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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63화 (163/201)

163화 ―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건…….

* * *

5월 9일 월요일.

강남역 인근, 마천루가 즐비하게 늘어선 빌딩 숲. 그 사이로 소설피아를 상징하는 거대한 ‘S’자 로고가 새겨진 고층 빌딩의 유리 외벽이 따스한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이번 2회 공모전의 참여작 수는 총 2,659편으로 전년도보다 높은 참여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지난 1회 공모전에 비해 공모전에 접수된 작품 수가 증가했을 뿐만이 아니라,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소재의 웹소설이 출품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3월 15일부터 이달 3일까지 진행된 공모전 참여 작품을 면밀히 심사 중에 있—”

“신선호 부장. 그래서 면밀히 심사 중인 공모전 1차 내부 심사 결과는 언제 나올 것 같은데?”

하지만 한창 회의가 진행되는 소설피아 본사 내의 대회의실 안은 산뜻한 봄내음이 물씬 풍기는 건물 밖의 따스함과 달리 싸늘하기만 했다.

“그, 그게 아무래도 이번 공모전 참여작 수가 전년도보다 상당히 늘어나서 아무래도…….”

“그래서 언제가 될 것 같냐고?”

소설피아의 출판 본부를 담당하는 신선호 부장은 상석에 앉아 날카로운 표정을 빛내는 김완섭 대표의 시선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이달 넷째 주까지는 검토가 끝날 것 같—”

“넷째 주? 신 부장, 넷째 주에 1차 검토 끝내서 준다고 하면 나보고 최종 심사는 언제 하라는 거지? 그다음 주가 바로 결과 발표인데?”

“아, 아닙니다. 그러면 최대한 셋째 주까지는—”

“이번 주 내로 끝내서 금요일 퇴근 전까지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 공모전 시작된 지가 몇 달이 지났어? 지금까지 50일이나 지났는데 여태껏 작품 제대로 확인 안 하고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예, 알겠습니다.”

지난주 목요일은 어린이날 그리고 그다음 날 역시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 빨간 날이었다. 소설피아 제2회 공모전이 끝난 건, 지난 화요일이었던 5월 3일 화요일이었기에 실질적으로 공모전 작품을 훑어보기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수요일 단 하루였다.

하지만 이런 말을 꺼내는 건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한 김완섭 대표의 화를 돋울 뿐이었기에 신선호 부장은 무어라 항변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단지 자신이 짐작했던 대로 이번 달 지옥의 야근 행군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부하 직원들에게 전해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2회 공모전인데 당연히 작품 수가 많아지고 작품 수준이 올라가는 건 당연한 거지. 지금 그런 당연한 얘기나 들으려고 회의하는 거 아니잖아? 안 그래?”

“…….”

차가움이 물씬 느껴지는 금테 안경 뒤로 스산하게 빛나는 김완섭 대표의 말에, 회의실 안에 모인 임원진들은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임원진들의 입이 닫혔다고 해서 김완섭의 독설이 멈추는 일도 없었다. 그가 회의를 소집한다는 것 자체가 회사에 불만이 있다는 뜻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신 부장. 지금 소설피아에서 뭐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해?”

고요한 적막이 물씬 풍기는 회의실 안에서 김완섭이 낮게 혀를 차며 다시 말을 시작했다.

“예? 문제라 하시면 어떤 종류의……?”

소설피아 대표 김완섭은 전문 경영인이 아닌 작가 출신의 경영인. 대표 스스로가 작가였기에 소설피아라는 한국 최대의 웹소설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작가들의 가려운 부분을 캐치하는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전문 경영인이 아님을 방증하듯, 종종 지금과 같이 두서없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뜬금없이 퀴즈를 내듯 회사를 문제점을 파악하라는 대표의 말에 신선호는 말꼬리를 늘리며 대표의 의중을 파악하려 했지만, 늘 그래왔듯 대표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

‘개새끼, 문제가 한둘이어야 꺼내지.’

매일같이 갈아대는 자동 맷돌로 인해 매달 발생하는 퇴사자들.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 하는데 대표라는 사람이 작가 커뮤니티에 올리는 어그로성 하소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인 여론.

그 외에도 소설피아의 문제를 꼽자면 한도 끝도 없을 테였으나 그렇다고 이 모든 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개발부장…… 미안하게 됐습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신선호는 우선 자신을 향해 날아온 화살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로 했다.

