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 홍보…… 모델이요?
* * *
어느덧 8월 초.
소설피아에서 맞불을 놓기로 작정한 지 한 주가 더 흘렀다.
“아오 더워 죽겠…… 어? 팀장님?”
“조팟님. 더우면 옷을 얇게 입고 다니세요. 저희 회사 자율 복장 아닙니까?”
옹졸하게 앞으로 말린 조팟놈의 어깨가 오늘따라 유난히 쫙 펴진 것을 보니, 이번에도 12개월 할부로 시즌 지난 명품 옷을 처사신 모양.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한여름에 손목까지 오는 티를 처입고 찡얼대는 조팟놈의 투덜거림을 더는 듣기 싫어 단박에 잘라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소설피아에 공지 팝업 떠서 말씀드린 건데…….”
그 말에 조팟놈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꼴에 파트장이라고 분기에 한 번 쯤은 쓸모 있는 냄새를 풍기기도 하는데, 그게 오늘인 모양이다.
“그래요?”
“……네.”
비죽 튀어나온 조팟놈의 입술을 무시하고 소설피아 홈페이지에 접속하자 머리엔 열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무더위 때문이 아닌, 소설피아에서 올린 공지 때문에.
드르륵— 드륵— 드르륵—
마우스 휠을 드르륵거리며 소설피아 홈페이지에 메인 화면에 들어가자마자 팝업으로 뜨는 공지를 살폈다.
지난주 급히 공지 게시판에 올라왔던 텍스트 형태의 공지와 달리, 이미지 파일로 만들어진 이번 공지엔 소설피아에서 처음으로 진행하는 아카데미 시행 일정, 커리큘럼 등이 가득 나열되어 있었다.
세련된 홍보 디자인을 보니 나온누리, 바이텔, 만리안 시대의 디자인을 고수하던 소설피아가 이번 아카데미에 공을 들였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드르륵— 드륵— 드르륵—
‘하…… 쥐새끼가 너였어?’
그리고 마우스 휠을 아래로 쭉 내려 강사진 리스트를 보자 BS북의 어떤 놈이 내부 정보를 빼돌린 건지 파악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오진아에게 카톡을 보냈다.
소설피아에 올라온 강사 리스트를 캡처한 파일을 함께 보내면서.
—쥐새끼 찾은 것 같네요
* * *
BS북의 대표실.
오진아가 여전히 기계 같은 표정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습한 날씨와 달리 건조함이 묻어나는 오진아의 말에 운영팀 팀장 이형석이 고개를 숙이며 대표실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대표님?”
“네, 앉으세요.”
이형석은 무슨 일로 불려 왔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표실 내의 미팅용 책상 앞에 앉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오진아 또한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거두절미하고 말하죠. 소설피아 팝업 공지 보셨습니까?”
“소설피아 공지요? 아직 확인은 못 했습니다. 거기에 뭐라고 적혀—”
슥—
오진아는 이형석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에게 자신의 폰을 내밀었다. 그리고 폰 화면엔 박정우에게 받은 소설피아 아카데미 공지 이미지 파일이 띄워져 있었다.
“하단 살펴보시죠.”
“아, 예.”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공지를 살피던 이형석의 눈이 부릅 뜨였다.
“어…… 이건?”
“팀장님께서 컨택하기로 한 작가 리스트였죠. 하나둘도 아니고 모두가 소설피아 강사진으로 섭외되어있네요.”
오진아가 이형석에게 건넨 강사진 리스트.
그들은 소설피아뿐만이 아니라 테일랜드 그리고 웹월드에서 활동하는 S급 작가들이었다.
“지금 제가 소설피아에 따로 연락이라도 취했다는 말이십니까, 대표님!”
그 명단을 내민 오진아의 말에 강약약강의 화신인 이형석이 발끈거리며 언성을 높이자 오진아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강사진 명단이 동일하다고 알려드린 것뿐인데요, 이형석 팀장님? 지금 같은 태도를 보이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린 모습이니까요.”
“…….”
아카데미에는 전혀 관심 없던 소설피아가 갑자기 에르미스의 일정에 맞춰 아카데미를 열겠다고 한 것도 의아한 일이라고 오진아는 생각했다.
