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 부탁드립니다.
* * *
“……그래서 최강의 헌터가 된 주인공이 게이트가 생기기 전의 지구로 돌아가 차원의 틈새에서 군주를 모두 죽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요. 잠시만요, 그 부분도 메모를 좀…….”
“물론입니다, 작가님. 천천히 메모하시죠. 시간은 충분하니까요.”
타닥— 타닥— 타다다닥—
강추강 작가는 미팅 내내 홀린 듯한 눈빛으로 내 말을 경청하다가 중간중간 그 내용을 메모하기에 정신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음, 좋아요. 정말 좋네. 그런데 지배자 입장에서는 주인공이 왜 과거로 돌아가려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저도 뒷부분 내용의 전반적인 흐름만 잡아 뒀고 어떻게 진행할지는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라…… 아이고, 이거 무슨 계약도 하지 않았는데 염치없게 계속 알려달라고만 하네요.”
“하하, 아니에요 작가님. 저는 단지 아이디어만 드릴 뿐이고 그걸 어떻게 요리하시는지는 전적으로 작가님께 달린 건데요. 그런 염려는 조금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추강 작가가 덥수룩한 턱수염을 벅벅 긁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일단 작가님 말씀처럼 지배자의 입장에선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의아하겠죠. 이미 세계의 최강자가 되었고 주인공 자신은 아무런 피해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군주와 신들의 싸움으로 인해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기에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그들을 다시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오…… 확실히 이해가 가네요. 그간 주인공의 동료들이 수없이 죽었을 테니까요?”
“그렇죠.”
“으음.”
타다닥— 타닥— 타다다다닥— 탁!
마치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다시 맹렬히 키보드를 두드리며 메모하던 강추강 작가의 손이 우뚝 멈춰 섰다.
“어? 그런데 주인공이 그렇게 과거로 회귀하게 되면 주인공이 이전에도 그랬듯 모든 기억을 다시 잃을 수밖에 없는 게 아닙니까?”
의문이 가득 담긴 강추강 작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작가님의 선택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설정은 어떨까요? 주인공이 이전에 회귀했을 적엔 신기루 군주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 했잖아요?”
“아직 디테일한 부분의 설정을 잡지는 않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죠?”
“하지만 이번엔 신기루 군주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인 상황이라 기억을 잃지 않는다는 설정이면 그 부분이 해결되지 않을까요?”
“오오?! 완전 좋네요! 주인공은 이제 신기루 군주 그 자체라서 기억뿐만이 아니라 힘도 잃지 않는 거죠! 아이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정말 잠시만요.”
“하하. 천천히 하셔도 괜찮습니다, 작가님.”
처음엔 초반 골조 정도만 잡아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강추강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무한한 애정과 열정이 있는 사람답게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아이디어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듯 흡수해갔다.
타다닥— 타닥— 타다다닥—
“안녕하세요오, 죄송한데 저희 이제 곧 마감 시간이라…….”
“아,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정리하고 일어날게요.”
시간을 살피니 어느덧 미팅을 시작한 지 2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간 수많은 작가를 보아 왔지만 강추강 같은 집중력을 지닌 작가를 보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작가님, 카페 영업이 끝나서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타닥— 타다닥— 타다다닥—
하지만 카페에서 고작 음료 2잔을 시키고 마감 시간이 되도록 앉아 있는 건 민폐 중의 민폐! 이제 열정에 불타오르는 그를 멈춰야 했다.
슬쩍— 툭—
“작가님, 죄송하지만 카페 영업시간이 다 되었다고 합니다.”
“예? 아니, 벌써? 아이고? 벌써 9시가 넘었네? 일어나시죠, 매니저님. 저녁 안 드셨으면 식사라도 같이 하시죠? 제가 사겠습니다!”
“하하, 별말씀을요. 작가님께 미팅 요청한 건 전데 당연히 제가—”
“아이고, 됐습니다!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다 줬으면서 무슨? 일단 나갑시다. 이 근처에 끝내주게 맛 좋은 삼겹살집이 있거든요? 솥뚜껑에다가 구워 주는 집인데, 아참, 매니저님 고기 좋아하십니까?”
