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 불길의 시작.
* * *
“엘가라면…….”
“LGA컴퍼니를 말하시는 겁니까?”
성운선과 신선호가 연달아 내놓은 답에 소설피아 대표 김완섭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래, 다들 엘가라고 부르더군. 판무 레이블 드래곤, 거기에 로맨스 레이블 유니콘까지 점점 장르 판을 뒤집어 놓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여기에 없겠지?”
“물론입니다.”
“예…….”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성운선 그리고 다른 임원들과 달리 출판부의 신선호 부장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갔다.
소설피아에 단 1화만 올라왔던 ‘나 혼자만 상하차’의 강추강 작가를 컨택해 웹월드에서 정식 런칭하게 한 출판사가 바로 판무 레이블 ‘드래곤’의 주인 LGA컴퍼니었으니까.
“틈만 나면 터지는 불안전한 서버, 호시탐탐 우리를 치고 올라가려는 웹월드와 테일랜드 모두가 위험 요소지. 하지만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가장 큰 건 엘가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가 뭐일 것 같나?”
김완섭 대표의 말에 임원들의 목울대가 마른침으로 넘실댔다.
LGA컴퍼니의 판무 레이블 드래곤과 로맨스 레이블 유니콘의 약진 이외에도 근래 들어 ‘에르미스’라는 듣도 보도 못한 해외 플랫폼을 만들어 베타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 걸 업계 정보에 그 누구보다 빠삭한 임원진들이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하아…… 결국 대표 귀에 들어간 건가?’
‘공모전 끝나서 좀 잠잠해진다 했더니만…… 한동안 또 난리 나겠네.’
다만 LGA컴퍼니는 소설피아와 CP(Contents Provider) 계약을 맺은 수백 곳의 출판사들 중 한 곳일 뿐.
그렇기에 회의실 내의 임원들은 LGA컴퍼니의 최신 근황을 알면서도 서로 쉬쉬해가며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총력을 펼치던 중이었다.
소설피아의 임원진들은 굳이 불필요한 정보로 김완섭의 신경을 긁고 싶지 않았다.
임신 막달에 접어든 고양이 같은 예민함이 김완섭의 디폴트 값이었으니까.
“엘가의 빠른 성장성을 보고 진작에 인수를 했어야만 했지. 하지만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실패였고.”
““…….””
“인수합병 제안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엘가는 성과가 좋은 스타트업 정도였지. 하지만 지금은 잡아먹기엔 너무 커져 버렸어.”
두둑한 살집으로 인해 겹겹이 접힌 턱살을 문지르며 내뱉는 스산한 말에, 임원들이 마른침을 넘기는 소리가 절묘한 화음처럼 울려 퍼졌다.
“처음에는 먹잇감을 잘 보는 개 정도로 알았지만, 지금 보니 개가 아니라 범 새끼더군.”
““…….””
“새끼든 다 큰 놈이든 범은 범이지. 그리고 길들일 수 없는 범을 잡으려면 엽사가 필요한 법이고.”
똑똑똑―
한동안 제 2회 공모전에만 온 정신이 팔려있었을 대표가 대체 누군가로부터 LGA 컴퍼니에 관해 최신 정보를 수집한 것인지 그리고 어디까지 들은 것인지에 관한 고뇌를 이어가던 그 때, 회의실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때마침 엽사가 왔나 보구만. 들어와.”
‘뭐야? 누구길래 기다렸다는 듯이 말해?’
‘빠진 사람은 없을 텐데?’
임원진들이 솟구치는 상념을 갈무리 하기도 전, 김완섭의 승인과 함께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뚜벅― 뚜벅― 뚜벅―
그리고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사내의 얼굴은 소설피아의 임원진들 대부분이 아는 얼굴이었다.
“……어?”
“당신은?”
특히 그와 여러차례 미팅을 한 경험이 있었던 신선호 부장과 성운선 부장은, 마치 선교사를 인상케하는 선하고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회의실 안으로 들어오는 이가 누군지 단박에 알아챘다.