그런데 콧대 높은 소설피아가 소설피아 전속뿐만이 아니라 웹월드와 테일랜드 강사까지 모았다는 건 내부 정보가 대놓고 흘러갔다는 것으로밖에 의심할 수 없는 상황.
그렇기에 이형석이 대놓고 발끈하는 모습을 보이니, 자신이 도둑이라고 이실직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표님께서 그렇게 말하셔도 결국엔 저를 의심한다는 말을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팀장님과 대화를 하면서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는데요. 대책 논의를 위해 부른 거였는데, 제가 의심해야 하는 부분이라도 있어야 하는 겁니까?”
오진아의 말에 당장이라도 화를 분출할 것만 같던 이형석의 표정이 차분해졌다.
“아뇨, 그럴 필요는 없으시죠. 하지만 대표님께서 하시는 말에서 그런 느낌이 물씬 드는 건 어쩔 수가 없군요. 솔직히 저희 명단에 있던 강사들은 소설피아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작가들이 아니었습니까? 그러니 소설피아 측에서도 당연히—”
“웹월드와 테일랜드에서 활동하는 작가님들도 소설피아가 강사로 초빙한 거다. 그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형석의 말에 오진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신기하네요. 에르미스에선 아직 아카데미 공지도 올리지 않았는데 일정도 그렇고 강사진까지 겹친다는 게요.”
“그거야 저도—”
“모르시는 일이었겠죠. 그런데 팀장님. 소설피아 아카데미 강사로 가기로 한 작가님 명단에 있는 분들 말이죠. 팀장님이 직접 그분들께 연락하셨다고 하던데, 저희 에르미스 측 강사 초빙은 거절했다고 제게 보고하셨는데 소설피아의 아카데미 강사 제안은 모두 수락하셨네요. 이에 관해선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18도로 맞춰둔 에어콘의 찬바람보다 더욱 매서운 눈빛으로 묻는 오진아의 말에 이형석은 잠시 입술을 달싹였다.
“……그야.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에르미스보다 소설피아의 인지도가 더 높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혹은 소설피아의 제안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고요.”
“그래요? 팀장님의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생각은 안 하시고요?”
“그게 무슨? 대표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닙니까!”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이형석의 말에도 오진아는 여전히 변함 없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 보았다.
“능력 부족에 관한 지적이 대체 어디가 지나친 말인지는 모르겠네요. BS북 그리고 LGA컴퍼니 소속 작가님들이 아닌 외부 작가님들의 강사 초빙은 팀장님께 모두 위임한 걸로 아는데, 저는 제대로 된 보고 하나 들은 게 없는걸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지난 주 미팅 날에 분명 대표님께 다들 거절하셨다고 대표님께 말씀을—”
“작가님들이 거절하셨다고 구두로만 설명하셨죠. 작가님들께 연락드린 메일은 전혀 참조되지 않았네요.”
“그건…… 제가 전화로 연락을 드려서……. 촉박한 일정이라 빠르게 연락을 드리기 위한 거여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형석의 항변에 오진아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말아 올라갔다.
“급해서 다 통화로만 작가님들께 연락을 하셨다고요? 작가님 모두에게? 내규에 의해 작가님들께 연락을 드린 후에는 해당 내용 정리해서 다시 작가님께 메일로도 내용을 남겨야 하는 걸 팀장님이 모르셨을 일은 없을 텐데요?”
“에르미스 아카데미 일정이 급하게 진행돼서 빠르게 연락드렸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의심스러우시다면 작가님들께 직접 확인을…… 하, 이런 식이면 제가 기분이 상해서 있지 못하겠군요.”
갑작스러울 정도로 잔뜩 성을 내는 이형석의 말에도 오진아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를 지긋이 응시했다.
“지금 말씀은 퇴사를 하시겠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맞습니까?”
“김동현 팀장…… 아니 본부장을 제외하곤 BS북에서 가장 오랜 기간 근무한 게 바로 접니다. 그동안 제가 한 성과가 있는데 이런 식의 대우는 저도 더는 참기 어려울 것 같군요. 이번 달까지만 다니고 퇴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치 홧김에 하는 말 같았지만, 오진아는 이형석의 행동이 다분히 계획적임을 알 수 있었다.
