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82화 (182/201)

182화 ― 긴급 회의.

* * *

무더운 더위가 한풀 꺾이고 어느덧 곱게 물든 단풍이 가득한 9월이 되었다.

지난 달 있었던 에르미스 아카데미에는 버거울 정도로 많은 지원자들이 몰려들었기에 추석 연휴가 있는 셋째 주가 지나 9월 넷째 주에 접어들어서야 아카데미의 첫 강의가 시작 되었다.

에르미스 아카데미의 첫 강의 주자는 지난 사두용미 아카데미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진행했다. 하회탈을 뒤집어쓴 채로 진행하긴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리고 10월 중순에는 웹소설 장르판에 헌터물의 기준을 세운 ‘나 혼자만 상하차’의 강추강 작가의 특강이.

11월에는 재벌물의 개척자인 ‘대감집 막내손자’의 한태산 작가의 특강이 에르미스 아카데미 수강생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제 명실상부 국내 최대의 작가 커뮤니티가 된 정글북에선 다들 에르미스 아카데미에 관한 칭찬으로 도배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소설피아 아카데미에 관한 반응은 잠잠했다.

‘그러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아카데미를 하겠다고 하니 쉬울 리가 있나.’

고기도 뜯어 먹어본 놈이 그 맛을 아는 법이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 없이 급하게 에르미스의 날개를 꺾겠다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카데미를 급조해서 만들다니, 당연히 쉬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2016년의 마지막 달인 12월.

에르미스 아카데미의 마지막 특강을 진행하는 한나 코왈스키 작가의 강의가 진행되었다.

“제 소설은 현대판 ‘미녀와 야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모이신 수강생들 중에서 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이 있다면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실 테죠. 지금 짓고 계신 표정처럼요.”

한나 코왈스키는 폴란드 사람이었지만 동시통역으로 강의는 진행됐기에 언어의 장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특강은 단순히 에르미스 아카데미 수강생들뿐만이 아니라 한나 코왈스키 작가의 팬 미팅을 겸해 진행하게 되었기에 강추강 작가 그리고 한태산 작가의 특강 때와는 달리 강남 인근의 콘서트 홀을 빌려 진행하게 되었다.

“에르미스의 운영자님을 통해 받은 사전 질문을 보면 글을 쓸 때 어떤 걸 가장 중요시 하냐고 묻는 질문이 많더군요. 이에 대한 대답은 기본적인 필력이나 다양한 경험 등 여러 가지로 답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제가 꼽는 작품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점. 그건 좋은 편집자를 만나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나 코왈스키가 콘서트홀 뒤를 향해 힐끗 거리며 하는 말을 보니 나를 향한 금칠을 해주려는 듯 하다.

내 예상대로 한나 코왈스키는 자신의 담당자 덕분에 글이 더욱 윤택하게 나올 수 있었다며 장장 십여 분을 편집자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했다.

지난 3월 한나 코왈스키 작가와 처음 계약을 한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그녀에게 앞으로의 전개 방향 등을 짚어 줬었고 내 피드백을 받아든 한나 코왈스키는 매번 장문의 감사 메일을 보냈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다.

나를 향한 칭찬으로 한참의 시간을 할애한 한나 코왈스키는 이어서 자신의 집필 노하우를 비롯해 수강생들이 궁금해 했던 질문들에 관해 하나하나 친절히 답해줬고 수강생들의 뜨거운 호응과 함께 에르미스의 마지막 특강은 마무리가 됐다.

“한나 코왈스키 작가님의 강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나 코왈스키 작가님의 첫 단행본 출간을 기념하는 팬미팅과 사인회가 바로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회자의 말처럼 오늘은 단순히 한나 코왈스키의 특강인 것뿐만이 아닌 그녀의 팬미팅과 사인회가 이어져 있었다.

에르미스에서 반년간 연재를 진행한 지금, 한국 내에서도 그렇지만 전 세계적으로 한나 코왈스키의 인기는 뜨거운 수준이 아닌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지난 반년간 에르미스를 운영하면서 나는 강추강 작가 한태산 작가 그리고 한나 코왈스키 작가를 케어하는 데 LGA컴퍼니 임원진들은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 진행되는 팬미팅이 끝난 후에는 우리 에르미스에서 자체 출간한 첫 종이책, 366일 1권을 구입한 독자들로부터 사인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내가 회귀하기 전만 하더라도 웹소설은 ‘나 혼자만 상하차’나 ‘대감집 막내손자’정도의 히트작이어야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통해 종이책으로 출간이 진행 됐다.

그게 아니면 BS북처럼 대여점과 연결 고리가 있고 종이책 유통망이 있는 출판사들이 작가들과 보장인세 계약을 했을 때만 따로 종이책 출간을 진행했었고.

하지만 에르미스는 온라인 쇼핑몰 탭을 별도로 추가해 독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책을 종이책으로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을 완료했다.

누군가에겐 후루룩 넘기며 보는 글일지라도 어느 누군가에겐 깊은 울림이 줄 수도 있는 다양성이 웹소설에는 존재하며, 독자들의 취향은 매우 다양하다.

