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 로코의 봄.
* * *
“우리 회사 작품이 아니라니…… 다른 회사 작품을 드라마화하자는 말이세요?”
“네, 제작만 되면 무조건 흥행할 작품이 있어요. 장르는 로맨스고—”
“로맨스요? 로판은 드라마 제작이 힘들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현로 작품 말하시는 거세요?”
LGA컴퍼니나 BS북이 아닌 타 출판사의 작품.
그것도 로맨스 작품을 드라마화 하자는 내 말에 권미현이 토끼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네, 현로 맞아요. 저희 작품은 아니지만 작품성 자체가 상당한 작품이어서요.”
로맨스 장르는 크게 현대 배경의 로맨스 내용을 담은 ‘현로’장르와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판타지, 즉, ‘로판’ 장르로 구분된다.
남성향 장르라고 분류되는 판타지 소설만 해도 현판, 무협, 대체역사 등 다양한 세부 장르로 구분되는 것처럼 여성향 장르인 로맨스 또한 현로와 로판 뿐만이 아니라 로판 내부에서도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서로판, 동양풍 배경의 동로판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동성 간의 사랑을 담은 GL(Girl’s Love), BL(Boy’s Love) 같은 세부 장르가 있기는 하지.’
하지만 드라마화란 대중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소재와 장르여야 한다. 현대 배경이 아니고서는 드라마화로 제작하는 데 제작 비용, 기간, 배우 섭외 등이 상당히 무리가 갈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나는 떠올린 거다.
미래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고 시청률 또한 보장된 작품이.
“음…… 굳이 다른 회사 작품을 드라마화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어떤 작품 말하시는 겁니까, 대표님?”
다만 드라마화로 제안하길 원하는 작품이 BS북의 작품도 그리고 LGA컴퍼니의 작품도 아니라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렇기에 단풍 삼촌도 자상으로 뒤덮인 살벌한 얼굴을 구기며 고민에 찬 표정을 짓는 것일 테고.
“‘오기사가 왜 그럴까’라는 작품인데 다들 들어보셨을까요?”
“어? 웹소설이 아니라 대여점에서 히트한 작품 아니었나요? 그걸 드라마화로 하시겠다는 말이세요?”
단풍 삼촌과 달리 출판 본부장 권미현은 단번에 내가 말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알아챈 표정이다.
‘민초손만두’작가의 ‘오기사가 왜 그럴까’는 내가 회귀하기 1년 전인 2013년경 종이책으로 출간이 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로맨스 코미디 작품이었다.
원래대로라면 2014년경에 웹월드에서 애장판으로 재출간 되었을 터. 하지만 어찌 된 이유인지 원래의 시간 흐름과는 달리 웹월드에서 재출간 되었다는 소식이 없었다.
‘처음에는 단지 내가 놓친 줄로만 알았지. 어쩌면 내가 과거로 회귀한 시점부터 원래의 미래와 많은 부분이 변화하기 시작했는지도 몰라.’
원래라면 웹월드에서 애장판으로 재출간 되었어야 할 ‘오기사가 왜 그럴까’가 아직도 웹소설로 런칭되지 않은 게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건 내게 그리고 우리 LGA컴퍼니에게 분명한 호재라는 뜻.
“네, 비록 오기사가 왜 그럴까가 대여점에 맞게 제작된 작품이긴 하지만 웹소설의 문법에 맞게 호흡만 수정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돼서요. 특히 오기사가 왜 그럴까같이 로맨스 코미디는 장르는 늘 수요가 있기도 하고요.”
물론 유행에 민감한 현로 장르 웹소설에선 내가 회귀하기 전 시점엔 이미 로코물은 죽은 상태였다. 로코의 붐은 너무나도 길게 지속되었기에 현로 독자들은 점점 더 새롭고 자극적인 맛을 원했으니까.
내가 회귀하기 전에는 계약을 하고 결혼을 한다는 ‘계약결혼물’, 임신을 하고 튀어버린다는 ‘임신튀’, 결혼부터 하고 연애는 나중에 시작됨을 알리는 ‘선결혼 후연애’등처럼 점점 더 자극적인 피폐물이 유행이었다.
하지만 2016년인 지금.
아직까지는 로코의 봄이 저물지 않은 시기다.
