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44화 (144/201)

144화 ―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요?

* * *

다시 한 주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2016년 2월의 첫 주 월요일이 되었다.

지금 시간은 오후 1시 23분.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 나를 포함한 BS북 판무 1팀은 대회의실에 모여 평소보다 조금 늦은 주간 회의를 진행하는 중이다.

“아니, 조팟님. 지금…… 하아.”

“…….”

“이건 둘이서 따로 이야기하죠. 건일 매니저님, 먼저 나가시면 됩니다.”

“예, 팀장님. 그럼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팀 전체 전달 사항은 모두 마무리된 상황.

조팟만 집중적으로 조지기 위해 황건일 매니저를 내보내자, 조팟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아침에 주간 회의를 진행하면 조팟놈이 밥도 깨작거리면서 침울할 게 보였기에 평소보다 주간 회의를 늦게 시작했는데, 오후 1시로 회의 시간을 변경하길 잘한 모양이다. 팰 때 패더라도 밥은 먹이고 패야 때리는 사람도 속이 편하니까.

“자, 이제 이야기 좀 해봐요. 대체 작가 원고 수급이 안 된다는 게 무슨 일입니까? 예?”

“그게…… 작가님께서 분명히 주신다고 했는데…….”

“그런데요 뭐? 주신다고 했는데 왜 원고가 없냐고요. 런칭일 이제 한 달 남았는데 고작 1권 분량 들어온 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예?”

아무리 내가 조팟놈에게 원한이 많다지만, 업무에 있어서 억지로 트집을 잡아 조팟놈을 갈굴 생각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조팟놈은 매주 빠뜨리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만드는 기막힌 재주를 선보인다.

물론, 한 주의 시작을 조팟놈을 갈구며 시작하는 게 매우 짜증나는 일은 아니다. 일종의 스트레칭 같달까? 오히려 산뜻한 기분이 들어서 스트레스 받을 일도 딱히 없으니까. 무엇보다 기대하지 않기에 실망할 일도 없으니 딱히 기분이 상하지도 않고. 다만 조팟놈의 실수가 하루가 멀다하고 지속되는 건 나로서도 놀랍다.

“그게…… 작가님께서 원고를 주시겠다고 해서 믿었는데, 믿음의 결과가 이렇게 될 줄은 저도 정말 몰랐습—”

“거기서 스탑. 이거 처음부터 전제가 잘못 되었잖아요?”

“예? 그게 무슨……?”

‘아, 이 새끼. 대체 파트장 어떻게 단 거야? 진짜 골 때리는 놈이네?’

고개를 숙인 채 슬쩍슬쩍 눈을 흘기는 조팟놈을 향해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을 가동하자, 놈이 말하는 것엔 한 치의 거짓도 없다는 게 여실히 보인다.

그래서 더욱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지금 자신이 만들어낸 실수가 왜 일어난 건지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조팟님 직업이 뭡니까?”

“예? 저는 편집—”

“그렇죠. 작가님을 담당하는 출판사 편집자 아닙니까? 작가 탓을 하기 전에 계약 때 그런 작가인지 아닌지를 제대로 확인을 했어야죠.”

“아니…… 계약 때는 분명 하루에 두 편도 연재가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중간에 말이 바뀌시는 걸 제가 어떻게 알 수—”

“없었겠죠. 그런데 그걸 작가 탓만 해서 되냐 이 말입니다!”

“……?”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조팟놈.

나는 답답함과 한심함이 배인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팟님, 처음부터 문제를 짚어 보죠. 해와달 작가님 직접 뵌 적 있어요?”

“예? 아뇨? 전자 계약서로 진행해서…….”

런칭 일정 이슈가 터진 작가는 ‘해와달’이라는 필명의 신인 작가. 조팟놈이 아직 2팀에 있던 지난 가을에 계약한 작가다. 계약은 추수철에 했는데 거두어들일 원고는 없다는 게 얼토당토않은 소리다.

“전자 계약서, 좋죠. 그런데 경력도 없는 신인 작가면 직접 미팅 한번 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계약을 하기 전에요?”

“……”

“아니, 작가님 사시는 곳이 머세요? 어디 제주도라도 사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어디 사시는데요?”

“그게…….”

조팟놈이 말꼬리를 흐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해와달 작가는 어디 먼 곳에 사는 것도 아니고 서울 동작구에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입을 재깍 안 여시겠다?

그러면 내가 대신 벌려 드려야지.

“설마 작가님 서울 사시는 건 아니죠?”

“……맞습니다.”

