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 그러니 2배로 가시죠.
* * *
어느덧 5월.
계절의 여왕이 봄내음을 물씬 풍기며 다가왔다.
따듯해진 날씨에 겨울잠에서 깬 다람쥐가 더욱 빠릿하게 움직이듯, BS북의 매니저들이 키보드를 치는 소리 또한 더욱 우렁차게 사무실 안에서 메아리쳤다.
“……작가님 왜 처음 들으시는 것처럼 그러세요. 5월 첫 주에 목금 다 휴일이어서 수요일까지 원고 전부 주신다고 그러셨잖아요.”
“……네, 작가님. 저희 은행 아닙니다. 전작 선인세도 아직 다 차감 못했는데 추가 선인세라뇨? 그보다 비축분은 언제 주십니까?”
“예? 아니…… 그건 방정환 선생님한테 따지셔야죠? 제가 어린이날 만들었습니까? 임시공휴일도 나라에서 쉬라고 해서 쉬는 거예요. 5월 첫째 주에 휴일 이틀이나 있다고 4월 초부터 분명히 말씀드렸…… 예? 아니 작가님 나이가 몇인데 무슨 어린이날에 놀러를 가요!”
조상님의 은덕으로 출판 본부장이 된 전직 판무 2팀 팀장 김동현은 여태껏 특출난 실적을 만들어 내진 못했다. 하지만 작가들이 연재 펑크를 내지 못하도록 다음 달 휴일을 작가들에게 고지하도록 출판 본부 팀장들에게 전달했다.
주에 한 번 작가에게 전달해야 하는 업무였으나 비축분이 없는 작가들에게만 연락하면 되는 일이었기에 업무량이 딱히 는다거나 하는 불편함이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김동현 본부장이 확실히 BS북을 오래 다녀서 직원들 그리고 작가들 성향을 잘 알긴 안다니까?’
LGA컴퍼니에선 담당 매니저들도 그렇고 계약한 작가님들 또한 프로 의식을 갖은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LGA컴퍼니에선 이런 매뉴얼이 존재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김동현이 만든 이 매뉴얼은 아직 완성형이 되지 못한 BS북의 매니저들 그리고 작가들에게 특효였다. BS북은 안팎으로 여전히 당근보단 채찍이 걸맞은 회사였으니까.
“하아……. 진짜 작가님들이 전반적으로 연재 속도가 많이 떨어졌어요. 기성이고 신인이고 상관 없이요.”
전화를 끊은 황건일 매니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 매주 원고 달라고 독촉을 했는데 이제와서 그러면…… 후우우.”
곧이어 전화를 끊은 조팟 또한 인상을 와락 찌푸리다 슬쩍 내 눈치를 보며 한숨을 갈무리했다.
장한 놈.
드디어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는구나.
거기서 한 마디만 더 했으면 사랑의 채찍이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작가의 가족 안부를 물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을 조팟놈의 개량된 모습을 보니 절로 뿌듯한 마음이 차오른다. 앞으로도 열심히 줘 패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건일 매니…… 매니저님 담당 작가님들도 그래요? 내 작가님도 그러던데.”
호흡을 차분히 고른 조팟놈이 다시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황건일에게 물었다.
“예, 3월 중순부터 느려지시더니 4월 들어선 더 심해지셨습니다.”
“음, 역시 그것 때문인가?”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황건일의 물음에 조팟놈은 간만에 신이 난 듯 뱁새 같은 눈을 희번덕이며 입꼬리를 올렸다.
“사실 2팀 매니저들 아니, 매니저님들한테 들었는데, 소설피아 공모전 때문에 그렇다는 카더라가 있더라고요?”
“소설피아 공모전이요? 그게 저희 작가님들하고 무슨……?”
“어휴, 쯧. 딱 보면 모르겠어요? 이번에 소설피아 2회 공모전 시작했잖아…… 요.”
조팟놈은 여전히 어색한 반존대 같은 존댓말을 쓰며 말을 이어갔다.
“장려상은 상금 백만 원에 10권까지 권당 선인세 백만 원! 5명!”
