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51화 (151/201)

151화 ― 늦었어, 새끼야.

* * *

“끄으읍…….”

“잘 잤어?”

“……?”

평소처럼 개운하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는데 들리는 목소리. 그것도 내 침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귓가가 화끈거린다.

“아…… 지연 씨도 잘 잤어요?”

바로 전날 밤.

이지연과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우리 둘은 첫날을 함께 보냈다.

마치 주마등이 스치듯 전날 우리 둘 사이의 일이 뇌리를 빠르게 스쳤지만, 맨정신인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잠시 얼어붙은 그때.

휘익―

“……?”

내 맞은편에 누워있던 이지연이 내 어깨를 잡아 그녀를 향해 돌렸다. 가녀린 그녀의 손목으로 당겨봐야 무슨 힘이 느껴지겠냐마는, 자석에 끌려가는 쇠붙이처럼 그녀의 손길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나는 휘리릭 넘어갔다.

마른침을 삼기며 눈을 뜨자 이지연이 병아리처럼 입술을 삐죽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뭐예요? 사적으로는 서로 말 놓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어제는 그렇게―”

“응, 지연 누나.”

이지연이 마치 어제의 일을 복기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자 나는 다급히 그녀의 말을 막았다.

“푸후훗.”

그리고 이지연은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눈가를 훔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누나 말고 그냥 이름으로 불러줄래?”

“그래, 지연아.”

벽면에 붙은 시계가 가리킨 시간은 아직 오전 7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간. 한밤처럼 어둡진 않았지만 커튼 사이로 스며든 한 줌의 아침 햇살이 이지연의 새하얀 속살을 비춘다.

“말 잘 들으니 귀엽네.”

오직 이불로만 몸을 그리고 있던 이지연이 팔만 쭉 빼내 내 머리를 토닥였다. 이런, 귀엽던 녀석이 화가 났다.

“왜? 할 말 있……읍.”

이지연은 마치 내게 장난을 치듯 생글거리는 미소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녀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포개자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서로의 거친 숨이 오가기 시작할 때쯤, 이지연은 솜방망이로 밀듯 가느다란 손목으로 살포시 나를 밀며 얼굴을 피했다. 이제와 부끄럽다는 듯이.

“아침부터 왜 그래. 이제 출근 준비해야지.”

출근은 무슨.

출근하게 할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장난을 치지 말았어야지.

반항 아닌 반항을 하는 이지연의 얼굴을 살짝 감싸며 나는 그녀에게 몸을 밀착했다.

“반차 써.”

“오늘? 안 돼. 에르미스 정식 런칭일 얼마나 남았다고. 일정 맞추려면……읍.”

못된 말을 하는 입을 가로막았다.

LGA컴퍼니와 BS북의 모든 일정을 꿰뚫고 있는 건 아니더라도 이지연의 업무 일정만은 자세히 알고 있었으니까.

한동안 그녀의 입을 가로막은 후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었다.

“런칭 일정보다 3일은 더 일찍 끝날 거 알아.”

나를 화 날대로 화나게 만들고는 이제 와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요망하기 짝이 없는 이 여우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

“반차, 아니 연차 써.”

“하지만…….”

“대표 명령이야.”

“……알겠어.”

장난 섞인 짓궂은 내 말에 이지연이 고개를 숙였다. 홍조를 띤 미소와 함께.

어제의 밤은 이어질 테다.

오늘 밤까지도 계속.

* * *

이지연과의 하루…… 아니 이틀을 보낸 후 한 주가 더 흘렀다. 그리고 오늘은 대한민국의 웹소설 역사가 새로 쓰이는 날이다.

“와아아…… 이거 몰입감 뭔데?”

“액션씬 기가 막히네요.”

“액션도 액션인데 뽕 차는 요소가 장난 없지 않아요? 기존 레이드물하고는 다르게 혼자만 레벨업 하는 능력하고 신기루를 이용한 군단! 왜 40화밖에 없는데!”

2월 29일 월요일인 오늘.

강추강 작가의 신작 ‘나 혼자만 상하차’가 웹월드에서 런칭하자 각 플랫폼별로 신작 모니터링을 하며 트렌드 분석을 하는 게 일과 중 하나인 BS북 매니저들의 입에선 경악에 물든 목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식 런칭은 내일인 3월 1일이지만 웹월드는 보통 배너 등의 프로모션이 들어가는 작품 런칭 당일 하루 전에 작품을 올린다.

일반적으로 정식 런칭 전날에 작품이 올라가는 건 오후 6시. 하지만 우리 엘가에서 기대작이라고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인지 그보다 훨씬 이른 시간인 낮 12시에 맞춰 예비 런칭이 됐다.

