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84화 (184/201)

184화 ― 심심한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 * *

—소설피아 뭔데? 표지 검열 실화야?

—베로니카 야벅지 왜 줄임?

—원작에도 없는 스타킹은 뭐야? 스타킹 신으면 세지냐?

—개노답인 건 작가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는데ㅋㅋㅋㅋ 소설피아는 어떻게 된 게 아무런 답도 없냐?

└ 22222 그게 가장 꼴받음. 소설피아 자유 게시판에 항의글 겁나 올라와도 입꾹닫 도랏냐ㅋㅋㅋ?

—내가 그랬지? 테일랜드에 인수되면 천안문 터질 거라고. 망생이들 멘탈 꽉 부여잡고 있어라. 이제 앞으론 단어 하나하나 소설피아 매니지 허락 받고 써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 로또 번호 알려주세요

└ 정결한 마음으로 순례 왔습니다. 로또 1등 부탁드립니다.

└ 님 예언 성공….

검술명가 빨강머리 외국인의 표지 이슈가 터진지 두 주가 지났지만 소설피아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상황은 대응을 하기가 민망한 상황일 테다. 지금 소설피아는 테일랜드와 한 배를 타게 됐다는 축포를 터뜨리는 데 여념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딱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

—뭐야, 검빨외만 검열 당한 게 아니었네? 그냥 노출 있는 여캐는 다 잡는 것 같은데?

—뭐야? 테일랜드에 인수 됐다더니만, 새 이사진에 흥선대원군이라도 나왔음? 쇄국정책 장난 아니네

—어이가 없다. 남캐는 웃통 다 까고 있어도 상관없는데 히로인은 살색 조금이라도 보이면 싹 다 컷이냐?ㅋㅋㅋㅋㅋㅋㅋ

└ 유교 스피릿 수준이 아님. 소슬림의 시대가 왔다. 근데 가장 X같은 건 다른 곳으로 갈 곳이 없음 ㅅㅂ. 더노벨도 이지랄 해서 나왔는데 아오.

정글북 그리고 소설피아 자유 게시판엔 작가들과 독자들의 항의 글이 수두룩빽빽하게 올라왔지만 소설피아는 이에 관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소설피아가 미온적인 대응을 하는 건 작가들의 입장에서 별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일 테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검빨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글은 짙은 남성향의 색채를 지닌 소설들.

원래 그런 소설들은 웹소설 부흥기 초창기에 소설피아와 자웅을 겨뤘던 1세대 웹소설 플랫폼 더노벨에서 연재가 됐었다.

하지만 회사 돈으로 코인 놀이 삼매경인 더노벨 대표님께서 플랫폼 방향성을 여성향 플랫폼으로 노선을 제대로 틀어버리면서 더노벨에서 남성향 작가들은 자취를 감췄다.

자연히 남은 선택지는 소설피아 밖에 없었다.

테일랜드와 에르미스가 소설피아와 같이 아마추어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는 장을 따로 마련해 뒀지만 테일랜드는 작가도 독자도 없는 황폐한 사막.

그리고 우리 에르미스에서는 남성향 작품을 받지만 선정적이거나 전체 연령가에 속하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작품은 단어 필터 기능을 통해 자동으로 19금 게시판으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테일랜드처럼 아예 해당 글을 블라인드 처리해 버리는 건 아니지만 독자들 입장에선 달갑지 않겠지.’

즉, 짙은 남성향의 색채를 지닌 작품들의 경우 작가들의 선택지는 오직 소설피아 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렇기에 소설피아에선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헐, 이게 뭐야? 팀장님 S툰 보셨어요?”

“……조팟님. 업무시간에 너무 큰 소리로 이야기 하시는 게 아닙니까? 개인 취향은 존중하지만.”

“아, 아뇨. 그게 아니라 S툰에서 오늘 웹소설 플랫폼 런칭했어요. S스토리라고 해서요.”

‘S스토리? 그게 벌써 나왔다고?’

그런데 이변이 나타났다.

조팟이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며 언급한 S툰은 국내 최대의 성인 웹툰 플랫폼이다.