“소설피아는 국내 최대의 남성향 웹소설 플랫폼으로써 1위 지위를 확고히 다지고 있지만, 테일랜드와 웹월드 같은 후발 주자와 비교해 보자면 서버의 안정화가 비교적 아쉬운 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래? 신 부장 말은 소설피아에서 개발팀이 가장 문제라는 거네?”

“가장 문제라기 보다는, 근래 들어 서버가 다운되거나 결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일의 빈도수가 늘고 있어 대표님께서 우려하시는 부분이 그 부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신선호의 말에 회의실 책상 밑으로 주식 차트를 확인 중이던 개발팀과 서버 운영팀을 총괄하는 성운선 부장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신선호의 행동이 저열한 동귀어진임은 분명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말에 틀린 사실이 단 하나도 없었기에 성운선의 눈앞은 자신의 주식 그래프처럼 파래지는 기분이 들었다.

‘신선호 저저 양아치 새끼! 혼자 뒤지게 생겼으니 나를 끌어들여?’

갑작스럽게 닥친 비열한 물귀신 작전에 성운선이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마른침만 연거푸 삼키는 그때, 김완섭의 입에선 차가운 냉소가 흘러나왔다.

“신 부장 말이 맞아. 소설피아 서버가 아주 개판이지. 무슨 주간 행사도 아니고 주에 한 번씩 서버가 터지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이야? 성 부장 어떻게 생각해?”

“……죄,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자는 말을 듣자는 게 아니라. 소설피아 서버가 무슨 해커 놀이터냐고? 소설이 가득한 소설세상, 웹소설의 유토피아라는 슬로건이 가당키나 한 말이야? 이게 해커세상이지 소설세상이냐고?”

“……면목 없습니다. 해당 이슈 하루빨리 안정화 시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푹 숙이며 내뱉은 성운선의 말에도 김완섭의 날카로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재작년엔 60억 원 그리고 작년엔 연매출 120억 원을 돌파해 이년 연속 두 배 이상 성장을 보여주고 있어. 그런데 서버 터지는 건 커뮤니티 사이트일 때랑 다를 게 없어? 서버 터지는 빈도수만 보면 그때보다 더 높은 게 웃기지 않아?”

“……시정하겠습니다.”

매출이 높다 한들 서버 운영 및 개발비에 들어가는 금액은 쥐꼬리잖아 대머리 새끼야!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으나 성운선은 그러하지 못했다.

불같은 성격의 대표의 화를 잠재우기 위해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가장 빠르고 유일한 해결책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쯧, 서버도 그렇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야.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따로 있지.”

그리고 대표가 이번 회의를 소집한 게 서버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 성운선도 신선호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긴장의 끈을 놓지는 못했다. 대표의 불화살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우리가 업계 선두를 달린다고 해서 긴장의 끈을 놓치면 안 돼. 지금 헛발질 하는 더노벨만 봐도 그래. 이미 편당 결제가 대중화되었는데 정액제 한다고 고집부리고 하니까 작가들이 탈주하는 거라고.”

“마, 맞습니다! 더노벨은 저희처럼 HTML5 버전 뷰어도 아니고 여전히 플래시 뷰어를 사용하고 있는 점도 독자들의 이탈율을 높이는 요소로 보여집니다.”

김완섭의 말에 성운선은 열렬히 맞장구를 쳤다.

자신의 주도하에 만든 HTML5 뷰어는 자신의 성과를 어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분 중 하나였으니까.

공치사의 목적이 다분히 보이는 성운선의 칭찬에 김완섭은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여하튼 소설피아가 부동의 업계 탑을 유지하기 위해선 우리가 스스로 성장하는 것 외에도 경쟁사들의 발목을 최대한 잡아 놔야겠지. 그래서 신 부장.”

“예? 예, 대표님.”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을 가까스로 성운선에게 돌려놔 한시름 놓고 있던 신선호는 갑작스러운 대표의 호출에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며 대답했다.

“신 부장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게 어디라고 생각해?”

“…….”

신선호는 이번에도 경영팀 부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일었다.

하지만 동귀어진은 단 한 번만 펼칠 수 있는 구명의 한 수.

