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 연봉 협상.
* * *
유난히 길었던 황금 연휴가 끝이 났다.
주말의 시작인 토요일부터 설 대체 휴일이었던 수요일까지가 공식적인 빨간 날.
그리고 나는 목요일과 금요일까지 연달아 연차를 내고 총 9일간의 휴가를 보낸 후 회사에 돌아왔다.
BS북 팀원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해서라고 설명했고 오진아 대표 그리고 엘가의 임직원들에겐 새로 집필 중인 신작 준비를 위해 연차를 썼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회사에 바로 출근하기엔 상념이 계속 머리에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지지난 토요일 재즈바에서 권미현이 했던 말 때문에.
‘미현 씨는…… 괜한 말을 해가지고.’
단풍 삼촌을 좋아한다며 본격적으로 꼬시겠다고 내게 선전포고를 했던 권미현은 이어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돕겠다는 말을 꺼냈었다.
물론 괜한 소리 하지 말라며 단칼에 그녀의 말을 끊고 급히 화제를 전환하긴 했지만, 권미현이 했던 말이 주말 동안 내 머리를 어지럽히기엔 충분했다.
“우와아…… 이거 연독 미쳤네? 혁명적인 스타 생활, 다들 이거 봤어요?”
“노원지귀 작가 신작이죠? 저도 주말에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무슨 기계처럼 글을 찍어 내더라고요.”
그리고 오늘은 15일 월요일.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온 판무 2팀 매니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내가 써 올린 신작에 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아니, 연예계, 그것도 남자 아이돌을 소재로 한 마이너한 내용이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네요.”
“내 말이요. 신작 기획 중이신 작가님한테 비슷한 골조로 해서 여자 아이돌물 써보면 어떠냐고 물어보려구요. 아니면 아이돌 기획자 물이나.”
내가 회귀하기 전에는 메인 중의 메인이었던 아이돌물이 아직은 마이너 장르로 취급 받는다는 게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런데 웹월드에서 이세계 기사식당 런칭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신작을 쓰네. 주 7회씩 동시 연재…… 와아, 진짜 괴물 아닌가?”
“노원지귀 담당자 누구인지……. 엘가 담당 매니저 부럽네요. 나도 이런 작가 한 명 잡으면 실적 걱정할 필요는 없을 텐데.”
내 신작을 계약한 담당 매니저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얼굴에 부러운 표정을 가득 짓는 판무 2팀 매니저들은 조금도 모를 것이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작품을 쓴 사람이 바로 코앞에 있는 판무 1팀 팀장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내 글은 교정도 내가 스스로 한다는 사실도.
“그러니까요. 이세계 기사식당 실시간으로 따라가고 있는데 연참도 가끔씩 해요. 웹월드에도 소설피아처럼 후원 기능 있으면 좋겠다니까요? 작가님 힘내시라고 후원 좀 해드리게.”
“에이, 돈 아깝게 뭣하러 후원을 해요? 노원지귀 작가 정도면 한 달에 우리 연봉보다 더 많이 벌 텐데? 작가가 우릴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전 후원하는 게 좋아요. 큰돈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좋은 글 써주시는 작가님들한테 댓글 다음으로 응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잖아요.”
이 외에도 내가 쓴 신작이 혁명적인 작가 생활의 스핀오프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해서 더 재미있다는 말, 거기다 노원지귀는 사실 ‘노’, ‘원’, ‘지’, ‘귀’ 4명이 한 팀으로 글을 써서 글을 빨리 쓰는 거다라는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점심시간은 퇴근 시간을 제외하고 직장인들이 가장 활기차고 기운이 넘치는 시간이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을 때, 하물며 그 신작이 실시간 랭킹을 점령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보인다면 당연히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겠지.
‘일단 2팀 신입 매니저님. 얼굴 기억해 뒀어. 너는 조만간 보너스다.’
그동안 워낙 여러가지 일이 있다보니 판무 2팀의 신입 매니저들의 이름까지 다 외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내 글을 후원했다는 매니저는 똑똑히 기억해 둬야겠다. 나는 은혜든 복수든 받은 이상으로 돌려주는 사람이니까.
정확히 한 주 전이었던 지난 월요일이자 설 당일이었던 2월 8일. 그날 런칭한 내 신작 혁명적인 스타 생활은 판무 2팀 매니저들의 말처럼 기록적인 성과를 내고 있었다.
특히 소설피아에서 연재를 시작하면 좋은 점이 다양한 출판사에서 불나방처럼 계약 조건을 제시 하며 달려들기 때문이다.
