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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68화 (168/201)

168화 ― 이 정도면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습니까?

* * *

오늘은 5월 25일 수요일.

에르미스의 성공적인 정식 런칭이 시작되고 어느덧 이틀이 흘렀다.

—직원들 반응은?

—단풍 삼촌: 반응이랄 게 뭐 있나? 좋아 죽지

—단풍 삼촌: 나혼상 웹툰 다들 미리보기까지 싹 다 결제하고 난리 남

—ㅇㅋ 수고요

—단풍 삼촌: 나랑 지연 본부장도 금방 간다

—ㅇㅋ

매달 25일은 월급날이다.

보너스를 받은 직원들의 반응이 궁금해 단풍 삼촌에게 슬쩍 물어본 거였는데, 역시나 보너스를 받은 직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우와아! 이, 이게 뭐예요? 이번 달 월급이……?”

“음? 월급 들어왔어요?”

“빨리 확인해봐요, 매니저님!”

“뭐길래 호들가……아압?! 애, 액수가 왜 이래요?”

그리고 직원들의 뜨거운 반응은 LGA컴퍼니뿐만이 아닌 BS북도 마찬가지였다.

“아하하! 대박이에요 진짜! 이거 무슨 오류 난 거 아니겠죠?”

“……저도 들어왔어요?”

“어? 저도요!”

“이게 무슨 일이래요? 보너스인가?”

“팀장님, 월급이 평소 2배가 들어왔는데 이거 어떻게 된 건지 아세요?”

“글쎄요…… 저도 위에서 전해 들은 게 전혀 없는데……. 전산 오류인가?”

“아, 제바알! 전산 오류 같은 끔찍한 말 하지 마세요!”

판무 1팀 매니저들의 말에 이창윤 팀장은 이게 어찌 된 일인지 고개를 갸웃 거리며 파티션 너머로 나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혹시 나는 들은 게 있냐고 묻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원들의 사기를 충족시켜주는 일은 내 몫이 아니었으니까.

“어? 대표님 오셨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때마침 오진아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고, 예상치 못한 보너스로 홀쭉하던 통장 잔고가 두둑해진 직원들은 마치 위대한 수령 동지를 마주한 것처럼 오진아를 향해 쩌렁쩌렁한 인사를 건넸다.

BS북의 대표가 오성민일 때만 해도 다들 최대한 대표와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좋은 아침입니다, 여러분. 금일 이체된 월급을 보고 다들 놀라셨을 겁니다. 우선 전산 오류가 아니라는 것부터 먼저 말씀드리고 싶네요.”

“우와아아! 믿었습니다, 대표님!”

“대표님, 사랑합니다!”

비록 대표 자리에 오르며 이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진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는 오진아였지만, 여전히 감정 없는 알파고 같은 얼굴이라는 생각을 지우긴 어렵다.

AI가 주입된 기계 같은 말을 건네는 오진아였지만, 그녀를 향한 BS북 매니저들의 눈빛은 마치 전장에 참여한 군사들과 같았다.

“직원 여러분들이 모두 아시는 것처럼 BS북과 LGA컴퍼니는 금년부로 한 식구가 되었죠. 하지만 그동안 BS북과 LGA컴퍼니가 업무 협업을 하는 일은 적었습니다.”

봄날의 포근함과는 반대로 여전히 싸늘함이 가득 풍기는 말을 내뿜는 오진아였지만, 그런 오진아의 모습도 주머니가 두둑해진 직원들에겐 쿨한 대표의 모습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다들 서클렌즈라도 낀 듯이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니.

“하지만 하반기의 시작을 코앞에 앞두고 있는 지금부터는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인 파트너십을 체결할 예정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고 계시겠지만, LGA컴퍼니에선 자체 제작한 플랫폼, 에르미스가 존재하죠.”

오진아의 말처럼 BS북의 매니저들 대다수가 에르미스의 존재를 아는지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앞으론 LGA컴퍼니 매니저님들뿐만이 아니라 우리 BS북 매니저님들도 에르미스를 통한 작가 계약 등의 업무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께 지급된 상여금은 앞으로 늘어날 업무에 관한 부분이 먼저 지급되었다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지옥불이라도 들어가겠습니다!”

“더 시켜주십쇼! 소처럼! 말처럼 일하겠습니다!”

“명예퇴직 때까지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오진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앞으로 더 빡센 업무가 기다리고 있으리란 말이었다. 하지만 평소 월급의 2배를 받은 매니저들은 이미 세로토닌에 뇌가 절여진 상태. 앞으로 늘어날 일보다 지금 통장에 찍힌 월급이 그들을 웃게 했다.

‘미리 말했어도 됐겠지만, 그랬다면 분명 입 가벼운 놈들이 여기저기 소문을 내고 다녔겠지. 조팟처럼.’

