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60화 (160/201)

160화 ― 여기에는 없어요.

* * *

오늘은 4월 25일 월요일.

인턴사원 회장님의 방영이 시작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매달 25일은 월급날이었기에 점심시간인 지금 매니저들은 평소보다 한층 더 발랄한 목소리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와, 진짜 대박이지 않아요? 몰입감 장난 아니던데?”

하지만 오늘 BS북의 매니저들, 특히 판무팀 매니저들의 목소리 톤은 월급날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 톤 더 높은 흥분에 찬 격앙된 목소리였다. 다름 아닌 대화의 주제가 인턴사원 회장님의 드라마화였으니까.

“그러니까요. 인턴사원 회장님 원작이랑 웹툰 나온 데까지 다 봤는데 드라마로 보니까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저도 원작이랑 웹툰 다 뿌셨죠. 아는 내용이 나오니까 뭔가 아는 사람 이야기 보는 것 같고, 기분이 묘하기까지 하던데요?”

그동안 로맨스 웹소설이 드라마화가 된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장르를 불문하고 이 정도로 인기를 얻은 웹소설 원작의 드라마는 없었다.

그렇기에 판무 매니저들은 마치 월드컵 경기를 앞둔 축구 팬들처럼 인턴사원 회장님의 성공적인 드라마화가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된 것인양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거기다 윤선미도 진짜 오랜만에 보지 않아요?”

“윤선미는 늙지도 않는 것 같아요. 까메오로 잠깐 나온 것 같은데 와…… 진짜 보고 반하는 줄?”

나와 계약해 꾸준히 배우물을 장기 연재 중인 윤선미. 아직까지는 ‘스타작가’라는 필명보다 배우 윤선미로서의 입지가 더 높아 보인다.

‘선미 작가님한테 정말 여러모로 감사한 일이 많네. 특별 출연도 해주시고.’

1화와 2화에 짧게 등장한 윤선미는 사실 인턴사원 회장님 원작에서는 별다른 비중이 없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웹소설이 웹툰이나 드라마화가 되는 것은 판권을 판매하는 개념이기에, 이를 구매한 제작사의 입맛에 맞춰 각색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실은 스튜디오 해츨링의 고영호 대표 그리고 드라마 작가인 임준기가 윤선미를 워낙 좋아하기에 주연 배우로 출연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윤선미는 이제 배우 생활보다는 웹소설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기로 다짐했기에, 그 제안을 고사했었지.

하지만 윤선미는 인턴사원 회장님의 흥행을 위해 무보수 까메오로 깜짝 출연을 한 거였다.

‘우리 스타작가 선미 누나한테 선물이라도 하나 해 드려야겠네.’

물론 무보수 까메오로 출연을 했으나, 내 모든 사정을 알면서도 나를 믿어준 그녀의 도움을 가만히 받고만 있을 생각은 없다.

‘받은 은혜는 배로 갚고 통수에는 배 이상으로 갚는 것. 그게 내 좌우명이니까.’

본래라면 이쯤 돼서 괜한 트집을 부리며 입술을 삐죽 내밀기 시작해야 할 조팟놈도 오늘따라 잠잠하다. 그동안 계속된 참교육이 이제 슬슬 빛을 발하는 모습이다.

왁자지껄하던 매니저들은 오후 시곗바늘이 오후 1시를 가리키자 인턴사원 회장님에 관해 더는 수다를 떨 수 없다는 게 못내 아쉬웠던지, 푹 쪄진 나물처럼 처진 어깨로 각자의 자리에 돌아갔다. 그리고 이제 나도 슬슬 두 집 살림을 해야 갈 시간이기도 하고.

“조팟님, 저는 엘가 쪽에서 미팅 있어서 다녀올 테니까 업무 잘하고 있어 주세요.”

“네, 팀장님. 다녀오세요.”

황건일 매니저는 작가 미팅을 위해 외부로 이동한 상황. 그렇기에 조팟놈에게 집을 잘 지키고 있으라는 무언의 압박을 담은 눈빛을 보냈다.

지속된 참교육.

조팟놈은 최근 들어 미약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조팟놈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늘 실수를 만들어 내는 놈이기에 방심해서는 안 된다.

전보다 고분고분해진 모습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마음의 위안을 하며 나는 엘가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티잉—

그러고는 LGA컴퍼니의 임원진들만 사용할 수 있는 3층으로 올라와 지문을 찍고 들어왔다.