“없어서 못 먹습니다. 가시죠.”
“하하, 그럼 가십시다.”
호탕한 웃음을 내지르는 강추강 작가가 노트북을 챙겨 먼저 밖으로 나갔고 나는 슬쩍 카운터로 다가갔다.
“저기요.”
“네, 손님?”
“저기 이거, 너무 늦게까지 떠들어서 죄송해요. 음료도 몇 잔 안 시켜서.”
“어? 아니, 이런 거 안 주셔도…….”
수줍음 가득한 말과 달리 알바생의 손은 내가 건넨 5만 원 권을 독수리처럼 낚아챘다. 아무리 최저임금이란 게 있다한들, 알바생들이 받는 돈이야 거기서 거기인 법.
미안한 마음에 준 팁에 알바생의 표정이 밝아졌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폴더 인사를 건네는 알바생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매니저님, 여기 알바생 분한테 관심 있어요? 나 여기 자주 와서 잘 아는 사이인데, 원하시면 소개라도 해 드릴까?”
“예? 아뇨, 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카페에 오래 있어서 죄송하다고, 수고하시라는 인사만 하고 온 것 뿐입니다.”
“그래요? 아쉽네, 하하. 여하튼 바로 이동하시죠. 고깃집 바로 여기 길만 건너면 있어요.”
“예, 작가님.”
2시간 가까이 군말 없이 기획 회의를 진행한 내 모습이 고마웠는지 강추강 작가는 나를 대하는 게 한결 편해진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원래 사람 자체가 그런 사람일지도 모르고.
강추강 작가의 말대로 길을 건너자마자 가마솥 솥뚜껑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보였고, 나는 곧장 강추강 작가의 뒤를 따라서 가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모, 여기 생삼겹 3인분 주시고요. 아, 매니저님 내일 출근하셔야 되니까 술은 못 드시죠?”
오늘은 목요일.
비축분이야 늘 낭낭하게 가지고 있기에 내 글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오늘 술을 마시면 내일 출근이 문제인데?
짧은 고민을 끝내고 나는 내가 정한 최적의 답안지를 도출해 냈다. 나에게도 그리고 강추강 작가에게도 최선이 될 선택지를.
“술도 없어서 못 마십니다. 작가님 미팅을 핑계 삼아 내일 연차 내면 되니까 가볍게 한잔하시죠.”
“이야아, 좋은 회사네. 하루 전에 연차 내도 뭐라고 안 해요? 아, 잠시만. 이모! 여기 소주랑 맥주 하나 주세요. 술부터 먼저!”
“기다려.”
강추강 작가의 말에 할머니뻘로 보이는 주방 이모님이 얼굴에 웃음기를 가득 띠며 반말로 소주와 맥주를 잔과 함께 가져오는 걸 보니 강추강 작가는 이곳의 단골인 모양이다.
“자, 그럼 한잔하시죠. 소주? 맥주? 매니저님은 뭐로 드릴까요?”
“저는 소맥 마시겠습니다.”
“이야아, 나랑 술 취향도 찰떡이네. 하하, 황금 비율로 말아드릴게요, 잠시만요.”
소주와 맥주 모두 주문하는 사람은 소맥파일 확률이 120%. 그리고 상대가 좋아하는 행동을 따라 하는 미러링은 상대의 호감을 가장 쉽게 살 수 있는 행동 중 하나다.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맥주잔 위에 새겨진 로고에 맞춰 계량하는 강추강 작가의 모습을 보니 그가 얼마나 소맥을 좋아하는 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진아 씨한테 내일 연차 내겠다고 카톡 하나 보내놔야겠네.’
그리고 조팟놈한테는 내일 오전에 알려줄 생각이다.
나한테 욕을 하다 걸린 것 때문에 아주 밤잠을 설치고 있을 텐데, 조팟놈은 앞으로 금, 토, 일 3일간을 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테다.
BS북의 반이 사실상 내 소유가 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기에 따로 누구에게 업무 보고를 하고 받아야 하는 귀찮은 일들이 많이 줄어든 게 정말 좋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스윽—
강추강 작가가 내 앞으로 소맥잔을 쓱 밀어서 건네며 미소 지었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제가 얼마든지 다 살 테니 마음껏 드시죠.”
