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 그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선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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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웹소설 작가 강추강과 계약을 하고 난 다음 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다만 내가 돌아온 곳은 BS북이 아닌 LGA컴퍼니다.
“확실히 독립된 공간이 있어서 좋네요. 3층엔 테라스가 따로 없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요.”
“에이, 차라리 테라스 없는 게 낫죠. 그래야 대표님도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다 편하게 다닐 수 있고요.”
“하하, 그렇긴 하네요. 우선 당분간은 BS북이 새로운 대표 체제에서 자리를 잡힐 때까지 있다가 본부장님들이 하시는 것처럼 BS북이랑 엘가 오가면서 업무 보도록 하려고요.”
LGA컴퍼니와 BS북이 사실상 한 회사나 다름없게 되었다 보니, 확실히 업무적인 효율이 더 증대된 거 같다.
LGA컴퍼니의 사무실은 BS북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골목 몇 개만 지나가면 나오는 신축 오피스. BS북과는 도보로 약 5분 정도 거리.
기존에 2층 하나만 사용하던 것과 달리 이번에 BS북과 사실상 합병을 하게 되면서 같은 건물의 3층 또한 우리 엘가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공사가 빨리 끝났네? 역시 돈이 있으면 안 되는 게 없구만?’
3층은 2층과 달리 테라스가 없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층 자체가 ‘ㄷ’자 형태의 개인 업무 공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가장 거대한 넓이의 회의실 옆으로 단풍 삼촌을 위한 경영 본부장실, 권미현의 출판 본부장실, 이지연의 디자인 본부장실, 그리고 아무런 이름도 없이 덩그러니 ‘대표실’이라고 적힌 나만을 위한 사무실까지!
언뜻 보기엔 거대 법무 법인의 파트너 변호사들이 사용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절로 웃음을 자아내는 매력이 있다. 그리고 이번 미팅은 회의실 상석에 앉은 날 중심으로 좌우로 빙 둘러앉은 모양새로 진행됐다.
“자, 그럼 강추강 작가 계약 내용으로 미팅 진행해 보도록 하죠.”
본격적인 미팅에 앞서 먼저 강추강 작가와 관련해 정리한 자료들을 엘가 임원진인 단풍 삼촌, 권미현, 이지연 본부장에게 돌렸다.
“강추강 작가님이 어떤 작가님이고 어떤 작품을 쓰실 분인지는, 제가 서울로 오는 길에 설명 드려서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이어진 내 설명에 임원진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중 그 누구도 내가 회귀자란 사실을 아는 이는 없다. 하지만 그간 내가 보여준 실적과 발자취를 모르는 이는 없기에, 더는 내가 작가를 컨택하는 건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았다.
“지금 전달드린 서류는 그 내용 정리한 부분이니 확인용으로 보시면 됩니다. 우선 각 부문별 중대 사항 점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경영 본부부터 이야기 하도록 하죠.”
“말씀하십쇼!”
“경영 본부장님은 작가님 선인세 지급 바로 진행하게 해주시고, 지속적인 특별 관리 부탁드립니다. 특히 작가님이 정식 연재 시작하시면 수익이 상당히 올라가실 수 있으니까 따로 세무사 지원도 준비해두세요. 수익에 따라 지금처럼 작가님 개인 명의가 아니라, 사업자로 변경했을 때 절세 혜택이 있는지 등도 확인해주세요.”
강추강 작가의 경우, 연재를 시작함과 동시에 억대 매출은 우습게 뽑아낼 사람이다. 그러니 소득세 관련해서도 분명 골치를 겪을 게 분명할 터!
내가 해야할 건 강추강 작가가 완결까지 온전히 집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헌신적이란 말이 부족할 정도의 지원을 LGA 차원에서 퍼붓는 것이었다.
“그리고 출판 본부 관련 사항 전달드릴게요.”
“네, 대표님.”
권미현 본부장이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강추강 작가님께서 현재 15화 분량 정도 있으세요. 오면서 전화로 말씀드렸다시피 강추강 작가님은 제가 전담하기로 했고, 금일중으로 15화 원고 교정하고 윤문해서 작가님 드리기로 했어요.”
“런칭 플랫폼은 웹월드에서 진행한다고 하셨는데 그럼 작가 교정본 받고 웹월드에 심사 요청하는 걸로 준비하면 될까요?”
“아뇨, 작교본 받기 전에 제가 드린 교정본으로 바로 웹월드에 심사 넣을 수 있도록 부탁드려요. 저희 엘가에서 가장 기대작으로 나올 거니 프로모션 협의 최대한 잘 부탁드리고요.”
