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66화 (166/201)

166화 ― 매출을 확인해 보죠.

* * *

“후우…….”

출근 전 아침.

문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기에 앞서 나는 짤막한 한숨과 함께 폰으로 정글북에 들어갔다.

스윽— 슥—

내가 만든 작가들의 커뮤니티 정글북.

재작년이었던 2014년 말, 고작 300명대였던 회원 수는 작년 5월경 처음으로 3,000명대를 돌파했고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 무려 37,261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정글북은 이제 단순한 웹소설 작가들의 쉼터를 넘어, 신인 작가들만 대부분이던 초창기와 달리 이제는 1질 이상을 쓴 수많은 기성 작가들도 함께하는 공간이 되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정글북에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출판사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자사의 신작 등을 정글북에서 홍보하고 있다.

자체 블로그나 SNS를 통해 홍보하는 것보다 정글북에서 자기 회사에서 어떤 대단한 신작을 런칭하는지, 표지는 얼마나 예쁜 일러스트레이터를 통해 제작을 해주는지 등을 보여주며 작가들에게 어필하는데 혈안이 된 상황이니까.

스슥— 슥— 스윽—

그리고 각 출판사들은 소속 작가 혹은 작품에 관련된 논란이 발생했을 시에도 연재 중인 플랫폼뿐만이 아니라 정글북에도 사과 공지문을 올리고 있다.

독자의 수가 압도적인 플랫폼 댓글과 달리 논란에 관한 해명은 작가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인 정글북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니까. 우리 LGA컴퍼니 그리고 BS북을 포함해서.

< BS북에서 판매 중지 안내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독자님들께 최고의 이야기를 전달드리고 싶은 출판사 Best Story북입니다.

2016년 5월 9일 출간된 ‘빙궁은 타고 있다’의 판매 중지 관련 공지드립니다.

해당 작품은 ‘오픈북스’의 ‘설중수라행’과 유사하다는 제보를 접수 후…….

“…….”

지난 한 주간, 매일 하루의 시작을 지난 월요일에 발생했던 조팟의 담당작 빙궁은 타고 있다의 표절 이슈가 터진 후, 바로 올렸던 공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슥— 스윽— 슥—

“……그래도 이제 불길이 많이 잡혔네.”

빙궁은 타고 있다의 표절 이슈가 터진 후 저작자인 광문영에게 바로 연락을 취했다.

작가라고도 부르기 싫은 그 도둑놈은 조팟의 연락에 다시 한번 자신은 결코 표절은 한 것이 아니고 우연의 일치로 벌어진 일이라는 헛소리만 연신 늘어놨었다.

하지만 법적 대응을 진행하겠다는 말에 광문영 그 도둑놈은 바로 꼬리를 말고 설중수라행의 표절 사실을 인정했다.

“대체 머리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해가 안 간단 말이야?”

광문영의 표절 사실을 확인 후 나는 오진아에게 해당 상황을 보고한 후 이제 LGA컴퍼니와 BS북의 자문 변호를 모두 맡게 된 법무법인 김이박과 표절 피해를 입은 설중수라행의 원작자, 그리고 오픈북스 측에 광문영 작가에게 적절한 법적 대응과 조치를 취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설중수라행의 원작자는 표절이란 건 잘못된 행동이나, 선배 작가로서 이번 한 번은 봐주겠다는 내용을 전달해 왔다. 국가와 인종을 떠나 대인배다운 행보가 아닐 수 없었다.

‘아주 조져 놨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마음 같아선 BS북의 이미지에 큰 손해를 입힌 것에 관한 소를 제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표절작이 올라간 소설피아에서도 그리고 정글북에서도 전과는 달라진 BS북의 단호한 대처를 칭찬하는 독자와 작가들의 말이 더욱 많았기에 계약 해지 및 표지 제작 비용을 반환하는 것으로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광문영 같은 도둑놈 새끼를 업계에서 완전히 매장시켜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BS북의 메인 홈페이지에도 그리고 정글북 내 BS북 게시판에도 대문짝만하게 표절 이슈에 관해 박제를 해뒀기에 광문영은 이제 두 번 다시 같은 필명으로는 집필 활동을 이어가지 못할 것이다.

