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52화 (152/201)

152화 ― 메인 디쉬는 따로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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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무 웹소설 업계에 한 획을 그을 전설의 작품.

강추강 작가의 ‘나 혼자만 상하차’가 웹월드에 정식 런칭을 하고 2주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3월 14일 월요일인 오늘.

나혼상은 이제 편집자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독자들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를 보이고 있었다.

‘일 매출 천만 원이라…… 순조로운 시작이네. 좋아, 나쁘지 않아.’

회귀 전만 해도 나혼상이 시작부터 일 매출이 천만 원씩 나오진 않았었다. 연재 초기에는 기본적인 프로모션만 받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몇몇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점점 번져가며 독자층이 점점 넓어지게 된 케이스였으니까.

단 며칠이면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이 순식간에 찍혀버리는 나혼상의 경이로운 매출을 떠올리면서도 딱히 들뜨지 않은 건 일천만 원의 매출이 고작 시작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점점 올라갈 날만 남았지. 웹툰을 런칭 한다면 그때 발생하는 매출은 더 말할 것도 없을 테고.’

머릿속을 환히 밝히는 장밋빛 미래를 떠올리며 혼자 히죽이는 그때 회의실 문이 덜컹 열리며 지연이가 들어왔다.

“죄송해요, 업무 처리할 게 조금 늦게 끝나서요.”

“그아하하, 괜찮습니다. 우리도 다 모인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럼 지연 본부장님도 오셨으니 바로 회의 진행해보도록 하죠.”

지연이의 합류를 마지막으로 LGA컴퍼니 회의실엔 본부장들이 모두 모였다. 월요일 오후 5시인 지금, 우리가 모두 모인 건 지난달 22일에 출시된 에르미스 베타 버전에 관한 회의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풍 삼촌은 회의실 한쪽 벽면에 영상을 투영한 빔프로젝터 화면을 조작하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우선 우리 대표님께서 직접 계약하신 강추강 작가님이 아주 경이로운 성적을 내고 계시죠. 박수 한번 주시고 시작하시죠!”

“아니 뭘 또…….”

“멋져요, 대표님!”

“역시 대표님 보는 눈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우렁찬 박수 소리와 함께 나를 향한 칭찬의 말들이 쏟아졌다. 역시 단풍 삼촌.

주의를 환기하고 사로잡는 일엔 도가 튼 사람이다.

“자,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회의를 시작해 보죠. 나혼상도 나혼상이지만 더 놀라운 건 사실 에르미스라고 봐야 하는 게 맞겠죠. 여기에 이견이 있으신 분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칼자국 가득한 얼굴로 살벌한 웃음을 짓는 단풍 삼촌의 말에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풍 삼촌의 말은 과장 한 줌 섞이지 않은 진실이었으니까.

“에르미스 베타 버전이 출시된 지 정확히 22일째입니다. 그리고 우려와 달리 에르미스는 서버 오류나 결제 시스템 등 현재까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금줄인 ‘킵비트’.

그리고 킵비트를 통해 나오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에르미스에 쏟아붓고 있었다.

그렇기에 에르미스는 말만 베타 버전일 뿐이지 사실 지금 당장 정식 런칭을 한다고 해도 기능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다.

“에르미스 베타는 우선 웹툰 플랫폼으로 출시됐죠. 그리고 현재 웹월드와 테일랜드가 하는 것처럼 국내 IP를 통해 해외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리는 것과 달리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만화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만화의 인기작들을 번역해서 출시한 게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작년인 2015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 만화 시장 규모는 60억 달러, 한화로 치면 7조 2천억 규모였다.

그리고 웹월드와 테일랜드는 전 세계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일본 시장을 한국의 자체 웹툰 콘텐츠를 이용해 뺏으려 했었다.

하지만 단풍 삼촌의 말처럼 우리 엘가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일본과 전면전을 치르기보다 이미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일본 망가(만화)를 더 보기 편한 플랫폼에 정식 번역된 작품을 올려 그들을 끌어들이기로.

“그으흐흐, 일본 망가는 미끼 상품이지만 아주 잘 팔려주고 있죠. 덕분에 매출도 아주, 아니, 매우 쏠쏠하고요. 지난 20일간의 매출은…….”

단풍 삼촌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지난 22일동안의 매출을 말하자 회의실 모두의 입꼬리가 힘껏 올라갔다.

‘일본 만화의 역사는 길고도 깊지. 당장 이길 수 없다면 이용하면 되는 거고.’

물론, 이렇게 행동하는 게 단지 일본 만화 시장과 전면전을 펼치는 게 두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태블릿의 보급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전세계적인 스마트폰의 대중화 등으로 세계인은 점점 컬러 만화, 즉, 웹툰에 길들여질 테니까.

단지 시기를 노리고 있을 뿐이다.

흑백 티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처럼 사람들이 무채색 만화보다 컬러 웹툰에 더욱 익숙해질 시기를.

“……매출은 이 정도로 보고드리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홍보팀에서 꾸준히 SNS에 ‘작가의 꿈을 지닌 이여, 여기로 오라!’이벤트가 슬슬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단풍 삼촌이 살벌한 미소를 히죽 지었다.

권미현이 귀엽다고 한 게 바로 저 미소라니, 실시간 생중계로 보면서도 도무지 믿기 어려울 정도다.

“국가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유럽 쪽에서는 프랑스, 영어권에서는 미국 그리고 아시아권에선 단연코 일본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댓글도 전반적으로 선플이 많고요.”