“그럼 대표님한테 교정본 받고 원고 넘기도록 할게요. 웹월드도 제가 직접 찾아가서 인사드리도록 하고요.”
“네, 고마워요. 그렇게 부탁드리고 테일랜드와 미팅 내용 바로 공유해주세요.”
“네, 대표님.”
독자들 그리고 작가들이 보기에 웹소설 출판사란 온라인상에서 모든 일이 처리되리라 믿는 경우가 있다. 나도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상당히 체계적이고, 스마트한 방식으로 모든 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든 일은 결국 사람 손을 거쳐야만 하는 법이다.
비록 소설피아의 강세에 밀려 2016년도인 지금, 웹월드와 테일랜드는 아직 여러 출판사에 작품을 갈구하는 입장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엉덩이가 무거워서는 안 되는 법이지.’
물론, 지금 우리 엘가가 코즈일과 노원지귀, 그리고 내가 계약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으로 잘 나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플랫폼의 입김이 점점 거세질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플랫폼을 자주 찾아가고 귀찮게 굴어야 떡이라도 하나 더 얻어먹을 수 있는 법. 덤으로 좋은 관계도 유지할 수 있고.
솔직히 마음 같아선 ‘나 혼자만 상하차’ 같은 대작은 강추강 작가에게 몇 년간 넉넉히 쓸 수 있는 돈을 주고, 내가 준비하는 해외 플랫폼이 완벽히 준비될 때까지 런칭을 미뤄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건 나의 욕심일 뿐, 작가를 위한 방법이 아니다. 지속적인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퇴화하는 것처럼 글 또한 꾸준히 연재를 하지 않는다면 글근육이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더욱이 회귀 전 나혼상의 경우, 웹월드에서 얼마나 프로모션을 빵빵하게 밀어줬는지 알기에 강추강 작가를 위한 기회를 날려버릴 수는 없다. 물론 보험은 당연히 들어 놔야 하지만.
“그럼 이제 디자인 본부에서 해야 할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아마 지금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할 것 같은데요.”
“네, 대표님. 표지 말씀이시죠? 안 그래도 일러 팀에 나혼상 일러 제작 일정 빼놔 달라고 전달했어요.”
강추강 작가와의 미팅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대략적인 상황만 전달했을 뿐인데, 벌써 밑작업을 다 끝냈다는 이지연의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동안 엘가의 대외적인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업무 진행 프로세스를 누구보다 더 빠삭하게 파악하는 역량이 생긴 모양이다.
“잘하셨어요, 지연 본부장님. 다만 지금 표지만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중요한 부분이 있어요.”
“더 중요한 부분이라면…… 웹툰도 바로 진행하실 계획인가요?”
조금은 놀란 듯이 묻는 이지연의 말에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맞습니다. 나혼상의 경우 웹소설 원작도 상당한 인기를 얻을 거지만 강렬한 액션 부분이 많아서 웹툰화가 되면 그 인기는 상상이 초월할 거예요.”
“네, 그러면 웹툰화도 바로 진행을—”
“다만…… 추가 인력이 필요합니다.”
“추가 인력이요?”
지속적인 추가 직원 채용 그리고 인턴 제도 도입 이후로 우리 엘가는 인력이 부족하지 않다. 그런 상황에 추가 인력을 언급하니 토끼 같은 얼굴로 눈을 끔벅일 수밖에 없을 테지.
“네, 지연 본부장님이나 저희 직원들이 부족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나혼상의 경우 작화와 채색에 디렉터가 따로 있었으면 해요.”
“어…… 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정명진 씨라고 하늘거북 스튜디오에서 일하시는 분이세요. 10년 차 경력자이신 분인데 그분이 꼭 필요합니다.”
“정명진…… 정명진? 아! 들어 봤어요. 하늘거북 스튜디오에서 했던 웹툰 중에 AD(Art Director)로 참가하셨던 이름을 본 것 같은데. 대표님께서 따로 아시는 분이세요?”
따로 아는 분이냐…….
상당히 곤란한 질문이다.
실제로 하늘거북 스튜디오의 정명진을 내가 따로 만나본 적도, 대화를 나눠본 적도 단 한번도 없다.
하지만 완전히 모른다고 하기도 어렵지.
정명진은 회귀 전 나 혼자만 상하차의 웹툰을 처음부터 담당했던 사람이니까.
“강추강 작가님이랑 작품 이야기 하면서 웹툰화 이야기도 말씀 드렸었거든요. 그리고 계약서에 적혀있는 건 아니지만 강추강 작가님께서 나혼상 웹툰화가 진행되면 꼭 정명진 씨를 자기 웹툰 담당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요. 작화도 작화지만 후처리 효과가 너무 좋아서 꼭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시더라고요.”
