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70화 (170/201)

170화 ―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 * *

“8대 2에 선인세 2천.”

타닥— 탁— 타다닥—

“8대 2에 선인세 3천. 그 작가님은 넘기고…… 다음 작가님도 넘겨주세요. 잠깐만, 그분은 9대 1에 선인세 5천.”

권미현의 마우스가 해당 작가의 작품에 손을 델 때마다 나는 수산물 시장에서 경매 가격을 부르는 것처럼 빠르게 계약 조건을 불렀다.

타다닥— 타닥— 타다다닥—

그녀는 내가 부른 조건을 정확히 엑셀 표에 기입했다. 마치 생활의 달인 둘이 한 팀을 이루어 요리를 준비하는 것처럼, 우린 한 치 흐트러짐도 없는 모습으로 계약 조건을 부르고 적는 일을 반복했다.

“그 작가님은 선인세 8대 2에—”

“아니아니, 대표님! 잠깐! 잠깐만!”

“예?”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권미현이 뽑아둔 작가들의 계약 조건을 계속 부르는 그때, 단풍 삼촌이 조화로운 흐름을 깨고 그 틈 안으로 난입했다.

“아니…… 제가 출판 본부장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지금 저 작품들 대표님 다 보신 작품들 맞습니까? 저도 우리 공모전 작품들 대부분 살펴보긴 했는데, 저 작품들 대부분 1화, 많아봤자 3화밖에 안 올라온 작품들인데 벌써 계약을 제안하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냔 말입니다!”

“그럼요. 되고 말고요.”

“된다고?”

단풍 삼촌이 자상으로 가득한 얼굴을 더욱 사납게 구기며 눈을 부릅떴지만 나는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의아하긴 할 테지. 하지만 지금 당장 잡아야 할 작가들임은 틀림 없어, 삼촌.’

권미현이 정리한 에르미스 공모전에 참여한 작가 리스트. 권미현에게 이런 노동력 높은 일을 시킨 건 단순히 수상작을 고르기 위한 게 아닌 계약할만한 작품을 찾는 게 가장 컸다.

그리고 지금 내가 거침없이 계약 조건과 선인세를 부르는 작가들은 최소 중박 그리고 대박을 칠 작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니까요? 지금 제가 선택한 작가들 중에선 필력이나 소재 등이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작가님들도 여럿 섞여 있죠. 무진 본부장님도 그런 부분 때문에 염려하시는 걸 테고요.”

“사실…… 그렇긴 하죠. 이제 공모전 첫날인데 아직 검증도 안 된 작가들에게 선인세를 이렇게 남발해 버리니까. 솔직히 걱정이 안 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단풍 삼촌의 말은 지당하다.

이 리스트에 있는 작가들 중에선 이번 작품으로 큰 수익을 내지 못할 이들도 여럿 섞여 있다.

하지만 작가를 계약하는 건 주식을 사는 것과 동일하다. 단순히 현재의 기업 가치만 보고 주식을 사지 않는 것처럼 편집자들 또한 작가의 가능성, 잠재력을 보고 계약하니까.

‘그리고 내가 계약 조건을 제시한 작가들은 다들 미래에 최소 A급에서 S급 작가들이 될 분들이지.’

비록 지금은 B급에서 C급인 작가들이지만 이들이 작품 몇 개를 완결 내면서 경험이 더 쌓인다면 그때 가서는 지금 제안하는 계약 조건의 몇 배를 더 걸더라도 계약하기가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아니, 미현 본부장님은 걱정 안 되십니까?”

내가 대답 없이 빙긋 미소만 짓고 있자, 단풍 삼촌은 답답하다는 듯이 권미현을 향해 물었다.

“아뇨, 당연히 걱정되죠.”

하지만 권미현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저희 대표님 거의 신기 있는 사람처럼 건드는 작품마다 다 대박 내시잖아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저희 대표님 작품 보는 눈은 이제 의심하지 않아요.”

“이전에는 의심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아이참! 말이 또 왜 그렇게 돼요? 기껏 편들어 드렸는데!”

“아하하, 장난이에…… 어?”

입술을 삐죽거리는 권미현에게 장난이었다는 말을 건네는 그때, 화면 한가운데를 스치던 내 눈이 부릅떠졌다.