“음…… 민초손만두 작가님의 오기사가 왜 그럴까가 확실히 로코물에 맞는 작품이긴 하죠. 앞만 보는 직진남 남주에 신데렐라 소재 클리셰를 지니고 있지만,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장치도 좋고 그 떡밥을 회수하는 연출도 상당히 좋으니까요.”
권미현의 말처럼 오기사가 왜 그럴까는 작품 자체만 두고 봐도 상당히 흡입력이 있는 작품이다.
10년 동안 그룹 부회장을 보필해 왔던 운전기사인 오기사, 실질적으로 부회장의 비서 업무를 진행해 왔던 그녀가 하루 아침에 퇴사하겠다고 사표를 던지면서 시작되는 흥미로운 이야기이니까.
“민초손만두 작가님께 웹소설 재출간 컨택 부탁드리고 조건은 최대한 맞춰드려주세요. 그리고 우선 웹툰화는 확정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요.”
“드라마가 아니고 웹툰이요?”
이번 회의는 스튜디오 해츨링 측에서 드라마화 제작 요청을 받아 진행하게 된 상황. 그래서인지 권미현은 드라마화가 아닌 웹툰화 제안을 먼저 꺼내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스튜디오 해츨링 측에서 우리 작품 드라마화 제안을 했다곤 하지만,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우리가 자체적으로 확정 지어줄 수 있는 웹소설 출간 그리고 웹툰 제작을 먼저 미끼로 건네줬으면 해요.”
“아, 네. 확실히 그렇긴 하겠네요. 오기사가 왜 그럴까가 저희 작품도 아닌 상황에 스튜디오 해츨링 측에 드라마 제작을 확답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오기사가 왜 그럴까가 저희 쪽으로 넘어오면 드라마화 관련해서는 스튜디오 해츨링 그리고 넷플렉스하고도 따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요.”
“넷플렉스요? 넷플렉스랑 이야기 따로 이야기할 게…… 설마 넷플렉스에서 드라마화를 진행하겠다는 말씀이세요?”
권미현도 이제 감을 잡은 모양이다.
내가 무슨 의도로 말을 꺼냈는지. 자상이 가득한 살벌한 얼굴을 쓰다듬는 단풍 삼촌 또한 내 말을 파악한 모양이고.
“음…… 안 그래도 넷플렉스에서도 연락을 받았죠.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콘텐츠 제작도 진행해보고 싶다면서 괜찮은 작품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요.”
“넷플렉스에서 연락이 왔었나요?”
“예, 아직 확정된 부분은 아니어서 대표님께만 해당 내용 공유드렸었죠.”
내가 코즈일 필명으로 썼던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판권이 넷플렉스에 팔리고 올해 1월 크랭크인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다음 달 중에 모든 촬영이 완결될 거라는 연락을 불 지르는 파이어맨을 촬영중인 하진성 감독에게 연락을 받은 상황.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경우 3D적 후처리 과정이 많이 들어가는 액션 영화이기에 다음 달에 촬영이 끝나더라도 3D작업 및 제작이 끝나려면 최소 6개월은 더 걸린다고 했다.
즉, 개봉을 한다면 아무리 빨라도 내년인 2017년 상반기 중은 되어야 가능할 터.
‘하지만 이 말은 공 감독의 순자가 한국 최초 넷플렉스 오리지널 영화로 만들어지는 원래 역사와 달리 불 지르는 파이어맨이 한국 영화 중에서 넷플렉스 오리지널 ‘최초’의 타이틀을 얻게 된다는 뜻이지.’
그리고 이 사실을 넷플렉스에서도 인지해서인지 이달 초, 단풍 삼촌에게 연락해 불 지르는 파이어맨을 무척 기대하고 있다며, 넷플렉스 오리지널 드라마화로 제작할만한 콘텐츠가 있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연락이 왔었다.
“그때 대표님께도 말씀드렸지만 드라마화를 넷플렉스에서 독점으로 방영한다는 게…… 사실 시장 반응을 보고 진행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어 주저하고 있었죠.”
그리고 넷플렉스에서 드라마화 제안 연락이 왔다는 걸 내게 알린 그때에도 단풍 삼촌은 지금과 같이 말했었다.
그때만 해도 에르미스 베타의 런칭부터 워낙 할 일들이 많아 넷플렉스 오리지널 드라마 콘텐츠에 관해선 나도 따로 언급하지 않았었지. 그리고 오기사가 왜 그럴까를 떠올리지도 못했었고.