“하하, 그럼 감사하게 먹겠습니다, 작가님.”
물론 강추강 작가가 계산하기 전에 내가 계산을 할 거지만 일단 감사의 인사를 꾸벅 건넸다. 내가 아무리 좋은 조언을 해줬다 하더라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진 나와 그의 사이는 완벽한 남과 남의 관계니까.
그와 잔을 부딪치고 소맥을 들이키니 맥주의 부드러움과 소주의 칼칼함이 조화롭게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원샷에 잔을 비운 강추강 작가는 손등으로 수염 가득한 입가를 닦으며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니, 매니저님. 저 정말로 놀랐습니다. 무슨 아이디어가 초반, 중반부뿐만이 아니라, 완결 부분하고 외전 부분까지 다 있으세요? 어어, 잔 두세요. 딱 놔! 마는 건 제가 전문이니까, 마시기만 하시죠.”
강추강 작가는 내 손에서 잔을 뺏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 쪽지로 제 글의 팬이라고 하셨을 때만 해도 그냥 전작을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무슨 말을 나누면 나눌수록 제 머릿속을 끄집어서 보고 계신 것 같다는 말이죠.”
“하하하…….”
양심이 따끔거리는 말을 하신다.
물론 강추강 작가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는 그의 글을 완결까지가 아니라 외전까지 수차례는 정독한 사람이니까.
내가 마음만 먹자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강추강 작가의 글을 시작부터 끝까지 찍어낼 수가 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라고 한들 이건 내 글이 아닐뿐더러 욕심 또한 나지 않는다. 그의 글을 내가 쓰는 건 미래의 정보를 이용한 범죄 행위일 뿐이니까.
비록 강추강 작가를 계약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거지만, 나를 향해 소년처럼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강추강 작가의 눈빛이 너무 부담스럽다.
결국, 따끔거리는 양심 냉장고를 부여잡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뿐이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에헤이, 저 빈말 잘 안 하는 사람입니다. 과찬이 아니에요.”
자신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강추강 작가는 결연한 표정으로 빈 잔에 소맥을 말아 내게 건넸다.
“제 전작부터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웹소설로 연재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물론 제 첫 작품을 출간했던 출판사가 웹소설도 진출을 해서 이번 작품도 사실 그쪽이랑 같이 하려던 생각이 컸고요.”
숟가락을 맥주잔 안으로 콱 찍어 섞은 후 소맥을 꿀떡꿀떡 시원하게 삼킨 강추강 작가는 옅은 탄성을 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크으, 이제 고작 1질 작가라 제가 경험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편집자들은 다 똑같은 줄 알았습니다. 기존 출판사는 편집자들이 수시로 바뀌었거든요. 1년 동안 거쳐 간 편집자들이 한 셋? 아니 넷 정도?”
“고기 나왔어~.”
“고마워요, 이모.”
“집게 주시죠, 작가님. 제가—”
“어휴, 좀! 가만히 좀 들어만 주세요. 내가 정말 매니저님한테 감명을 많이 받아서 그러니까. 거기다 내가 고기도 잘 구워요.”
강추강 작가는 절대로 내게 집게를 넘겨줄 수 없다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여하튼, 저도 대충 이 업계에 들어서 알고 있긴 해요. 작가들은 지랄맞고, 월급은 염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간 스쳐 지나간 편집자들 보면서 일을 못하고 실수를 해도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컸어요. 내가 아무리 내 글에 사명감을 같고 쓴다고 해도 담당자가 작가 본인처럼 주인 의식을 갖고 글을 봐줄 수는 없다는 생각도 가득 들었고요.”
치이익— 치익—
하얀 연기가 솥뚜껑 위에 피어오르는 그 너머로 강추강 작가의 결연한 표정이 엿보였다. 그리고 강추강 작가는 집게를 내려놓고는 내가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
“길게 말할 것 없이 바로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어…… 자, 작가님?”
“부탁드립니다. 제 글을 계약해주십시오.”
본격적인 계약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
강추강 작가가 나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계약을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