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 쥐새끼가 숨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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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7월 25일 월요일.
소설피아에 간 강경진, 그리고 강경진의 행보로 의심스되는 갑작스러운 소설피아 규제 강화에 관한 회의를 마치고 한 주가 더 흘렀다.
매달 25일은 BS북 그리고 LGA컴퍼니 직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월급날이기에 원래라면 떠들썩해야 하는 날이다.
“회의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BS북은 평소의 월급날보다 조금 더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오전부터 각 팀의 팀장과 본부장들 그리고 오진아 대표까지 모두 모인, 팀장 이상 간부급의 회의가 잡혔기 때문이다.
“오늘 갑작스럽게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다름 아닌 소설피아의 정책 변화 때문입니다.”
대회의실 안에 빙 둘러 앉은 각 팀의 팀장들과 본부장들을 둘러보며 오진아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이 바로 말을 이었다.
“다들 어느 정도는 눈치채셨겠지만, 소설피아가 갑작스럽게 강력한 규제를 내놓는 이유는 자체 플랫폼의 독점적인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려는 게 분명할 테죠. 소설피아와 쌍벽을 이뤘던 더노벨은 이미 경쟁 구도에서 탈락했고, 대기업을 등에 업은 테일랜드와 웹월드는 아직 자리를 못 잡은 상태이니까요. 결국…….”
잠시 생각에 잠긴 듯이 오진아의 뒷말이 잠시 흐려졌다.
“에르미스를 향한 규제라고 봐야 겠죠.”
“…….”
오진아뿐만이 아니라 각 팀의 팀장들 그리고 김동현 본부장 또한 같은 생각을 하는지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아직까진 모든 게 추측일 뿐입니다. 그러나 LGA컴퍼니를 비롯해 우리 BS북은 이걸 에르미스를 향한 선전 포고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
“에르미스가 웹소설 불모지인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한국 시장을 놓아서는 안 되니까요. 그게 우리나라의 출판업계를 살리는 일이기도 하고요.”
지난주 월요일.
오진아를 포함한 LGA컴퍼니 임직원들은 모두 모여 강경진 그리고 소설피아의 정책 변화에 관한 대책 회의를 진행했었다.
당시 회의에선 에르미스의 작가 계정을 수정하는 식으로만 진행하고 별다른 추가 조치는 취하지 않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소설피아의 규제에 관해 작가들의 반응은 나와 임원진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에르미스의 공모전이 끝나고도 꾸준히 늘어만 가던 한국 작가들의 수가 대거 이탈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주 에르미스 담당자와 별도 회의를 진행했었습니다. 그리고 에르미스의 작가들, 특히, 지망생들의 이탈률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죠.”
오진아의 말처럼 에르미스에서 연재를 포기하고 소설피아로 연재처를 옮긴 이들은 대부분 아직 작가 데뷔를 하지 못한 작가 지망생들.
한 질 이상을 친 기성 작가들의 경우엔 투명한 정산 시스템 그리고 이벤트 배너와 같은 프로모션 등이 에르미스의 독점 작품이냐 비독점 작품이냐에 관계없이 얼마나 평등하게 진행되는지 경험하고 있기에 큰 동요는 없었었다.
하지만 작가 지망생들의 경우엔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생각이 아직 큰 모양이다. 그러니 이렇게 큰 폭의 이탈률을 보이는 것일 테고.
“에르미스에서 유료화를 앞두고 있거나 유료화를 진행하고 있는 작가님들의 경우엔 상당히 만족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김동현을 비롯한 몇몇 팀장이 미간을 좁혔지만 오진아는 계속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에르미스가 베타 버전을 끝내고 정식 출범한 지 아직 오래되지 않아서 비록 소설피아보다 독자풀은 적지만, 그걸 상회할 정도로 에르미스 내에서 프로모션 혜택을 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에르미스에서 계속 양질의 글이 나오고 유지하기 위해선 신인 작가님들을 계속 유입해야만 하죠. 그래서 지난주, 에르미스, LGA컴퍼니 임원진들과 모여 이를 타개할 방법에 관한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타개할 방법이라면……?”