오진아의 말이 시작됨과 동시에 어디엔가 신나게 카톡을 눌러대는 조팟놈을 보니, 이미 다른 출판사에 있을 지인 매니저들에게 열심히 입을 터는 중일 테다.

하늘 높이 치솟는 직원들의 입에 발린 말에도 오진아는 눈 하나 깜빡 않고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고. 세부 사항 관해서는 각 팀, 팀장님들과 회의를 진행했으면 하는데요. 팀장님들, 다들 시간 괜찮으십니까?”

“예, 대표님. 가능합니다.”

내 대답에 이어 판무 2팀 이창윤과 로맨스팀, 운영팀 팀장들도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그럼, 다들 대회의실로 와 주시죠.”

오진아의 뒤를 따라 대회의실로 이동하자 출판본부 본부장이 된 김동현이 미리 회의실 안에 와 있었다.

“아이고, 대표님! 오셨습니까! 이쪽에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회의 시작 전에 이거 하나 드시고 시작하시죠. 와이프 고향 친척 분 중에 농장을 하시는 분이 계신데, 이거이거 블루베리가 눈에도 좋고 참, 뭐라 설명은 못 하지만 건강에 차암 좋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또 늘상 대표님 대표님 생각을 해서인지 정신 차리고 보니 손에 한 움쿰 쥐어서 가져왔지 뭡니까? 와핫핫핫!”

“……네. 경영 본부장님하고 웹툰 본부장님 오시면 바로 회의 진행하죠.”

본부장으로 진급한 김동현은 BS툰이 있는 3층에 새로 사무실을 만들어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수가 훤한 것을 보니 지금 생활이 매우 만족한 모습이다.

어느새 가위까지 챙겨와 정성스럽게 블루베리 즙이 들은 팩의 입구를 자르고 빨대까지 꽂아 오진아에게 공물을 바치듯 건네는 그때.

“아이구, 이미 다 모이셨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단풍 삼촌과 지연이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귀찮은 업무를 치워버리듯, 김동현이 건넨 블루베리 즙을 한입에 들이켠 오진아의 입이 다시 벌어졌다.

“다 모이셨으니 바로 회의 시작하죠. 지난 2월 22일 베타 서비스로 시작했던 에르미스가 이달 23일 정식 오픈했습니다. 에르미스에 관해 모르실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직까지는 일본 만화 서비스가 메인인 플랫폼입니다. 무진 본부장님이 이어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네요.”

“예, 대표님.”

팀장 이상급 회의이니만큼, 에르미스에 관해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을 테다. 하지만 오진아와 지연이 그리고 단풍 삼촌과 나를 제외하고선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게 아닌 추측성 정보만으로 현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터.

LGA컴퍼니와 BS북의 본격적인 협업이 진행되어야 하는 지금, 이제는 명확한 정보가 공유되어야만 한다.

“화면에 보시는 게 저희 에르미스 국내 메인 페이지입니다. 접속자의 지역별 아이피를 토대로 해당 국가의 언어가 디폴트로 설정되어 있죠. 하지만 좌측 하단을 보시면 별도 언어 변경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메인 화면을 보시면…….”

오진아로부터 발표 권한을 넘겨받은 단풍 삼촌의 설명이 시작됐다. 그 시작은 에르미스의 기본적인 인터페이스에 관한 설명이었다.

“……그렇기에 사용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라 사용을 하는 데 그리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지난 세 달 간 진행한 베타 서비스를 통해서 이용자들의 불편함은 즉각적으로 수정해왔죠. 기본적인 설명은 다 마친 것 같습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그럼 본격적인 설명은 이제 제가 이어가도록 하죠. 에르미스에서 발생되는 매출 또한 대부분 만화와 웹툰 파트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잠시 고개를 주억거린 오진아가 대화의 바톤을 다시 이어받았다.

“베타 서비스가 진행되는 동안 LGA컴퍼니 매니저님들은 에르미스에서 웹소설 연재 또한 활성화가 될 수 있는 데 많은 힘을 쏟아주셨습니다만, 안타깝게도 3달간 유의미한 성적을 낸 웹소설 작가님들은 없었습니다. 독자 풀이 적은 에르미스에서 굳이 연재를 할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설명을 이어 나가던 오진아의 시선이 단풍 삼촌을 향했다. 마치 도움이 필요하다는 듯이.

임원진들 앞에서 오진아는 모든 걸 다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행동하지만, 사실 오진아 또한 에르미스에 관해 아는 정보는 딱히 없었다.

오진아의 주 업무는 그녀가 대표로 있는 BS북에 관한 업무였고, 나 또한 정보 유출 방지를 목적으로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면 오진아에게 LGA컴퍼니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으니까.

“맞습니다. 사실 소설피아 외에도 반응 연재를 할 수 있는 곳은 여럿 있습니다. 웹월드에도 아마추어 작가들이 글을 올릴 수 있는 코너가 따로 있고 점점 망해가고 있긴 하지만 더노벨에서도 아직 반응 연재를 할 수 있고요.”