“후우…… 이제 가보자. 광문영에 관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끝났으니까.”

빠를 조치를 취한 BS북의 대처에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었지만 ‘병신북이 병신북 했네’같은 비아냥거림은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법.

주위를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쏟아진 물로 지저분해진 BS북의 모습을 잊는 데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정글북 공지의 댓글 반응을 살피던 폰을 주머니에 넣고 마스크를 챙겨 쓴 후 나는 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5월 23일인 오늘은 표절작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 많은 중요한 날이었으니까.

“후우…… 결과는 어떻게 됐으려나? 회귀하고 이렇게 긴장해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은…… 음?”

오늘 출근은 BS북이 아닌 LGA컴퍼니를 향하고 있다. 조만간 있을 임원진 미팅으로 인해 벌써부터 머릿속이 실타래처럼 엉킨 기분이 든다고 느끼던 그 순간, 주머니에서 요란한 진동이 울렸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이 시간에는 어쩐 일로……?”

지금 시간은 오전 8시 35분.

발신자는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영화 촬영 감독인 하진성 감독이다.

하진성이 간혹 진행 상황을 공유하러 연락을 줄 때가 있긴 했지만 대부분 늦은 오후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회사로 옮기던 발걸음 속도를 늦추며 조심스럽게 그의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님, 너무 이른 아침에 연락드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원작자이신 작가님께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어서요!

“아, 예. 어떤 일일까요? 촬영 중에 무슨 문제라도……?”

—아하하하! 문제라면 문제죠. 불 지르는 파이어맨 촬영이 지금 막 마무리 됐습니다!

“아! 오늘이었죠?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촬영 마지막 날이 오늘이란 걸 들었는데 이걸 잊고 있었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아하하핫! 아이구, 죄송은요 무슨! 바쁠수록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원래 금일 오후에나 끝날 줄 알았는데, 저희 배우들 컨디션도 다들 최고조여서 마지막 씬까지 완벽하게 한 큐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아하하핫!

나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15년 차 무명 감독이었던 하진성은 나 덕분에 입봉을 하게 되었다고 여기는지 나를 은인처럼 대했다.

‘사실 내가 아니더라도 내년인 2017년부터 촬영을 시작할 ‘사냥도시’의 메가폰을 잡을 사람이긴 했지만……. 괜히 죄짓는 것 같네. 나를 너무 좋게 보셔서…….’

처음에 만났을 때만 해도 어깨가 출 늘어진 자신감 없는 모습의 중년 남성의 모습은 이제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전화기 너머 들리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통해 여실히 느껴졌다.

“아, 축하 인사부터 드렸어야 했는데, 늦었네요. 촬영 끝나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작가님.”

—아이구, 이게 다 작가님 덕분이죠. 지금 지방이어서 촬영 철수하고 서울 올라갈 겁니다.

“제 덕분은요 무슨. 저보다 감독님이 가장 많이 고생하셨을 텐데, 얼른 쉬셔야겠습니다.”

—하하, 맞는 말이죠. 아! 사실 더 중요한 부탁이 있어서 전화드린 거였는데, 이 말을 깜빡 할 뻔했네요.

“부탁이요?”

내 물음에 하진성은 호탕한 웃음을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예, 배우들이랑 촬영 스텝들이 철야 촬영 때문에 지금 다들 피곤해서 일단 오늘 푹 쉬고 내일 서울에서 같이 회식하기로 했는데, 그때 작가님께서 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많이 바쁘시겠지만 2차 때라도 잠시 얼굴을 비춰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내 원작 소설의 첫 영화화를 선뜻 진행해 준 하진성의 부탁이기도 하고 내 작품에 혼신의 연기로 참여해준 배우들과 스탭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긴 해야할 터.