BS북에선 소설피아나 테일랜드 그리고 웹월드 같이 플랫폼과 직접적인 소통을 하는 게 편집자가 아닌 운영팀에서 진행되는 일이었기에 이형석 팀장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 묻어났다.
“LGA컴퍼니에서 진행했던 사두용미 아카데미. 두 번째 기수를 모집할 생각입니다.”
사두용미 아카데미.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연재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신인 작가들 그리고 작가 지망생들을 위해 LGA컴퍼니에서 만들었던 웹소설 교육 아카데미로 마지막 수업까지 모두 참여했던 아카데미생 대부분이 유료화 데뷔를 하는 경이로운 성과를 얻었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사두용미 아카데미는 LGA컴퍼니에서만 진행을 했었고 상당히 뜨거운 반응을 얻었었죠.”
“확실히 사두용미 아카데미라면 그럴만하겠습니다. 그때 엘가에서 아카데미 하는 바람에 작가들 빼오기가…… 뭐 지금은 같은 식구이지만 말입니다, 하하핫!”
작년에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내가 처음 만들었던 건 강경진으로 인해 BS북이 올댓스토리에 억지로 신인 작가들을 떠넘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판무 2팀 팀장이었던 김동현은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확실히 직접 데인 적이 있던 만큼 아카데미의 화력이 얼마나 강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과거의 일은 지금 꺼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대처해야 하는 상대는 소설피아니까요.”
너털웃음을 짓는 김동현의 말에도 오진아는 눈 한번 깜빡 않고 기계 같은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다만 이번에 진행하게 될 사두용미 아카데미는 전과는 조금 다른 차별점을 줄 예정입니다.”
“차별점이라면 어떤……?”
운영팀 이형석 팀장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물었다. 혹여 자기 일이 늘어날까 고민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작년에 처음 진행됐던 사두용미 아카데미 1기의 경우엔 100% 온라인으로만 진행이 됐었죠. 하지만 이번엔 투 트랙으로 나눠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반은 온라인, 나머지 반은 오프라인으로요.”
“대표님, 지금 하신 말씀은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한다는 뜻일지요?”
몇몇 팀장들이 반 씩 나눠서 진행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자 오진아는 곧장 설명을 이어 나갔다.
“아뇨, 온라인은 온라인대로, 오프라인은 오프라인대로 별도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사실상 2기와 3기, 두 기수를 동시에 진행한다고 생각하시는 게 이해하기 편하시겠네요.”
오진아가 말한 것처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기로 한 이유는 간단하다. 전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될 경우 참가자의 수는 확실히 많아질 수 있다.
하지만 1기 아카데미를 되돌아 보면 상황상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여건이 힘든 경우가 있다는 문의도 종종 있었다. 화상 강의를 시청하기에 인터넷이 열악하거나 아니면 집에 늘 사람들이 있어 강의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하는 갖가지 이유 등으로.
“또한 이번 아카데미는 판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닌 로맨스 쪽도 함께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렇다고 출판본부 팀장님들 너무 걱정하실 필욘 없으세요.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두용미 아카데미 역시 LGA컴퍼니 쪽에서 강의 진행과 작품 피드백을 대부분 진행할 테니까요.”
사두용미 아카데미라는 말을 듣자마자 미간이 좁혀졌던 판무 2팀 이창윤 팀장과 로맨스팀 팀장의 얼굴이 활짝 피어졌다.
“물론 여러분들이 해주셔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들을 모은 건 사두용미 아카데미의 진행 상황을 공유하려는 것도 있지만, 특강 강사님들의 초빙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사두용미 아카데미에서는 매주 한 번 씩 사실상 나 홀로 진행하는 원맨쇼였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나는 집필하는 글뿐만이 아니라 회사 운영에도 꾸준히 참여를 해야 하는 상황.