“대표님? 계약 조건 잘못 말한 거라도 있으세요?”

“어이구, 그것 봐라! 어떤지 그냥 보지도 않고 빠르게 휙휙 넘어가면서 계약 조건 말할 때 내가 알아봤—”

“아니, 저거! 저 작품! 에르미스에 올라온 작품 맞아요?”

“……예? 어떤 거요?”

“리스트 우측 하단에 있는 거요!”

“아, 이거요? 한태산 작가님 작품?”

“네, 그거요!”

턱이 빠져 나올 듯이 놀란 나와 달리 권미현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카리오스가 불공정 계약으로 터지고 나서도 아마 한 질 인가? 카리오스 쪽이랑 더 계약 유지하신 것 같았거든요.”

소설피아의 2중대라 불리던 카리오스.

하지만 계약서 장난질을 통해 신인 작가들의 고혈을 빼먹던 걸 걸려 출판 시장에서 완전히 매장당한 출판사다.

지금은 간신히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지만 그것도 한태산이라는 A급 작가가 있었기에 유지가 가능한 상황이었지.

“그 후로 카리오스랑 한 작품인가 더 하셨었는데 한태산 작가님 이름값에 비해 성적은 고만고만 하셨었거든요. 저희 공모전에 참가하신 걸 보면 이제 카리오스랑 완전히 결별하신 것 같네요.”

“…….”

한태산의 신작 제목을 본 내가 세차게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 박동으로 인해 잠시 말문이 멈춘 것과 달리 권미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신작도 1화만 올리셨는데, 딱히 특별한 내용이 아니긴 하지만 일단 작가님 이름값이 있어서 리스트에 올려두기만 했어요. 한태산 작가님껜 선인세를 얼마 정도 드리면—”

“정산비 9 대 1. 선인세 5억.”

“네, 정산비 9대 1에…… 예에? 5, 5억이요?”

“대표님?!”

“간나야! 5억이라니?”

내가 제시한 계약 조건에 권미현뿐만이 아니라 지연이와 단풍 삼촌 또한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계약금은 1억 별도로 드리고요. 그리고 작가님께서 추가로 원하시는 계약 조건 있다고 하시면 최대한 맞춰 드리세요. 무진 본부장님은 작가님께서 사업자 등록 원하실지도 모르니까 LGA쪽 세무사랑 회계사 서비스 지원받을 수 있게 도와드리고요.”

하지만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한태산 작가의 신작, 이건 여러 가지 의미로 내가 꼭 가져와야만 하는 작품이니까.

원래라면 내년인 2017년도 초에 연재를 시작했어야 할 작품이다. 하지만 회귀 전과 달리 내가 에르미스를 만들었기 때문일까?

한태산 작가는 내가 기억하는 시점보다 거진 반년 이상은 빨리 작품을 런칭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소설피아가 아닌 에르미스에!

“자, 잠깐만요, 대표님! 한태산 작가님이 아무리 이름값 있는 분이긴 해도 지금 계약 조건은 너무 파격적인 게 아닐까요?”

“미현 본부장님 말이 맞습니다, 대표님. 우리가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공모전 첫날에 그것도 1화만 보고 계약을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예?”

내 말에 권미현과 단풍 삼촌이 격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이 작품을 계약해야만 한다.

“한태산 작가님의 대감집 막내손자는 가능성이 차고 넘쳐요. 물론, 제가 보기에도 1화 전개가 빠른 편은 아니죠. 배경과 상황 설명 등으로 1화가 거의 다 지나가니까요.”

지금은 단순히 선인세 5억 원에 계약금 1억 원일 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시작되기만 한다면 한태산 작가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아오를 테니까.

“……읽어보셨네요? 그걸 아시면서 대체 왜……?”

“우리 에르미스엔 이런 작가님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한태산 작가님의 1화를 보시면 전개 자체가 빠르진 않아도 탄탄한 사전 조사로 글의 밀도가 상당한 것을 알 수 있어요. 현재 판무 웹소 트렌드가 가벼우면서도 점점 빠른 전개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한국인들이 늘 좋아하는 재벌 오너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대감집 막내손자는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구차한 변명처럼 보이는 이유를 덧붙이며 달랑 1화만 나온 작품을 계약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대감집 막내손자를 계약해야 하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다. 소설 원작 자체가 회차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헤어 나올 수 없는 몰입감을 지녔고 각 등장인물의 개성과 매력 또한 생생했으니까.

