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 이래야 회사 다니는 맛이 있지.
* * *
“……예에? 우리 플랫폼이요?”
“아직 출시도 안 됐잖아요?”
놀란 듯 서로를 잠시 바라보던 이지연 본부장과 권미현 본부장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를 향해 쏟아졌다.
미리 입을 맞췄던 단풍 삼촌과 나만이 피식피식 웃음을 짓자 권미현이 눈을 작게 뜨며 우리 둘을 매섭게 훑었다.
“뭐예요?! 무진 본부장님하고 대표님만 서로 정보 공유한 거? 와아, 진짜 다른 곳은 몰라도 우리 회사는 학연 지연 이런 거 없을 줄 알았는데, LGA컴퍼니에도 지연을 챙기는 분이 계셨네요. 그것도 대표님께서 직저업!”
매섭게 쏘아보는 권미현 본부장 그리고 하얀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샐쭉이는 이지연 본부장의 모습을 보니 장난은 여기까지만 쳐야 될 듯하다.
“크흠, 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끼리 다 모이는 자리에서 같이 말씀드리려고 한 거였죠. 여하튼
바로 설명해 드릴게요, 브루나이 정부의 협업으로 진행 중인 해외 플랫폼 제작이 거의 막바지 단계에 다다랐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 달이면 베타 서비스를 진행하기로 했고요.”
“세상에! 거의 1년…… 아니 1년도 안 돼서 완성이 됐네요!”
“와…… 벌써 1년이라니. 하긴, 제가 병신북 퇴사한 것만 해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네요.”
“어허, 미현 본부장님. 병신북이라뇨. BS북도 이제 같은 한 식구예요. 잊으셨어요?”
“아…… 그렇긴 하네요. 쓰읍, BS북은 당한 게 많아서 그런지 정감이 안 가긴 하는데. 더 노력해 볼게요. 그러면 저희 플랫폼 런칭 일정은 언제로 정해졌어요?”
권미현 본부장이 툴툴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장난일 뿐,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피식 웃음 지은 나는 그녀의 말에 답했다.
“우선 베타 버전은 2월 넷째 주 월요일인 2월 22일 월요일에 진행하기로 했어요.”
“2월 22일이면…… 정확히 한 달 뒤네요?”
“네, 베타 버전은 우선 아마추어 웹툰 작가들 그리고 글 작가들의 데뷔 장으로 사용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정식 런칭은 베타 서비스를 시작하고 3달 뒤인 5월 23일 월요일에 정식 런칭을 진행하려고 해요. 그리고 런칭하는 그때 나혼상 웹툰을 처음으로 선보일까 하고요.”
소설피아, 테일랜드, 웹월드.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한국의 웹소설 3대장이라는 이름으로 우뚝 서있을 메인 플랫폼들이다.
그사이 다른 몇몇 플랫폼들이 탄생하고 없어지는 와중에도 3대장은 꿋꿋이 스스로의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리고 몸집을 불려가면서 메인 플랫폼 3대장의 갑질과 횡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점점 심해져만 갔다.
‘따지고 보면 가장 악질적인 놈들이라고 할 수 있지. 작가를 위하는 척하더니 뒤에선 웃는 얼굴로 작가들이 눈치채지도 못하는 사이 골수에 빨대를 꽂고 있었으니까.’
테일랜드던 웹월드던 지금이야 작품 종 수가 몇 없으니 각 출판사를 찾아가 작품 하나만 주십쇼 행님 같은 소리나 하고 있지, 앞으로 몇 년만 더 지나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듯 상상을 초월하는 갑질을 시작할 게 눈에 훤했다.
그렇기에 그동안 계속해서 플랫폼 사업 진행을 준비한 거고 내가, 아니, 우리가 만든 플랫폼이 사람들의 뇌리에 사로잡히기 위해선 놈들이 더 몸집을 키우기 전에 치고 들어가야 한다.
“후우……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 남지 않았네요.”
“어? 지연 본부장님, 일정 무리일까요? 무리면 정신 런칭일 뒤로 미뤄도 상관없어요.”
평소 이지연과 직원들의 업무 속도를 대략 알기에 정한 일정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잘못 판단한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일정을 너무 타이트하게 짠 것 같네요. 지연 본부장님이랑 저희 직원들한테 부담스러운 일정이면—”
“아뇨, 이 정도면 괜찮아요.”
