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65화 (165/201)

165화 ― 기미 상궁에 가까운 직업.

* * *

웅성거리는 매니저들을 뒤로하고 나는 조팟과 함께 대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조팟님. 작품 계약할 때 표절 문제는 확인 못하셨습니까?”

“……예, 초반 성적만 보고 계약을 한 작품인데, 제가 무협 쪽 인풋은 적어서…….”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인 조팟이 풀이 잔뜩 죽은 모습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며칠 전부터 댓글에 표절 관련 내용이 써 있긴 했는데, 작가님께 여쭤보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면서 화를 내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당연히 표절이 아닌 줄―”

“그걸 알았으면 진작에 보고를 해야 된 게 아닙니까!”

“죄, 죄송합니다…….”

정수리가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고개를 숙인 조팟놈의 말에 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일단, 메일 내용부터 다시 확인해 보죠.”

“예…….”

빔프로젝터에 연결된 노트북으로 다시 한번 회사 대표 메일로 수신된 메일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오픈북스에서 보내온 그 메일의 첨부 파일을 확인하니 표 형식으로 해당 출판사의 작품과 조팟의 담당작의 비교 분석이 되어 있었다.

비슷한 전개를 시작으로 주조연 등장인물의 역할 등, 해당 파일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명확하게 문제가 될 부분이 눈에 훤히 보였기에 눈이 질끈 감겼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되는 건 Ctrl+C, Ctrl+V를 한 게 분명한 문장들이었다.

“조팟님…….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건……. 의심의 여지 없는 표절작이 분명합니다.”

“…….”

오픈북스는 종이책에서 웹소설 시장으로 넘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출판사. 하지만 중국, 대만, 홍콩 등 중화권 무협 소설을 전문적으로 번역해 웹소설로 출간하는 출판사다.

오픈북스에서 표절의혹을 제기한 조팟의 담당작 ‘빙궁은 타고 있다’는 오픈북스의 ‘설중수라행’과 터무니없이 흡사하다. 아니, 흡사하다기 보단 주인공의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작품이라고 봐도 상관없을 수준이다.

“객잔 창문을 통해 밖의 풍경을 묘사하는 방식이 유사하거나 겹치는 표현들, 소설 도입부부터 일만 명의 대규모 난전을 표현하는 묘사, 등장인물들의 대사 등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하아, 설정 자체가 너무 똑같지 않습니까? 사이버펑크 세계관으로부터 넘어온 무림인이 춘추전국시대 배경의 무협 세계관으로 간 것까지요.”

“……죄송합니다.”

사이버펑크란 1900년대 후반부터 각광을 받은 SF문학의 한 장르로, 암울한 분위기의 기계화된 세상을 일컫는 장르다.

고도로 발전한 기술로 인해 기계 문명과 인간이 섞이게 되는 내용을 주로 담은 사이버펑크 장르는 아직 웹소설 판에선 소수의 독자들에게만 사랑을 받는 마니악한 소재다.

2016년도인 아직까지 사이버펑크를 도입해 흥행한 무협 소설은 중국 내에서도 설중수라행이 거의 유일하기에 이번 표절 이슈가 그것도 내가 팀장으로 있는 판무 1팀에서 발생했다는 상황에 눈이 질끈 감겨 오는 그때였다.

“저, 하지만…… 중국 작품이니 이대로 밀고 나가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예?”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조팟놈의 입에서 나온 말에, 잠시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저희 작가님이 표절을 한 건 잘못이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표절이 확실한 부분은 살펴보면 35화부터 42화 부분이거든요. 표절 부분은 삭제 후 수정을 하고 해당 부분만 작가님한테 교체를 요청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잠시 말문이 막힌 사이 조팟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 막 유료화를 해서 성적도 나쁘지 않고 거기다 솔직히 말하면 중국놈들 툭하면 한국 콘텐츠 가져가 베끼잖아요. 저희가 당한 것도 많은데 수익이 나오는 작품을 아예 내리기보단 수정을 해서―”

“조성훈 파트장님!”

“?”

들불처럼 끓어오르는 호통을 내뱉으며 조팟의 말을 가로 막았다.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헛소리를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었으니까.

“지금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작품이 아니면 표절을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중국 작품이니―”

“다른 나라 작품은 안 돼도 중국 작품은 표절해도 상관 없다는 소리입니까?”

“그게…….”

답이 없는 조팟놈의 피해의식에 목이 뻐근해진다. 욱신거리는 목을 주무르며 나는 말을 이었다.

