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39화 (139/201)

139화 ― 본인 맞으십니까?

* * *

“작가님…… 일단 고개 들어주세요. 부탁을 드려야 할 건 접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글에 관해선 남들보다 월등한 기억력, 한 번에 여러 편을 빠르게 볼 수 있는 속독 능력, 매의 눈으로 오탈자를 잡아내거나 문장을 다듬는 깔끔한 윤문 능력은 내가 편집자로서 지닌 능력이 맞다.

하지만 강추강 작가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 한 편만 올라온 글을 보고 완결, 아니, 외전까지 전개와 설정을 잡아 줄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이건 편집자로서의 내 역량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지 내가 회귀자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미래의 정보일 뿐이니까.

그렇기에 나를 대단한 편집자로 오해하고 고개까지 숙이는 강추강 작가의 모습에 민망함을 너머 죄스러움이 가득 느껴졌다.

“계약 해주신다고 하실 때까지 고개 안 들 겁니다.”

“작가님, 그렇게 부탁하시지 않아도—”

찰싹! 찰싹!

“사내 새끼들이 뭐 하는 거여! 고기 다 탄다 타! 후딱 안 뒤집어?”

지글거리는 고기 익는 소리와 함께 어색한 공기가 우리 사이를 맴돌고 있을 때, 어느새 다가온 식당 아주머니가 우리의 등짝을 때렸다.

“아이고, 이모도 참. 지금 저 중요한 순간이에요.”

“고기 타는 건 안 중해? 시커멓게 타면 다 발암 물질이여! 암 걸리고 싶어?!”

“아이고, 진짜. 알았어요. 좀.”

“작가님, 천천히 이야기 나누시고 고기부터 드시죠.”

“크흠, 큼. 그럴까요? 에잇, 한잔 하고 고기 드시죠.”

어쩔 줄 모르던 나만큼이나 강추강 작가도 지금 상황이 서로 민망했는지, 우리는 말없이 잔을 부딪치고 소맥을 꿀떡꿀떡 목구멍으로 넘겼다.

“저—”

“작가님—”

“어…….”

“아, 먼저 말하시죠, 작가님.”

어색한 침묵 속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을 몇 점 욱여넣고 소맥으로 입을 비웠을 무렵, 민망하기 그지없는 사내들의 찌찌뽕이 발생했다.

나는 어색함을 뒤로한 채 강추강 작가에게 말을 양보했다. 어차피 그가 나와 계약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안 이상 이제 조급할 필요는 없어졌으니까.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인 강추강 작가가 소맥을 다시 한잔 쭉 들이키곤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크으, 매니저님. 상황이 좀 민망하게 됐지만, 제가 매니저님과 계약을 하고 싶다는 뜻은 진심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편집자들을 거쳐 왔지만 매니저님같이 깊은 통찰력이 있는 분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또다시 양심 냉장고가 찔끔거린다.

내가 예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나를 좋게 보는 강추강 작가에게, 다시금 속으로 사죄와 감사의 말을 전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감사합니다. 물론 저야 작가님을 계약하러 온 사람이기에 그렇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지만…… 작가님. 주의하셔야 합니다.”

“예? 주의하라니…… 뭐를요?”

“제가 어떤 계약 조건을 요청드릴지 모르는데 지금처럼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계약을 하겠다고 하시면 정말 큰일 나는 수가 있습니다.”

미끼도 던지지 않았는데 알아서 어망에 들어온 물고기를 싫어할 편집자는 없다. 하지만 과거로 회귀한 내가 작가 생활만 하는 게 아니라 편집자 일까지 겸하는 건, 이 빌어먹을 출판계를 싸그리 갈아엎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강추강 작가의 계약에 앞서 그에게 이 말은 꼭 전하고 싶었다. 이번 작품을 떠나 그가 다음에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하는 일이 온다면 코 꿰는 일이 없도록.

‘물론 한번 잡은 물고기를 내가 놓칠 생각은 없지만 말이지.’

“크흐. 그래도 매니저님이 저한테 처음 쪽지로 컨택 주셨을 때 그러셨잖아요. 모든 조건을 제게 다 맞출 수 있다고요.”

묘하게 상반되는 감정을 갈무리하는 그때 강추강 작가가 다시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소맥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작가님, 잘 기억하셔야죠. 제가 보낸 쪽지를 다시 보시면 아실 수 있으시겠지만, ‘가능한’ 모든 조건을 맞춰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게 다 같은 말 아닙니까?”