단풍 삼촌이 지금 이야기하는 건 바로 아마추어 웹툰 작가 게시판이다.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삐뚤빼뚤한 귀여운 그림체의 게시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매주 1화씩 꾸준히 웹툰을 업로드했을 때마다 적립되는 마일리지, 그리고 인기 작품은 베스트 정식 연재의 기회를 준다는 부상 등이 제공되자 압도적인 실력을 지닌 작가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정식 연재하기 힘든 작가들이 대부분이지만 프랑스의 ‘니나’ 작가님이나 일본의 ‘치사나 네코’ 작가님같이 정식 연재를 해도 괜찮을 정도로 인기를 얻고 계신 작가님들도 계시죠.”

“니나 작가님, 네코 작가님은 저도 눈여겨보고 있어요. 니나 작가님은 유럽 특유의 그림체가 있고 스토리가 상당히 재미있으시더라고요. 다만 컬러 쓰시는 게 어색한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은 계약을 진행하게 되면 피드백을 드리면서 디벨롭 해도 될 것 같아요.”

단풍 삼촌의 말에 지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리고 치사나 네코 작가님 같은 경우에는, 확실히 출판 만화 준비하셨던 분 같더라고요. 그림은 당장 연재를 시작하셔도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데, 전개 방식이나 스토리적 부분이 일차원적이어서 계약하면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케어할 생각이에요.”

업무시간에 사적인 감정이 섞여선 안 되는 법이다. 도톰한 입술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 나가는 이지연의 말에 괜스레 새어 나오려는 미소를 참으며 나는 대화에 끼었다.

“좋습니다. 웹툰 팀 매니저님들한테 바로 컨택 준비 부탁드려요.”

웹툰 PD팀은 이번에 에르미스 베타 버전 출시를 준비하며 최근 신설된 팀이다. 기존엔 IP팀에서 우리 엘가의 원작 웹소설 자체 IP를 이용한 웹툰화 업무에 주력했었지.

하지만 이제 에르미스라는 우리만의 자체 플랫폼이 생기게 되면서 아마추어 웹툰 작가들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일을 하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게 된 상황.

그렇기에 기존 IP팀에서 나온 몇 명과 추가 인력을 채용해 출판 본부의 웹소설 담당 매니저들이 하듯 해외의 작가를 컨택하고 작품 업무를 기획하는 전담팀을 만들게 되었다.

“조금 더 지켜보지 않고 지금 바로요?”

지연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웹툰 작가 계약을 빠르게 추진하게 되었는지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지연 본부장님이 보시기엔 아직 정식 웹툰 작가가 되기엔 부족해 보이는 점들이 보일 거예요. 하지만 에르미스라는 플랫폼이 이제 막, 그것도 베타 버전으로 런칭 된 만큼 처음부터 우리 기대에 미치는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음…… 그건 그렇네요. 홍보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에르미스가 아직 널리 알려진 건 아니니까요.”

지연이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미스 베타가 출시된 지 얼마 안 지난 지금은 과도기에요. 지금은 작화, 채색, 스토리 등 부족한 점이 보이는 작가님이더라도 우리 에르미스가 실제로 아마추어 웹툰 작가들의 등용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해 보입니다.”

“네, 대표님. 웹툰 PD팀에 그렇게 전달하도록 할게요.”

2016년인 올해 한국의 인구수는 5,122만이다.

반면 프랑스의 인구수는 6,672만.

일본의 인구수는 1억 2,071만이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 인구를 노리는 게 아니지. 고작 이 정도 시장만 생각했으면 에르미스를 다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에르미스 베타를 제작하면서 가장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 것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번역이다.

에르미스 지원 사업 도움을 받은 브루나이의 총 인구수는 올해 42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반면 브루나이에서 공용어로 사용하는 말레이어를 사용하는 전 세계의 인구수는 2억 9천만 명을 넘는다.

프랑스의 인구수는 한국 보다 고작 천만 명 정도 많은 수준이다. 반면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인구수는 3억 명이 넘어가지. 하지만 말레이어든, 프랑스어든 이것들은 모두 에피타이저일 뿐이다.

‘메인 디쉬는 따로 있으니까.’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영연방 국가를 제외하고서도 미국과 기타 국가에서 영어는 공용어에 맞먹을 정도로 많이 사용된다.

영어를 사용하는 원어민의 수는 대략 3억 명.

하지만 7억 명이 넘는 비원어민 영어 사용자까지 합치면 10억 명이 넘어가지.

하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따로 있다.

우리나라와 바로 지근거리에 있으면서 본토 인구수만 14억 명에 육박하는 중국이라는 나라의 언어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어는 크게 북경어라 불리는 Mandarin Chinese(표준 중국어)와 Cantonese Chinese(광동어)로 나뉘는데, 북경어를 사용하는 중국 본토인의 수 만해도 9억 명 그리고 비원어민의 수까지 합치면 11억 명이 훌쩍 넘는다.

‘그리고 우리 에르미스가 선점해야 할 시장이기도 하고.’

아직은 베타 버전인 에르미스가 확장해나갈 모습을 떠올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그때, 단풍 삼촌이 회의 서류를 정리하며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다들 바쁘신 와중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르미스에 관해서 추가로 전달드릴 사항이 있으면 메일로 우선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본부장님.”

“고행하셨어요.”

회의 진행을 주도한 단풍 삼촌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마무리하려는 그때였다.

“저, 대표님한테 따로 드릴 말이 있는데.”

“……?”

험악한 얼굴을 들이밀며 나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단풍 삼촌의 말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상관 없이 늘 험악한 얼굴의 단풍 삼촌이었으나, 지금 내게 보이는 삼촌의 얼굴은 유독 심각해 보였으니까.

지연이와 권미현 본부장이 먼저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단풍 삼촌이 험악한 얼굴을 더욱 사납게 구기며 말했다.

“정우야, 아무래도 큰일 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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