“조팟님 말은 우리 BS북이 표절을 당한 상대방에 따라 대응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조팟님이 중국에 대해 어떤 감정이 있는지, 역사적으로 한국과 어떤 관계였는지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닙니다. 중요한 건 우리 회사 작품이! 그것도 조팟님 작품이 표절을 했다는 게 문제라고요!”

“……죄, 죄송합니다.”

“하아…….”

같잖은 피해의식으로 되도 않는 변명을 이어나가는 조팟놈의 말에 속에서 열불이 터진다. 하지만 비록 이 사달을 낸 당사자가 조팟놈이라 한들 모든 책임을 조팟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이번 일은 판무 1팀.

내가 팀장으로 있는 팀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그리고 팀장이란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다.

“빙궁은 타고 있다 집필하신 작가님이 광문영 작가님 맞죠?”

“……예, 맞습니다.”

“광문영 작가님께 연락해서 계약 해지 내용 전달하고 계약서에 적힌 내용대로 표지 제작 비용 반환 청구하세요.”

BS북 그리고 LGA컴퍼니를 포함해 대부분의 웹소설 출판사는 작가와 계약시 웹소설 표지 제작을 회사가 부담한다.

하지만 이번 표절 사태처럼 우리가 계약한 작가가, 계약서에 기재된 신의성실의 의무를 위반하는 등 작가 자신의 문제로 인해 계약 조건을 이행하지 않거나, 계약이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할 경우 계약 해지를 요청하고 이미 제작한 표지 비용을 반환할 수 있다.

“계약을…… 해지합니까? 다른 작품으로 다시 쓰라고 하는 게 아니라요? 필력도 괜찮으신 작품이라 다른 작품으로 다시 계약서만 수정해도―”

“지금 장난합니까? 돈만 되면 논란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예요?”

“하지만…… 매출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맞는 말 아닙니까?”

조팟놈의 헛소리에 이가 뿌드득 갈린다.

“이미 여러 번 말했을 겁니다. 우리 BS북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회사의 입장에선 매출이 가장 중요한 게 맞는 말이죠.”

차갑게 내뱉은 날카로운 말에 조팟놈의 몸이 흠칫 떨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BS북이 정말 제대로 된 작가를 위한, 그리고 독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작품을 내놓는 출판사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

실제로 대부분의 출판사에선 표절 이슈가 터지면 해당 작품을 내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표절을 행한 작가에게 연락했을 경우 가장 많이 행하는 행동은 광문영 작가처럼 표절을 인정하기보단 화를 내며 극구 부인을 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린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작가보다 더 큰 문제인 것은 출판사다. 표절이 확실시되면 해당 작품을 내리기보단 최대한 질질 끌면서 표절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표절 이슈가 터져도 작품을 내리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작품을 구매한 독자들에게 환불 처리를 하는 것부터 그동안 해당 작품을 런칭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 편집자들의 인권비 등, 회사 차원에서는 손해가 막심하니까.

“회사 입장에서 매출이 중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름아닌 출판사 아닙니까? 조팟님도 출판사 소속으로 편집 업무를 하는 매니저고요.”

“……맞습니다.”

“본질을 잊지 말아주세요. 출판사 매니저는 독자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좋은 글을 소개하는 업무를 맡은 사람입니다. 또한 남의 글을 도둑질한 작가는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줘야 하는 것도 우리가 맡은 그리고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고요.”

“…….”

내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만 해도 웹소판에선 표절 이슈가 난무했다. 한 작가가 어느 장르의 소설을 터트리면 맛집 옆에 유사 맛집이 생기는 것처럼 비슷한 소재의 글이 우후죽순으로 솟아났으니까.

드르륵― 드륵―

나는 미간을 구긴 채로 광문영 작가의 댓글창을 주루룩 살펴보기 시작했다.

드륵― 드르륵― 드륵―

하지만 더욱 기가 차는 건 댓글만 봐도 표절이 확실한 상황에 광문영 작가를 옹호하는 댓글들이다.

“보시다시피 댓글에는 광문영 작가님을 옹호하는 댓글들이 즐비하죠. 조팟님 말처럼 우리나라 글도 아니고 중국 소설을 베낀 건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말부터 웹소판이 어차피 다 서로 베끼는 판국인데 재미만 있으면 되지 무슨 상관이냐는 말까지요.”

“…….”

기가 찬 건 댓글 여론 대부분의 표절을 했다는 문제를 우선시하기보단 재미있으니 상관 없지 않냐는 부분이다.