나 혼자만 상하차의 웹툰 런칭 일정을 곧장 수정하려고 꺼낸 말에 이지연 본부장이 평소와 사뭇 다른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솔직히 그동안 대표님이 하도 일정 넉넉하게 주셔서 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이제 좀 일할 맛 나겠네요, 후후.”
“……아, 그런 뜻이었어요? 그래도 혹시—”
“대표님, 인력 충원 얘기는 꺼내지도 마세요, 절대 안 바쁘니까요.”
“…….”
내가 이지연을 잘 파악하는 만큼, 이제 이지연도 내 성향을 잘 파악한 걸까? 도끼 눈을 뜬 이지연은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 단칼에 내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리고 하늘거북 스튜디오 정명진 씨도 디렉터로 영입할 예정이잖아요. 추가 인력은 지금만 해도 충분하니까 말도 꺼내시지 마세요. 지금도 대표님이 인성 조금 좋다는 사람들은 하도 뽑으셔서 인턴 자리도 거의 꽉 찼다구요!”
“아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나 혼자만 상하차 저희 플랫폼에 런칭하는 건 지연 본부장님만 믿고 있을게요.”
“네, 지금까지 해온 일들처럼 일정 펑크 날 일은 전혀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 참! 이름은요? 이름은 어떻게 정해졌어요?”
자신을 믿어달라며 가녀린 어깨를 으쓱거리던 이지연 본부장은 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름이요? 아? 저희 플랫폼 이름 말씀이죠?”
“네. 베타 오픈도 코앞이면 이제 이름은 정해졌을 것 같아서요.”
내게 물음을 던진 이지연 본부장뿐만이 아니라 권미현 본부장 또한 궁금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하, 사실 들으시면 조금 김빠지실지도 모르는데요.”
“뭔데요? 궁금해요!”
“대표님, 빨리 알려주시죠.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어디 있어요! 뭐야, 무진 본부장님도 알고 계셨나 보네? 표정 보니까?”
“그아하하! 미현 본부장님, 워~ 워~ 진정하십쇼. 저는 아무런 잘못 없습니다. 대표님이 말하지 말래서 말 안 한 것뿐이니까요.”
단풍 삼촌, 이 인간 좀 보게?
플랫폼 이름이나 일정에 관해서 본부장님들에게 서프라이즈로 알려주면 좋겠다고 한 게 자기면서 이렇게 발뺌을 한다고?
능글맞은 너털웃음을 지어대며 내 시선을 회피하는 단풍 삼촌이 오늘따라 상당히 얄밉다. 하지만 계속 장난을 치고 있을 시간은 없다. 강추강 작가와 계약을 한 순간부터 이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야 하니까.
“저희 플랫폼 이름은 에르미스로 정했어요.”
“어? 에르미스요? 저희 워드 프로그램 이름도 에르미스잖아요. 아예 동일하게 가는 건가요?”
조금 놀란 듯 묻는 이지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네, 맞아요. 에르미스를 워드 프로그램에만 쓰기가 조금 아까워서요. 에르미스가 글쓰기의 신이잖아요. 비록 저희가 만드는 플랫폼의 시작이 웹툰 그리고 만화 부분을 메인으로 내세운 플랫폼이긴 하지만 웹툰도, 웹소설도 결국은 이야기, 글쓰기가 기반이 되는 거니까요. 그리고 예술의 신이기도 하고요.”
그리스 신화의 남신 헤르메스.
도둑의 신, 전령의 신, 상인의 신으로 유명한 그는 과학, 예술, 연설, 웅변의 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워드 프로그램과 베타 버전을 앞둔 우리 플랫폼의 이름을 에르미스로 지은 건 그가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글쓰기의 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워드 프로그램에 이어 플랫폼 이름까지 헤르메스의 원어 발음인 에르미스로 정한 게 너무 단순하다는 느낌이 들면 어쩌지 하는 우려가 살짝 드는 그때, 권미현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음…… 저는 김빠지긴커녕 마음에 드는데요? 솔직히 워드 프로그램에만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 아까운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요.”
“그때 워드 프로그램 이름 정할 때도 그랬잖아요. 에르미스라는 뜻 자체가 가방으로 유명한 명품 회사 느낌도 나는 것 같다고요.”