도움을 요청하는 오진아의 시선을 받은 단풍 삼촌이 바로 대답을 이어나갔다.

“에르미스가 아직 덜 알려져 있다고 해도, 웹툰의 경우 지난 23일 에르미스에서 성공적으로 런칭한 강추강 작가님의 나 혼자만 상하차처럼 폭발적인 인기를 끌 수가 있었던 것은 글이 아닌 그림이라는 특수성이 있었기 때문이죠. 글과 달리 그림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소설은 이와 다릅니다.”

물을 한 모금 넘기며 목을 축인 단풍 삼촌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만화, 웹툰처럼 그림이 베이스인 작품과 달리 소설, 그것도 웹소설의 경우 아직까지는 고인물 독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분들은 양질의 작품 그리고 작품의 수가 많은 곳에 머물기를 바라죠. 즉, 웹소설 독자들을 데려오기 위해선 작가들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방법을 에르미스에선 공모전으로 메꿔보려고 합니다.”

에르미스 제1회 웹소설 공모전에 관한 단풍 삼촌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번 에르미스 제 1회 공모전은 오직 한국을 대상으로만 진행되고 BS북 매니저들에게도 에르미스에서의 독점 계약을 요청하는 말과 함께.

“저…… 죄송하지만,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단풍 삼촌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입니다, 판무 2팀 이창윤 팀장님 맞으시죠?”

“예, 맞습니다. 본부장님의 설명을 듣고 보다가 우려되는 부분이 있어서 여쭙고 싶습니다.”

질문을 이어가라는 듯이 단풍 삼촌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창윤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대표님과 본부장님들이 에르미스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는지는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모전 출품작을 에르미스와의 독점 계약을 유도하는 것은…… 정말 작가님들을 위한 일인지 걱정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 팀장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으로 통한 단풍 삼촌의 표정은 상당히 인자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는 단풍 삼촌의 얼굴은 자상이 가득한 살벌한 얼굴.

단풍 삼촌의 시선을 마주한 이창윤은 몸을 미세하게 떨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본부장님께서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BS북은 재작년 올댓스토리라는 플랫폼에 작품을 넣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 플랫폼은 올해 초 완전히 사라지고야 말았죠.”

강경진이 투자금을 받고 반 강제로 BS북의 작품을 넣게 했던 쓰레기 플랫폼 올댓스토리.

이창윤은 그때의 아픔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비록 저희 회사는 30억 원을 유치했기에 큰 타격은 없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올댓스토리가 없어지면서 피해는 작가님들께 고스란히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올해 초 올댓스토리는 경영난 악화를 이유로 소리소문 없이 하루아침에 그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창윤의 말처럼 신인 작가들 중 끈기 있는 작가들 몇몇은 2년이 넘어가도록 올댓스토리에서 꾸준히 연재를 진행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작가들이 떠안게 된 형국이었지.

“대표님과 본부장님 앞에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주제넘을 수 있지만, 에르미스가 올댓스토리처럼 경영난이나 기타 이유로 인해 없어질 위험이 있다면 저는 담당하는 작가님들 그리고 저희 2팀 매니저님들께 에르미스에 독점 연재를 하시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기특하다.

너무 기특해 볼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단순히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게 아닌 진정으로 작가들 그리고 자기 밑의 매니저들을 위해 용기를 낸 말이니까.

그리고 이창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나를 보았는지 단풍 삼촌 역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창윤이 보기엔 섬뜩하게만 보일 테지만.

“그으흐흐, 경영난 악화라……. 이창윤 팀장님.”

“죄, 죄송합니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쇼!”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통증 역치라는 게 있다.

그리고 단풍 삼촌이 쇳소리 같은 웃음을 내뱉자 이창윤은 경기를 일으키듯 바들거리며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그으흐흐, 누가 보면 죽이기라도 하는 줄 알겠습니다? 고개 드십쇼, 팀장님.”

“예, 옙! 들었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 이창윤의 얼굴이 용수철처럼 번쩍 들렸다. 마치 고개를 들지 않으면 죽지 않을까 여기는 사람처럼.

딸칵— 딱칵딸칵— 드르륵— 드륵— 딸칵—

“경영난 악화는 조금도 걱정 마시죠. 자, 다른 분들도 보십쇼. 강추강 작가님의 나 혼자만 상하차가 런칭 첫날, 24시간 기준으로 번 금액이 얼만지.”

“허어억?!”

“세, 세상에…….”

맹수를 앞둔 미어캣처럼 바들거리는 이창윤을 보며 단풍 삼촌은 에르미스의 정산 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리고 나혼상이 만들어낸 경이적인 24시간 매출을 보며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은 회의실 안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으흐흐, 이 정도면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습니까?”

화면에 떠오른 USD.

그 금액은 순식간에 불안을 잊게 할 만한 금액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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