거기다 웹툰은 물론 드라마화까지 확정이 된 작품이었기에 대감집 막내손자를 계약했을 시 에르미스와 LGA컴퍼니에 끼쳐질 손해는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가 대감집 막내손자를 에르미스에 독점 연재를 하고 LGA컴퍼니를 통해 계약을 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용두사미도 정도껏이어야지 시발. 마지막 화를 그딴식으로 내는 게 제정신이냐고?’

나는 대감집 막내손자의 지독한 팬이었다.

워낙 여러 작품을 읽기도 하고 기억력도 좋기에 다독은 하지 않는 편이지만 대감집 막내손자의 원작은 무려 5번이나 정독할 정도로 좋아했으니까.

전생에도 현생에도 한태산 작가님은 나를 알지 못하지만, 나는 한태산 작가님과 나의 관계를 단순한 작가와 팬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웹소설을 시작하기 전 나는 한태산 작가님의 집필 노하우를 적은 책과 광의까지 들었던 일종의 사이버 사제 관계라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빌어먹을 드라마가 한태산 작가님의 명작을 망쳐놨지. 그것도 마지막 화에서!’

대감집 막내손자의 드라마 판권이 팔린 후 제작 과정까지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다.

그리고 2022년 11월.

화려한 배우진과 함께 기다리고 기다렸던 대감집 막내손자의 첫 방영이 시작되었다.

비록 원작에 없는 뜬금없는 러브라인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도, 어설픈 CG가 나와도, 전 회장을 향한 충성심이 상당히 강하고 듬직하던 최측근을 돈에 눈 먼 박쥐 새끼로 바꾸는 것까지 다 참을 수 있었다.

각색으로 인해 똥볼을 차는 스토리가 만들어졌지만, 그럼에도 명품 배우진들의 연기가 음식물 폐기물보다 못한 각색의 빈자리를 메꿀 수 있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이 대감집 막내손자는 꼭 저희가 계약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일 제가 말씀드린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하지만 쌍팔년도 욕을 한 바가지는 먹었을 ‘아 씨발 꿈!’엔딩으로 마지막 화를 날려 먹은 그 통수 엔딩을 떠올리자면 당장이라도 부항을 뜨고 싶은 기분이 치민다.

결연한 표정으로 건넨 말에 단풍 삼촌과 권미현 그리고 지연이는 서로를 곁눈질하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우, 정우야. 아니 대표님! 너무 갔다. 뭔 대표 자리에서 내려오고 어쩌구 합니까? 지금도 계약상으론 바지사장이구만.”

“…….”

“어휴, 해당 내용으로 계약 요청드리죠. 대표님 말이 틀린 적이 없긴 하니까. 그러면 대표님이 알려주신 조건대로 계약 진행하도록 할게요.”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담은 내 말에 권미현이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피식 미소 지었다.

“우리 대표님이 가끔 이렇게 예언 아닌 예언을 할 때가 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런 작품들이 중박도 아니고 꼭 대박이 나더라고요. 대표님.”

“예?”

“대표님은 그럼 지금 이 리스트에 있는 작품들 중에서 수상작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수상작이 있냐 묻는 권미현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에르미스 공모전에 대감집 막내손자가 연재를 시작한 이상, 이건 구상은 기본이고 대상은 따논 당상이니까.

“글쎄요. 그거야 저도 모르죠. 그럼 회의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고 회식 장소로 먼저들 가세요. 저는 한태산 작가님 컨택 쪽지만 보내고 가려고요.”

“예? 지금 보내시려구요? 그것도 대표님이 직접이요?”

“네, 제가 직접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권미현에겐 덤덤하게 말했지만, 내 가슴은 여전히 세차게 뛰고 있다.

한태산 작가에게 보내는 컨택 쪽지.

이건 내게 단순한 계약 제안이 아닌 동경하던 우상과의 대화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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