그리고 S스토리는 남성향 성인 웹소설을 시작으로 서브컬처와 라이트 노벨을 선호하는 작가들을 대거 유입하며 자리를 잡았던 플랫폼이기도 하다. 이미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조팟의 말에 내가 이리도 놀라는 것은.

‘2021년에 나왔을 플랫폼인데…… 4년이나 앞당겨 졌다고?’

테일랜드의 소설피아 인수가 훨씬 앞당겨진 것처럼 S스토리의 런칭 또한 회귀 전보다 훨씬 더 앞당겨진 것이다.

타다닥—

딸칵— 딸칵—

드르륵— 드륵—

조팟의 말처럼 S스토리는 내 기억속의 모습처럼 파격적인 작가 친화적 이벤트를 홍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에르미스는 한나 코왈스키 작가가 ‘366일’을 연재 중인 것처럼 성인 카테고리가 따로 존재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 연령을 대상으로 한 플랫폼으로 제작 됐기에 성인 웹소설이나 짙은 남성향 색채의 작가와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별도의 마케팅이나 기획은 진행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소설피아의 표지 검열이 터진 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S스토리가 내 기억보다 4년이나 빨리 런칭을 시작한 것이다.

“S스토리는 편당 결제가 아닌 정액제로 진행하기로 했네요. 이거 아예 더노벨을 노린 것 같은데요? 에르미스에는 타격이 없겠죠?”

조팟의 입에서 간만에 기특한 소리가 나왔다.

에르미스를 걱정하는 말을 다 하다니.

“에르미스는 별 타격 없을 겁니다. S스토리가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에르미스와 추구하는 방향성이 다르니까요.”

S스토리는 넷플렉스처럼 월 구독료를 내고 소설을 보는 방식. 그렇기에 작가들도 그리고 독자들도 상당히 반응이 다르다.

웹월드, 테일랜드, 소설피아, 에르미스 같은 편당 결제를 진행하는 플랫폼의 경우 독자들은 한 화를 영구 소장을 하는 거기에 종종 뼈가 시리는 일침을 날려 주신다.

반면 S스토리 같은 정액제 플랙폼의 경우 독자들의 선녀에 가깝다. 어차피 매달 내는 돈은 정해져 있기에 한 번 읽던 소설이 재미가 없어도 딱히 악플을 달지도 않고 그냥 다른 소설을 읽으면 되는 식이니까.

‘이거 생각보다 일이 재미있게 됐네?’

갑작스러운 S스토리의 등판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 진다. 내가 조팟에게 한 말처럼 S스토리가 등판을 했다고 해도 에르미스가 타격을 입는 일은 딱히 없을 테다.

“조팟님. 잘하셨습니다.”

“어, 예?”

내 칭찬이 생소한지 조팟이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나를 바라 보았다.

“타 플랫폼의 동향을 주시하는 것 잘하셨다고요. S스토리가 에르미스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는 건 아닐겁니다. S스토리는 성인 웹툰을 주로 다루는 S툰을 모기업으로 뒀기에 S스토리에서 연재되는 작품들, 즉, 자체 IP를 기반으로 한 작품들이 한동안 주로 나올 거니까요.”

“네. 그, 그렇군요.”

조팟은 마치 태어나 칭찬을 처음 들은 아이처럼 징그럽게 얼굴을 붉혔다. 조팟놈의 행동이 썩 달갑진 않았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도 S스토리가 웹소설 시장에 뛰어든 만큼 앞으로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 지 모르니까 다들 에르미스에 더 좋은 작품 런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세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넵!”

조팟과 황건일 매니저의 우렁찬 대답을 들으며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에르미스는 타격을 받을 일이 없다. 하지만 소설피아는 그렇지 않을 테니까.

* * *

S스토리가 출시되고 어느덧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서브 컬처를 메인 타깃으로 한 S스토리에 누가 가겠냐고 비웃었지만, S스토리는 S툰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플래폼이었기에 상당수의 작가들이 S툰으로의 탈주를 감행했다.