참신한 자신만의 색을 가진 글보다 재미있는 글에 반응하는 독자들. 그리고 이런 반응으로 인해 신인 작가뿐만이 아니라 흥행작을 보유한 5~6질 이상을 한 기성 작가들 또한 표절을 일삼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딸칵딸칵―

더는 보고 싶지 않은 댓글창을 닫았다.

나는 옅은 한숨을 쉬며 조팟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하든 우리는 표절작에 단호히 대응하는 모습으로 우리는 독자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한들, 표절한 글은 맛 좋은 훔친 음식일 뿐이란 것을 알려야 하니까요.”

“…….”

아직은 2016년.

웹소설의 붐이 도래하기 전의 시기다.

아직이라면 표절이 성행하던 미래의 모습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욱 단호히 행동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작가와 독자 그리고 출판사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고 제대로 된 웹소설 문화를 정착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조팟님, 중국 작품이어서 알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설중수라행은 상당히 유명한 작품입니다. 신문 기사에서도 작가 커뮤니티에서도 상당히 이슈가 되었던 작품이고요.”

“…….”

“아무리 편집자라고 해도 모든 작품을 다 읽을 순 없죠. 거기다 해외 작품까지 파악하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기도 하죠.”

서늘함이 가득 담긴 눈빛에 조팟의 목울대가 움찔거린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야하는 게 편집자가 해야할 일입니다. 조팟님께 모든 작품을 모두 파악하라고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다양한 매체에 소개되었던 설중수라행을 몰랐다는 것은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죄송합니다.”

굳게 다물어져 있던 조팟의 입이 열리며 그의 얼굴은 이전에 한 번도 본 적 없던 표정으로 일그러졌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으로 읽은 조팟의 표정엔 자신을 향한 자책이 가득 담겨 있다. 목청을 높이는 비난의 말보다 그의 업무 능력을 탓하는 말이 조팟에겐 더욱 비수같이 날아든 모양이다.

“조팟님은 판타지와 현판 쪽만 주로 보시는 것을 압니다. 그것도 성적이 높은 기성 작가 위주로만 작품을 보고 컨택을 진행하죠.”

“……맞습니다.”

조팟은 작품 컨택을 할 때 초반 성적이 좋지 않은 작품은 보지도 않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기에 내 말에 부인하지 않았다.

“파트장님께 이런 말을 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저희는 재미있는 글만 읽는 사람이 아닙니다. 취향에 맞지 않는 글이어도 우리가 재미없다고 느끼는 글이라도 독자의 시선으로 봐야 하는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죠.”

웹소설 출판사 업무를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하루종일 재미있는 글만 읽는다고 생각할 테다.

하지만 재미있는 글보다 그렇지 않은 글을 읽는데 투자되는 시간이 백 배 이상은 많은 게 편집자의 일이다.

편집자는 맛난 음식만 가려먹는 편식쟁이가 아닌 문제가 될 만한 글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미 상궁에 가까운 직업이니까. 그렇기에 조팟에게 이 말을 꼭 전해야만 했다.

“앞으로는 조팟님께 재미없는 글이라도, 관심이 없는 글이라도 항상 독자들 염두하면서 컨택해 주세요. 이 글이 맛있는지 아닌지를 정하는 건 저희가 아니라 독자이니까요.”

“……예.”

“이런 부분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조팟님도 앞으로 신작을 계약하기 전에 해당 작품 제가 모두 확인하고 계약 진행하게 될 겁니다. 신입 매니저님들에게 하듯이.”

“……명심하겠습니다.”

오진아를 대표 자리에 앉히면서 BS북 출판 본부의 시스템을 조금씩 LGA컴퍼니와 비슷하게 변화시키는 중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정착하더라도 담당자가 그 시스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예전의 BS북처럼 상부에게 모든 것을 결재받는 탑다운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 지금 바로 작가님께 계약 해지 연락드리세요.”

“예, 팀장님.”

어깨를 축 늘어뜨린 조팟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나는 오진아가 있는 대표실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조팟에겐 최대한 덤덤히 말했지만, 내 팀 안에서, 그리고 내가 대표나 마찬가지인 BS북에 표절 작품을 줬다고?

‘넌 뒤졌다, 이 새끼야.’

자신의 글이 표절작이 아니라 뻔뻔히 우기던 작가를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다. 최소 지금 쓰는 필명으로는 이 바닥에서 두 번 다시 글을 못 쓰게 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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