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강사진 미쳤네. 다들 어디로 가기로 함?
└ 비교할 게 있나? 당연히 에르미스지
└ 강추강, 한태산, 노원지귀 이상 끝
└ 나는 소설피아
└ 나도 소설피아임. 에르미스 강사들은 다들 온라인 쪽 아님? 소설피아 강사들은 오프라인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데?
└ 직접 봐서 뭐하게ㅋㅋㅋ 직접 본다고 너랑 친구하겠냐?
└ 직접 보면 좋잖아 ㄱㅅㄲ야
└ 강추강, 한태산은 온라인 노원지귀는 오프까지 나온다함. 그럼 에르미스지.
└ 노원지귀 지난번에도 탈 쓰고 강의하지 않았음?
└ 탈 쓰고 하면 강의가 구려지냐? 웃긴 새기네 ㅋㅋㅋ
└ 싸우지 말아라 얘들아 소설피아든 에르미스든 면접 통과해야 강의 들을 수 있다
작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 정글북.
한여름의 무더위처럼 정글북의 자유 게시판은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 내가 지금 잘못 본 건가? 에르미스에 민소희?
하지만 팽팽하게 나뉘던 사람들의 의견은 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당일 에르미스를 향해 순식간에 기울어졌다. 에르미스 메인 페이지에 올라온 팝업 공지 영상 하나로 인해.
—아니…… 무슨 쇼핑몰 모델도 아니고 우리 소희가 에르미스 아카데미 광고를 왜 찍음?
—에르미스가 돈 많이 번다고 하긴 하던데 대박이긴 하네.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쓰고. 그것도 민소희를
—혼잡하던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고민하지 않고 에르미스 찍겠습니다^^7
└ 설레발 그만 해라. 민소희가 에르미스 광고 찍는다고 해서 직접 나오기라도 하냐? 무슨 연예인 보고 아카데미 지원을 함? 일단 나는 에르미스 지원 했으니까 내가 가보고 알려줌
└ 나도 이미 함 ㅋㅋㅋ
이번 아카데미 홍보의 비밀 병기는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여자 주연 배우인 민소희였다.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촬영 스틸 컷과 홍보 영상이 나감과 동시에 민소희의 주가는 온라인에서 미친 듯이 불타오르는 상황이다.
그런 민소희가 에르미스 아카데미의 홍보 모델로 섰다는 것이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선 충격적으로 다가온 모양이고.
‘작가와 지망생들뿐만이 아니지. 각종 뉴스 기사에도 에르미스가 대체 뭐 하는 곳이길래 민소희가 광고를 찍는지 난리법석이니까.’
지난해 처음으로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오픈했을 때만 해도 이번에 소설피아가 아카데미 홍보를 하듯 단순히 이미지 파일로만 올렸었다.
하지만 에르미스는 PC로 홈페이지에 접속하거나 지금 내가 보는 것처럼 모바일 앱에 접속하면 라이징 스타 민소희의 홍보 영상이 나온다.
—안녕하세요, 민소희에요! 작가 여러분들을 위한 아카데미를 소개해드리려고 해요.
상큼한 미소로 시작되는 오프닝 멘트.
소개 영상엔 민소희가 출연해 에르미스 아카데미는 누구를 위한 곳인지, 그리고 에르미스 아카데미에 지원하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툭—
“……?”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에르미스 홍보 영상을 돌려보는 그때였다.
“그렇게 보고 싶으셨어요? 기다리시면서도 제 영상을 보시고?”
“아, 오셨어요?”
얼굴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모자를 푹 눌러 쓴 민소희가 내 어깨를 슬쩍 쳤다.
“오늘 홍보 영상 올라온 거 보고 있었어요. 그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광고 촬영에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말에 민소희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 작가님 부탁 다 들어드리는데, 작가님은 지난번에 뒤풀이에도 오신다면서 안 왔잖아요.”
“하하…… 정말 가려고 했었는데…… 죄송합니다.”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촬영이 모두 끝나던 날.
메가폰을 잡았던 하진성 감독은 내게 회식 자리에 참여를 부탁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공교롭게도 에르미스가 베타 서비스의 꼬리표를 떼고 정식 오픈을 한 첫날이자, ‘나 혼자만 상하차’의 웹툰이 처음으로 서비스되고 경이로운 매출을 달성한 날이기도 했다.
가능하면 하진성 감독의 영화 제작팀 회식에 합류하려 했지만, 대외적인 활동보단 일단 에르미스의 정식 서비스 오픈과 나혼상 웹툰을 성공적으로 런칭한 우리 팀을 축하하는 자리에 내가 있어야만 했다. 그 후에는 바로 공모전을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입을 삐죽 내민 민소희가 투덜거렸다.
“흥, 됐어요. 대신 오늘 맛있는 거 사주기로 하셨으니까요.”
“그래서 더 죄송하긴 하네요. 더 좋은 곳에서 대접했어야 했는데 정말 여기로 괜찮으시겠—”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인 거 모르세요?”
“네?”
영문 모를 소릴 건넨 민소희는 직원을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사장니임! 생삼겹 3인분에 소주… 소주 드세요, 맥주 드세요?”
“아, 저요?”
“뭐예요. 설마 저 자작하게 하려는 거 아니죠?”
“소희 씨 드시는 걸로 저도 마실게요.”
“소주랑 맥주 한 병이요.”
전진철의 마수로 인해 술은 두 번 다시 거들떠보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녀 스스로 술을 먼저 주문하는 것을 보니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민소희가 워낙 모자를 깊게 눌러 써서인지 아니면 펑퍼짐한 옷을 입어서인지 사람들은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럼 짠 할까요?”