“오오!”
“우수상은 상금 천만 원에 선인세 사백만 원 3명!”
“오오오?!”
“대상 삼천만 원에 선인세 팔백만 원!”
“우와아아!!”
리액션 괴물 황건일의 반응이 흡족했던지, 조팟놈은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말려있던 어깨를 갸냘프게 으쓱거렸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지금 작가님들 본 필명 말고도 다른 필명 새로 파서 소설피아 공모전 참가하시는 분들 있으실 거에요. 상금 탈려고.”
“아아, 한 작품 쓰시던 분이 두 작품 연재하시니까 아무래도…….”
“내 말이요! 그러니까 작가 단속 잘해야 한다니까요? 한눈 안 팔게?”
“와…… 상금은 적은데 선인세가 상당하네요.”
소설피아가 나름 머리를 쓴 티가 팍팍 난다.
일반적으로 판타지 소설은 25화가 1권 기준이 된다.
그리고 200화를 완결 기준으로 삼는데 지난 1회 공모전에선 상금만 낼름 타고 연재를 중단한 작품이 있어서 그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고육지책일 터.
‘10권까지 권당 선인세를 준다고 하면 작가들이 250화까지는 무조건 쓰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생각이겠지.’
하지만 소설피아는 잘못 생각한 거다.
대상 상금과 권당 선인세를 다 합치면 일억천만 원, 즉, 작년에 있었던 소설피아 1회 공모전의 대상 금액이었던 일억보다는 천만 원을 더 받는 거지만 바로 지급되는 금액은 칠천만 원이 줄어든 액수.
거기다 권당 선인세라는 보기 좋은 말로 포장을 했지만 선인세란 결국 자신이 벌어들일 돈을 미리 받는 무이자 대출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 다들 사담은 그쯤하고 업무 진행하시죠. 저는 엘가 미팅 있어서 다녀올게요.”
“넵, 팀장님! 다녀오십시오!”
“네.”
그리고 나도 이에 대해 슬슬 대응할 때가 됐다.
BS북 사무실 밖으로 나와 따스한 봄의 온기를 느끼며 나는 LGA컴퍼니 3층으로 이동했다.
3층 사무실 안쪽 회의실을 보니 본부장들이 이미 모두 모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다들 모여 계셨네요.”
“오셨어요, 대표님?”
“왔습니까.”
“회의 준비는 다 끝났어요.”
“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회의실 안에 모인 단풍 삼촌과 권미현 그리고 지연이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나는 바로 자리에 앉았다.
“에르미스 베타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죠. 이제 정식 런칭이 3주 앞으로 다가와 많이 바쁘겠지만 이제 슬슬 공모전 준비도 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으흐흐, 플랫폼이 생기니 이제 남의 눈치 안 보고 제대로 한번 해볼 수 있겠네.”
너털웃음을 내뱉은 단풍 삼촌의 말처럼 이번 공모전은 우리가 자체 제작한 플랫폼, 에르미스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재작년인 2014년 12월부터 작년 1월 말일까지 우리 LGA컴퍼니의 판무 레이블 드래곤과 작가 커뮤니티 정글북이 제 1회 공모전을 진행했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BS북에서 올댓스토리에 작품을 주는 걸 막기 위해서 한 일회성 공모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임직원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전과 달리 이번 공모전은 일회성이 아닙니다. 이름 또한 드래곤과 정글북이 함께 하는 제 2회 공모전이 아닌 에르미스 제1회 웹소설 공모전이 될 거고요. 장르 또한 판무 작품을 대상으로 했던 지난 공모전과 달리 판무, 로맨스 모든 장르를 포함한 공모전이 될 겁니다.”
“시기는 언제쯤으로 생각하시나요 대표님? 에르미스 정식 오픈일은 아니겠죠?”
