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43화 (143/201)

143화 ― 거인들과의 싸움.

* * *

“이게 차암, 이해하기 어렵단 말이에요? 내가 뭐 조팟님한테 부당한 일을 시켰나? 아니면 틀린 말을 했나? 그런데 욕을 하시더라고요?”

“그, 그게…… 저…….”

얼굴이 시뻘게졌다 하얘지기를 수차례 반복하던 조팟은 물 밖에 꺼내 놓은 생선처럼 숨을 헐떡였다.

물론, 그런 조팟놈의 모습이 안쓰럽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거기다 나는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그렇게 숨을 헐떡여서야 쓰것나?

“그게 뭐요? 왜? 편히 말해요. 아? 나는 개새끼라 사람 말로 하면 못 알아듣겠다, 이런 거예요? 뭐 어떻게? 짖어 드려야 하나? 월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아르르! 왈왈!”

“…….”

조팟놈만 들릴 정도의 짓궂은 행동에 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는 예의를 지키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조팟놈은 예의를 밥 말아 먹은 놈.

그동안 기회를 몇 번을 줬음에도 내가 건넨 밥그릇에 알아서 똥을 풀어 넣는데, 언제까지고 나 혼자만 신사적인 스탠스를 취할 순 없는 법이지.

“죄송……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하면 회사 생활 끝납니까? 죄송할 짓은 왜 해요?”

“그게…… 잘못했습니다.”

“오호라, 잘못한 거 알면서 그런 거다?”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변명할 때는 바로 대답이 나오네요?”

“…….”

조팟놈의 입이 다시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한 주 전만 해도 전관예우를 떠올리며 최대한 좋게 좋게 말했었지. 품위를 지켜가면서.

그렇기에 내 뒤통수에 대고 욕을 한 조팟놈이 입을 닫는다고 해서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조금도 없다.

“뭐야, 선택적 대답만 해요? 이제 변명도 안 합니까?”

“크흡, 그, 그런 거 아닙니다!”

“이야, 아주 딱 부러지게 말하시네. 욕도 모자라 이제 한 대 치겠습니다?”

“그게…… 죄송…… 정말 죄송합니다…….”

조팟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쓰레기 같은 새끼, 울면 회사생활 끝나냐? 나 좆 돼 보라는 거냐? 라는 연속기를 준비하려는 그때였다.

드르륵— 드륵—

책상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항상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고 다녔지만, 이제 그럴 필요는 없다.

팀장이 되면서 바뀌게 된 자리는 창가를 등지고 있어서 누구도 내 액정화면을 볼 일이 없으니까. 좌불안석인 조팟을 뒤로하고 사납게 진동하는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화면에 뜬 발신자는 LGA컴퍼니의 디자인 본부장이자 BS북의 웹툰 본부장인 이지연.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기 위해 회의실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조팟놈에게 상냥한 경고를 건넸다.

“조팟님, 제가 좋게 좋게 말해도 앞으로 그런 태도면 정말 힘들어진다는 거 알죠?”

“……주의하겠습니다.”

“아뇨, 주의 말고 명심하세요.”

“……예, 팀장님.”

좁디좁은 어깨가 불판에 올린 오징어처럼 말려가는 조팟놈을 뒤로한 채, 나는 소회의실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네, 지연 본부장님.”

—대표님, 통화 가능하세요? 정명진 씨 조금 전에 면접 끝나고 가셨는데요, 한가지 확인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지난 금요일 헤드헌팅연락을 보낸 정명진에게서 곧장 연락이 왔다. 그리고 오늘은 정명진의 면접날이다.

나 혼자만 상하차의 웹툰 디렉터가 될 정명진은 BS북 소속으로 채용해야 되기에 이지연이 3층 BS툰 웹툰 본부장실에서 정명진과 면접을 진행했다. 그리고 정명진의 면접이 이제야 막 끝난 모양이다.

다만 핸드폰 너머로 이지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니 정명진의 면접에서 무언가 이슈가 발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네, 말씀하세요. 무슨 문젠가요?”

—음, 이게 정명진 씨 문제라기보다는…… 아니, 문제긴 하네요. 잠시 올라와 주실 수 있으세요?

“네, 지금 바로 올라갈게요.”

계단을 2개씩 성큼성큼 뛰다시피 건너 뛰어 올라가 BS툰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이지연이 있는 웹툰 본부장실에 도착해 문을 두들겼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부르셨습니까, 본부장님.”

고개를 꾸벅 숙이며 건넨 말에 이지연이 피식 웃으며 손짓으로 문을 닫으라고 시켰다.

“인사 뭐예요? 우리끼리?”

“BS북에선 제 신분을 아는 사람이 지연 본부장님이랑 무진 본부장님뿐이잖아요. 누가 볼지 모르는데 일단은 계속 주의해야죠. 그것보다 무슨 일이에요? 면접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끌어당긴 의자에 앉으며 내뱉은 말에 이지연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경력도 업무 능력도 워낙 뛰어난 분이셔서 당장 실무에 투입해도 전혀 문제 될 건 없어요. 그런데…… 사람 자체가 뭐랄까…… 조금 과하게 열혈이셔서요.”

“열혈이요?”

“네, 약간 무서울 정도로 열혈이에요. 면접 보시고 당장 오늘부터 일 나오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예? 오늘요? 아직 하늘거북 스튜디오 소속 아니었어요? 그게 가능해요?”

