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 아직 중요한 게 아직 하나 더 남았지.
* * *
덜컹—
내가 코즈일인지 묻는 말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당황한 표정을 갈무리할 새도 없이 강추강 작가의 입이 다시 조심스럽게 열렸다.
“저……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실은 매니저님 노트북 내용을 봤습니다.”
“아…….”
“처음엔 교정 업무를 진행하시는 줄로 알았는데, 계속 지켜보니 교정이나 윤문이 아니라 집필을 하고 계시는 것 같더군요.”
“…….”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할 수가 있나.
전설의 작가 옆에서 집필을 한다는 생각에 들떠 새하얗게 잊고 있었다.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며 나를 부르던 강추강 작가의 묘한 눈길! 강추강 작가는 이미 그때부터 내가 누구인지를 파악한 거였다.
‘빌어먹을,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아무리 강추강 작가라도 내가 작가 생활까지 한다는 걸 밝힐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내가 직접 밝힌 것을 제외하고 내 본캐가 탄로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가장 먼저 내 정체를 간파한 오진아 대표의 경우 사람의 손짓 그리고 입모양의 움직임만으로도 진실을 간파해 낼 수 있는 예리한 눈썰미의 소유자다.
하지만 강추강 작가의 경우 내가 지근거리에 다가가 부르는 말도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로 고도의 집중력을 집필에 쏟아부었던 사람.
‘그래서 마음 놓고 나도 옆에서 내 글을 썼던 거였는데…….’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됐든 간에 강추강 작가가 내 정체를 파악한 것은 사실이다. 조심스러우면서도 결연하게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거짓말을 해봤자 씨알도 먹히지 않으리란 생각이 가득 들기에 눈앞이 아득해진다.
“매니저님. 제가 매니저님의 정체를 누군가에게 밝히려고 꺼낸 말이 아닙니다. 일단 진정하시죠.”
“아…… 예.”
아직 계약서에 확실히 도장도 찍히지 않은 상황에 이런 말을 꺼낸 걸 보면 따로 내게 부탁하고 싶은 게 분명히 있을 터.
코즈일이란 본캐가 완전히 까발려진 상황을 타개할 방법조차 모색하기 전, 강추강 작가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사실…… 처음에 바로 말씀드릴까 했습니다만, 제 작품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코즈일 작가의 글을 쓰는 분이 매니저님이란 게 믿기 어려워 놀랍기도 했고요.”
“…….”
놀랄 만하지.
아니, 이걸 바로 말하지 않고 지금까지 꾹 참은 게 용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가 조팟놈 같은 성격이었다면 대뜸 ‘왐마? 코즈일 작가님 아니세요?’ 같은 소리나 해댔을 테니까.
“굳이 밝히지 않으셨음에도 매니저님이 코즈일 작가님이냐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던 건 제가 코즈일 작가님의 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즈일 작가님이 소속 된 LGA컴퍼니에서 연락이 왔을 때 고민 없이 미팅을 수락 한 거였고요.”
“음……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다는 부분이 제가 코즈일인 것과 관계가 있는걸까요?”
강추강 작가가 이 얘기를 꺼내게 된 게 계약 조건에 한 가지만 더 추가하고 싶다면서 나오게 된 말이다. 단순히 내 정체가 궁금한 거였다면 지금 같은 타이밍에 묻지 않았을 터다.
“맞습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코즈일 작가님의 열렬한 팬입니다. 이미 완결된 남작가 성형 천재가 되었다나 불 지르는 파이어맨뿐만이 아니라 아직 연재 중이신 인턴사원 회장님도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읽고 있죠.”
강추강 작가는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LGA컴퍼니에서 처음 연락이 왔을 때부터 코즈일 작가님 혹은 제가 코즈일 작가님처럼 좋아하는 노원지귀 작가님을 발굴하고 담당해주신 편집자님께 담당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연신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맥 때문인지 아니면 코즈일 본인인 내 앞에서 팬심을 밝혀서인지, 강추강 작가는 덥수룩한 수염과 어울리지 않게 양 볼을 붉게 물들였다.