3층 안쪽 끝에 있는 회의실 불이 켜져 있고 거대한 그림자와 작은 그림자 하나가 보이는 것을 보니 이미 본부장들이 모두 모인 모양이다.

“그아하하하! 이게 진짜 대박이—”

“저 왔어요.”

“오! 우리 인턴사원 회장님이라는 대작을 만드신 대문호님!”

“오셨어요 대표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무진 본부장님은 기분이 엄청 업되어 계신데?”

오늘 회의는 단풍 삼촌과 권미현 그리고 나까지 단 셋만 진행하기로 했다. 오늘 진행할 회의는 인턴사원 회장님의 드라마화와 관련된 보고 회의.

디자인 본부장인 지연이는 딱히 참여할 필요가 없기도 했고 이제 에르미스 베타의 정식 오픈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라 무척 바쁘기도 했기에 우리 셋만 회의를 진행하기로 한 상황이다.

“이 쌍 간…… 아니, 대표님! 지금 무슨 소릴? 지금 인턴사원 회장님이 대박이 났는데 기분이 업이 안 돼? 지금 시청률만 보면 머릿속에서 속잔치를 하는 기부……읍읍!”

세로토닌이 과도하게 뿜어져서일까?

권미현을 앞에 두고 행복 호르몬으로 뇌가 잔뜩 절여진 단풍 삼촌의 과격한 언행이 지속되자 나는 다급히 단풍 삼촌의 입을 막았다.

“하하, 장난이에요. 시청률 몇 나왔다고 했죠?”

내 물음에 단풍 삼촌이 다시 커다란 눈을 데루룩 굴리며 자상이 가득한 살벌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거 장난하나 정말? 본인 드라마 시청률을 확인도 안 해? 기사만 봐도 아는 걸 쯧, 자 봐라! 토요일에 방송한 첫 화가 22.3%! 일요일 회차가 25.8%다!”

“오…… 그게 괜찮은 건가?”

“괘, 괜찮? 이 종간나 샠……. 아오.”

단풍 삼촌은 뒷골이 당긴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고는 뒷목을 주물렀고 권미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단풍 삼촌의 목을 대신 주무르기 시작했다.

“요즘 무리하셨나 봐요. 담이라도 걸린 거 아니에요?”

“예에?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권미현의 손길의 칼자국이 가득한 단풍 삼촌의 두꺼운 목에 슬쩍 닿자, 단풍 삼촌은 소스라치게 놀리며 귓가를 붉혔다.

갑작스러운 권미현의 틈새 공략에 단풍 삼촌은 덩치와 걸맞지 않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목을 가다듬었다.

“잘 들어라, 올해 가장 흥행한 바람의 후예가 첫 방송때 전국 기준으로 1회 14.3%, 2회가 15.5%였다!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니?”

“오…… 그 정도면 상당히 좋은 거 아닌가?”

“이런 썩을—”

“아하하, 장난이야. 나도 다 알고 있어요. 자, 다들 바쁘신 분들인데 바로 회의 시작하시죠.”

단풍 삼촌은 타격감이 좋다.

리액션이 좋아 놀리는 맛이 있다는 뜻.

내가 쓴 드라마가 처음으로 드라마화가 되었는데 내가 시청률을 확인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

‘그래도 놀랍긴 한데? 시청률이 높게 나왔다는 것만 확인했지, 설마 ’바람의 후예‘보다 높았을 줄이야.’

초콜릿 복근을 자랑하는 미남 군인과 의사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 휴먼 멜로 드라마 ‘바람의 후예’.

올해 초인 지난 2월에 시작해 지지난주에 종방한 드라마로 내 기억이 맞다면 원래 2016년인 올해 흥행한 드라마 중 최고의 성적을 낸 드라마야 할 테다.

심지어 바람의 후예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비록 1회와 2회의 시청률이지만, 인턴사원 회장님이 바람의 후예보다 더 높은 성적을 냈다는 게 소름 끼치는 전율을 안겨다 줬다.

“그아하하! 그렇지? 짜아식, 아니, 대표님이 아무리 글 쓰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지. 거기다 윤선미 배우님 정말 미모가—”

“크흠, 드라마 소감은 나중에 사석에서 따로 하고 일 얘기부터 하시죠.”

권미현의 눈빛에서 레이저 송구 같은 눈빛이 발사되었기에 슈퍼 세이브를 하듯 단풍 삼촌의 헛소리를 막았다.