“범을 잡으려면 범굴에 들어가야 하지. 그리고 이 친구는 다들 봐서 알고 있을 거야. 범굴에 살다가 나온 친구인 걸. 능력도 봐줄만한 친구인 건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신선호와 성운선이 놀랄 새도 없이, 안으로 들어온 사내를 가리키며 대표의 설명이 이어졌다. 대표의 소개를 받고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앉은 사내는 주위를 둘러보며 방긋 미소 지었다.
“반갑습니다. BS툰의 웹툰 본부장이었던 강경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어느덧 5월의 중순인 16일 월요일이 됐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이 될 때마다 BS북 매니저들은 ‘인턴사원 회장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23.3%라는 경이적인 시청률로 시작한 인턴사원 회장님은 매 화가 방영될 때마다 기념비적인 기록을 쏟아내고 있었으니까.
“와…… 상금 미쳤네. 이거 다 합치면 얼마야. 1, 3, 5…… 10억?!”
“뭐야, 정보 왜 그렇게 느려요? 그거 정글북에 이슈 된 지가 얼마나 지났는데.”
“아니 와…… 이 정도 규모면 사실상 소설피아 공모전 2배 아니에요?”
하지만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점심시간은 드라마보다 다른 주제로 인해 매니저들이 격양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다. 다름 아닌 우리 에르미스의 첫 공모전 때문에.
“말이 2배지, 체감상으론 훨씬 더 차이 나지 않아요? 소설피아는 즉시 지금하는 상금이 엄청 적잖아요. 상금 대부분은 보장인세고.”
“그러게 말이에요. 소설피아는 1회 공모전 때는 잘 했었으면서, 갑자기 똥볼을 차네. 솔직히 에르미스 공모전 없었어도 이번 소설피아 2회 공모전은 매력이 없는 것 같아요. 해도 정도껏 해야지, 너무 대놓고 조삼모사잖아요. 상금 받으려면 작품 인질로 내놓으란 느낌이라 거부감이 확 들더라고요.”
“제 말이요! 그런데 대체 에르미스가 뭐예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데?”
“뭐야? 매니저님 간첩 아님? 엘가에서 만든 플랫폼이잖아요.”
“예에에?! 에, 엘가에서 만든 플랫폼이라고요?”
판무팀 매니저들.
특히 지금 목소리를 높이는 판무 2팀 매니저 몇몇은 브루나이 정부와 협업을 해서 제작한 웹툰&웹소설 플랫폼 에르미스가 엘가에서 만들어진 말에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다.
“엘가 홈페이지에 가면 공모전 관련 소식이랑 에르미스 관해서 다 나오던데. 그것도 안 보고 뭐 했어요?”
그리고 이미 에르미스가 LGA컴퍼니에서 만들어진 플랫폼이란 것을 알고 있던 매니저들이 턱을 치켜들고 짓궂은 말을 장난스럽게 건네자 상대 매니저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니 어이가 없네. 에르미스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거참, 그걸 누가 시켜야 알아보는 거예요? 이제 BS북이랑 엘가랑 사실상 같은 회사나 마찬가지잖아요. 우리 회사와 관련된 내용은 알아서 챙겨 먹어야지 안 그래요?”
“어…… 그런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뭐라 항변하려 했던 판무 2팀 매니저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바라보며 턱을 매만졌다.
“그런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엘가랑 우리랑 같은 회사인데, 이런 정보는 왜 공유가 안 되는거에요? 미리 알았으면 나도 준비 했겠죠!”
“어유, 생각을 좀 해봐요.”
그리고 장난스러운 핀잔을 주던 매니저는 미소를 머금은 채 그를 향해 계속 말을 이었다.
“엘가랑 BS북이 사실상 같은 모기업 아래 있는 회사가 되었다고 해도 전반적인 경영 방식은 다르잖아요. 본부장님 몇하고 1팀 팀장님만 엘가에 왔다갔다 하지만요.”
“……그거랑 미리 알려주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묻는 매니저를 보며 다른 매니저는 옅게 혀를 찼다.
“어휴, 답답하기는. 생각을 좀 해보세요, 매니저님. 지금 이건 누가 애사심이 있는지를 확인하려는 절차라니까요?”
“애사심이요?”
“거참, 눈치 그렇게 두고 다니면 떨어진 콩고물도 못 주워 먹어요.”
