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 손짓으로 협박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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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피아가 두 번에 걸친 대국민 사죄를 진행했지만, 독자들의 마음은 갈대 같고, 작가들의 마음은 바람 같은 법.
늦장 대응과 변명에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당수의 독자와 작가들이 소설피아에서 이탈해 S스토리로 넘어갔고, 에르미스 또한 나름의 반사 이익을 봤다.
‘그러게 어떤 사업이든 말장난을 조심해야 하는 법인데 말이야.’
두 번의 사과문을 올렸음에도 정글북에선 여전히 소설피아에 관한 혹평이 쏟아지고 있었다.
작가의 창작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을 했으면서도 늦은 대응을 하고 변명만 일삼다가, 작가와 독자들이 S스토리와 에르미스로 엑소더스하기 시작하자 뒤늦게 진정성 있어 보이는 사과문을 올렸으니까.
게시글 내용을 보면 삼인성호 같은 터무니 없는 말도 간혹 섞여 있긴 했지만,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하나 재미있는 점은 이번 남성향 작품 검열 논란에 소설피아 아카데미의 논란도 추가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소설피아는 에르미스 아카데미와 전반적인 커리큘럼이 비슷했다. 하지만 몇 가지 확연한 차이점이 있었는데, 에르미스와 달리 아카데미 수강생이 확정되면 계약서부터 작성했다는 점이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 잔머리는 기똥차게 굴린단 말이야.’
소설피아의 강사진들에게서 강의를 듣고 멘토링을 거쳐 원고를 수정하고 집필해나가는 과정을 거치기에 소설피아 아카데미를 수료한 학생이 본격적인 아카데미 수강 전 ‘작품 계약’을 미리 작성하는 건 아주 나쁘게 볼만한 건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전액 무료’라는 문구때문에 붙은 말이었다.
소설피아 아카데미 수강생이 되면 수강생들만 따로 접속이 가능한 아카데미 온라인 카페에 가입해야 한다. 그리고 소설피아 아카데미는 수강생들에게 소설피아의 독점 히트작들을 읽게 하면서 매일 일기 형식의 독후감을 쓰게 한다.
인풋이 부족한 신인 작가들과 지망생들에게 다양한 작품을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방식이었다. 우리 에르미스도 같은 커리큘럼을 진행했으니까.
하지만 아카데미 수강생들에게 작품을 읽을 캐시를 따로 지급해주는 에르미스와 달리 소설피아의 경우엔 아카데미 수강생들이 사비로 작품을 사 읽게 한 게 문제였다.
‘물론, 공짜로 수업을 듣는 주제에 1화에 100원밖에 안 하는 글을 읽는 게 아깝냐는 사람들도 있었지.’
하지만 소설피아 아카데미 커리큘럼을 진행하면서 수강생들이 한 푼, 두 푼 쓰는 돈은 최소 15만 원에 달했다. 100명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 셈이었으니 아카데미 수강생에게 최소 1,500만 원을 얻은 셈이다.
아카데미를 진행하면서 도서 구입 등에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구 단 하나만 써놔도 되는 걸 소설피아는 하지 않았고, 몇몇 수강생들은 조삼모사 같은 상황에 분노하게 된 것이었다.
‘수강생들 입장에서는 화가 날수밖에 없겠지. 소설피아와 계약을 강제로 진행해야지만 아카데미 수강을 진행할 수 있는데, 그걸 따지면 사실 공짜는 아니잖아?’
소설피아와 테일랜드 그리고 웹월드 셋이서 삼파전의 양상을 띠던 몇 해 전과 달리 이제는 에르미스라는 잠룡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비록 편당 결제가 아닌 정액제 서비스로 진행하지만 S스토리 또한 남성향 플랫폼으로 급부상 중이고.
즉, 작가들이 갈 수 있는 선택지가 점점 다양해지면서 각 플랫폼들은 작가들을 계약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보험팔이 이상으로 심한 압박을 받는 매니저의 경우엔 실적을 채우기 위해 한 화만 읽고 계약 제안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이렇게 각 플랫폼이 소속 플랫폼에서 연재를 진행할 작가들을 구하는 데 혈안이 된 상황에서 소설피아는 잠재력 있는 예비 작가들을 100여 명이나 계약을 해버린 것이다.
소설피아 아카데미에 참여했던 한 수강생이 정글북 비공개 게시판에 올린 계약서 일부분을 보면 아카데미 계약 작가의 경우 최소 작품 한 개를 소설피아에서 먼저 유료화를 진행해야만 하는 조건이 있다.
‘수강료도 챙기고 계약 작품도 챙기고 아주 일타이피를 제대로 하신 거지.’
소설피아가 신인 작가들, 그리고 작가 지망생들이 등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면 지금처럼 아카데미 수강생들은 자신의 속내를 거리낌 없이 정글북에 배출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에르미스를 만들고 싶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억압하면 할수록 더욱 반대로 튀어나가기 마련.
작가들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계약서로 강제를 하는 게 아니라, 알아서 작가들이 모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에르미스 아카데미에서 강제하는 것 없이 실력과 작가를 위한 혜택을 제공했던 것처럼.
드르륵— 드륵— 드르륵—
소설피아와 달리 강제 계약서나 구속구는 전혀 없었음에도 에르미스에선 아카데미에 참여했던 신인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의 계약이 쏟아졌다.
“흠, 수의사 물로 가기로 결정하신 건가?”