“제 말이요. 런칭 하자마자 바로 1위 찍어버리네요.”

“어?! 이거 그거네! 소설피아에 1화만 잠시 올라왔다가 바로 삭제된 거. 회차 좀 더 쌓이면 컨택 해보려고 각 재고 있었는데. 와 씨, 이걸 웹월드로 바로 채갔…… 어? 뭐야? 레이블이 드래곤? 엘가 거였네?”

“와…… 엘가 진짜 미쳤네요. 이걸 언제 또 채갔데. 엘가 담당자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작품 보는 눈 하나는 알아줘야겠네. 그래도 이제 같은 회사나 마찬가지이니까 기분은 덜 나쁜 것 같기도 하고요.”

판무 1팀 매니저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에 잠시 모골이 송연해진다.

‘창윤 씨가 정말 작품 보는 눈 하나는 좋단 말이야? 신연에 있는 걸 어떻게 본 거야?’

소설피아는 세 가지 게시판으로 분류되어 있다.

기성작가들이 연재를 하는 ‘프로연재’, 그리고 소설피아에서 연재 이력이 있는 아마추어 작가들 중 일정 수준의 글자 수를 충족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보통연재’ 그리고 음지에 있는 ‘신인연재’ 게시판이 바로 그것이다.

편집자들 사이에선 신연이라 줄여 부르는 신인연재 게시판은 개미지옥이라고 불린다.

심해 탐사 전문의 누렁이 독자를 제외하곤 함부로 기웃거리지 않는 곳이 바로 신연이니까.

무능력한 조팟놈때문에 그동안 기를 못 펴고 살아서 그렇지 이창윤이 팀장이 되니 확실히 판무 2팀의 기세가 남달라졌다는 생각과 함께 강추강 작가의 컨택이 조금이라도 늦어졌으면 큰일이 날 뻔했다는 생각 또한 든다.

소설피아에 꼴랑 1화만 올라왔던 나혼상을 이창윤 팀장이 모니터링했던 것처럼 분명 다른 출판사의 매니저 중에서도 나혼상을 눈독 들이던 사람들이 있었을 테니까.

‘미안하게 됐습니다, 창윤 씨. 다른 작품은 몰라도 나혼상은 내가 뺏길 수는 없었거든요.’

만약 이창윤 팀장이 내가 찜해 둔 작품을 눈독 들이는 게 있었다면 충분히 넘겨줄 법도 했다.

하지만 다른 작품도 아니고 나혼상은 그 누구에게도 넘겨줄 생각이 없다. 나혼상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강타할 대작이 될 테니까.

“자 1팀 여러분, 시간 됐네요. 주간 회의 시작하려는데 다들 준비되셨습니까?”

“네, 팀장님!”

매주 월요일마다 으레 하듯 주간 회의 시간이 찾아왔다. 지난 실적과 열정 그리고 회사를 향한 애사심을 인정받은 황건일 매니저는 이번 연봉 협상 때 합당한 대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목청이 우렁찬 황건일 매니저의 목소리가 유독 쩌렁쩌렁 울렸다.

“후우……. 네.”

반면 조팟놈은 지난 보름 전 있었던 연봉 협상의 여파가 아직도 이어지는지 축 처진 어깨로 터덜터덜 소회의실로 이동했다.

‘조팟의 저런 모습을 보니 참…… 흡족한데?’

평소에도 좁은 조팟놈의 어깨가 소멸하듯 말려갔지만, 일말의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 연봉 협상의 결과는 놈이 그동안 싸지른 똥의 결과이니까.

‘새끼, 짤리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게 여겨야지. 분위기를 다운시키려 하고 있어?’

회사나 학교 그리고 어느 집단이든 가장 쓰레기 같은 존재. 그게 바로 부정적인 아우라를 뽐내는 새끼들이다.

입 밖으론 매일같이 힘들다, 뭐가 어렵다 등 불평불만이 가득한 볼멘소리나 하는 쓰레기들. 회사에 다닐 게 아니라 정신과를 다니는 게 우선되어야 할 쓰레기들이다.

아무리 향긋한 꽃이 있는 자리도 오물 옆에선 향기가 뭍이듯 빌빌대는 고물 가습기처럼 간헐적으로 내뿜는 조팟놈의 한숨을 더는 듣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 듣고 싶지도 않고.

“자 그럼 이번 주 주간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파트장님 담당 작품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은 출판본부 본부장이 된 김동현 본부장의 팀에 있을 때만 해도 주간 회의는 짜증의 연속이었다.

