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 언제 생각해도 돈만 한 게 없다.
* * *
어느덧 2월 첫 주의 마지막 금요일이 되었다.
한 주의 마지막을 고하는 금요일은 삭막한 직장인들의 삶에 단비 같은 하루다. 그렇기에 썩어 문드러지던 직장인들의 풀린 동공은, 금요일만 되면 생기를 되찾게 된다.
“와…… 진짜 우리 회사 이거 뭐야?”
“여기 BS북 맞나요?”
“선물을 대체…… 몇 개나? 이거 집에 다 가지고 갈 수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2월 5일인 오늘.
BS북의 매니저들은 평소보다 더욱 생기 넘치는 눈빛을 빛냈다.
“매니저님, 가져가기 싫으면 저 주세요. 저는 다 들고 갈 수 있으니까.”
“제가 언제 싫대요? 어허! 눈독 들이지 말고 손 딱 놔요. 나도 소고기 먹을 줄 아니까!”
경영팀 매니저들이 전달한 설 명절 선물을 받은 각 팀 매니저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 피었다.
‘선물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 특히 회사에서 주는 선물은.’
바로 다음 주 월요일인 2월 8일부터 10일까지는 설 연휴. 사실상 바로 다음 날인 6일부터 10일까지 장장 5일간 이어지는 황금연휴 소식만 해도 BS북 매니저들은 물구나무를 서서 탭댄스를 추며 훌라후프를 돌릴 정도로 다들 기쁨의 도파민이 가득 찬 상태였다.
그런데 황금 연휴 뿐만이 아니라 직원 선물과 복지를 염전 수준으로 관리하던 BS북이 직원 가족에게 보내는 탐스럽고 거대한 과일 세트, 투쁠 한우 세트에 이어 오늘 각 팀별로 다시 투쁠 한우와 수제 햄과 과자 세트를 품에 안겨주자 각 팀 매니저들은 놀라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대표님이 바뀌어서 복지가 좋아졌다, BS북 계속 다니길 잘 했다 등.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결코 들을 수 없던 마법 같은 칭송이, 북조선 인민들이 찬양하는 것처럼 쏟아졌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지. 받을 게 끝이 아니니까.’
이북 출신 단풍 삼촌은 늘 말했었다.
자신처럼 못 먹고 자란 이들에겐 보리죽 한 그릇만 줘도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BS북의 매니저들 또한 북한 인민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다. 비록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어엿한 직원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BS북 매니저들은 그동안 따박따박 월급 받는 노예처럼 맷돌로, 아니, 믹서기로 몸과 영혼이 갈려 나가던 이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런 이벤트를 준비한 거다.
BS북을 군림하던 오성민 대표의 퇴임. 그 뒤를 이어 혜성처럼 새롭게 등장한 오진아 대표의 세계는 이전과 다르리란 걸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덜컹―
“어, 대표님 오셨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대표님, 오셨습니까아!”
“대표니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진아 대표가 BS북 2층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각 팀의 매니저들은 위대한 수령 동지가 등장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서 그녀를 반겼다.
그리고 이제 BS북의 대표로 선임된 지 고작 한 달이 조금 지난 지금, 오진아는 벌써 CEO 라이프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모양이다.
인민들…… 아니, BS북 매니저들을 향해 슬쩍 고개를 숙이며 사무실 중앙으로 또각또각 걸어 들어온 오진아는 잠시 목청을 가다듬고는 주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2016년 설 연휴 단축근무를 맞아 오늘은 오전 근무만 진행하기로 했죠. 다들 마무리 되셨나요?”
““네!””
“선물 감사합니다, 대표님!”
“감사히 받겠습니다!”
매니저들 모두가 감사의 인사와 함께 한 마음, 한 뜻을 담아 우렁찬 목소리로 화답했다. 조팟놈만 제외하고.
‘어휴…… 머저리 같은 놈. 어떻게 연휴 전까지 일정 관리를 못하냐?’
판무 1팀에서 연휴 전에 작가의 원고를 모두 받지 못한 건 오직 조팟놈 뿐이다. 그리고 그 뜻은 조팟놈의 퇴근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고.
