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 작가님 본인보다도 더.
* * *
부아아아앙—
강추강 작가의 주소지는 천안.
속도 위반을 하지 않는 선에서 한시바삐 전설의 작가를 만나기 위해 아슬아슬한 속도로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그렇게 도로 위를 질주하기를 2시간 남짓 무렵.
밝기만 하던 도로 위엔 하나둘 선명하게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고 나는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우……. 여긴가?”
강추강 작가와 만나기로 한 곳은 유명 프렌차이즈 카페. 건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카페로 올라오기 전 주위를 둘러보니 신도시 특유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주위의 모든 건물도 정비된 도로도 새것이지만 서울처럼 거리에 사람이 많지도 않고 곳곳에 임대 문의가 붙여진 점포들이 많은 게 묘한 기분을 자아낸다.
스으윽—
카페 문 앞에 다가서자 자동문이 열렸고 넓디넓은 카페 안에는 카운터를 보는 알바생 하나와 달랑 몇몇 손님만 있을 뿐이었다.
이제 막 오후 6시가 지나 저녁 시간임을 감안하더라도 카페 안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한적했다.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아이돌 가수의 노래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음? 저분이신가?’
카페 안에 있는 건 고작 단 세 명.
서로 낄낄거리며 수다를 떠는 여성 둘은 당연히 아닐 테니, 덥수룩한 수염으로 노트북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사내가 강추강 작가일 건 불 보듯 뻔한 얘기였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20여 분 정도가 남았다.
하지만 느낌상 그가 강추강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는 그의 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혹시 강추강 작가님…….”
타다다다닥— 타다닥— 타다다다다다닥—
결코 작지 않은 목소리로 건넨 인사였다.
하지만 덥수룩한 수염을 한 사내는 무아지경에 빠진 무협지 속 무인처럼 내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다.
혹시라도 강추강 작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모니터 화면에 비친 그의 원고를 슬쩍 살폈다.
회귀 전 수도 없이 봤던 주인공의 이름 그리고 그 주인공의 모습이 새하얀 활자 위의 세계에 창조되는 모습을 보니 몸에 전류가 타고 흐르듯 짜릿한 기분이 퍼져나간다.
‘강추강…… 정말 강추강 작가님이야!’
나 혼자만 상하차의 저자인 강추강 작가에 관한 정보는 내가 회귀하기 전에도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렇기에 웹소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강추강 작가의 모습, 그것도 그가 직접 집필하는 모습을 옆에서 직접 목격하는 지금 이 순간은, 단순한 편집자와 작가의 관계를 떠나 마치 오랫동안 동경해온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모습을 마주한 것만 같았다. 심지어 일종의 감동까지 느껴졌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타다다다닥— 탁탁— 타다닥— 타다다다닥—
하지만 강추강 작가는 여전히 나 혼자만 상하차의 세계에 헤어나오지 못한 것인지 내 말을 듣지 못했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을 풀가동해 지근거리에서 그의 옆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니 강추강 작가가 일부로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음……. 어떻게 한다라? 내 말을 아예 못 들으시는 것 같은데?’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아직 20분 정도 남은 상황.
나 또한 글을 쓰는 작가이기에 한번 글에 몰입할 때 그 흐름이 깨지는 게 얼마나 큰 방해인지 알고 있다.
이미 두 차례 인사를 건넸음에도 나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강추강 작가는 자신의 글에 몰입하는 중이다. 그런다면.
스윽—
나는 다시 인사를 건네 강추강 작가를 방해하는 것 대신 그의 옆자리에 앉아 계약서 작성을 위해 챙겨온 노트북을 꺼냈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 시간적으로 여유도 있었고 강추강 작가의 무아지경이 끝날 때까지 나도 집필을 하면서 기다릴 생각으로.
타다다닥— 타닥— 타다다다닥—
타닥— 탁— 탁— 타다닥— 타다다다닥—
전설의 작가 옆자리에 앉아 함께 집필을 하는 이 순간의 떨림을 느끼던 것도 잠시, 카페 안을 시끄럽게 울리던 아이돌 가수의 음악이 지워지고 나와 강추강 작가의 키보드 타자 소리만 드문드문 들릴 정도가 되었다.
타다닥— 타닥— 타다다닥—
그리고 잠시 후 내 귓가에 어렴풋이 들리던 내 키보드 소리마저 사라졌고 어느 순간 나 또한 내 글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오늘 내가 집필하는 파트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메인 빌런의 정체가 주인공에게 발각되는 순간. 그리고 메인 빌런으로 등장한 적대자는 주인공이 보듬어 주려 했던 자신의 부하 중 하나였다.
그동안 스토리 전개를 하면서 메인 빌런의 정체를 꽁꽁 숨겨두었기에 내 글을 읽는 독자들 뿐만이 아니라 주인공 또한 그 빌런의 정체를 조금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비록 그동안 스토리를 전개해 가면서 흥미를 돋울만한 갖가지 사건 사고와 주인공의 사이다적인 행보로 스토리상 고구마적 요소를 최대한 억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자들의 궁금증과 조금씩 쌓이는 답답함을 해결할 수는 없었겠지. 물론, 지금 쓰는 이 파트로 한방에 독자들의 피로도를 날려 버릴 거지만 말이야.’
매화마다 다른 에피소드가 나오는 옴니버스식 구조의 웹소설과 달리 주인공의 목적의식과 메인 빌런이 뚜렷한 스토리 중심의 웹소설에선 답답한 부분이 길어지면 안 된다.
지금 내가 쓰는 글처럼 답답한 파트가 길어진다면 특유의 긴장감을 지속할 수는 있지만 답답함과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는 독자들이 이탈할 수가 있으니까.