“그때 하면 가장 효과적이긴 하겠죠. 에르미스 정식 오픈한다고 지난달부터 SNS뿐만이 아니라 홍보 기사도 꾸준히 내보내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에르미스의 정식 오픈일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주 뒤인 5월 23일 월요일. 혹시라도 내가 그때 공모전을 시작하자는 말을 할려한다고 생각했는지 권미현의 눈빛에서 불안감이 읽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용자, 특히 에르미스 베타를 이용 중인 작가 풀이 너무 적어요. 우선 5얼 23일에 에르미스 정식 서비스 오픈과 동시에 독자들 그리고 작가들의 관심도를 최대한 끌어드린 후 공모전을 시작하려고 해요. 공모전 시작일은 6월 10일이었으면 해요.”
“음…… 소설피아 공모전 결과 발표가 6월 3일이라고 되어있던데요? 차라리 그때 맞추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어진 권미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 1회 공모전 때도 그렇고 소설피아 공모전 결과 발표가 공지일보다 더 늦을 수도 있으니 차라리 일주일 정도 텀을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권미현에겐 그럴 수 있는 가능성 정도로 말했다. 하지만 사실 이건 추측이 아닌 확신이다. 미래에서도 공지 일주일 후에 공모전 당선작이 발표 되었으니까.
“그으흐흐, 좋군요. 날짜가 잡혔으니 그럼 이제 돈 이야기를 해볼까요? 상금 얼마로 하시겠습니까?”
“제가 정하기보다 무진 본부장님의 의견을 먼저 듣고 싶은데요? 에르미스의 첫 공모전으로 상금을 어느 정도로 배정하는 게 적절할지요.”
돈 관리는 LGA컴퍼니와 킵비트의 자금줄을 주무르는 단풍 삼촌의 전문 분야. 내 물음에 단풍삼촌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얹혔다.
“현재 베타 버전인 에르미스가 정식으로 서비스를 오픈하고 내달 제1회 공모전을 시작한다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소설피아 뿐만이 아니라 웹월드, 테일랜드 등 각종 플랫폼의 주의를 받게 될 겁니다.”
단풍 삼촌의 살벌한 얼굴이 당장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처럼 더욱 거친 미소와 함께 일그러졌다.
“그러니 2배로 가시죠.”
“2배라면 상금이랑 선인세 합쳐서요?”
“그으흐흐, 그런 치졸한 짓은 하지 말고 상금으로만 깔끔하게 2배 주죠. 소설피아 상금 1억 천에서 그대로 2배 올리면 너무 티 나니까 신사답고 품격있게, 대상 1명 2억, 우수상 세 명 1억, 장려상 5명 5천, 그리고 소설피아 공모전에는 없는 신인 작가상 25 명 각 천씩 어떻습니까?”
2배라.
이 정도 금액이면 총 상금만 해도 10억 원이다.
그리고 이제 10억 원 정도는 나도 충분히 태울 수 있는 돈이지.
“좋네요. 더 고민할 것도 없이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죠.”
“그아하하하! 좋아! 좋습니다!”
“크흐흐.”
10억 원이란 금액을 보고 눈이 뒤집어질 소설피아를 비롯한 타 플랫폼의 대표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내 입에서도 단풍 삼촌처럼 악당 같은 웃음이 절로 세어나온다.
“대표님 그러면 특전은 어떻게 할까요? 소설피아는 웹소설이랑 종이책 출간 지원 그리고 드라마화 및 영화와 작업 지원에 해외 진출 번역 사업까지 지원하다고 하던데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낄낄대는 나와 단풍 삼촌을 보며 지연이가 조금은 걱정이 어린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아, 우리는 웹툰화 그리고 해외 진출 번역만 일단 넣어도 충분할 거예요.”
“정말 그 정도면 되려나요? 상금은 저희 쪽이 압도적이지만 아무래도 특전 부분은…….”
“네, 괜찮을 거예요. 작가님들은 일단 부상보다 상금이 더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내 말에 지연이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소설피아 제1회 공모전 그리고 이번 제2회 공모전까지 드라마나 영화화가 된 작품은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 내가 과거로 회귀되기 전까지도.
“그럼 본부장님들은 공지 제작이랑 홍보 준비해 주시고, 이제 제대로 시작해 보죠. 콧대 높으신 플랫폼 님들과의 싸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