또한 웹소설 작가들 또한 자신이 쓴 글을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상당하기에 에르미스에서 연재되는 글을 종이책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은 상당한 메리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시발점을 끊는 건 한나 코왈스키지.’

아무리 좋은 제품이 있고 시스템을 구축해놨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면 흥행하기 쉽지 않다.

물론 꾸준히 에르미스를 사용하는 독자들에겐 에르미스 숍의 기능이 입소문으로 번져 나갈 순 있지만, 소설피아가 주춤하는 지금 에르미스는 더욱 확고히 출판계에 자리를 잡아 나가야만 한다.

오늘 팬 미팅과 사인회를 위해 한나 코왈스키 작가의 ‘366일’ 작품에 한정으로 에르미스 쇼핑몰 기능을 열었는데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나 코왈스키 작가는 팬 미팅을 끝내고 산처럼 수북이 쌓인 책에 손수 사인을 해서 팬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가녀린 팔이 벌써 후들거리기 시작하는 것만 같다.

무대 뒤에서 한나 코왈스키 작가의 사인회 장면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그때 지연이게 슬쩍 다가왔다.

“정우도 저렇게 사인회 진행하면 좋을 텐데.”

“음? 그게 무슨 소리야?”

“정우도 팬 미팅을 하거나 사인회를 한다고 하면 정말 많은 독자들이 올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쉬워서.”

마치 자기가 속상하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 내민 지연이의 머리를 슬쩍 쓰다듬었다.

“아니야. 사실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기도 하고, 독자님들이 내 글을 읽어주는 것도 좋지만 나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주는 기쁨이 가장 커.”

“미안,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봐.”

“하하, 아니야.”

굳이 팬미팅이나 사인회를 하지 않더라도 독자들과는 언제든지 댓글로 소통할 수가 있기에 솔직히 아쉬운 마음은 딱히 없다.

팬 미팅을 하고 사인회를 하며 대외적으로 나를 알리는 것보다 내 글에 더욱 집중하고 BS북과 LGA컴퍼니의 소속 작가님들이 더욱 좋은 환경에서 집필을 하고 발전하는 것.

그리고 우리 직원들이 더욱 좋은 대우를 받으며 즐겁게 일할수 있는 출판계의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욱 나를 기쁘게 하기 때문이다.

무대 뒤에서 지연이와 나란히 한나 코왈스키 작가의 사인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의 사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366일의 인기를 증명하듯 그녀 옆에는 아직도 50여권의 책이 남겨져 있었다. 이제 1시간 정도면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사인회도 마무리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한나 코왈스키 작가 옆에서 그녀를 서포트 하던 단풍 삼촌이 핸드폰으로 무언갈 보더니, 사색이 되어 우리가 있는 콘서트홀 뒤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가득한 자상으로 인해 웃고 있어도 살벌함이 가득한 얼굴이지만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으로 읽은 단풍 삼촌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욱 심각해 보였다. 마치 큰 사고라도 난 것을 본 사람처럼.

“정우야.”

콘서트홀 뒤편으로 다가와 대표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나를 급히 부르는 것을 보니 심각한 일이라는 추측이 조금씩 확신으로 변해 간다.

“무슨 일인데 그래?”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단풍 삼촌은 조금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이 보고 있던 핸드폰 화면을 내게 건네 보였다.

“대체 뭐길…… 어?”

“세상에.”

단풍 삼촌이 건넨 핸드폰 화면을 보며 나와 지연이의 입에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탄성이 흘러 나왔다.

핸드폰 화면에 나온 건 조금 전 나온 신문 기사.

그리고 그 기사 내용의 헤드라인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테일랜드…… 그리고 웹월드가 소설피아 인수전에 뛰어 들었다고?”

“……그래. 갑자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피아 대표가 갑자기 그렇게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

기사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회귀 전에도 테일랜드와 웹월드는 서로 소설피아를 인수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고 실제로 테일랜드는 소설피아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미래에도 벌어졌던 일이지만 내가 이렇게 놀라는 이유는, 테일랜드와 웹월드의 소설피아 인수 경쟁은 2021년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 원래 대로라면 지금으로부터 5년은 더 지난 후에 일어났어야 하는 일이니까.

모든 일이 잘 풀리기만하던 일상에 갑자기 폭풍이 휘몰아친다. 원래라면 아직 소설피아 인수 협상에 관해선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어야 하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누가 인위적으로 이런 일을 주도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저지를 사람은 내가 아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

소설피아로 이직을 했고 M&A에 전문지식을 지닌 사람. 그리고 출판계를 위하기보단 돈놀이를 하는 데에만 눈이 뒤집힌 사람.

‘……강경진.’

승리를 자축할 상황이 아니었다.

에르미스 아카데미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잠잠하기만 하던 소설피아의 행보.

수상할 정도로 조용하던 소설피아는 처음부터 아카데미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풍 삼촌. 긴급회의 소집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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