물론, 그건 조팟놈의 업보이기에 딱히 신경 쓰이진 않는다. 회사가 일찍 퇴근할 여건을 만들어 줘도 자신이 무능력하면 회사에서도 더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2016년 새해가 밝고 벌써 한 달이 훌쩍 흘렀네요. 지난 한 달 동안 새롭게 개편된 내부 규정 및 조직 개편으로 적응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전보다 더 높은 실적을 내주신 출판 본부 그리고 운영 본부 임직원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그 답례로 약소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우와아! 선물이 여기서 더 있대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관 짜놨습니다, 대표님! 정년까지 다니겠습니다!”
“저는 대대손손 BS북에 뼈를 묻겠습니다!”
선물의 효과는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대단하다.
매니저들의 입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말이 단순한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걸 오진아도 나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오진아가 대표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립서비스 같은 말은 직원들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기에 상당히 고무적인 변화가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면 출판 본부부터 전달 드리도록 할게요. 우선…….”
오진아 대표는 각 팀의 직원들을 한 명 또 한 명 호명하며 누르스레한 빛이 언뜻 비치는 새하얀 봉투를 매니저들 모두에게 건넸다.
그리고 평소 월급의 2배 되는 금액이 들어 있는 그 봉투를 확인한 매니저들의 입에선 신을 찬양하듯 찬미와 추앙의 말이 넘쳐흘렀다.
“으아아앗! 대표님! 충성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대표님, 사랑합니다!”
바로 한 주 전 월요일 월급일에 받은 보너스에 이어 명절 떡값까지 전달받은 직원들의 사기가 사무실 전체를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 울렸다.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방법, 그건 언제 생각해도 돈만 한 게 없다.
* * *
하루가 지난 2월 6일 토요일 아침.
팔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끄으으, 그동안 정말 정신없었다.”
지난 연말 강경진을 비롯한 기존 BS북 임직원들을 단두대로 보낸 뒤 새로운 팀 개편, 강추강 작가의 계약 및 런칭 일정 조율, 정명진 디렉터 채용 그리고 에르미스의 베타 버전 준비까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제 퇴근 후, 평소 맞춰두던 핸드폰 알림도 꺼 둔 채 침대와 한 몸이 되어 휴식을 취했다.
“푹 자고 일어났더니 확실히 개운하네. 어디 그럼 신작 구성 좀 해 볼까?”
그동안 편집자 일과 회사 경영 전반을 다루는 일로 정신이 없었지만, 내 본업은 어디까지나 작가다.
틱―
정수기에서 물을 한 컵 따라 마시고, 커튼 뒤로 스며드는 밝은 햇살을 느끼며 나는 곧장 컴퓨터 전원을 켰다.
“흠…… 이번엔 어떤 걸 쓰면 좋으려나? 이번엔 코즈일 필명으로 쓰는 게 나으려나?”
현재 내가 연재 중인 작품은 코즈일로 소설피아에서 연재 중인 현판물 ‘인턴사원 회장님’ 그리고 얼마 전 노원지귀로 웹월드에서 연재 중인 힐링 판타지물 ‘이세계 기사식당’ 단 둘뿐이다.
코즈일로 처음 연재를 시작했던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 ‘불 지르는 파이어맨’ 소설 원작은 이미 모두 완결이 난 상황인데, 인턴사원 회장님은 700화 이상의 장편으로 연재될 글이기에 아무래도 신작은 코즈일로 연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딸칵― 딸칵―
타닥― 탁― 타다닥―
“이제 버벅거리는 에러도 없네, 에르미스 베타 버전 출시 일에 워드는 정식 출시해도 되겠는데?”
최근 들어선 ‘에르미스 워드’라고 부르기로 한 자체 개발 워드 프로세서를 이용해서 집필을 진행하고 있다. 자잘한 버그도 없고 이 정도면 한글이나 스크리브너에 비교해 조금의 부족함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에르미스 워드에 새 프로젝트 창을 띄우고 머릿속에서 맴돌던 휘발성 아이디어를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지금 현판 하나에 판타지 하나 쓰고 있으니까 신작은 그럼…… 대역? 무협?”
툭툭 두들기던 키보드를 멈추자, 에르미스 워드 화면에선 커서만 깜박거렸다.
