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78화 (178/201)

178화 ― 솔직히 쪽팔리지 않나요?

* * *

“반대로 하죠.”

“예? 반대로 한다고요?”

“소설피아가 쇄국 정책을 펼친다고 해서 저희도 쪼잔하게 맞불 놓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서요.”

이어진 설명에도 임원진들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설피아는 오늘의 베스트 순위를 300위까지 확대하고 타플로 런을 하는 작가 그리고 CP사를 모두 억압하기로 했죠. 저는 에르미스에서는 이 부분을 반대로 하고 싶다는 겁니다.”

에르미스는 소설피아와 달리 베스트 순위가 끝자리까지 다 나온다. 하지만 베스트 순위에 걸쳐 있다고 해서 소설피아처럼 작가가 타 플랫폼으로 가는 것을 막거나 CP사를 협박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 말은…… 지금과 동일한 방식으로 유지한다는 거 아닙니까? 소설피아와 반대로 하겠다면요.”

“맞아요.”

나는 단풍 삼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우선은 현상 유지를 하도록 하죠. 소설피아보다 규모도 작고 이용자 수도 작은 우리가 굳이 소설피아와 같은 방식을 써서 출혈 경쟁하는 음식점들처럼 제 살 깎아먹기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에르미스는 현상 유지를 하겠다는 말에 권미현이 말꼬리를 흐렸지만, 나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거기다 소설피아의 저런 치졸한 방식은 한동안은 작가들과 CP(Contesnts Provider)사를 잡아둘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잠시일 뿐입니다. 작가들과 CP사들이 소설피아의 이런 행동을 참는 건 지금 다른 대체재가 없기 때문인 거죠.”

“……그렇죠. 사실상 독과점의 폐해나 마찬가지니까요.”

권미현의 말처럼 2016년도인 아직까지는 소설피아야말로 웹소설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플랫폼이다.

그래서 바뀌어야만 한다.

고인 물이 썩는 건 필연적인 거니까.

“우리가 에르미스를 처음 만들기로 했던 때를 기억해 보세요. 글을 쓰는 게 좋고 글을 읽는 게 좋은 작가와 독자들의 유토피아를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닙니까?”

이건 웃기게도 소설피아의 경영 이념이기도 하다. 비록 소설피아의 경영진들 뇌 속에서 사라진 게 분명하지만.

“각종 제약을 걸면 언젠가는 도망치게 되어있습니다. 특히 창작자에게 구속이란 독약이나 마찬가지죠. 미현 본부장님도 작가님들을 상대하시면서 이 부분은 잘 알고 계실 테고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독창성이 강조되기를 바란다. 이는 선사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DNA나 마찬가지.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작가들 또한 제약을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마치 손오공이 머리에 쓰인 긴고아를 극도로 혐오하듯이.

“소설피아가 각종 제약을 걸겠다고 선포한 이상 저희 에르미스는 그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자면 유료화를 하기 전까지 작가님들은 언제라도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에르미스와 타 플랫폼에 동시에 연재를 해도 배너 등의 노출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는 식으로요.”

소설피아는 이번에 변경한 정책 외에도 다양한 규제를 플랫폼 내부에 심어 놓고 있다.

에르미스의 경우 오직 독자들이 정한 조회수, 추천수, 연독률 등의 지표를 바탕으로 베스트 순위에 노출시킨다. 하지만 소설피아의 경우엔 아니다.

작가들이 소설피아에서 글을 연재하게 될 경우 ‘독점’과 ‘비독점’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어 있다. 말 그대로 독점은 소설피아에서만 연재하는 경우, 비독점은 소설피아와 다른 플랫폼에 동시에 연재를 하는 것을 뜻한다.

웃기게도 소설피아 홈페이지 그 어느 곳을 뒤져보더라도 독점과 비독점의 명확한 차이는 설명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

간단하다. 작가가 신작을 비독점으로 체크한 후 연재를 한다면 모바일에서는 베스트 순위에 보여지지 않는다. 실제로 자신의 글이 더 높은 성적에 있다고 하더라도.

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유토피아?

개소리다. 갈퀴로 돈을 쓸어 담길 원하는 장사꾼의 새빨간 거짓말일 뿐.

물론 PC로 소설을 보는 독자들은 베스트 순위를 모두 확인할 수가 있다. 하지만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소설피아도 알듯이, 웹소설 독자 대부분은 핸드폰으로 소설을 본다.

웹소설이란 출퇴근 때, 혹은 잠시 쉴 때 읽는 스낵컬쳐 형태로 만들어진 문화 컨텐츠니까.

“솔직히 쪽팔리지 않나요? 웹사이트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작가님들만을 위한 지상 낙원을 만들었다고 하면서 소설피아가 아닌 다른 플랫폼에 발을 걸치겠다고 하면 베스트 순위에 노출도 안 시켜주는 게?”