드르륵— 드륵— 드르륵—
마우스 휠을 주욱 죽 넘기며 훑어보는 쪽지함을 들어가 보니 수많은 출판사에서 달콤한 계약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노원지귀로만 3번째 작품을 선보이는 지금 이제 슬슬 다른 출판사들도 내가 LGA컴퍼니와만 계약을 진행한다는 걸 알 수 있을 터. 전작들의 표지만 보더라도 회사 로고가 찍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눈치 빠른 출판사 매니저들이라면 이번에도 내가 당연히 LGA컴퍼니와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을 어림짐작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내게 계약 제안 쪽지를 보내는 건 차기작 혹은 차차기작이라도 나와 계약을 진행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들기 때문이겠지.
드르륵― 드륵― 드르륵―
‘오…… 그래도 전반적으로 대우가 확실히 좋아지긴 했네. 작년, 재작년 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발전했는데? 그래, 출판사들아. 잘 하고 있어. 이 정도는 당연히 해 줘야지, 짜식들아.’
몇 년 전만 해도 50 : 50.
혹은 60 : 40 등으로 작가 등골을 빼먹는 데만 혈안이 되었던 출판사들이, 이제 못해도 작가가 70%를 가져가고 출판사가 30%를 가져가는 조건을 제안했다.
물론 내게는 작가 정산비 80% 이상을 제안하는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LGA컴퍼니를 창립한 후 정산 비율과 선인세 그리고 계약금 등 신인 작가들이 더욱 빠르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했던 성과들이 이제 가시적으로 나타나자 뿌듯한 마음이 차올랐다. 그래, 이게 맞는 거지.
‘물론 그 시간 동안 발전이 없는 놈도 있기는 하지.’
이 생각을 하니 자동으로 발전 없는 그놈에게 시선이 돌아간다. 놀라울 정도로 실수의 연속을 보여주는 판무 1팀의 아픈 손가락인 조팟놈을 향해서.
어느덧 시계가 오후 1시를 가리켰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왁자지껄한 소리로 웃고 떠들던 소리로 가득 찼던 BS북엔 고요한 정적과 키보드 타자 소리 그리고 마우스 딸칵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럼 나도 할 일을 좀 해 볼까?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말이야.’
BS북은 매해 2월 중에 연봉 협상을 하고 3월부터는 새로 반영된 월급을 받는 식이다.
그리고 팀원들의 연봉 협상은 팀장인 내 선에서 이뤄진다.
“조팟님, 시간 괜찮으실까요?”
“예, 팀장님. 무슨…… 일이실까요?”
“연봉 협상 관해서 이야기 나누려는데, 지금 시간 괜찮으실까 해서요.”
“아, 예……. 괜찮습니다.”
“소회의실로 바로 가시죠.”
“예.”
조팟놈은 내가 연봉 협상 이야기를 꺼내리란 걸 나름의 감으로 눈치챘는지 평소와 달리 괴랄한 억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1년 내내 찡그리고 있던 새끼가 오늘 하루 처웃으신다고 해서 연봉 협상이 딱히 더 좋아질 일은 없을 테지만.
“지금 판무 1팀이 조팟님과 저 그리고 건일 매니저 달랑 셋뿐이지만. 그래도 파트장님부터 먼저 연봉 협상을 하는 게 순서겠죠.”
“하하, 예.”
소회의실에 들어온 후, 조팟놈은 연거푸 내게 억지 미소를 건넸다. 미국이나 캐나다같이 팁으로 월급을 받는 나라의 레스토랑 웨이터처럼 입만 웃고 눈은 조금도 웃지 않는 애매한 미소다.
그리고 나 또한 마치 애매하게 만든 인조 인간의 불쾌한 골짜기가 연상되는 웃음을 지으며 말을 시작했다.
“자, 우리 BS북이 올해 부터는 성과에 따라 연봉 협상이 있을 거라고 미리 말씀 드렸죠. 공지에도 있고 저 또한 이미 주간 회의에서도 몇차례나 드렸던 내용이니, 조팟님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아하하, 물론입니다.”
계속해서 억지 미소를 짓는 조팟놈의 불쾌한 골짜기를 견디기 어렵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경련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인 조팟놈의 턱건강을 위해 연봉 협상은 빠르게 끝내야겠다. 딱히 길게 말할 것도 없기도 하고.
“올해는 동결입니다.”
“예에? 도, 동결이라뇨! 인상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인가요?”
간결하고 명확하게 건넨 말에 조금의 오해의 소지도 없었을 텐데 조팟놈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예, 물론이죠.”
그렇기에 나는 간결한 어투로 즉답했다.
