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 오늘의 베스트.
* * *
주말이 지나고 돌아온 월요일.
나는 곧장 BS북이 아닌 LGA컴퍼니 사무실 3층 회의실로 이동했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오셨어요.”
“다들 모였으니 바로 회의 시작하시죠.”
회의실 안에는 이미 LGA컴퍼니 임직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오늘 회의엔 BS북의 대표 오진아도 함께였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주말에 연락은 다들 들으셨을 겁니다, 강경진이 소설피아에 들어갔다는 것을요.”
내 말에 모두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였다.
“진아 대표님과 본부장님들이 주말에 따로 알아보신 내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내용부터 들어볼 수 있을까요?”
“해당 내용은 제가 취합해서 따로 정리했습니다.”
단풍 삼촌은 빔프로젝터 화면에 미리 준비한 내용을 보이며 말했다.
“정확한 입사일은 파악되지 않지만 오진아 대표님 그리고 본부장님들이 소설피아에 근무하시는 분들을 통해 전달 받은 정보를 토대로 보자면 지난 5월 초부터 강경진이 BS북을 다니기 시작한 것 같다고 합니다.”
“5월이면…… 대략 두 달 전이네요?”
“맞습니다.”
내 물음에 단풍 삼촌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소설피아 공모전 본선 발표가 끝나고 입사한 것으로 보아 강경진이 지난 2회 공모전에 관여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시기도 그리 오래지나진 않아서 딱히 두드러지는 움직임도 없고요. 한가지 주의해야 할 특이점은, 강경진이 마케팅본부 부장으로 입사했다는 겁니다.”
“마케팅이면…… 경진 오빠 전문 분야긴 하네요.”
오진아가 팔짱을 껸 채로 말했다.
다들 오진이와 강경진의 관계를 알기에 그녀도 임원진들 앞에선 편하게 말하는 모양이다.
“그렇죠. 소설피아에선 사실 두각을 내지 못핸던 부서라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인원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딱히 알려진 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강경진이 BS북이 보여준 행동을 보자면 예상 못한 행동을 할 게 분명합니다.”
“…….”
맞는 말이다.
곧 망해버릴 회사에서 30억을 땡겨 오고, 증명도 안 된 정체 모를 코인 회사를 설립해 BS북을 집어 삼키려는 등, 가만히 앉아 있어도 웃는 얼굴로 호시탐탐 눈 뜨고 코를 베가려 애쓰는 놈이었으니까.
“문제는 지금 대처 방법이 없다는 거겠네요. 강경진이 그리고 소설피아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으니까요.”
“……맞습니다.”
단풍 삼촌이 똥 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말은 하고 있지 않아도 단풍 삼촌과 같은 기분일 테다.
당장 무엇을 하겠다는 행동은 없는데, 난데없이 에르미스의 공모전 행사에 찾아와 스스로 얼굴을 비추다니.
단순한 선전 포고였을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임원진들과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더 이어나갔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없었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강경진에 대해 따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실 강경진이 입사했다고 해도 소설피아는 여전히 국내 최대의 웹소설 플랫폼이니 만큼 쉽게 휘둘리지는 않을 테고요.”
“우리는 우리 일에만 집중하자는 말씀이죠?”
오진아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네요. 실체는 있지만 무엇을 할지 모르는 적은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 각자의 자리에서 에르미스의 발전을 공고히 하기로 하죠. 그럼 이번 회의는 여기서—”
“대표님, 잠시만요.”
회의록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던 그 순간, 조금 전 울렸던 핸드폰 알람을 살피던 권미현이 파리해진 얼굴로 나를 다급하게 불렀다.
“미현 본부장님? 추가로 하실 말씀이라도?”
“……소설피아 운영팀에서 메일이 왔어요.”
“메일이요?”
“네. 무진 본부장님 빔으로 볼 수 있을까요? 참조해서 보냈으니 본부장님 메일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지금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딸칵딸칵— 드르륵— 딸칵—
마우스를 빠르게 움직이는 단풍 삼촌의 손놀림에서 묘한 불안감이 전해졌다. 그리고 빔프로젝터 화면에 보이는 소설피아 운영팀으로 전달받은 메일을 보며 회의실 안 모두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5화 컨택 제한?”
“쪽지 대신 CP사에서 컨택하는 메뉴도 만들겠다고…… 에르미스랑 완전 똑같은데요?”
소설피아 운영팀에서 보낸 메일엔 당장 다음 달인 8월부터 바뀔 소설피아 운영 정책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소설피아는 에르미스와 달리 쪽지 기능을 통해서 제안을 받을 수 있다. 그렇기에 독자들에게 쪽지를 여럿 받는 작가의 경우에는 출판사의 쪽지만 따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었다.
원래 2021년도는 되어야 소설피아가 도입했던 기능인데, 이걸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인다는 걸 보니 지각의 변동이 느껴진다.
드르륵— 드륵— 드르륵—
단풍 삼촌은 계속 마우스 휠을 내렸고, 그곳엔 더욱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내용이 적혀 있었다.
“소설피아에서 연재된 글을 소설피아에서 유료화 하는 게 아닌 타 채널로 유통하는 행위를 하는 CP는 CP계정을 정지시키겠다고요? 오베 순위에 들어간 작품일 경우엔 무조건?”
“하…… 양아치 새끼들이네 진짜.”
“그것도 300위까지?”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타 플랫폼으로 튀었다가 잡힌 작가 계정도 영구 삭제 조치하겠다고 합니다.”
“…….”
권미현이 말한 ‘오베’란 소설피아에서 무료 연재 중인 글들 중 ‘오늘의 베스트’라는 실시간 베스트 순위 지표다.