“하, 그래요. 좋아요, 신뢰도 중요하니까 첫 계약 때는 놓쳤을 수도 있다고 하죠. 그런데 해와달 작가님 계약한 게 추석 전후 같던데, 그 후로 직접 미팅해보신 건?”

“…….”

“그죠? 없죠? 없으니 할 말이 없으시겠지.”

“…….”

고개를 한층 더 깊게 숙이는 조팟놈과 대조적으로 나는 고개를 더 높이 치켜들며 조팟을 내려다봤다.

“조성훈 파트장님, 우리 파트장이면 파트장 답게 좀 일합시다. 조팟님이 무슨 성직자세요? 뒤도 안 보고 무한한 믿음을 주게? 아니면 무슨 관심법이라도 있어요? 통화만 해도 원고 따박따박 줄 작가인지 알고? 그것도 신인 작가를?”

“…….”

조팟놈이 침묵을 지켰지만 내 입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 슬슬 산뜻하게 입이 풀리는 기분이니까.

“이건 진짜 출판사 매니저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 굳이 내가 말 해야 하나 싶기도 한데, 계약을 한다고 작가가 아니에요. 원고를 주는 사람이 작가지. 그런데 조팟님은 지금 계약만 덩그러니 해 두고 방치한 게 아닙니까?”

“바, 방치라뇨!? 저도 최선을 다 했습니다.”

“최선?”

흠칫—

버르장머리 없이 고개를 치켜드는 조팟놈을 향해 서슬 퍼런 눈빛을 쏘아내자, 삐죽 솟구치던 조팟놈의 목이 다시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감히 내 앞에서 최선이란 말을 들먹여?

“최선을 다했다라……. 온 정성과 힘을 들인다. 그게 최선이란 단어의 뜻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최근에 뜻이 바뀌기라도 했습니까?”

“…….”

조팟놈 스스로 느끼기에도 최선을 들먹인 건 무리수였음을 깨달았는지 푹 숙인 고개로 죄 없는 얄팍한 입술만 잘근거리기 시작했다.

“좋아요, 조팟님이 바빠서 직접 찾아뵙지 못했다고 칩시다. 그럼 작가님한테 원고 진행 상황 확인 연락을 몇 번이나 했습니까?”

“그, 그건 지속적으로 연락을—”

“아~ 지속적으로 연락을 드리셨다라?”

조팟놈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 지으며 대회의실의 공용 노트북을 끌어당겨 회사 메일에 접속했다.

“지난 1월부터 회사 내규가 달라져서 작가님과 소통하는 모든 연락은 메일로 우선 보고하게 되어있죠. 특히 원고 수급 그리고 프로모션 일정 전달에 관해선요.”

탁— 타다닥— 탁탁—

드르륵— 드륵— 드르륵—

회사 메일에 조팟놈의 이름을 검색하고 마우스 휠을 움직였다. 조팟놈이 해와달 작가에게 연락한 메일은 오직 단 한 개. 빔프로젝터에 비친 그 모습을 보면서 조팟놈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저희 1팀에 합류하신 뒤로 고작 메일 단 한 번 보내셨네요? 이게 조팟님이 말한 지속적인 연락입니까? 이게 최선이냐고요?”

“…….”

“대답 안 해요?”

“죄, 죄송합니다.”

차갑게 가라앉은 말에 조팟놈이 허겁지겁 사과를 시작했다. 이제 스트레칭은 다 끝났으니 나도 슬슬 일이나 해야겠다.

“죄송한 거 아셨으니 됐고, 해결하세요.”

“예? 해결이라면……?”

“직접 찾아가셔서 원고를 받아 오시든, 그게 안 되면 계약 파기 하세요.”

“예에? 계, 계약 파기요? 그러면 플랫폼에는 뭐라고……?”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는 조팟놈을 보니 절로 비릿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걸 아시는 분이 이렇게 작가를 방치해 두셨어요? 계약 파기하면 플랫폼에는 우리 BS북이 욕을 먹겠죠. 런칭 일정도 다 잡았는데 이제 와서 뭐 하는 거냐고. 그래도 그건 걱정 마세요, 욕 먹는 건 팀장인 제가 책임을 질 거니까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푹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내뱉는 조팟을 향해 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사하긴요. 회사 이미지 깎이고 플랫폼에 연락하는 저는 욕을 먹겠고 조팟님은 시말서 쓰셔야죠. 아, 최근에도 시말서 쓰셨는데 참, 계속 이런 식이니 이달 말에 있을 연봉 협상도 긍정적으로 볼 순 없겠네요.”

“아, 아닙니다! 어떻게 해서든 원고 받아 오겠습니다! 지금,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우리 1팀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자기는 언제든지 다른 회사로 갈 수 있다고 개소리를 지껄이던 조팟놈이 드디어 현실을 자각한 모양이다.