단풍 삼촌이 눈치를 집에다 두고 다니는 사람이란 걸 권미현도 익히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 배우를 찬양하는 말을 듣고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흠, 뭐 그럽시다. 우선 이번에 인턴사원 회장님이 성공적으로 방영을 시작하고 오늘 아침 스튜디오 해츨링의 고영호 대표님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 안건과 관련해서 급히 회의를 요청하게 된 거고요.”

“고영호 대표님께서 인턴사원 회장님같이 좋은 작품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적극적으로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하셨어요.”

역시 단풍 삼촌이 윤선미에 관해 언급한 게 문제였는지, 권미현이 단풍 삼촌의 목을 주물러주려 했던 조금 전의 모습보다 한결 싸늘해진 말투로 쏘아붙이듯 말을 이었다.

여전히 헤실거리는 단풍 삼촌을 보니 우리 삼촌은 아직도 영 감을 잡지 못한 모습이다. 빨리 회의를 마치고 권미현의 몸에서 한겨울의 서늘함처럼 뿜어져 나오는 냉기를 없애야만 되겠다.

“무척 좋은데요? 웹소설 플랫폼에서 마치 프로모션 들어갈 슬롯 있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네요.”

빠르게 업무 분위기로 전향시키려고 애쓴 내 말에 권미현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빔프로젝터에 화면을 마우스로 넘겼다.

“고영호 대표님께서 연락 주시기도 전에 이미 작가님들한테 문의 메일이 많이 왔어요. 웹소설 원작인 드라마 중에서 인턴사원 회장님처럼 높은 흥행을 보인 작품이 없었다 보니 장르 불문하고 자기 작품도 드라마화가 될 수 있는지 여쭤보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오늘만 해도 전화를 여럿 받았고요.”

한쪽 벽면에 쏘아진 빔프로젝터 화면을 보니 여러 작가들의 대표작, 성적 등이 정리된 리스트가 정리된 게 보였다.

“지금 보시는 자료는 드라마화 관련해 문의 주신 작가님들 그리고 저희 매니저님들과 따로 드라마화를 진행하면 좋겠다고 이전에 따로 정리한 작품 리스트예요. 매출, 댓글 반응, 연독률 등의 성적 그리고 현재 웹툰 등의 OSMU를 진행 여부를 정리했습니다.”

질서 정연하게 그리고 초등학생이 보더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정리된 리스트를 보니 하루 이틀 정리한 표가 아닌 모양이다.

권미현은 비교적 나이도 어리고 경력 또한 그리 길지는 않다. 하지만 권미현은 단풍 삼촌이나 지연이처럼 내가 원래 알던 사람이 아닌 처음으로 실력과 인성만 보고 LGA컴퍼니로 들여온 실질적인 내 첫 직원.

내가 지내는 오피스텔 옆의 작은 방 안에서 조촐하게 편집 및 교정 업무만 진행하던 초창기의 어수룩한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정말 제대로 성장해줬단 말이야? 고맙네, 정말.’

LGA컴퍼니에 처음 입사했을 때 권미현은 단풍 삼촌 그리고 지연이보다 자신의 업무 능력이 뒤떨어진다고 많이 자책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내 앞에서 다짐했던 것처럼 업무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결함을 메꾸기 위해 그 누구보다 노력했고, 이제는 어엿한 출판 본부장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음……. 여기 있는 작품들이 전부죠?”

하지만 권미현이 노력한다고 해서 드라마화가 될법한 작품을 한 번에 고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일테다.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드라마 제작사에서 웹소설 판권을 사자마자 곧장 제작을 진행했을 테다. 하지만 판권이 팔리는 경우보다 해당 판권으로 드라마가 제작되지 않는 경우가 더욱 많다.

그리고 내 표정을 읽었는지 권미현은 새로운 작가와 작품 리스트가 있는 화면으로 넘기며 말했다.

“별로일까요? LGA컴퍼니 원작뿐만이 아니라 BS북 원작 리스트도 지금 바로—”

“아뇨, 따로 안 보여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찾은 것 같거든요. 드라마화를 하면 무조건 대박 날 작품이.”

“예? 벌써요? 어떤 작품 말씀하시는 거죠?”

권미현뿐만이 아니라 단풍 삼촌 또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에는 없어요. 우리 회사 작품이 아니거든요.”

“예에?”

“뭐?”

권미현과 단풍 삼촌이 잔뜩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더없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왜냐면 이 작품은 흥행이 보정된 작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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