그리고 그들 중 몇명.
특출난 재능이 있다기 보단 꾸준히 성장을 보이는 몇몇 작가는 내가 직접 관리하고 있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소설가 역시 재능이 존재하는 이들이 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소설을 써 본 적이 없는데 탁월한 소재를 화수분처럼 내놓고 그걸 대화로 꺼내듯이 자연스럽게 쓰는 이들.
그런 재능 있는 작가들은 내가 아닌 다른 편집자들이 맡아도 문제가 없다. 아니, 편집자들의 도움이 거의 없이도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드르륵— 드륵— 드르륵—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읽어 내려가는 글처럼 꾸준히 발전하는 작가들을 좋아한다. 비록 타고난 재능은 없을지언정 계속 성장하는 작가에게는 한계를 알 수 없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이라곤 나와 김미소 그리고 장군이 엄마 단 셋뿐이다.
“날도 추운데 오라가라야. 생긴 것도 기생오라비같이 생겨서.”
그런데 내 귓가에 들리는 묵직한 남성의 목소리.
“예? 지금 뭐라고?”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아니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내 시선은 장군이가 담긴 캐리어를 향해 내려갔다.
“중성화 하기만 해봐라 진짜. 그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알아?”
“어머, 장군이가 밥을 안 먹어서 예민한가 봐요. 안 짖는 애가 오늘 따라 왜 이렇게 짖지?”
절대 그래선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나를 향해 서슬 퍼런 눈빛을 빛내는 장군이의 말은 나는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하하. 어머니, 장군이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미소 씨는 제가 준비 되면 부를 테니까 진료실로 들어오지 말고요.”
“살살 들어 인마!”
장군이가 든 케리어를 빼앗다시피 들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꽉 닫힌 진료실 안에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
‘말도 안 돼.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지만 내가 쿵쾅거리는 가슴으로 머리를 쥐어 뜯고 있는 이유는 내 눈앞에 있는 토이 푸들의 말이 끊임 없이 내 귀에 들려왔기 때문이다.
“중성화? 헛소리 하지마 새끼야. 거세가 왜 중성화야! 내 땅콩 없애려는 거 모를 줄 알고! 랄부나 까는 더러운 놈아!”
“…….”
“중성을 하면 질병이 줄어들고 수명이 길어져? 야! 그렇게 좋으면 네가 먼저 해. 너는 땅콩 붙어있을 거 아니야! 자기 건 말짱하면서 내 거는 왜 없애겠다는 건데!”
수의사가 된 후로 내 직업을 폄하하는 다양하고 참신한 말들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내게 대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걸 면전에서 듣게 되다니. 그것도 강아지 입에서.’
땅콩 수술을 예약한 2살짜리 강아지 장군이의 말에 묘한 기분이 밀려든다.
‘동물 목소리가 들리는 수의사인가?’
제목부터 ‘수의사는 목소리가 들려’라고 하더니만 영화 ‘닥터 두리틀’처럼 주인공은 동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근래 들어 소설피아와 테일랜드 그리고 S스토리까지 플랫폼들을 예의주시하며 경영 관련 보고만 잔뜩 들어 머리가 지끈거리던 참이었는데 잘 됐다.
아직 미숙한 글이지만 간만에 소설을 읽으니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마우스 휠을 계속해서 넘겼다.
드르륵— 드륵— 드르륵—
결연한 표정으로 건넨 말에 어머니가 흠칫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 중성화를 하지 말자고요?”
“그렇습니다 어머님. 중성화 대신 정관 수술을 진행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정관 수술이라면 우리 아저씨가 한 건데?”
“…예. 같은 거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기습적인 TMI에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장군이 어머님은 그런 내 표정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냥 중성화 해주시면 안 되나요? 중성화 해야 더 오래 산다던데….”
“안 돼요! 엄마! 엄마는 내가 오래 살기만 하면 괜찮아? 내 삶은! 내 즐거움은!”
케이지 안에서 장군이가 발작하듯 울부짖었다.
저 말이 들린다면 장군이 어머니도 지금처럼 웃으며 말하시지는 못하셨을 터.
동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건 확실히 내게만 일어난 증상인 모양이다.
‘일단 입부터 다물게 시켜야겠군.’
동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기가 찬데 애절한 목소리로 자신의 남성성을 지켜달라며 울부짖는 장군이의 목소리를 듣기 괴로웠다. 수의사는 언제든지 냉철해야하는 사람이니까.
스윽.
“흐읍?!”
내가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땅콩 모양으로 만든 걸 찌그러트리는 것을 보자 장군이는 대쪽같이 내 말을 알아 들었다. 강아지에게 바디랭귀지가 통하는 것도 신기한 노릇이다.
“뭐야, 개한테 손짓으로 협박을 하네.”
동물이 인간의 수신호를 알아듣는다는 게 어처구니 없긴 했지만, 원래 소설이 그런 거 아니겠는가.
주인공이 마냥 동물을 사랑하는 전형적인 수의사의 모습과 달리 약간의 사회적 평판을 누리고 적당히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으로 수의사를 골랐다는 컨셉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빠르게 수의사물 원고를 훑어본 후 본격적인 교정과 윤문을 진행하려는 그때, 책상이 진동하며 휴대폰이 울렸다.
‘어쩐 일이시지?’
간만에 받는 그의 연락에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자 경쾌한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랜만입니다,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