을지언정, 주인공의 능력이 돋보이지 않는다.
백스페이스로 지운 부분을 나는 다시 집필하기 시작했다.
나를 웃긴 참가자로만 보게 하는 게 아닌, 내 발성, 음정, 박자감 등 내 음악적 실력을 뽐낼 수 있는 무대를 보여줘야 할 테다.
“그럼 성좌님들을 위한 찬양의 노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반주 필요하면 말해요 틀어줄 수 있는데.”
“괜찮습니다. 박자는 제가 맞추겠습니다.”
나를 먹잇감처럼 여기는 듯한 피디의 웃음.
나는 개의치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절도 있게 손뼉을 마주쳐 박자를 맞추기 시작했다.
짝. 짝. 짝. 짝.
—추욱지법!
내가 뱉어낸 짙고 폭발적인 성량에 피디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음?”
“어?”
짙고 우렁찬 목소리에 놀랐을 게 분명하다.
—축지버업! 서엉좌님 쓰신다아!
짝. 짝. 짝. 짝.
—동에 번쪽 서에 번쪽. 천하를 쥐락표락. 방선천리 주름잡아. 성좌님 가신다아!
내가 선택한 노래는 보천보전자악단과 쌍벽을 이루는 경음악단 왕재산경음악단에서 처음 발표한 노래 ‘축지법 쓰신다’.
험산준령을 비켜서게 하며 번개가 뒤따라 천하를 쥐락펴락한다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시작부터 끝까지 연이어진다.
‘축지법을 쓰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가사지.’
북한 인민들 중에서도 장군님이 축지법을 쓴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는 이는 단언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몸뚱이를 봐라. 산책이라도 하게 생겼나.
하지만 허무맹랑하고 단순한 노래의 가사를 떠나 원곡인 ‘축지법 쓰신다’는 상당히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지니고 있다. 다들 목숨 걸고 만든 노래니 퀄이 좋을 수밖에.
—백두의 전법, 신묘한 전법! 성좌님 쓰신다아!
기립한 자세로 열과 성을 다해 노래를 완주하니 제작진들은 여전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퍽 감동한 모양이다.
“여기까지입니다.”
“아… 고생하셨습니다. 그, 뭐랄까… 상당히 혁명적이네요….”
“감사합니다.”
타다다닥— 타닥— 타다다다닥—
여전히 뭔가 애매한 감이 들긴 하지만 지금 내가 집필 중인 건 단순히 초고일 뿐.
“좋아, 이 정도로 마무리하면 되려나?”
어색한 부분은 단풍 삼촌의 피드백을 한번 받고 퇴고를 하면서 잡으면 될 테다. 그래야 집필을 빠르게 마무리할 수 있을 테니까.
비축분 집필을 마무리하고 원고를 저장하는 그 때,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며 울렸다. 발신자는 단풍 삼촌. 역시 양반은 못 되는 사람이다.
피식 웃으며 통화 버튼을 누르자 걸걸한 단풍 삼촌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대표님아, 준비 다 끝났다. 얼른 와라. 네가 와야 보든말든 하지 인마!
“오케이. 나도 집필 끝났어. 마무리 하고 바로 갈게.”
불금인 오늘.
퇴근 후 쉬지 않고 빠르게 원고 집필을 마무리 한 이유는 저녁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큰 변화를 줄 일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