즉 소설피아에서 이제 막 연재를 시작한 글들 중 볼만한 글이 있다면 대개 오베 순위를 파악한다.
다만 오진아가 소설피아를 양아치 새끼라고 빗댄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오베 순위는 1위부터 100위까지만 볼 수 있었는데 그 순위를 300위까지 늘리겠다는 내용이었으니까. 그것도 당장 다음 주부터.
“해도해도 이건 너무하네요. 솔직히 100위권, 아니 50위권만 해도 컨택하기 애매한 작품들이 많은데 오베를 300위까지 늘리면 진짜 너무 양아치 행동 아니에요?”
“……그렇죠. 유료화를 하고 일반 회사원 정도 수입으로 먹고살려면 못해도 오베 20위권에는 들어야 하니까요.”
한국의 모든 웹소설 작가들의 등용문 소설피아.
소설피아를 통해 처음 소설 연재를 시작하는 작가 지망생들은 모두 오베 순위에 오르기 위해 애를 쓴다. 마치 오베에 오르기만 하면 행복한 꽃밭이 펼쳐져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오베 순위에 든 지망생들은 이내 현실을 깨닫게 된다. 100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물론 10화도 안 되어서 100위권에 안착하고 쭉쭉 위로 올라간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그런 작품은 어차피 1권 분량인 25화 정도가 되었을 때 오베 순위 10위권 내에 안착하니까.
‘하…… 300위면 쌍끌이 어선으로 심해 탐사라도 하겠다는 건가?’
소설피아가 대대적인 시스템 개혁을 만들어 낸 건 2021년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오베 순위를 기존 100위에서 200위까지 늘리는 정도였었는데, 300위까지 폭을 넓힌다는 말에 머리가 어질해진다.
이게 문제인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지망생들이 전부 글이 좋아서 글을 쓰지만 회사원처럼 먹고살기 위해서는 못해도 오베 순위 20위권 안에는 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전국의 모든 출판사들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1~20위권의 작품을 컨택해서 소설피아에서 유료화를 하지만 그 외에는 웹월드나 테일랜드에서 런칭을 하게 유도한다.
왜냐고?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대로 둬서는 작가가 먹고살 수가 없으니까.
“이대로 두면 작가님들 다 굶어 죽을 수도 있겠는데요? 대표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설피아가 처음 생겼을 때 글을 읽는 게 좋고 쓰는 게 좋은 사람들의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설피아의 운영진들은 소설피아가 아닌 타 플랫폼에서 유료화를 하면 변절자 취급을 한다.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LGA컴퍼니와 BS북 같은 출판사들도 소설피아에서 연재된 글을 타 플랫폼으로 옮겨 런칭을 하기 전에는 조건을 상당히 따져본다.
애초에 소설피아에서 시작된 글이면 이미 고정 팬층이 붙고 있기에 가능하다면 소설피아에서 유료화를 하게 한다.
하지만 중장년층이 주 독자층인 소설피아의 취향과 글의 취향이 다르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소설피아는 지망생들이 무조건 소설피아에서 연재를 하길 바라는 거다.
작가가 쓰는 글의 취향을 고려할 생각은 없고 배만 불리고 싶은 명백한 증거다.
‘정말 작가를 위한 거였으면 오베 순위로 타플로 런하는 걸 막는다는 개같은 지침도 없었겠지.’
작가를 사랑하고 글을 사랑한다는 말로 러시아 인형처럼 겹겹이 포장을 쌓았지만, 소설피아가 하는 꼴은 돈 되는 글은 우리가 가져갈 거고 돈 안 되는 거는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글의 철학? 작가의 취향? 독자의 성향?
이런 건 콩 한 쪽 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대표님?”
임원진들이 나를 불렀지만,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막막해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아야만 한다.
대표란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니까.
“일단…… 오베 순위가 300위까지 늘어나면 타플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어요. 300위까지 늘어난다면 관심작 수가 거의 50명, 아니 20명 정도만 되도 올라갈 수치니까요.”
“…….”
내 말에 다들 말문이 막혔다.
사지만 이건 명확한 사실이다.
회귀 전 소설피아가 실제로 오베 순위를 200위까지 확대했을 때 실제로 관심작 수, 즉 해당 작품을 눈여겨 보는 독자가 3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도 오베 순위에 들게 되었으니까.
몇몇 독자는 성적이 나오지 않는 작가를 향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쓰다가 성적이 안 좋다면 리메이크를 하면 되지 않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실제로 LGA컴퍼니나 BS북 매니저들이 오베 순위 20위권 밖의 작품을 컨택했을 땐 지금 연재하는 글의 아쉬웠던 점을 리메이크하면서 타 플랫폼에서 연재하는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이건 오직 작품이 타 플랫폼으로 넘어가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소설피아에서 연재됐던 글을 리메이크해서 리메이크 전보다 좋은 정적으로 만든 작품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된다.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만 봐도 리메이크 전보다 후가 더 큰 성적을 보였던 건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까.
리메이크 작품의 반응이 좋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리메이크 작품들의 경우 5화 미만의 극 초반이 아닌 최소 20화를 넘어서까지 연재했던 글을 리메이크한다.
독자들은 이미 해당 글이 어떤 내용인지 그리고 리메이크를 한다며 연재 중단을 한 글임을 알기에 관심도가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소설피아…… 강경진…….’
작가들의 유토피아라는 보기 좋은 껍데기 뒤로 족쇄를 숨겨둔 소설피아의 비열한 행동에 치가 떨리지만, 지금은 앉아서 분노만 하고 있을 수 없다.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임원진들을 향해 얼굴을 들었다.
“저희는 이렇게 진행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