물론 그건 어떤 스토리를 쓰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 내가 집필 중인 소설은 의도적으로 그런 부분을 노린 거였다.
미적지근한 김 빠진 사이다가 아닌 살얼음이 얼기 직전의 극강의 차가움과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이 뻥 뜨일 것만 같은 그런 강력한 한 방으로!
“……저기요, 저기요.”
타다다닥— 타다닥— 타다다다다닥—
“저기요!”
“어, 예?”
한창 내 글에 취해 집필 중인 회차의 클라이맥스를 활자 위에 찍어 내려가고 있는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부르며 내 어깨를 슬쩍 쳤다.
“흐어엇? 자, 작가님?!”
“예? 저기 전화 울려요.”
“전화…… 아?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내 어깨를 살짝 건든 건 수염이 덥수룩한 사내.
바로 강추강 작가였다.
그위이잉— 그이잉—
아무래도 내 테이블 위에 올려둔 전화가 진동벨처럼 울리며 만들어 내는 소음이 그의 집필을 방해한 모양이다.
내가 글을 쓸 때의 문제가 바로 이거다.
간혹 너무 과하게 집중을 하면 주변의 시선, 소리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몰입하게 되니까.
“……어?”
작가 미팅, 그것도 평범한 작가도 아니고 강추강 작가를 만나러 나와서 이런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를 빨리 받고 처리하려는데.
‘강추강 작가님?’
그 전화의 발신자가 다름 아닌 강추강 작가였다.
글의 세계에 정신이 완전히 빠져있다가 깨어 나와서인지 마치 깊은 꿈에 빠져있다가 막 일어난 사람처럼 상황 파악이 바로 안 되던 그 순간, 울리던 전화가 뚝 끊기고 강추강 작가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오늘 담당하기로 하셨던 편집자님 맞으시죠? 약속 시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으셔서 전화를 해 본 거였는데, 바로 옆에 앉아 계신 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망신도 이런 망신이 다 있을 수가 있나?
핸드폰 화면에 뜬 시간은 약속 시간이 훌쩍 넘은 7시 27분. 약속 시간으로부터 1시간 가량이 더 넘도록 집필을 하고 있었던 거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상황에 머릿속이 새하얘지고 눈앞은 캄캄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한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오직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석고대죄를 하는 것.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작가님. 처음 왔을 때 작가님께서 집필 중이셔서 잠시 옆에서 기다리면서 작가님 집필 끝나시는 걸 기다리려 했던 거였는데……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하하, 아이고. 무슨 죄송하다는 말을 그렇게 여러번을 해요? 아니에요. 저도 지금 막 집필 하다가 정신 차리고 시간 보니 약속 시간을 훌쩍 넘겼더라고요. 그래서 보내 주신 번호로 전화 드렸던 거고요.”
“다시 한번 죄송—”
“아이고야! 됐습니다! 진심을 담은 사과는 단 한 번이면 족한 겁니다. 일단 인사나 드리죠. 제가 연락 받은 강추강 작가입니다.”
강추강 작가는 확실히 대작을 쓰는 사람답게 배포가 큰 사람이었다. 물론 배포가 큰 사람이라고 해서 내 이미지가 더 좋아지는 건 아니겠지만.
머릿속에서 내 자신을 향한 온갖 자책이 쏟아졌지만, 이미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너그럽게 양해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작가님.”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텅 빈 그의 찻잔에 엎지른 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귀한 차를 따라드리는 방법뿐이다.
나는 품속에서 오늘 같은 날을 위해 따로 만들어 두었던, 하지만 다른 작가들에게는 단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명함을 꺼내 건네며 인사를 이어 나갔다.
“저는 LGA컴퍼니 판타지무협팀 박정우 매니저라고 합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반갑습니다. 서울에서 오시느라 고생 많았죠? 천안까지 바로 오실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습니다. 앉아서 얘기 하시죠.”
“예, 작가님.”
강추강 작가에게 건넨 명함 속의 내 이름은 BS북이 아닌 LGA컴퍼니 소속으로 되어 있다.
이제 눈엣가시 같던 강경진도 그리고 기존 BS북의 팀장과 본부장들도 싹 다 물갈이 된 상황. 그리고 BS북의 지분 반은 내 소유다. BS북의 새로운 대표인 오진아 또한 내가 어떤 행보를 걷던 터치하지 않기로 했고.
‘다른 작품은 몰라도 나혼상을 BS북에 넘길 수는 없지. 이건 웹소설 역사에 남을 작품이니까.’
LGA컴퍼니는 코즈일 그리고 노원지귀로 된 내 필명의 작품들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다가올 플랫폼들과의 본격적인 전쟁에 앞서 이제 LGA컴퍼니의 몸집을 더 불려야 한다.
‘어느 정도 체급은 맞아야 맞다이를 까든 뭐든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몸집 불리기에는 나혼상 만한 게 없지.’
내가 회귀 전 나 혼자만 상하차를 발굴하고 계약했던 출판사는 나혼상 하나만으로도 수년을 떵떵거리며 버텼다.
다른 대박 작품 하나 없이 나혼상 하나를 성명절기처럼 휘두르던 그 출판사는 이제 우리 LGA컴퍼니가 되어야 한다.
“작가님의 신작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가 느낀 나 혼자만 상하차의 장점과 추후 전개 과정에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을 살짝 정리해봤는데, 먼저 그 부분 설명해 드리면서 미팅 진행해도 될까요?”
“하하, 그래요? 아직 1화밖에 안 올렸는데? 그렇게 미팅 진행해 보죠. 기대되네요.”
기대하셔도 좋아요 작가님.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내가 작가님 글에 관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작가님 본인보다도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