놀란 그의 표정이 조금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그, 그게 저…….”
“달리 하실 말이 있으십니까? 분명히 연봉 협상은 실적에 따라 반영될 거라고 말씀 드렸을 텐데요?”
“하, 하지만 연봉은 매 해마다 조금씩 오르지 않았습니까? 하다 못해 물가도 상승하고 집값도 다 상승하는데 연봉이 동결이라뇨! 심지어 회사 사정도 전년도보다 더 나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야, 솔직히 놀랍다.
조팟놈의 입에서 물가 상승률이란 말이 나오다니. 정말 양심이란 조금도 없는 새끼라는 생각과 함께 절로 비릿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진다.
“하하, 재미있네요, 조팟님. 그런데 말입니다. 물가도 월세도 모든 게 다 상승하는 시국에 조팟님의 실적은 왜 그대로인 걸까요?”
“예? 그, 그건…….”
그래 할 말이 없겠지.
회사에 온갖 불평불만만 가득 배설하는 똥구녕처럼 싸대면서 직원으로서의 의무는 커녕 맡은 입무 또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으니까.
“지난 한 해 동안 조팟님의 실적을 보니 정말…… 실망스럽다는 말밖에 안 나오더군요. 조팟님의 실적은 조팟님 본인이 제일 잘 알고 계실 테니 굳이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맞습니까?”
“…….”
할 말이 없으면 꽉 다문 조개처럼 입을 다물고 있는 조팟놈 특유의 행동이 나온다. 처음 1팀의 팀장이 되고 조팟놈이 내 밑으로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조팟놈의 저런 입꾹 행동만 봐도 열불이 터졌었다.
하지만 원효대사 해골물이란 말처럼 모든 건 내 마음이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다른 것일 뿐. 조팟놈의 저런 옹졸하고 치졸한 행동도 이제 귀엽게만 보일 뿐이다.
“물론 조팟님이 그동안 늘었던 것도 있죠.”
“마, 맞습니다! 제가 비록 실적이 그리 높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발전한 부분도 반영해 주시면―”
“네, 실수가 늘었어요. 이거 반영해 드릴까요? 이거 다 반영하자면 연봉 동결이 아니라 삭감을 해도 부족할 텐데요?”
“…….”
조팟놈은 차라리 입이라도 계속 닫고 있으면 더 나을 때가 있지만 지금처럼 낄 때 안 낄 때를 구분 못하고 자승자박으로 알아서 자멸하는 경우가 많다. 연봉 협상같은 중요한 순간에선 오히려 편한 일이긴 하지.
“참, 생각해 보면 진짜 실수가 한 두 가지가 아니죠. 연봉 동결도 관대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티, 팀장님! 최근에는 그런 일이 없지 않았습니까!”
“아, 그래요?”
이것 봐라.
고개를 숙일 때를 모르고 이렇게 바락바락 우겨대면 결국 내가 회초리를 꺼내 들 수밖에 없다니까?
“해와달 작가님 기억 안 나세요, 조팟님? 그 정도면 충분히 최근이라고 할 만한데요?”
“해, 해와달 작가님 원고 수급에 관해선 제가 시말서를 쓰긴 했지만 결국 원고 수급도 받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네 실수로 시말서를 쓴 것보다 너는 네가 해결했다는 부분을 강조하리란 걸.
“아, 그 부분도 있었죠.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하하.”
“맞습니다. 비록 제가 실수를 했지만, 잘 처리를―”
“해와달 작가님이 이번 주말에 정글북에 글 쓰신 거 못 보셨어요? BS북 소속 작가들 모두 명절 선물 받았는데 자기만 못 받았다고 한 거?”
“예? 그게 무슨……? 분명히 제가 주소대로 보냈는데?”
그래, 그렇게 생각했겠지.
나도 주말에 그거 보고 어이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오늘을 위해 참고 있었다, 새끼야.
“보내셨겠죠. 작가님 바뀌기 전 주소로.”
“헉?!”
“작가님 주소 바뀐 거 경영 지원팀에 제대로 전달한 거 맞아요?”
“…….”
“뭐, 실수가 뭐 한두 개여야지 저도 모르는 척을 하죠. 여하튼, 더 할 말 없으시면 나가서 건일 매니저님 불러주세요. 해와달 작가님한테 선물이나 다시 보내드리고요.”
“……예.”
축 늘어진 어깨로 터덜터덜 소회의실 밖으로 빠져나가는 조팟놈을 보며, 늘 해왔던 생각을 즐겁게 곱씹는다.
역시 한 주의 시작은 조팟놈을 패며 시작해야 개운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