“아니죠!”

수북한 수염 때문에 녹림채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사내가 저런 세상 물정 모르는 말을 하다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건 저뿐만이 아니라, 작가님의 글을 계약하고 싶어하는 모든 출판사들의 말장난 같은 말이에요. ‘가능한’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면 ‘작가님의 제안을 들어 보고 계약은 없던 일로 할 수 있습니다’라는 의사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하…… 아니, 매니저님 그럴 생각이셨어요?”

외모와 걸맞지 않은 소년 같은 태도로 잔뜩 놀란 표정을 짓는 강추강 작가의 물음에, 나는 삼겹살을 한 점 입에 넣어 우물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야 당연히 아니죠. 하지만 한 번 계약을 하게 되면 그 작품은 완결까지 최소 3년을 붙잡혀 있어야 하니 꼭 주의해야한다는 뜻입니다.”

“뭐, 3년이면—”

“완결 후 3년이에요, 작가님. 작품을 계약하는 건 부동산 계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계약 하게 되면 해지하기는 쉽지 않아요. 신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결연한 표정으로 설명이 이어지자, 강추강 작가는 이제야 계약을 신중해야 한다는 내 의미를 간파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꼬실 타이밍이다.

회귀 전 한국 웹소설 역사에 폭풍을 몰고 온 그 작가를.

스윽—

“기본적인 계약 내용은 다른 출판사의 조건과 별반 다를 바는 없을 겁니다.”

나는 미리 준비한 계약서 사본을 가방에서 꺼내 그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다만 저희 LGA컴퍼니에서는 독소 조항이라고 여길만한 계약 조건을 모두 제거했죠. 이전 출판사의 계약 조건과 비교해보시면 그 차이를 쉽게 파악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제가 해당 부분을 형광펜으로 표시해뒀으니까요.”

“흐음…… 그렇군요. 그런데 계약 조건에 공란이 있는 곳이 많은데요?”

“맞습니다. 지금 전달 드린 계약서 사본에 공란이 많은 건 그 부분을 작가님과 함께 협의를 통해 채워 나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좋습니다.”

본격적인 계약 조건의 이야기가 나오자 강추강 작가의 표정 또한 진지하게 변했다.

“그럼 계약에서 가장 중시하는 정산비 부분부터 이야기를 나눠 보시죠. 작가님께서 원하시는 정산비가 있으십니까?”

“흐음…… 이걸 제 입으로 선뜻 꺼내기가—”

“어려워하실 게 전혀 없습니다. 작가님의 정당한 권리를 요청하는 과정이니 부담 없이 말해주시죠. 물론 작가님께서 제안하시는 조건이 저희 LGA컴퍼니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정도라면 저 또한 그에 관해 솔직한 답변을 드릴 생각이니까요.”

대부분의 신인 작가들은 출판사와의 계약을 진행할 때, 계약 조건에 이야길 꺼내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한다.

어느 출판사와의 계약을 보더라도 ‘갑’으로 명시되는 건 ‘작가’ 그리고 ‘을’로 명시되는 건 ‘출판사’다.

물론, 이 말이 작가들에게 갑질을 할 권리가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약을 앞둔 작가들이 출판사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뜻 또한 아니다.

계약 제안을 위해 만난 편집자가 조팟놈 같이 성격 모난 또라이가 아닌 이상, 그리고 미팅을 나간 작가가 거만하고 싸가지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면 계약을 위한 미팅 자리에서 자신의 조건을 당당하게 제안하는 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으음…… 솔직히 저는 매니저님이 제 담당자가 되어주신다면 6대 4 계약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7대 3으로—”

“전 플랫폼 8대 2로 계약 진행해 드리겠습니다.”

“허억. 예, 예에? 8…… 8대 2요?”

강추강 작가는 지글지글 익어가던 고기를 입으로 당겨 가던 것을 멈추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눈으로 되물었다.

내가 원하던 표정이 덥수룩한 수염이 가득한 얼굴에 지어지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전자책 순매출의 80%를 작가님께서 가지고 가시고 저희 출판사가 20%를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아니…… 저야 좋지만 그렇게 하면 LGA컴퍼니는 남는 게 있긴 합니까? 인건비라던지 그런 문제가—”

“그건 저희 LGA컴퍼니 측의 문제니 전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이 충분히 그 값어치를 하리라고 의심하지 않으니까요.”

강추강 작가는 아직 모르고 있을 테다.