이번 회의에 이미 한 번을 사용했기에 같은 술수는 더 이상 먹히지 않으리란 생각에 그는 질끈 감았던 눈을 파르르 떨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재 소설피아와 견줄 수 있는 후발 주자 중 가장 위협이 되는 플랫폼은 테일랜드와 웹월드입니다. 물론 테일랜드와 웹월드 모두 여전히 작가 풀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두 플랫폼 모두 대기업을 모회사로 두고 있다는 점이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다 아는 말은 할 필요 없고. 그게 다야?”

“그게…… 테일랜드와 웹월드 모두 모회사에서 적극적인 투자는 이뤄지고 있지 않아 그 성장세가 높지는 않습니다. 다만, 웹월드의 경우 최근 강추강 작가의 나 혼자만 상하차라는 작품이 압도적인 흥행을 보인다는 점을 주목할 만합니다.”

신선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김완섭의 얼굴이 비릿한 미소로 점점 일그러졌다.

“그래, 강추강 작가가 심지어 1화를 소설피아에 가장 먼저 올렸어. 그런데 소설피아에서 유료화를 안 하고 웹월드에서 했단 말이야?”

“…….”

서슬 퍼런 대표의 말에 신선호는 가뜩이나 마른오징어가 된 자신의 몸이 더욱 쥐어짜지는 기분이 들었다.

비록 의문문 같은 형태로 내뱉은 말이었으나 대표의 말을 직장인 번역기로 해석해보자면, 소설피아에서 먼저 올라온 작품을 왜 소설피아 매니저들은 컨택을 하지 못했냐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신선호의 우려와 달리 김완섭은 그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았다.

“신 부장, 긴장 말라고. 질책하려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나라고 해도 1화만 올라온 글 보고 계약 제안을 하는 모험은 하기 힘들었을 거야.”

“그, 그렇습니다. 비록 강추강 작가님이 소설피아에 1화를 올리긴 하셨었지만, 사실 1화만 보고 바로 계약을 하는 건—”

“어렵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상황을 계속 두고만 볼 거야? 대표인 내가 못 한다고 해서 작가 컨택하고 계약하는 게 일인 매니저들도 못 한다는 게 말이 되나?”

“…….”

이번엔 비난의 화살 정도가 아닌 저격총이었다.

자신을 향한 대표의 직접적인 저격에 이미 짜일대로 짜인 신선호는 유압 프레스기로 온몸이 찍어 눌리는 기분이 들었다.

“남도 못 하는 거면 할 말이 없지. 그런데 우리가 못 한 걸 다른 출판사에선 했잖아? 이거 어떻게 해결할 거야? 1화만 보고 컨택해서 작품 뺏기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그건…… 시스템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남은 숨통이 끊기기 전.

신선호는 다시 한번 일격필살의 묘리, 물귀신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거듭된 대표의 질책을 살아남을 방법은 동귀어진밖에 없었으니까.

“시스템적인 개선?”

“예, 대표님. 저도 그렇고 출판팀 매니저들도 그렇고 1화만 보고 섣불리 계약을 하기에는 위험한 요소가 많습니다. 나 혼자만 상하차 같이 흥행을 하는 작품은 년에 한 번 나오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멈춰 이 새끼야! 그만두라고!’

말꼬리를 늘리며 자신을 향해 시선을 옮기는 신선호를 보며 성운선이 들리지 않을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목숨이 위태로웠던 신선호는 눈을 질끈 감고는 자신을 향한 저격수의 총구를 슬쩍 옮겼다. 들리지 않을 사죄의 말을 속으로 전하면서.

“개발팀에서 최소 1화에서 5화까지는 계약 제안을 하지 못하도록 시스템적인 부분을 개선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흐음…… 그거 괜찮네. 최소 5화는 읽어봐야 작품의 세계관이나 등장인물의 매력 그리고 작가의 필력도 알 수 있을 테니까.”

서늘한 웃음을 짓는 대표의 말에 신선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성운선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승자와 패자가 극명히 갈리는 그 순간, 김완섭이 성운선을 향해 말했다.

“성부장, 지금 신 부장이 말한 내용으로 사이트 수정할 수 있게 기획안 올려.”

“……네, 대표님.”

“하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 그리고 소설피아의 가장 큰 적은 웹월드가 아니야.”

하지만 한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음에도 소설피아의 대표, 김완섭의 칼춤은 끝나지 않았다.

계속되는 대표의 말에 모두 목젖을 꿈틀거리며 그의 입에서 이어질 말을 기다리는 그때,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 김완섭의 입에서 나왔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건…… 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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