“올해 1월 드디어 넷플렉스가 한국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넷플렉스 인기 콘텐츠 순위, 지금 끄는 콘텐츠 순위,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사리즈 순위를 보더라도 한국 콘텐츠는 전무합니다.”
“무진 본부장님이 충분히 우려할만하다고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하지만 지금 넷플렉스의 인기 작품 중에 한국 콘텐츠가 없는 건 현재 넷플렉스에서 방영 중인 한국 콘텐츠가 2009년도 그리고 2013년 인기작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오기사가 왜 그럴까가 아직 웹소설로도 재출간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드라마화 판권도 팔리지 않았을 터.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다.
“빠르면 내년 초를 기점으로 불 지르는 파이어맨 그리고 이번 달에 제작이 시작됐다고 기사화가 된 공 감독님의 순자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로 넷플렉스에 등장할 겁니다. 그때가 된다면 지금처럼 넷플렉스가 저희에게 좋은 작품이 있냐고 역제안을 주는 일도 없어질 거예요.”
“음…… 영화도 아니고 넷플렉스 드라마화라……. 제가 대표님의 안목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단풍 삼촌은 어떤 부분에 있어선 강경진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정확한 정보 그리고 각종 수치를 토대로 모든 일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편이니까.
그렇기에 단풍 삼촌은 한국에서 그 누구도 밟아보지 않은 미지의 땅, 넷플렉스 오리지널 드라마 콘텐츠를 향한 두려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 테다. 비교 조사를 하고 싶어도 아무런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기에.
“스튜디오 해츨링에서 제작을 진행해준다면 방송사를 정하는 것도 어렵진 않겠죠. 지금 이미 인턴사원 회장님이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까요.”
“예,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이미 보장된 안전한 길이 있는데 굳이 넷플렉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갈 필요가 있나 싶어서요.”
단풍 삼촌이 저런 고민을 하는 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미 보장된 탄탄대로를 앞에 두고 징검다리를 건너가겠다고 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
하지만 오기사가 왜 그럴까의 경우 최고 시청률이 8.7%였다. 총 16부작으로 완결된 오기사가 왜 그럴까의 평균 시청률이 7% 대인 게 나쁜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스튜디오 해츨링 그리고 단풍 삼촌의 기대치는 이미 인턴사원 회장님이 이뤄낸 시청률에 눈높이가 맞춰져있을 테다.
“오기사가 왜 그럴까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한국 시청자들의 눈높이에선 흔하지만 흥미로운 드라마 정도로 알 수 있겠죠. 하지만 넷플렉스 오리지널로 들어가 푸시를 받는다면 해외 시장에서 얻는 수익이 훨씬 더 클 겁니다.”
한국인들의 눈높이에는 식상하게 보여질 수도 있는 사랑 이야기. 하지만 사랑을 담은 한국적인 서사는 외국인들의 눈에는 상당히 신선하고 새롭게 보일 테다.
‘실제로 오기사가 왜 그럴까가 뒤늦게 넷플렉스에 올라왔을 때 동남아 쪽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었지.’
“흠…… 에르미스가 해외 시장을 노리는 것처럼 드라마 또한 시작부터 해외로 노선을 틀자라…….”
“그렇죠.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K 콘텐츠의 힘은 점점 세계를 휩쓸겁니다. 웹툰이나 웹소설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여러 방면에서요.”
K푸드, K팝, K뷰티 등 다양한 K컬쳐가 점점 해외를 휩쓸기 시작할 테다. 이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니라 당연하게 나아갈 시대의 흐름이니까.
내가 원하는 건 세찬 K컬쳐의 파도 위에 작은 숟가락 하나를 얹는 것이다.
“음, 알겠습니다. 미현 본부장님이 민초손만두 작가님 계약 해주시면 스튜디오 해츨링 그리고 넷플렉스 측에 바로 해당 제안 넣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그럼 바로 민초손만두 작가님께 연락 드릴게요.”
“부탁드릴게요. 아! 그리고 미현 본부장님.”
“예, 대표님?”
회의가 마무리되어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 순간 나는 권미현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로맨스팀 매니저님들께 공지 부탁드릴게요. 앞으로 작품 모니터링 하실 때 제목 중에 ‘맞선’이라는 단어가 있는 작품이 보이면 바로 저한테 보고해달라고요.”
오기사가 왜 그럴까에 이어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로코의 봄으로 물들일 대작 ‘교회 맞선’.
그 작품 또한 내가 가져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