팀 회식 때를 제외하곤 밥도 제일 저렴한 백반만 먹고 퇴근할 때마다 탕비실에서 커피 믹스와 과자를 한 움큼씩 집어가는 이형석이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월급과 복지가 인상된 BS북을 홧김에 퇴사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아뇨, 지금 바로 짐 챙겨서 나가주세요.”
“예?”
“나가고 싶다는 분 잡을 생각 없으니까요. 이달 말까지 월급은 나올 거니까 걱정은 마시고요. 그럼 나가보시죠.”
“…….”
하지만 이는 오진아의 예상 범주에 있었던 일.
또한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이형석은 BS북에서 언젠가는 솎아 내야만 했던 사람이었기에 오진아는 그를 잡지 않았다.
“월급도 다 주신다라…… 배려 감사하군요.”
“오물은 빨리 치워야 냄새가 빠지죠. 배려라고 하기보단 서로가 좋은 일 아니겠어요?”
“…….”
입술을 질끈 깨무는 이형석을 보며 오진아는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엔 오해하실 필요 없어요. 팀장님한테 하는 말이 맞으니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예의는 서로 이 정도 차리면 된 것 같은데 나가보시죠.”
“……가보겠습니다.”
* * *
이형석의 사표 수리가 일사천리로 끝난 후.
나는 바로 대표실로 이동했다.
“소설피아에 가기로 한 모양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보험도 없이 회사를 그만둘 사람이 아니니까요.”
미어캣같이 남 눈치나 보는 게 일상인 이형석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이 강경진에게 달라붙은 게 분명할 테다.
“그보다 쥐새끼를 잡아냈으니 이제 에르미스 아카데미 일정도 공지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엘가 디자인 팀에서 공지 홍보 자료 준비는 모두 다 끝났다고 하나요?”
“네, 홍보 관련 사항은 준비 모두 끝났고 강사진도 이미 섭외 끝났어요. 단지 저희 아카데미 시작 일정, 그리고 면접하고 모집 일정을 소설피아와 완전히 동일하게만 조정하려고요.”
“강추강 작가님 그리고 한태산 작가님 같은 S급 작가님들이 에르미스 아카데미 강사진에 참여하기로 하셨지만…… 아예 같은 날짜로 정하는 건 조금 무리지 않을까요?”
내 말에 오진아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설피아 측 강사진도 만만치 않기도 하고 소설피아는 저희와 달리 스타 강사들이 오프라인 강의에도 모두 참여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번 에르미스 아카데미엔 대표님은 강사로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셔서…….”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
강경진 이 양아치 놈이 어떤 식으로 작가들을 구워삶았는지 BS북에서 초빙한 S급 작가들은 모두 온라인뿐만이 아니라 오프라인 강의에도 참여한다고 했다.
반면 우리 측의 S급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강추강 작가님과 한태산 작가님은 시간 관계상 온라인으로만 강의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다.
“저도 오프라인 강의에 참여하려고 하거든요. 시간을 쪼개서라도.”
이번 아카데미에는 내가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집필 중인 글 그리고 업무적으로도 바쁜 일들이 한가득이었으니까.
하지만 내부에 쥐새끼까지 푼 비열한 짓을 한 상대가 강경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져야 하지.
“그리고 에르미스 아카데미에 참여할 사람은 저뿐만이 아니에요. 한나 작가님도 참여하기로 하셨거든요.”
“아…… 그 얘기는 지난번에 들었어요. 하지만 한나 코왈스키 작가님은 온라인으로만 참여하시는 거 아니었나요?”
“아뇨, 오신대요.”
“한나 작가님이…… 한국에요?”
“네, 소설피아에서 맞불을 놓기로 작정을 했으면 우리도 그에 응해 줘야죠.”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는 작가 한나 코왈스키.
나뿐만이 아니라 그녀 또한 에르미스 공모전 오프라인 강사로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홍보 모델도 한 분 섭외해 뒀으니, 따로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홍보…… 모델이요?”
“네, 안 그래도 오늘 막 섭외 완료했거든요.”
이제 소설피아와 두 번째 칼춤을 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