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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83화 (183/201)

183화 ― 설마…… 그게 벌써 진행되는 건가?

* * *

현재 소설피아의 최대주주는 사모펀드 운용사 ‘헌드레드 일레븐’. 그리고 헌드레드 일레븐이 보유한 소설피아 주식 65%를 가지고 대기업을 모회사로 둔 웹월드와 테일랜드의 각축전이 시작 되었다.

[국내 최대의 웹소설 IP 공룡, 소설피아의 새 주인은 누가 될 것인가?]

[테일랜드 소설피아 인수를 위한 이사회 소집]

[인기 소설 IP의 잠재력! 웹월드가 칼을 빼냈다!]

“세상에…… 기사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네요.”

“테일랜드도 웹월드도 따로 공식 발표를 한 것을 보니, 다들 소설피아 인수에 진심인 모양이에요.”

LGA컴퍼니 3층 회의실에선 임원진들이 다들 걱정이 묻어나는 말을 내뱉었다.

“……빨라도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마치 누가 손을 쓴 것처럼.”

“경진 오빠겠죠. 웹월드와 테일랜드뿐만이 아니라 SQ ENM에서도 인수전 경합에 뛰어든다고 기사가 나왔어요. 경매 상품처럼 대놓고 판을 키우는 방식을 보니 전형적인 경진 오빠의 방식이에요.”

“흠…….”

오진아의 말에 인상이 찌푸려진다.

어찌 보면 현명한 판단이긴 하다.

폭주하는 야생마처럼 홀로 들판을 질주하던 소설피아의 뒤로 에르미스라는 적수가 바짝 따라붙기 시작했으니까.

강경진이 소설피아 임원진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금보다 소설피아의 몸값이 떨어지기 전에 팔아치우려고 수를 쓴 것은 분명하다.

“국내 1위의 웹소설 플랫폼인 소설피아가 지분 매각을 결정할 줄은…… 그런데 대표님은 이미 예상하고 계셨던 건가요?”

“예, 어느 정도는요. 그만큼 에르미스에 자신이 있기도 했고요.”

권미현의 말에 이렇게 대답을 했지만, 내가 이 사실을 아는 건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점이 너무 앞당겨졌단 말이야……. 1, 2년도 아니고 매각 결정이 5년이나 앞당겨지다니…….’

물론, 내가 과거로 회귀하면서 앞당겨진 일들은 상당히 많다. 강추강 작가와 한태산 작가가 일정보다 더 빨리 연재를 시작했고, 내가 담당하는 히전죽 작가를 통해 2021년 말과 2022년 상반기를 뜨겁게 달궜던 이혼물의 붐을 7년이나 앞당기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피아의 지분 인수가 이렇게 빨리 시작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회귀 전에도 테일랜드와 웹월드는 소설피아를 인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었다. 하지만 소설피아의 대표 김완섭은 유독 웹월드를 싫어했었다.

웹월드가 자회사들의 수를 급격하게 늘려가기 시작하면서 웹월드의 자회사가 된 출판사 매니저들이 본격적으로 소설피아에서 연재되는 작품들을 웹월드로 빼가는, 일명 타플런이 우후죽순 발생하기 시작했으니까.

‘거기에 방점을 찍은 게 나혼상이었지.’

웹월드 자회사의 본격적인 작가 빼가기로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던 김완섭 대표는 소설피아에서 오늘의 베스트에도 올랐던 강추강 작가의 ‘나 혼자만 상하차’가 웹월드에서 유례없는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하자 더는 참지 않았다.

김완섭 대표는 결국 웹월드 자회사들의 소설피아 CP 계정을 막아버리는 초유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웹월드와 테일랜드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인수전이 펼쳐졌을 때 그 감정의 골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김완섭 대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분뿐만이 아니라 사모펀드 SQ ENM이 가진 지분 매각에도 테일랜드 쪽으로 지분이 넘어가도록 힘을 썼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야. 테이랜드도 웹월드도 동일선상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본래 소설피아의 주적은 웹월드.

하지만 이번에 그 자리를 꿰차게 된 건 다름 아닌 우리 에르미스다. 회귀 전과 달리 소설피아를 손아귀에 쥘 회사는 테일랜드가 아닌 웹월드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소설피아가 지분을 넘기는 게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않나요?”

소름끼치는 적막만이 맴도는 그때.

지연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렇긴 하죠. 하지만 확실히 심각한 상황이긴 합니다. 소설피아가 테일랜드나 웹월드 같은 대기업의 자회사가 된다면…… 그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어느 사업이든 독과점의 형태는 위험하다.

고인물을 결국 썩기 마련이니까.

이제야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에르미스가 몸집을 더 키우기 전에 소설피아, 테일랜드, 웹월드는 각자 자신의 자리를 더 확고히 할 게 분명하다.

“원래는 소설피아를 제1의 경쟁 상대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소설피아, 웹월드 그리고 테일랜드 모두가 저희의 경쟁 상대입니다. 소설피아의 이번 인수전이 어떻게 흐를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각자 인수전에 열을 올리는 지금이야말로 적기일 수도 있을 겁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건네는 말에 임원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피아의 인수전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빨리 저희 몸집을 키워보죠. 독자님들과 작가님들이 더 길고, 오래 머물 수 있는 에르미스가 되기 위한 회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죠.”