낮게 혀를 차던 매니저는 당수를 치겠다는 듯이 손날을 가로로 세우더니 배꼽 아래로 내렸다.
“엘가랑 우리 BS랑 같은 회사라고 하긴 하지만 사실상 급이 다르잖아요. 우리는 여기, 맨틀 아래 박혀있는 지저인.”
“지저……인?”
설명을 이어나가던 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엔 가로로 세운 손날을 머리 위로 올렸다.
“지구 아래 사는 족속이란 뜻이죠. 그리고 엘가는 여어기 위에 있는 천상인이고요.”
“천상인이라…… 천상계에 산다는 겁니까?”
얼굴을 찌푸리며 묻는 매니저의 말에 설명을 이어가던 매니저가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바로 그거죠! 우리는 같은 지구에 있으면서도 지하에 그리고 엘가는 천공에 떠 있는 거라고요! 그러니 우리 같은 천민이 당연히 하늘에 계신 천상계 님들이 무얼 하시나 알아서 받들어 모셔야죠.”
“그건…… 너무 비참한 삶이 아닐까요?”
“어허, 모르는 소리!”
설명을 이어가던 매니저는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제가 아까 그랬잖아요. 애사심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라고. 우리가 비록 지금은 땅속에 처박혀 있는 삶이라지만, 하늘님들 일거수일투족을 제대로 받들어 모시면 여길 탈출할 수 있지 않겠어요? 공채로 들어가는 건 아니더라도 특채로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말이죠!”
“오오! 그럴듯하네요? BS북 특채전형 같은 느낌!”
“이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시네. 그러니까 엘가 홈페이지 주구장창 들어가 봐요. 에르미스 플랫폼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우리도 언제 윗분들한테 잘 보여서 1팀 박정우 팀장님처럼 엘가 쪽으로 한 발 걸치게 될 지 모르는 일이라니까요?”
판무 2팀 매니저들의 망상이 아주 달나라에 가 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말이야.
‘미안하지만 지금 BS북에 있는 매니저들 중에서 엘가로 데려올 만한 사람은 없어. 여기서 성과를 보여도 여러분들의 종착지는 여기라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법이다. LGA컴퍼니의 출판본부장이 된 권미현처럼 인성이 되거나, 혹은 BS북 소속이지만 LGA컴퍼니에 파견이 된 정명진처럼 특출난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닌 이상 BS북 매니저들은 LGA컴퍼니로 올 수 없을 테다.
‘그래도 뭐가 됐든 에르미스에 관해서 이야기가 점점 나오니 좋긴 하네.’
여하튼 BS북 매니저들 사이에도 에르미스라는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 LGA컴퍼니에서 출간한 소설들도 그리고 웹툰,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으로 OSMU되고 있는 작품들까지 부족함 하나 없이 순조롭기만 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벌써 오후 1시네요. 자 그럼 1팀은 주간 회의 시작해 보……어?”
사무실 한 쪽 벽면에 걸린 시계가 오후 1시를 가리켰고, 점심시간이 다 끝나 주간 회의를 진행하러 가려고 한 그 순간.
딸칵― 딸칵딸칵― 딸칵―
아직 점심시간의 온기가 남았듯 시끄러웠던 소음이 사라지고 사무실 내엔 매니저들의 딸칵거리는 마우스 클릭 소리만 아카펠라처럼 맴돌았다.
“헐…… 이게 뭔 일이래요?”
“왜요? 무슨……와, 또 터진 거야?”
“하아, 쪽팔려서 진짜 회사 다니겠나, 쯧.”
그리고 클릭 소리에 뒤이어 따라온 경악과 한탄이 사무실 내로 메아리쳤다.
나 또한 허망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전직원 모두가 볼 수 있는 대표 메일로 온 단 하나의 메일 때문에.
귀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표절에 관해…….
‘……환장하겠네. 표절?’
평온하기만 하던 일상이 거짓말처럼 박살났다.
전직원 모두가 볼 수 있는 대표 메일로 온 내용이었기에 BS북은 뜨거운 불길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불길이 시작된 곳부터 확인해야할 테다.
“주간 회의는 나중에 진행하죠. 조팟님, 회의실로.”
“……네.”
그리고 이번 표절작의 담당자.
그 불길의 시작은 조팟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