현재 베타 버전을 제작 중인 ‘에르미스’ 그리고 에르미스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나 혼자만 상하차’의 웹툰 제작 진행을 빨리 시작할 수만 있다면 내게 나쁠 건 없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를 당장 때려치우고 나오겠다는 정명진의 행보는 평범한 사람의 행동이 아니다. 놀란 눈으로 되묻는 말에 이지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정명진 씨가 현재 프리랜서 계약으로 하늘거북 스튜디오에 묶여 있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안 그래도 지금 막 프로젝트 끝나고 잠시 쉬는 타이밍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 물어보셔서 나혼상 원고 보여드리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이지연은 정명진과 면접을 보던 때가 아직 떠오르는지 표정에서 당혹감을 완전히 다 갈무리하지 못한 채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아니…… 그런데 원고 보자마자 너무 열정적으로 바뀌시더라고요. 본인이 이전에 작업한 작업물을 보여 주시면서 채색은 이런 식으로 하면 좋겠고, 후처리는 어떤 식으로 효과를 넣으면 좋겠다는 식으로요. 거기다 직접 그 자리에서 캐릭터 러프 스케치까지 짜서 그리셨구요.”

“으음…… 바로요?”

“그렇다니까요? 그러시더니 당장 나와서 작업하고 싶다고 그러셔서 아직 완전히 채용 확정이 된 것도 아니라고 말리느라 혼났어요. 열정이 많으신 건 좋은데…… 조금 과하신 게 아닌가 해서…… 정명진 씨 정말 채용해도 괜찮은 게 맞을까요?”

‘흠…… 확실히 평범한 사람은 아니네?’

되묻는 이지연의 눈에서 불안감이 가득 읽혔다.

LGA컴퍼니는 다른 회사와 달리 직원들의 자유도를 최대한 중시하는 회사다.

그럼에도 회사는 회사이기에 회사의 모든 업무 진행은 체계 안에서 이뤄져야만 한다. 그렇기에 정명진을 자신의 부하로 둬야 하는 이지연이 저런 불안감을 내비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통제할 수 없는 요소는 사고를 일으키는 법이니까.

나는 회귀 전 정명진이 만들어 낸 실적을 알고있다. 하지만 정명진이란 인물을 처음 본 이지연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담당해야 할 부하 직원을 케어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하겠지.

“면접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확실히 열정이 넘치시는 분이세요. 다만 저희 LGA컴퍼니는 야근 신청하고 결재 승인 나지 않으면 야근도 따로 못 하잖아요.”

“그렇죠?”

“네, 그래서 그래요. 정명진 씨 보니까 스스로 몸을 갈아 넣는 타입일 것 같아서 걱정돼요. 물론, 대표님 덕분에 결재 승인 없이는 야근을 하고 싶어도 못하지만요. 눈도 약간 퀭하신 게 조금 불안하고요.”

LGA컴퍼니의 경우 아무나 야근을 할 수 없다.

정당한 사유와 함께 야근 신청 후 결재 승인을 받지 못하면, 얼마 뒤 컴퓨터 전원이 아예 꺼져버리기 때문이다.

이지연의 설명으로 미루어 보자면 정명진은 전형적인 워커홀릭. 그리고 그렇게 이어진 과로로 인해 그가 미래에 어떻게 될지, 나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정명진을 더욱 우리 회사로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든다. 내 울타리에 담지 않는다면 그는 신이 난 야생마처럼 열정과 함께 그의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폭주할 게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

“음…… 그럼 지연 본부장님의 말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보자면, 인성이나 능력 면에서는 모난 곳이 없다는 게 맞을까요? 단지 너무 열혈인 게 조금 걸린다는 거고요?”

“네, 맞아요. 그래서 최종 채용 여부를 정하기 전에 대표님께 상의를 드리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일단 함께 해보도록 해요. 저희 야근 시스템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업무 외 시간에 근무는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 미리 채용 통보 전에 주의시켜 드리고, 종합건강검진 먼저 신청해주세요.”

“종합건강검진이요?”

“네, 복지 차원에서 검진 비용은 회사에서 부담한다고 해주시고, 위랑 장 내시경까지 싹 다 포함해서 진행하게 해주세요. 특히 팔 부위에 이상 없는지 정밀 검사 신청해달라고 무진 본부장님께 말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그것 외에 다른 조건들은 모두 마음에 들어 하시던가요?”

내 물음에 이지연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랜서가 아니라 정직원에 성과급 분기마다 따박따박 나오는 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대표님께서 모르셔서 그렇지 그림 그리는 사람들 중에서는 우리 LGA컴퍼니 못 들어와서 안달이에요.”

“하하, 저도 알고 있죠.”

내 작품 외에도 최근엔 BS북의 인수 그리고 BS북의 기존 고인물들을 내치는 데 정신이 팔려 우리 LGA컴퍼니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단지 출판만화계를 위한 경영 철학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갔을 뿐인데 창업한 지 몇 년도 되지 않아 이런 평가를 받는다는 게 낯설면서도 뿌듯한 기분이다.

“물론 정명진 씨는 LGA컴퍼니 소속이 아니라 BS북으로 채용하는 거지만, LGA컴퍼니에 준하는 복지와 연봉이니까 좋아할 수밖에요. 아! BS북 소속으로 입사하고 LGA컴퍼니로 파견되는 것도 상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명진 씨는 단지 나혼상 작업을 빨리하고 싶어서 혈안이 된 것 같았으니까요.”

이지연이 정명진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보니 면접 때 상당히 시달리긴 한 모양이다.

나 혼자만 상하차의 원작자인 강추강 작가 또한 한번 집필에 빠지면 다른 사람이 불러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 주는 사람이다.

‘원작 작가인 강추강도 열혈맨이신데 정명진도 열혈맨이라…… 이러니 대작이 나올 수밖에 없겠지.’

나혼상의 웹툰 디렉터가 될 정명진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새롭게 그려 나갈 역사가 잔뜩 가슴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아직은 멀었지만, 그들과 함께 바꿔나갈 출판계의 미래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거대 플랫폼들, 거인들과의 싸움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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