“저, 그런데 대표님. 오늘은 중요한 일정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거 말이시죠?”

“한나 코왈스키 작가님…… 기다리실 텐데.”

“아!”

빌어먹을.

내 부탁으로 오늘 특별 강연에 이어 팬 미팅과 사인회까지 진행한 한나 코왈스키 작가와의 약속을 깜빡했다.

회사 일도 중요하지만 나를 보기 위해 한걸음에 폴란드에서 한국까지 온 작가님인데, 소설피아 인수전에 정신이 팔려 의도치 않게 방치를 한 거나 다름없었다.

“무진 본부장님은 저랑 한나 작가님 미팅 우선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죠.”

* * *

한나 코왈스키 작가와의 저녁 식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 됐다. 기와와 단청으로 꾸며진 전통미 가득 풍기는 한식당에서 펼쳐지는 19금 토크는 민망하긴 했지만, 소재가 소재인지라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단풍 삼촌 얼굴이 기가 막혔지.’

프로 작가인 한나 코왈스키 작가와 나와 달리 단풍 삼촌은 서로 대와가 불가능한 우리 둘을 중간에서 계속 통역을 해줬어야만 했기에, 단풍 삼촌은 귓바퀴가 벌게진 채로 우리 둘의 거침 없는 토크를 계속해서 전달해야만 했다.

한나 코왈스키 작가가 다시 폴란드로 돌아간 지 어느덧 두 달이 지난 2017년 2월 중순이 됐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나 코왈스키 작가의 작품 피드백을 진행할 때면 당시 단풍 삼촌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을 짓게 만든다.

‘상황은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계속 징징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

2017년 새해가 밝으면서 소설피아의 인수전은 점점 구체적인 윤곽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한 주 전이었던 2월 8일, 회귀 전과 마찬가지로 테일랜드가 웹월드를 제치고 소설피아를 인수하는 것으로 결정이 됐다.

물론 그동안 우리도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에르미스는 독자들 그리고 작가들의 편의를 위해 꾸준히 추가 기능을 업데이트 했고 지금도 준비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테일랜드의 소설피아 인수가 발표된지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테일랜드와 소설피아엔 아직 본격적인 변화가 보이진 않고 있었다.

“와, 이거 뭐야? 검술명가 빨강머리 외국인 표지 바뀐거 보셨어요?”

“엥? 그거 유료화 들어간지 얼마 안 되지 않았어요? 표지가 왜 벌써 바꼈대요? 성적이 좋아서 바꿔 준 건가?”

BS북 판무 2팀 매니저들의 말에 절로 귀가 쫑긋거린다. 일명 ‘검빨외’로 불리는 검술명가 빨강머리 외국인은 판무 2팀 매니저들 몇이 재미 있어서 컨택을 했지만, 이미 소설피아 매니지먼트와 계약이 된 작품이라고 이창윤 팀장을 통해 몇번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난한 성적으로 시작해 승승장구하던 작품이었는데, 유료화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벌써 표지가 새로 바뀌었다는 건은 무료 연재 기간 중 내가 봤었을 때보다 성적이 훨씬 뛴 모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출판사에서 새로운 표지를 제작해 주는 건 독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을 때 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작가가 해당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출판사와의 협의를 통해 교체를 진행하는 경우고.

“아뇨, 그게 아니라 작가님이 표지 검열 당했다고 작가의 말에…….”

“예? 표지 검열이요? 어디?”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그런 이슈가 아닌 모양이었다. 혹시하는 생각에 소설피아에 접속해 검술명가 빨강머리 외국인을 검색했다. 그러자 이전에 내가 봤었던 것과 확연히 달라진 표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딸칵— 딸칵—

드르륵— 드륵—

빠르게 최신 회차를 구매한 후 하단에 있는 작가의 말을 살피니 소설피아 매니지먼트로부터 표지 검열을 당해 기존 표지는 공지에만 올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기존의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매니지먼트에서 수정이 꼭 필요하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바꾸게 되었다는 긴 하소연과 함께.

‘설마…… 그게 벌써 일어나는 건가?’

2021년, 원래 테일랜드가 소설피아를 인수했을 때 많은 작가들은 테일랜드의 소설피아 인수를 우려했었다.

작가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3대장이라고 불렸던 테일랜드, 웹월드 그리고 소설피아 중에서 테일랜드는 유독 표지와 내용에 지나친 검열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검빨외 배경이 찌는 듯한 더위가 가득한 열대 지방인데, 히로인 복장이 갑자기 왜 유교걸이 된 건데? 심지어 해안가 근처가 배경 아니었어요?”

“그러니까요. 그림 작가는 같은 사람인데 체형 자체도 상당히 달라졌는데요. 특히 상체 쪽이…….”

“달라진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아예 다른 사람 아닌가요?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 묘사랑 너무 다른데……. 처음 보는 독자들은 표지 때문에 괜히 의아할 정도인데요?”

내가 보기에도 판무 2팀 매니저들의 말처럼 검빨외 표지에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과한 수정이 적용되어 있었다. 원작의 몰입도를 방해할 정도로.

테일랜드에 인수된 소설피아.

내가 수를 쓰지 않아도 알아서 들어가고 있었다.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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