자신이 연차 말고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쓸모없는 인간이란 걸. 그런 그가 그나마 사회에서 돈을 벌어먹을 수 있는 곳은 BS북 말고는 없다는 것을.

“그러세요. 금일 업로드할 원고들 제대로 먼저 다 처리하시고요. 차주에 설 연휴 3일이나 끼어있는데 연재 펑크 나는 일은 없어야 하는 거 당연히 알고 있죠?”

“아? 예! 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기는 새끼야.

딱 봐도 이제 알았다는 표정이구만.

“가보세요, 그럼. 그리고 저는 엘가에서 업무 진행하러 바로 갈 거니까 황건일 매니저님한테도 전달해주고요.”

“예, 지금 바로 전달하고 다녀오겠습니다.”

지난 한 달간 1팀에서 함께 일하며 진행한 내 물리 치료가 나름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모양이다. 조팟놈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는 빠르게 회의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달려라 조팟아. 너 같은 놈이 BS북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엉덩이가 가벼운 것 말곤 없으니까. 그럼 어디 슬슬 가 볼까?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BS북과 LGA컴퍼니가 모두 내 손아귀에 들어오자 이런 점이 편하다. BS북에서의 업무 시간에도 별다른 구애 없이 마음대로 사무실을 오갈 수 있으니까.

나는 대회의실에서 나와 마스크와 모자를 챙겨 쓰고 내 개인 사무실이 있는 엘가 사무실 3층으로 이동했다.

3층에 내 개인 사무실이 있지만 혹여 1층이나 엘가 본사가 있는 2층에서 나를 아는 직원들을 마주치면 곤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BS북이 이렇게 빨리 내 손아귀에 빨리 들어올 줄 알았으면 워크샵은 같이 안 가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르겠어. 인제 와서 후회하는 건 딱히 의미 없는 일이긴 하지.’

LGA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엘가가 처음 만들어지고 발리로 처음 갔었던 워크샵 당시 나는 엘가 전속 작가인 ‘노원지귀’로 참가했었다.

당시엔 강경진이 함부로 내 소설피아 쪽지를 삭제하는 증거를 찾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지만, BS북과 LGA컴퍼니가 모두 내 손아귀에 들어온 지금엔 여전히 내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점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슥—

티익—

엘가 사무실 3층으로 올라가 지문을 찍자 굳게 닫혔던 문의 잠금이 풀렸고, 마침 자기 사무실에서 밖으로 나오던 권미현 본부장과 마주쳤다.

“어? 대표님? 일찍 오셨네요? 3시쯤 오신다더니?”

“주간 회의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요. 아래층 내려가는 중이세요?”

“네, 잠깐 담배 타임 하려고 했는데, 대표님한테 보고 먼저 드리는 게 낫겠네요. 회의실에서 잠시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요. 음료수만 하나 챙겨 올게요.”

3층 안쪽에 마련된 탕비실 냉장고에서 내가 마실 주스와 권미현이 마실 캔커피를 하나 챙겨 회의실로 향했다. 권미현은 이미 보고를 마칠 만반의 준비가 되었는지, 노트북과 연결된 빔프로젝터 화면을 띄워 놓은 채였다.

“여기요.”

“감사해요. 일단 웹월드에서 강추강 작가님 원고 확정했고 런칭 일정 안내받았어요.”

권미현은 내가 건넨 캔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미리 정리한 자료를 보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오? 거의 일주일 만에 답변 온 거니까 상당히 빠르네요. 일정 언제로 잡혔어요?”

“최대한 빠르게 잡아달라고 해서 3월 1일이 정식 런칭일이에요.”

“3월 1일이라…… 딱 한 달 남았네요. 오픈은 그럼 전날 되는 거죠?”

“네, 전날 6시쯤에 오픈될 거예요. 강추강 작가님 전작이 종이책이지만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또 저희 LGA컴퍼니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기대작이라고 하니까 최상단 프로모션 걸어주기로 했어요. 배너랑 캐시 환급 다 되는 걸로요.”

지난 1월 나와 계약을 마친 강추강 작가는 미친듯한 속도로 집필을 이어 나가고 있다.

회귀 전에 약간 아쉽게 느꼈던 부분을 살짝 잡아줬을 뿐인데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 또한 훨씬 윤택해졌고.

“좋네요, 표지 러프 스케치 완성된 것도 작가님이 마음에 든다고 하셨으니 이제 런칭만 다 하면 아무런 문제는 없겠네요.”

“네, 저희 쪽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아래층에는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요?”

“문제요?”

아래층에 문제가 생겼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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