권미현의 설명에 이지연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명품 느낌이 나는 글쓰기의 신! 저도 좋아요. 솔직히 이상한 이름으로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었는데 다행이에요. 에르미스라고 하니까 글과 예술의 신이 관장하는 느낌도 들고요.”
“본부장님들 모두 마음에 들어하시니 좋네요. 그럼 이제 우리 에르미스가 테일랜드, 웹월드 그리고 소설피아를 앞지를 그 날을 위해서 다 같이 힘내 보도록 하죠. 그리고 추가적으로 전달 드릴 내용은…….”
강추강 작가와 계약을 하고 온 그다음 날.
새로운 LGA컴퍼니의 회의실에서 우리는 한동안 우리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점점 갑질을 일삼을 플랫폼들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회의를 계속 진행했다.
* * *
얼굴에 적셨던 물처럼 주말을 빠르게 흘러갔고 어느새 월요일이 돌아왔다.
오늘은 1월 25일 월요일.
BS북의 매달 25일은 월급날이기에 모든 직원들의 얼굴에 유일하게 웃음꽃이 가장 많이 피어 있는 날이다.
물론 잠시 폈다가 지는 선인장의 꽃처럼 대부분의 월급은 직원들의 통장을 잠시 스칠 뿐이다. 그럼에도 BS북의 직원들이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달은 단연코 25일일 테다.
“오오! 월급 들어왔…… 헐? 대박사건!”
그리고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로맨스 팀 매니저 한 명의 입에서 옅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뭔데 그래요?”
“통장…… 통장 보세요!”
“음? 뭐길 래애에엨?! 뭐, 뭐예요 이거? 이거 전산 오류 아니예요?”
“원래 월급보다 훨씬 더 들어와 있는데요?”
“저, 저도요!”
“허어얼! 뭐야 이게에?!”
선물이란 원래 예고 없이 받을 때 도파민이 더 터져 나오는 법. 그리고 이제 산타클로스가 등장할 타이밍이다.
“어?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나와 입을 맞췄다는 듯이 정확히 오전 10시 5분에 맞춰 BS북의 새로운 대표 오진아가 2층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그녀를 보고 사자후처럼 내뱉은 나의 인사에 사람들 모두가 합창하듯 오진아에게 뒤따라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대표님, 안녕하세요!”
사람들의 인사에 오진아는 최대한 환한 미소를 짓기 위해 입가를 억지로 꿈틀거리며 고개를 숙여 답했다. 그리고 사무실 정 중앙으로 들어온 그녀는 모두가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난 한 해 동안 고생해주신 BS북의 직원 여러분들 그리고 떠나지 않고 새로운 BS북을 함께 일궈나가기로 다짐해주신 분들을 위해 약소한 상여금을 넣었습니다.”
“약소하지 않습니다, 대표님!”
“와하하하!”
어느 매니저 한 명의 말에 웃음이 전염되듯 사무실 안은 떠들썩해졌다. 오진아는 슬쩍 손을 들어 올려 그들의 웃음을 잠재우고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동안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드린 약소한 선물입니다. 여러분께서 회사에 헌신해주시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여러분들께 보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대표님!”
“대표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열화와 같은 박수 세례 속에서 오진아는 가벼운 인사를 끝으로 다시 사무실 밖을 빠져나가 대표실로 이동했다.
“와, 진짜 대표님 바뀌니까 정말 회사 다닐 맛 나네요!”
“전 회사 정년퇴직할 때까지 다닐 거예요.”
“에이 참? 중소기업에 정년이 어디 있어요?”
“말이 그렇다는 거죠, 헤헤.”
그리고 모두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는 그때, 절대 웃지 않아야 할 한 놈의 얼굴에도 슬쩍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조팟님, 웃어요? 기분 좋나 봐요?”
“……예에? 아, 안 웃었습니다.”
새로운 한 주의 시작.
일단 조팟놈부터 조지고 시작해야겠다.
“아니, 분명히 웃었는데? 남 욕하고 아주 웃음이 지어지나 봐요? 아주 신이 났네 그냥.”
“…….”
“왜 아무 말도 없어요? 기억 안 나요? 지난주 목요일에 나한테 뭐라고 하셨더라? 개새끼? 음? 말 해봐요. 내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러니까.”
“…….”
역시 조팟놈을 자르지 않길 잘했다.
이래야 회사 다니는 맛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