“그러시죠.”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생삼겹의 한쪽 면이 익어갈 때쯤, 민소희가 가득 채운 소맥잔을 들이밀었고 우린 서로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민소희에게 불 지르는 파이어맨 촬영은 어땠는지, 하진성 감독과는 어땠는지 그리고 불 지르는 파이어맨을 촬영한 다른 배우진들은 어떠했는지 등을 물었다.
반면 민소희는 최근 내 근황을 집중적으로 물어 왔다. 근황에 관해선 내가 딱히 답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그런데요, 작가님.”
“예?”
그렇게 한참 대화를 이어나갔을 때쯤, 민소희는 고개를 푹 떨구며 말했다. 묘한 미소를 입꼬리에 걸친 채.
“오늘 오전에 에르미스 광고 나온 걸 보셨는지 선미 선배님께 연락이 왔더라고요. 그런데 선미 선배님께서는 광고 모델 제안을 받지 않으셨다고 하시더라구요.”
“아, 그건…….”
“작가님은 선미 선배님과 친분이 더 두터울 텐데 에르미스 광고 모델을 저로 정하신 이유가 따로 있으신가 해서요. 선미 선배님이 서운해하시더라고요. 자기한텐 따로 안 물어보셨다면서.”
‘윤선미가…… 서운해했다고?’
민소희 외에 내가 아는 또다른 연예인 인맥은 다름 아닌 스타작가 윤선미다. 그리고 민소희의 말처럼 나는 윤선미에겐 따로 광고 모델을 요청하지 않았다.
‘스타작가’라는 필명으로 연예계물을 연재 중인 윤선미는 웹소설 작가로서의 자기 신분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기에, 애초에 광고 모델 요청을 하지 않았건만. 서운해했다는 윤선미의 말에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하지만 지금 더 나를 민망하게 하는 건 깊게 눌러쓴 모자 아래서 과하게 반짝거리는 민소희의 눈빛.
윤선미 대신 민소희를 쓰는 건 정말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회귀자인 난 민소희가 앞으로 더욱 승승장구할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앞으로 더 뜰 사람이니까 몸값이 쌀 때 쓴 건데…….’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상황에 그렇게 말하는 건 무리수임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진심을 간결하게 압축시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소희 씨를 에르미스의 홍보 모델로 정한 건 소희 씨가 가장 적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추구하는 모습에도 잘 어울리고요.”
그리고 저렴하지.
솔직히 윤선미에게 계약 제안을 했다면 민소희를 홍보 모델로 체결했을 때와 같은 수준으로 계약하기 어려웠을 테니까.
“……잘 어울린다고요, 작가님하고.”
“예?”
“아, 아니에요. 짠 해요 우리! 자아, 짠~”
에르미스 아카데미의 홍보모델인 배우 민소희. 그녀의 텐션은 급격히 오르기 시작했다.
* * *
오늘은 8월 셋째 주 일요일.
이틀 전부터 시작된 에르미스 아카데미 면접의 마지막 날이다.
—작가님께선 이미 2질째 연재 중이시네요? 에르미스 아카데미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참여하시게 됐는지 말씀 들어 볼게요.
—지원서를 보니 직장 생활하시는 걸로 되어있는데요. 오프라인 강의 참여 정말 가능하실까요?
—순문학 경력만 있으시네요. 순문학 쓰실 때와 웹소설은 상당히 차이가 있을…….
에르미스 아카데미 면접은 LGA컴퍼니 임원들이 사용하는 3층 회의실에서 진행됐고, 나는 집에서 회의실 모습이 연결된 카메라를 통해 면접자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와달라고 애원하는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골라잡는 수준이 됐네.”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면접자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심지어 저들은 이미 서류 심사에서 거르고 걸어 살아남은 참가자들. 이제 에르미스 아카데미는 참가자들의 수를 걱정할 수준이 아니었다.
“소설피아와 경쟁은 이제 생각할 필요도 없게 됐고. 괜한 걱정이었다니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소설피아의 첫 번째 공식 아카데미는 그리 큰 화제를 몰고 오지 못했다. 소설피아의 커리큘럼이나 강사진이 별로인 게 아니었다.
신인 작가들과 작가 지망생들.
단지 그들의 선택을 받은 게 소설피아 아카데미가 아닌 에르미스 아카데미였을 뿐이니까.
에르미스에 통수를 치고 낄낄거리고 있었을 소설피아와 강경진 그리고 이형석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안 봐도 눈에 훤히 그려진다.
* * *
BS북 사옥 옥상.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옥상 구석에선 두 사내가 마주하고 있었다. 다만 한 사내는 다른 사내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형석 팀장님. 대체 왜 보고 내용과 에르미스가 하는 행동이 이렇게 다를까요? 노원지귀에 한나 코왈스키 작가의 오프라인 강의?”
“그게…….”
“거기다 홍보 모델로 민소희?”
“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언급이 없었습니다만…… 갑자기 이렇게 될 줄은…….”
이형석은 자신의 앞에 마주 앉은 강경진을 보며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고작 이 정도의 자료를 받는 줄 알고 소설피아의 팀장 자리에 추천했다니…… 누가 봐도 제가 손해보는 장사를 한 게 아닙니까?”
“죄, 죄송합니다! 꼭 기대에 미칠 수 있도록—”
“해야죠. 고작 이딴 결과를 보려고 팀장님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싸늘함이 가득 담긴 말을 남기고 사라지는 강경진의 뒷모습을 향해 이형석은 허리를 접어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