거기다 상당히 갑작스럽게 아카데미 일정을 잡게 된 것이었기에 이번 사두용미 아카데미에선 나 홀로 모든 강의를 이끌어나갈 수가 없었다.
“출판본부 팀장님들은 실무자들, 그리고 본부장님과 협의해서 특강 진행해 주실 작가님들 리스트 정리 부탁드립니다. 운영팀 팀장님은 BS북 소속이 아닌 작가님들 하지만 BS북 유통팀 통해서 작품 유통하는 외부 작가님들 중에서 강의 가능하신 작가님들 섭외해서 작성한 리스트를 전달해 주시고요.”
작가 지망생들의 경우 자신이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는 좋은 출판사의 작가가 아닌 성공한 작가 그리고 자기가 쓰고 싶은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다.
LGA컴퍼니엔 한태산이나 강추강 같은 스타 작가들이 있고 BS북에도 좋은 작가들이 많이 있지만, 강사진을 무조건 내 팔 안에 있는 사람들로만 만들 필요는 없다.
비록 사두용미 아카데미가 에르미스를 탈주하는 신인 작가들을 붙잡으려는 의도로 시작된 거긴 하지만, 이왕 아카데미를 진행하기로 한 이상 수강생들이 원하는 최고의 강사진을 제공하고 싶었으니까.
“강사님들의 강의 비용은 회당…….”
오진아는 이어서 초빙할 강사들의 강의 비용과 일정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 등을 건네면서 팀장 이상급 회의를 마무리 했다.
* * *
“네, 작가님. 자주 연락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죠? 하하, 별말씀을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다시 진행할까 하는데요…….”
출근하자마자 회의가 진행 되어서인지 오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나는 점심 시간을 쪼개 작가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강추강 작가, 한태산 작가 등 내게 호의적이면서 2016년도인 올해 에르미스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두 작가의 강사 섭외는 모두 마무리가 됐다.
작가님들은 다들 강의가 처음이라며 쑥스러워했지만, 후배 작가들을 위해 힘써달라는 내 부탁을 모두 거절하지 않았다.
지잉— 지이이잉—
강의를 흔쾌히 허락해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떠올리며 다시 회사를 향해 돌아오는 길에 진동이 울렸다. 단풍 삼촌이다.
“어, 삼촌. 한나 작가님한테 벌써 연락 받았어?”
에르미스에서 어른들의 관능 판타지 소설 366일을 집필 중인 한나 코왈스키 작가.
나는 단풍 삼촌에게 부탁해 초빙을 요청했다.
고작 몇 달 만에 한나 코왈스키 작가는 폴란드를 넘어 에르미스의 19금 연재 코너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고, 가능하다면 로맨스 작가 지망생들에게 그녀의 집필 노하우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지나면 한나 코왈스키 작가는 돈이 있더라도 초빙할 수 없을 정도로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아 오를 테니까.
—아니……. 그게 아니다. 정우 너 아직 공지 못 봤냐?
“공지? 무슨 공지?”
—소설피아. 지금 소설피아 빨리 확인 해 봐라.
“……뭐길래? 일단, 끊지 마. 바로 확인해 볼게.”
웃음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어두운 목소리.
그 짧은 말로도 무언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자리에 멈춰 서 폰으로 소설피아의 공지를 확인했을 때 내 입에선 헛웃음이 뱉어져 나왔다.
“하…… 소설피아 아카데미 오픈?”
—아카데미 지원 기간도. 시작 일정도 우리보다 하루 씩 빠르다.
에르미스는 아직 공지를 하지도 않았고 단지 오늘 회의에서 이 내용을 공유했을 뿐이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오자마자 소설피아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일정에 맞춰 난데없이 아카데미를 연다는 뜻은 단 한 가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쥐새끼가 숨어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