“저는…… LGA컴퍼니와 계약을 하게 된다면 제 작품이 완결이 나기 전까지 제 글의 담당이 박정우 매니저님, 아니, 코즈일 작가님 단 한 분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조건을…… 계약서에 넣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후우…….’
비록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혹여나 강추강 작가가 내 정체를 빌미로 터무니없는 계약 조건을 요청하거나 협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자신을 반성하며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는 그때, 불안한 표정을 지은 강추강 작가의 말이 이어졌다.
“물고기를 알려면 물가로 가고, 새의 노래를 알려면 산으로 가야 하며,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집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코즈일 작가님 혹은 노원지귀 작가님 같은 글쟁이가 되고 싶은 마음에 LGA컴퍼니와 계약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특히 매니저님, 아니, 작가님이 누구신지 알게 된 이상 제 글의 담당 매니저님이 되시기를 욕심을 부려보고 싶네요…… 선인세나 다른 계약 조건을 조절하더라도—”
“강추강 작가님.”
“……?”
강추강 작가의 말이 더 이어지기 전에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말의 흐름을 잠시 끊었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읽힌 강추강 작가의 모든 말은 진심. 그가 진심으로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고 나의 글을 좋아한다는 말 또한 진심인 게 여실히 느껴진다.
성인 남성이 소년처럼 반짝이는 눈망울로 자신의 진심을 내비치는 지금, 한 발짝 뒤로 빼는 부끄러운 짓을 하고 싶지는 않다.
“제 본 필명이 코즈일 그리고 부 계정으로 사용하는 필명이 노원지귀입니다.”
“아, 예. 아니…… 예에에?! 지, 지금 뭐라고요? 노, 노원지귀도 매, 매니…… 아니, 작가님이시라구요?!”
터질 듯이 부릅뜬 눈으로 묻는 강추강 작가의 말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모든 패를 보이지 않는 게 거래의 기본이라는 말이 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작가님. 저는 코즈일과 노원지귀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작가이자 LGA컴퍼니 그리고 BS북의 실질적인 경영자인 박정우라고 합니다.”
“아…… 으아…… 어, 어어…….”
하지만 거래에 따라서는 자신의 패를 모두 보여야 하는 때도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처럼.
“저는 최대한 제 신분을 숨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작가 활동과 편집자 생활을 함께 하는 게 소문이 나서 좋을 건 전혀 없으니까요.”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린 강추강 작가를 뒤로하고 나는 계속 말을 이었다.
“작가님들은 물론이고 LGA컴퍼니와 BS북의 직원들 중에서도 제 신분에 관해 정확히 아는 건 몇몇 임원진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죠.”
“아…….”
“그리고 제가 이렇게까지 솔직히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 모든 것을 보여드리면서까지 작가님께 한 점의 의문도 남지 않게,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작가님의 작품을 직접 담당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아…….”
비록 강경진과 기존 BS북의 임원진들이 회사를 나갔다고 하지만 내 정체를 온전히 밝히는 건 나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상대는 강추강 작가.
앞으로 1, 2년만 반짝 뜰 원 히트 원더 작가가 아니라 한국 웹소설의 판도를, 거기다 한국의 웹툰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효시이자 괴물이 될 사람이다.
강추강 작가의 나 혼자만 상하차는 웹툰을 시작으로, 게임, 애니메이션, 심지어 NFT까지도 발행되는 전설의 작가가 될 터. 마음 같아선 회사 지분을 줘도 아깝지 않다.
비록 8:2로 체결한 계약이지만 거기서 나오는 수익. 그리고 OSMU(One source multi use)로 확장됨에 따라 나 혼자만 상하차가 가져올 부가 수익과 파급력은 강남에 건물을 세워도 될 정도로 커질 테니까.
“저는 작가님의 신작이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인기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 아니…… 그 정도는…….”
“저와 계약하지 않으시더라도 작가님은 그 길에 도착하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제 손을 잡아주신다면…….”
스윽—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는 강추강 작가를 향해,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저는 다른 어느 출판사보다 작가님을 그 자리에 빨리 올려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저를 믿어 주시겠습니까?”
“아니…….”
내 표정이 너무 갑작스러워졌는지 강추강 작가는 잠시 불판 위에 올려진 내 손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불판의 열기로 인해 점점 손바닥 아래 면에 후끈함이 밀려오던 그 순간.