팀원 중 하나가 좋은 작품을 계약해도, 담당 작가님이 좋은 글을 써서 좋은 성과를 내도 조팟놈은 정신병이 있는 건지 명품이라 자랑해대던 구린 뿔테 안경을 슬쩍슬쩍 만지며 다른 매니저들을 억지로 까내리기에 바빴으니까.

‘김동현 팀장, 아니, 본부장도 큰 문제였지.’

판무 2팀은 조팟놈이 싸지른 똥으로 바닥이 질퍽거렸지만 김동현 팀장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했다.

조팟놈이 싸지른 오물로 팀원들 얼굴에 하나둘 똥독이 오르기 시작했지만, 김동현은 자기 콧구멍만 막았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김동현이 곰 같은 여우라는 점이다. 오성민 대표와 기존 BS북의 본부장들을 단두대에 올리고 모가지를 썰어 생긴 기회였지만, 새롭게 출판본부 본부장이 된 김동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폰 게임 자동 사냥만 돌려놓고 웹툰이나 보는 게 일과였던 김동현은 본부장이 된 후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듯, 혹은 자신을 증명할 기회를 준 오진아에게 충성을 맹세하듯 거의 매일같이 각 플랫폼을 돌고 작가 미팅을 다니며 소임을 다했다.

‘따지고 보면 그 기회도 내가 준 거긴 하지만.’

여하튼 지금 BS북 전체, 아니, BS북과 BS툰 그리고 LGA컴퍼니 전체를 두고 봐도 회사에서 가장 무능력한 놈은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조팟새끼 하나뿐이다.

그리고 내가 BS북 판무 1팀 팀장이 된 지금.

더 이상 주간 회의가 싫지 않다. 오히려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매우 개운하고 기분 좋은 순간이지.

“추가 전달 사항은 없고 그럼 금주 주간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넵! 고생하셨습니다!”

“후우…… 네.”

하지만 까는 것에도 타이밍이 필요한 법이다.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까면 그건 모욕이 될 뿐, 합당한 명분이 있어야 깔 수가 있지.

“어? 건일 매니저님, 팔찌 사셨네요. 예쁜데요?”

“아, 하하. 이거요? 이거 유니세프 정기 후원자한테 주는 팔찌에요.”

“와, 정기 후원자라니 멋진데요? 후원 팔찌는 다 의미가 있다고 하던데.”

“맞아요, 이 팔지가 무슨 의미냐면―”

“참나, 건일 매니저님은 돈도 없다면서 무슨 후원을 하고 그래요?”

“예?”

사실 별말 없이 조용히 나갔다면 조팟놈을 따로 불러 시도 때도 없이 회사에서 한숨 쉬는 것 좀 자제하라는 식으로 상냥하게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자승자박 전문가인 조팟놈은 늘 스스로 그 명분을 만들어낸다. 이쯤 되면 내 개인 스트레칭 전담 도우미 같은 느낌이랄까?

“하하…… 제가 돈이 여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월 3만 원 정도는―”

“돈 없다고 지하철 김밥이나 사 먹으면서 후원은 무슨 후원이에요? 본인한테나 후원 좀 하세요. 그런 거 후원 해봤자 후원받은 돈으로 해적 되는 거 몰라요?”

“예? 아하하, 누가 그런 말을……?”

“지난번에 택시 타고 오면서 택시 아저씨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유니세프니 뭐니 하는 단체들 전부 해적 양성소라고요.”

“아하하…….”

언제부터 택시 기사의 말이 진리가 되었는지, 앞뒤 없는 조팟놈의 개소리에 듣는 내가 부끄러워질 지경이다.

저런 헛소리를 들으면서도 사람 좋은 황건일 매니저는 멋쩍은 미소로 대신한다. 이런…… 내가 또 우리 팀 막내가 억까 당하는 꼴은 못 보는데. 왜냐면 이제 내가 팀장이거든.

“조팟님, 말이 지나치시네요. 건일 매니저님이 무슨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좋은 일 한 건데 그걸 조팟님이 왜 이래라 저래라십니까?”

“예? 그건 인생 선배로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건일 매니저님은 잠시 자리 비워 주시겠어요? 조팟님은 저랑 얘기 좀 하시죠.”

이제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황건일 매니저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소회의실 문을 닫고 나갔고 조팟놈은 아차 하는 눈빛을 보내며 입가를 파르르 떨었다.

‘늦었어, 새끼야.’

한 주의 시작은 역시 조팟놈을 패면서 해야 시작하는 맛이 난다. 다시금 조팟놈을 자르지 않은 게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팟 놈이 영원히 바뀌지 않아도 상관없다.

놈이 회사에 붙어있는 만큼 계속 조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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