트위터에 올린 사진을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인스타에도 올렸다고 일론 머스크가 토라진다고 생각해 봐라. 상상만으로도 역겹기 짝이 없다. 아, 물론 아직까지는 머스크가 트위터의 주인이 아니긴 하지만.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그것만으로 작가님들을 에르미스에 붙잡아 둘 수 있을까요? 소설피아가 본격적으로 족쇄를 채우기로 했으니, 작가님들이 도망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내 설명에도 권미현은 여전히 걱정이 가득 되는지 점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맞는 말이에요. 그래서 기능적인 부분을 지금보다 조금 더 작가 친화적으로 개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능적인 부분이요?”

“네, 소설피아엔 구매수, 추천수 연독률 심지어 독자의 연령대와 성비까지 구분해서 보여주죠. 저희 에르미스도 비슷한 구성이고요.”

“그걸 바꾼다는 말씀이실까요?”

이어진 권미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네. 그 기능은 독자들을 위한 기능이 아닌 작가들을 위한 기능입니다. 저도 개발 단계에선 그 부분을 간과해서 넣기는 했는데, 에르미스가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고 있는 이상 굳이 불필요한 기능을 유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하지만…… 작가님들껜 상당히 유용한 기능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미간을 좁힌 권미현의 말에 나는 슬쩍 미소 지었다.

“맞습니다. 아예 빼버린다는 건 아니고 작가님의 관리 페이지에서 작가님만 볼 수 있도록 기능을 옮겨두려고 해요. 제가 이 기능을 제외하려는 건 해당 수치들이 독자들의 접근을 막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

권미현은 이제야 내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독자들 중에서는 해당 지표를 껄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지표가 자신을 규정해 버리니까.

물론 해당 지표를 보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글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을 테지만 이는 일종의 스포일러. 글을 해당 회차에 어떤 재미가 담겨 있는지 온전히 글을 탐닉할 재미를 없애는 거니까.

사람은 생각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동물이고, 부정적으로 비치길 원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50대 독자인데 지표엔 10대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본다고 되어 있거나, 자신은 남성인데 여성 독자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이는 작품이라면 글을 읽기도 전에 백스탭을 밟는 독자들도 상당수다.

작품에 대한 인기는 장르 구분, 소개글, 제목, 베스트 순위 등으로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한 영역이다.

작품 수치의 연령대와 내 연령대가 다르다고 해서 성별이 다르다고 해서 글을 읽기도 전에 거부감이 들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럼 대표님이 말씀하신 수치들을 작가님 관리 페이지로 옮기는 것 외에도 추가로 넣으실 기능이 있으실까요? 이 정도 기능이라면 솔직히 크게 매력적이진 않다고 생각 되어서요. 특히 작가님들 입장에서 보자면요.”

권미현의 질문이 재차 이어졌다.

“무진 본부장님하고만 따로 이야기 나눴던 부분이지만, 작가님들의 편의를 위해 실시간으로 일별, 월별 매출을 확인할 수 있는 관리 페이지를 조금 더 투명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 중에 있습니다.”

“맞습니다. 베타 서비스 시작 시기부터 조금씩 개선할 부분을 찾느라 예상보다 늦어졌지만, 늦어도 몇 주 안에는 업데이트가 끝날 겁니다.”

에르미스는 그동안 조금씩 업데이트를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독자들과 작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나가려 한다. 그거야말로 독자들 그리고 작가들과 상생하는 방법이니까.

“다들 아시다시피 에르미스는 플랫폼입니다. 오직 한국만을 위한 플랫폼이 아닌 전 세계로 뻗어 나갈 플랫폼이죠. 에르미스에 한해서는 꼼수가 아닌 서비스의 질로 승부를 겨루고 싶습니다.”

소설피아의 치졸한 행동에 다시 화가 올라오는 감정을 갈무리하며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독자들에게 웹소설 플랫폼이란 거대한 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종류의 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세상에 어느 서점이 다른 서점에서 파는 글을 판매하지 못하게 합니까? 아니 독자들은 그런 서점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요?”

다시 생각해도 소설피아는 콘텐츠 업체가 아닌 장사꾼이다. 그게 강경진 때문인지 아니면 강경진이 소설피아에 입사하기 전부터 이미 그렇게 변해갔는지는 나도 정확히 모르지만.

“소설피아는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작가들의 글을 독자들을 위한 글이 아닌 상품, 그것도 대형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PB 상품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설피아의 행동을 테일랜드와 웹월드도 따라가고 있고요.”

감정이 실린 말에 임원진들은 모두 조용히 내가 이어 나갈 말을 기다렸다.

“종이책을 파는 전국의 서점들이 서로 각기 다른 책을 판매하나만 봐도 소설피아가 얼마나 양아치 놈들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서점에 특정 출판사의 책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해당 도서의 가격이 다른 것도 아닙니다.”

““…….””

“서점이란 같은 책을 두고 그 외의 서비스로 경쟁해야 합니다. 소설피아처럼 작가를 그리고 글을 볼모로 잡고 협박하는 일 그렇게 장사를 하는 일은 우리 에르미스에서 없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갔으면 합니다.”

에르미스는 장사꾼이 아니다.

우리는 웹소설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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