덥썩!
강추강 작가는 양손으로 내 손을 으스러질듯이 강하게 움켜쥐었다.
“감사합니다, 매니저…… 아니, 작가님. 작가님과 함께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편하게 매니저라고 불러 주십시오. 저 또한 최선을 다해 작가님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이제 그럼 본격적으로 마셔보시죠!”
“좋습니다, 하하.”
연거푸 소맥을 말아 마신 술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불판에서 올라온 연기 때문인지. 내 눈에도 그리고 그의 눈가에도 촉촉한 물기가 맴돌았다.
강추강 작가로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출판사를 모두 다 잡은 상황이었고, 나로서는 회귀 전부터 최고의 웹소설 작가 중 한 명이자 존경하는 작가와 직접 계약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니까.
“아! 그 전에 여기요.”
“예? 아아, 서명으로 해도 됩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악수를 한다고 해서 계약이 체결되는 건 아니다. 만에 하나라도 강추강 작가가 마음을 바꿔먹는 일이 없도록, 나는 그에게 펜과 함께 계약서를 다시 들이밀었다.
‘계약이란 서명을 해야 끝나는 법이지.’
스슥— 슥— 스슥—
계인, 간인, 직인 부위에까지 서명을 완료하고 나 또한 미리 준비한 LGA컴퍼니의 법인 도장으로 총 2개의 계약서에 서명을 완료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해도 계속 밀려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렵다.
“하하, 서명도 완료되었으니 이제 정말 저희 LGA컴퍼니와 한 식구가 되셨군요.”
“감사합니다, 매니저님! 이제 본격적으로 마셔보시죠! 으하하하!”
언제 말아둔 건지 강추강 작가가 건배를 위해 황금 비율로 말아둔 소맥 잔을 높게 올리는 그때, 나는 슬쩍 손을 올려 그를 제지했다.
“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부탁드립니다.”
“예? 아직 남은 게 더 있습니까?”
그럼요, 작가님.
아직 중요한 게 아직 하나 더 남았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게 되묻는 강추강 작가에게 나는 삐죽 뻗어낸 검지로 그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소설피아에 올리신 글은 모두 삭제하시거나 비공개 처리 해주시고 연중 공지 하나만 작성 부탁드립니다.”
“예? 연재 중지요? 소설피아에서 계속 연재하는 게 아닙니까?”
사뭇 놀란 표정으로 수북한 턱수염을 벅벅 긁는 강추강 작가에게 빙긋 지은 미소로 화답했다.
“맞습니다, 작가님. 소설피아의 연령대는 40대 이상이 주 독자층이죠. 하지만 작가님의 글은 10대에서 30대 독자층이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해당 독자층이 가장 많이 분포되어있는 웹월드에서 연재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 그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예. 나 혼자만 상하차의 경우엔 며칠만 지나도 바로 실시간 랭킹 1위로 올라갈 정도로 인기가 폭발할 겁니다.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소설피아에서 작품을 빼기도 상당히 눈치가 보일 테고요.”
“아, 그렇군요? 지금 바로 공지 올리고 삭제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작가님.”
실제로 회귀 전에도 무료 연재 기간 동안 소설피아 랭킹 최상단을 자리 잡고 있던 나혼상이 테일랜드로 연재처를 옮기자 소설피아와 테일랜드의 관계는 상당히 나빠졌었다.
물론, 나는 두 거대 플랫폼의 분쟁을 고려해 이런 제안을 강추강 작가에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작가님께서 작품을 내려야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을 못 하지.’
내가 계약서까지 쓰고 침까지 발라 놓은 걸 다른 하이에나들에게 빼앗길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리고 잠시 후 강추강 작가는 소설피아에 올린 글을 다 내린 것을 내 눈앞에 보여주며 폰을 흔들었다.
“매니저님, 삭제하고 공지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그럼 제대로 적셔볼까요?”
“아하하, 좋습니다!”
싱그럽게 울리는 잔 부딪히는 소리를 느끼며 목을 넘기는 술이 더욱 달콤하게 느껴진다.
드디어 전설의 작가가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