아직은 원고 상태로만 담겨 있는 그의 글이 세상에 한 화 그리고 또 한 화 공개될 때마다 웹소설 독자들 사이에선 얼마나 큰 파장이 생길지를.

“그러면 정산비 조정은 합의가 된 것 같군요. 그러면 이번엔 선인세 관해서 이야기 나눠 보시도록 하죠. 권 당 선인세, 보장인세, 작품 당 선인세 등 작가님이 원하시는 선인세 종류와 금액을 말씀해주시면 그에 맞춰서 금액을 정해보도록 하죠.”

“음…… 저는 작품당 선인세로 받았으면 좋겠네요.”

“좋습니다. 금액은요?”

작가들마다 원하는 선인세의 종류와 금액은 제각각이다. 또한 자금 여유가 충분하거나 선인세는 빚이라는 생각에 받는 걸 두려워하는 작가들 또한 존재한다.

선인세에 관해선 어느 정도 염두하고 있었던 건지 강추강 작가는 정산비에 관해 이야기할 때보단 조금 더 확신에 찬 표정을 보였다.

“가능하다면…… 제가 생각하는 금액은 700만 원 정도입니다. 무, 물론 그 금액이 조금 크다면 500만 원 정도도 괜찮고요.”

“선인세로 1억 원 드리겠습니다.”

내가 덤덤히 내뱉은 말에 마른 목을 축이던 강추강 작가가 바로 소맥을 분수처럼 뿜어냈다.

“푸흐읍?! 죄, 죄송합니다. 아니…… 지금 1, 1억이요?”

“선인세만 1억 원. 그리고 계약금으론 천만 원 별도로 지급해드릴 수 있고요.”

“크허…… 아, 아니 그게…….”

갑작스럽게 내 얼굴에 뿜어진 소맥 샤워 덕분에 촉촉해진 얼굴을 휴지로 닦아 내는 그 순간에도, 강추강 작가는 목이 타는지 혹은 정신을 차리려는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맥 대신 물을 연거푸 들이켰다.

웹소설 업계에서 계약금은 선인세와 달리 출판사에게 따로 갚을 필요가 없는 돈. 즉, 강추강 작가와 LGA컴퍼니의 계약을 기념해 공짜로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선물 같은 개념이다.

그러니 그가 처음 요청했던 선인세 금액보다 배 가까이 많은 금액을 계약금으로 준다고 했으니 그가 놀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선인세가 부족하시거나 계약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얼마든지 더 협의를 통해 수정할 수 있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는…… 지금 제안해주신 계약 조건만 해도 충분히 넉넉하다고 생각합니다.”

고장 난 기계처럼 말하는 강추강 작가를 지긋이 응시했다.

그는 자신의 말이 진심이라는 듯이 몇 차례 심호흡을 하고는, 불판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진심입니다. 지금 제안해 주신 조건들은 제가 생각했던 그 이상입니다.”

“좋게 생각해주시니 다행이네요.”

“다만…… 다만 계약서에 한 가지만 추가하고 싶습니다.”

‘여기에 다른 조건을 추가하고 싶다고?’

내가 제안한 계약 조건은 강추강 작가를 위한 최선의 계약 조건이다. 물론 강추강 작가가 만들어낼 성과에 비하면 정산비나 선인세 혹은 계약금 또한 더 올릴 수 있지만, 그건 현재 강추강 작가의 평온한 집필 생활을 흔들어 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강추강 작가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 최대한의 계약 조건을 제공한 거였는데, 여기서 어떤 걸 추가로 하고싶다고 이야기하는 건지 감이 안 잡혀오는 그때.

‘아? 웹툰 말하시는 건가?’

아직 이 시대에는 웹소설 원작의 판타지 웹소설이 크게 흥한 일도 적었고 런칭한 작품의 수 또한 많지 않았다, 우리 LGA컴퍼니를 제외하면.

“2차 저작물에 관한 사항일까요? 제가 그 부분을 설명을 못 드렸네요. 건네드린 계약서 사본에는 적혀 있는 내용이지만, 그걸 자세히 설명해—”

“코즈일 작가님.”

우뚝—

그에게 건넸던 계약서 사본을 당겨오며 2차 저작물에 관해 설명하려던 내 손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이번에 마른침을 삼키게 된 쪽은 강추강 작가가 아닌 나였다.

갑작스러운 말에 아직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그때, 강추강 작가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매니저님께서 코즈일 작가, 본인 맞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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