“으음……. 원작자님이 그렇게 말하시면 어쩔 수 없긴 하겠네요.”
‘죄송합니다 강추강 작가님. 선의의 거짓말 한 번 했습니다.’
강추강 작가의 이름을 팔아서까지 엘가 임원진들에게 대놓고 이런 거짓말을 한 건 정명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강추강 작가의 원작이 불이라면 정명진의 그림은 기름. 그 둘이 합쳐졌을 때 한반도는 나혼상의 뜨거운 열기로 들썩였다.
물론, 내가 발굴해서 키운 이지연 본부장이나 그녀의 밑에서 일하는 엘가의 웹툰 팀 직원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작품은 몰라도 나혼상이라는 작품에 있어서만큼은 정명진의 그림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게 있을 수가 없다.
‘물론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
정명진 작가는 유명한 웹소설에 불과했던 나혼상의 이름을 한국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퍼뜨렸다. 그로 인해 나혼상은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장르로 뻗어나갈 수 있었고.
하지만 무협지 속 무림 고수들이 진기를 뽑아 쓰듯, 혼신을 다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작품에 갈아 넣었던 정명진 작가는 나혼상의 웹툰 완결을 끝으로 웹툰계를 완전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계속된 과로로 인해 자신이 그림을 그리던 한쪽 팔을 영원히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했으니까.
‘정명진 작가가 팔에 지병이 있으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 나도 신문 기사로 보고 정말 놀랐었고.’
정명진에게 손 쓸 수 없는 일이 닥쳐, 더는 그림을 그리지 못 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충분히 있다. 그렇기에 최대한 그를 내 곁으로 데려와 잡아둬야 한다. 그가 더 좋은 작품을 계속 그릴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지만 고민이 되네요…….”
“아 영입 비용은 최대한 정명진 씨가 요구하는 금액으로 맞춰 주세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분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몰라서요.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LGA컴퍼니에서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성품도 중시하잖아요. 일에 대한 태도도 그렇고요.”
음, 그건 맞는 말이다.
나 또한 그가 엄청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과거의 사실로만 알고 있지 그의 인성에 관한 건 아무것도 아는 사실이 없었으니까.
비록 나는 회귀 전의 기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명진이 나혼상의 웹툰화를 위한 최적화 된 사람인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단지 그의 그림 그리는 실력일 뿐.
단지 그의 실력만 보고 무작정 채용을 한다면 LGA컴퍼니의 기본 신조를 무너뜨리게 되는 걸 테다.
‘그래서는 안 되지. 회사의 경영 이념에 위배되는 단 한 번의 실책이 회사 전체의 가치를 무너뜨릴 수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엘가로 데려오지 못한다고 해서 내 사람이 될 수 없는 건 아니지.
“정명진 씨는 LGA컴퍼니가 아닌 BS북 소속 직원으로 채용하기로 하죠. 그리고 채용 확정되면 바로 LGA컴퍼니 쪽으로 파견 나오도록 시키고요.”
BS북도 이제 내 회사나 마찬가지인데 뭐.
큰 돈 주고 샀으면 이럴 때 써먹어야지.
이어진 설명에 이지연은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 지연 씨가 놀랄 건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말은 이제 꺼낼 거니까.
“정명진 씨 합류하면 웹툰 제작 바로 진행할 준비 해주시고요. 그리고 하나 더, 웹툰은 웹월드에서 진행하지 않을 겁니다.”
“네? 웹툰을 웹월드에서 진행하지 않는다고요?”
“설마 테일랜드에서 연재하시려는 거세요? 원작 소설을 웹월드에서 런칭하는 거면, 웹툰도 웹월드에서 런칭하는 게 푸시를 더 많이 받을 것 같은데…….”
내 말의 뜻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이지연뿐만이 아니라 권미현 또한 토끼 눈을 뜨고 놀란 듯이 갈고리를 내게 던졌다. 하지만 나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테일랜드도, 웹월드도 아닙니다. 연재할 플랫폼은 따로 있어요.”
“다른 곳이 더 있나요? 유의미한 수익이 날 만한 메이저 웹툰 플랫폼은 그곳 둘 뿐일텐데…….”
“대체 어디를 말씀하시는 거세요?”
장르판을 뜨겁게 달굴 대작, 나 혼자만 상하차.
이 대작의 웹소설 수익은 몰라도 웹툰 수익까지 다른 곳을 퍼 줄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결국 하나뿐이지.
“나혼상의 웹툰은 우리가 제작하는 플랫폼. 그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선보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