하지만 BS북뿐만이 아니라 LGA컴퍼니에서도 상당히 바쁜 나날이 이어지고 있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그때였다.

—사실 저도 작가님을 뵙고 싶긴 하지만, 저희 주연 배우 중 한 분이 하도 작가님을 모셔와 주면 안 되냐고 계속 난리를 쳐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연락 드리는 것도 우리 주연 배우께서…….

—감독니임! 작가님한테 그런 말 하시면 어떻게 해요오! 빨리 끊으세요! 빨리!

—어유, 왜 그래? 나 소희 씨라고 한 적 없어?

—진짜아아! 그렇게 말하면 작가님한테 다 들릴 거 아니에요! 무음 했죠? 제발 했다고 말해요! 작가님한테는 저 이런 이미지 아니란 말이에요!

하진성의 목소리 옆에서 들리는 기시감 가득한 맑은 목소리. 내가 삼촌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콩밥을 열심히 드시고 계신 약쟁이 전진철의 마수로부터 구해낸 민소희가 분명하다.

‘그래, 얼굴 한번 비추긴 해야지.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도 한 번 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민소희를 하진성 감독에게 떠민 건 나였다.

전진철의 마수에서 구한다는 목적도 있었지만, 나로써는 미래에 글로벌 스타가 될 그녀를 내 작품의 배우로 출연시키고 싶은 욕심이 더 컸으니까.

전진철의 쓰레기 짓이 벌어졌던 것도 민소희의 지난 드라마 촬영 종방연 회식에서 벌어진 일.

민소희가 나를 보길 원한다면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 가는 게 사람의 도리일 것 같다.

“조금 늦을 수 있겠지만, 꼭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

—아하핫! 정말이십니까? 그럼 시간 장소 정해서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소희 씨가 보낼래?

—아 정말! 감독니임!

“하하,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제가 미팅이 있어서 이제 전화를 끊어봐야 할 것 같아서요.”

—아이고, 아침부터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그럼 일 잘 보시고 내일 뵙겠습니다, 작가님!

“예, 내일 뵙겠습니다.”

하진성과 민소희의 밝은 웃음 덕분에 표절작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머리에서 말끔히 지운 채 임원진들이 있는 3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계단을 한 칸, 또 한 칸 위로 걸어 올라갈수록 이번엔 앞으로 있을 미팅에 관해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지잉— 틱—

옅은 한숨을 내쉰 뒤.

지문을 찍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회의실 유리벽 너머로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서 서성이는 세 명의 그림자가 보였다.

“다들 일찍 도착하셨네요.”

“오셨어요, 대표님?”

“대표님도 일찍 오셨네요.”

“오셨습니까.”

마스크를 벗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가자 지연이와 권미현 그리고 단풍 삼촌이 초조한 얼굴로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아직 업무 시간이 되기 전이긴 하지만, 다 모였으니 바로 시작할까요? 저뿐만이 아니라 다들 궁금해서 일찍 오신 것 같으니까요.”

“네.”

“저도 그게 좋겠어요.”

“후우, 밤새 한숨도 못 잤습니다.”

밤새 한숨도 못 잤다는 단풍 삼촌뿐만이 아니라 지연이와 권미현 역시 눈가에 다크 서클이 짙게 그늘진 것을 보니 다들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회의 진행하도록 하죠. 우선 금일 자정 00시 기준으로 에르미스의 베타 서비스가 끝나고 정식 버전이 시작됐습니다.”

지난 2월 22일 에르미르 베타 서비스가 오픈했다. 그리고 3달이 지난 오늘 드디어 에르미스가 베타 서비스라는 꼬리표를 벗고 정식 오픈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기쁜 소식에도 LGA컴퍼니 임직원들은 그 누구 하나 웃고 있지 않았다. 바로 내 입에서 이어질 다음 말 때문에.

“그리고 강추강 작가님의 나 혼자만 상하차 웹툰도 금일 00시에 에르미스에서 오픈하게 되었죠. 그럼…… 무진 본부장님.”

“예.”

“매출을 확인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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