대체역사물, 무협물 뿐만이 아니라 언젠가는 현대 로맨스나 로맨스 판타지 장르의 작품도 집필해보고 싶을 정도로 나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제 내가 쓰는 글의 파급력을 알고 있지. 그리고 내가 쓰는 글로 인해서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결과 또한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도.’
나 혼자만 상하차라는 걸출한 역작을 집필 중인 강추강 작가만 하더라도 원래 역사보다 몇 달은 더 빨리 소설피아에 글을 올렸었다.
내가 쓰는 글은 현대인 2016년보다 미래의 트렌드에 더 부합하는 글이다. 글의 소재, 연출, 전개 방식 그 모든 것들이.
내 글이 미래의 축을 뒤흔들 만한 힘이 있다면 이왕이면 미래의 트렌드를 조금 더 앞당길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도 그리고 미래에도 웹소설이라는 장르판은, 맛집 옆에 유사 맛집이 곧장 생겨나는 것처럼 비슷한 소재의 글들이 범람하는 구조였다.
‘지금만 해도 그렇지. 내가 이세계 기사식당을 쓰기 전만 해도 요리 힐링물은 전무하다시피 했는데 이제는 신작 중 열에 둘은 요리 힐링물이니까.’
독자들의 입장에선 독창성이 없다고 비웃을 만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른 작가의 글과 비슷한 소재로 진행하는 작가들의 글이 마냥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게 신인 작가의 경우에는.
비록 내가 사두용미 아카데미를 BS북에 작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임시로 만들었었지만 그 후에는 인력 부족으로 인해 진행하지 않고 있다. 즉, 이 시기엔 아직 전문적으로 웹소설을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 정보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결국 그 말은 어깨너머로 배운다는 옛말처럼 다른 작가들의 글을 참고하고 참고하면서 배우는 방식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두용미 아카데미에서도 신인 작가들 그리고 지망생들에게 인풋을 많이 하라고 했지. 인풋이 많으면 많을수록 아웃풋이 수월하게 나오니까.’
여하튼 웹소설 작가가 되기 위한 체계적이고 제대로 된 학교나 학원이 전무한 상황. 신인 작가들 그리고 작가 지망생들을 내가 도울 수 있는 방식은 소설피아에 더욱 다양한 미래 소재의 글을 집필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흥행하는 소설의 소재가 다채로워질수록, 신인 작가들과 지망생들도 더욱 창의적이고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
“보자아, 어떤 소재로 해야지 우리 망생이님들께 더 도움이 될 수 있으려나?”
타다닥― 타닥― 타다다닥―
이혼물은 이미 히전죽 작가님의 ‘이혼 후 와이프부터 죽임’으로 원래 트렌드로부터 7년이라는 시간이 앞당겨졌다.
‘그 외에 반짝인기를 끌었던 소재를 떠올리자면…… 아카데미물? 아니야. 아카데미물은 아니야…….’
소설피아에 이혼물이 범람하기 전 지겹도록 소설피아를 도배했던 소재는 아카데미물이었다.
아카데미물이란 기본적으로 해리포터 같은 세계관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검술명가, 마법명가 등 별의별 재능충들이 가득한 세계에서 몰락한 가문이나 망나니 가문의 서자 혹은 막내 공자의 몸에 빙의하거나 회귀한 주인공이 학교 생활을 하고 그 주위엔 각양각색의 여자 캐릭터들이 주인공을 맴도는 내용이다.
나도 아카데미물을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아카데미물은 그 특유의 중2병 같은 맛을 살려야 하는데, 내 관심 분야가 아니기에 집필하기가 쉽지 않다.
‘아카데미물은 어차피 몇 년만 지나도 지겨울 정도로 많이 나올 테니까. 굳이 지금 먼저 나설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면…… 아? 그걸 쓰면 되겠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다가 한가지 소재가 떠올랐다. 비록 웹월드 한정으로 보는 게 맞긴 하지만 웹월드에 ‘판드’라는 새로운 장르 구분탭까지 만들게 한 그 장르가.
“그리고 우리 스타작가 윤선미 씨가 먼저 개척하신 장르이기도 하지.”
이번 신작은 아이돌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