[작가님들과 독자님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소설피아 담당자와 작가님의 소통 문제로 인해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S툰으로의 대탈주는 당연히도 대다수가 소설피아의 작가와 독자들이었다.

‘그러니까 사과는 빠르게 했었어야지.’

그 누구더라도 잘못에 관한 사고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것도 같은 이유겠지.

하지만 소설피아는 회귀 전보다도 더욱 미온적인 태도로 사태를 관망했었다. 테일랜드에 지분을 넘긴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최대한 일을 쉬쉬하며 덮으려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각종 앱 스토어의 소설피아 앱은 별점 테러를 당해 1점대로 내려가고 소설피아와 정글북 게시판에는 소설피아의 미온적인 대처에 따른 수천 건의 항의 글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 강화된 노출에 대한 세부 등급 기준과 간행물 윤리위원회 심의 기준 그리고 청소년 유해간행물 심의 기준에 의해…….]

—ㅅㅣ2222 Pal 지금 장난함? 추노꾼 풀어서 히로인만 뒤지게 패더니 무슨 법 운운해?

└ ㅋㅋㅋ 내 말이. 절대영역(미드, 허벅지) 눈에 띄는 여캐는 히잡 씌우고 남캐는 하우두유두 완전 오픈해도 아무런 상관없음 ㅋ. 그 미친 기준이란 게 뭔데? 미리 공지를 하든지 명확한 기준을 알려줘야 표지 일러를 뽑든 삽화를 제작하든 할 거 아님?

소설피아는 한참 늦은 대처였음에도 불구하고 소설피아의 게시판 몇 곳이 청소년 유해매체로 지정되었기에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는 특이한 물타기를 구사하며 전보다 논란을 더욱 키웠다.

사과문에서 언급한 관련 법 규정도 표지 문제와는 관련이 없었는데 청소년 유해매체를 들먹이며 시도한 물타기라니. 덕분에 소설피아와 정글북 게시판에 탈퇴 인증 게시물이 쏟아졌고, 반사 이익을 얻은 건 예상대로 S스토리였다.

[작가님들과 독자님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결국 3월 말이 되었을 무렵.

소설피아는 김완섭 대표 이름으로 2차 사과문을 소설피아 대문에 걸어 두었다.

작가의 창작 영역을 침해하는 검열로 물의를 일으키고 그 문제의 심각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미숙한 대응을 했다는 고백 그리고 해당 일을 담당했던 직원을 해임했다는 내용과 함께.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어? 팀장님!”

그리고 어느덧 봄바람이 살랑이는 4월의 첫 월요일.

출근 후 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조팟이 미어캣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얄팍한 어깨를 내게 슬쩍 들이밀며 다가왔다. 한 주의 아침부터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팀장님, 제가 주말에 누구한테 연락 받으셨는지 아세요?”

‘아니, 모르지.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하지만 조팟놈은 그동안 점점 갱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나는 얼굴을 구기지 않고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다른 출판사에 제가 아는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의 선배의 아는 다른 출판사 다니는 동기의 다른 과 후배가 소설피아를 다니는데요 글쎄—”

“그러니까 뭐요.”

“흐흐, 놀라지 마세요. 이형석 팀장이 소설피아로 갔었데요.”

“아, 그렇군요.”

그건 굳이 듣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기에 딱히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내 심드렁한 태도에도 조팟놈은 여전히 내게 고개를 바싹 들이 밀은 채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진짜 대박인 건 이형석 팀장이 이번 표지 검열 주도한 사람이래요. 그래서 소설피아 가자마자 짤려서 지금 문창과 동문들 연락 돌리면서 회사 알아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예상하지 못했기에 조금 놀라웠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딱히 업무적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이형석을 강경진이 굳이 왜 소설피아로 데려갔나 했더니만, 이번 표지 검열 사태처럼 이슈가 터졌을 때 사용하기 위한 방패막이 겸 버리는 패로 사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처음 알았네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핫, 뭘요.”

조팟놈이 내 말에 멋쩍게 웃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최근 들어 조팟이 점점 쓸모가 있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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