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 오늘 올라왔다고?
* * *
개통령 말에 따르면, 반려견을 교육할 때 일주일은 지나야 말을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조팟놈을 갈구기 시작한 지 어언 2주째가 됐다.
“조 파트장님! 작품 모니터링 리스트 확인 안 하십니까? 모니터링 하겠다고 표시한 작품 7개 중 3개가 건일 매니저님 모니터링 작품이랑 겹치잖아요?”
“예?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럴 리가 있으니까 말하는 거 아니에요? 이딴 식으로 할 거면 모니터링 확인표는 왜 있는 거예요?”
개를 사람으로 만들겠단 마음가짐으로 개통령에 빙의해 최선을 다해 굴렸지만 개새끼보다 못한 조팟놈은 아직도 사람 새끼가 덜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이상하네…… 어째서지?”
“어째서지이? 지금 반말 한 겁니까?”
“아, 아닙니다……. 아마 제가 먼저 컨택하고 그 후에 건일 매니저, 아니, 매니저님이 추가하신 게 아닐지……?”
2016년 1월 21일 목요일이 된 오늘까지도 조팟놈은 여전히 매사에 디폴트로 남 탓을 하는 저열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훈육도 매질로 시작해야겠지.
“하아…… 조팟님. 매번 이렇게 남 탓 하실래요?”
“예? 제가 언제 남 탓을? 저도 기억을 잘 못해서 그냥 해본 말인데—”
“기억이 제대로 안 나면 하질 말던가요!”
윽박을 지르듯 뱉은 말에 조팟놈의 좁디좁은 어깨가 오징어 굽듯 말리기 시작했다. 지 주제도 모르고 왕왕 짖어대는 치와와가 막상 저보다 큰 개 앞에선 덜덜 떨며 오줌이나 지리는 듯한 모습이다.
나는 손가락을 까딱여 조팟놈을 내 자리로 오게 한 다음 바탕화면에 따로 만들어 둔 훈육용 및 변명 방지용 폴더를 클릭해 일자별로 정리된 모니터링 리스트 엑셀 파일을 켰다.
“나스 팀 폴더에 있으면 자아꾸 누가, 예? 계에속 남탓만 하는 분이 있어서 내가 하루 한 번 아예 일자별로 업데이트를 해 둬요 이렇게.”
딸칵— 딸칵—
“자, 여기 보이죠? 어제 날짜 모니터링 리스트 파일. 여기 건일 매니저님 리스트에 뭐라고 적혀 있어요? 소리 내서 읽어 보시죠.”
“어…… 그게…….”
잘 익은 홍당무처럼 얼굴이 시뻘개진 조팟놈이 고개를 떨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어때요? 신기하죠? 조팟님이 오늘 추가한 모니터링 리스트에 있는 작품인데, 건일 매니저님이 어제 모니터링 리스트에 먼저 추가한 작품들이라는 거?”
“……시정하겠습니다.”
“조팟님. 나는 조팟님을 시정하고 싶어요.”
“…….”
“아니 우리 팀 지금 몇 명이에요? 나, 조팟님, 건일 매니저님 달랑 셋인데 이게 뭐 어려워요? 내가 엑셀에 함수를 넣으랬어? 아니면 뭐 그래프라도 넣으라고 했나?”
“……죄송합니다.”
“죄송 뜻은 아십니까? 죄송은 죄스러울 정도로 미안하다는 뜻인데 무슨 죄송한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겨요?”
조팟놈은 알아서 매를 버는 기이한 재주가 있다.
처음에 주의를 줬을 때부터 자신이 실수한 거 같다, 앞으로 주의해서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겠다! 이렇게만 말해도 잘 넘어갔을 것을 꼭 오리발을 내밀다 다리 몽둥이 부러지도록 처맞는다. 마조끼가 있는 변태라고 의심될 정도로.
“…….”
내 질책에 조팟놈의 입이 합죽이가 되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으로 읽는 놈의 감정에서 송구함이란 가면 뒤에 숨긴 분노의 감정이 버르장머리 없게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까.
“아니, 조팟님. 뭐 마음에 안 드시는 거라도? 제가 감정 노동 시키려는 건 아닌데 표정이 무슨…… 설마, 이런 신입 사원도 안 할 실수를 하고 화라도 나신 거에요? 예? 정말? 진짜로?”
“아, 아닙니다.”
지난 2주간 내 밑에서 구른 조팟놈은 내가 더 혹독한 매질을 할 것을 감지했는지 슬금슬금 내비치던 분노의 감정을 빠르게 갈무리했다.
물론 때는 이미 늦었다.
“그쵸, 아니어야죠. 하루에도 실수를 몇 번이나 하면서 그런 태도는 아니죠? 그쵸?”
“…….”
이런, 올해 서른이나 처먹은 새끼가 나이에 안 맞게 입술을 삐죽이고 있다. 그리고 입술이 튀어나오면 눌러 주는 게 한민족의 매너.
딸칵— 딸칵—
“어? 이거 뭐야? 시마브로 작가 컨택 쪽지 이거 조팟님이 보냈어요?”
“예, 아직 답변이 안 와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시마브로 작가 전작은 별로였는데 이번 신작은 폼이 살아서—”
“하아…… 진짜 돌겠네. 조팟님! 진짜 일 똑바로 안 합니까?!”
“예? 그게 무슨……?”
조금 전보다 더욱 언성을 높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 주둥이처럼 나왔던 조팟놈의 얄팍하고 좀스러운 입술이 안쪽으로 빠르게 밀려 들어갔다.
조팟놈이 나처럼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이 무슨 실수를 더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테니까.
“이거 지난 달에 건일 매니저님이 컨택했던 작가님이잖아요. 컨택 리스트 확인 안 하세요? 아니, 컨택 리스트에서 놓쳤다고 해도 지난 쪽지만 제대로 확인하면 알 수 있는 일이잖아요?”
“아아, 그, 그게 말이죠? 저도 알았죠, 하하. 그런데 시마브로 작가님 신작 반응이 워낙 좋아서 한 번쯤 더 연락해 봐도 좋을 것 같아서 보낸 연락이었어요.”
변명에 또 변명.
어찌 보면 정말 대단한 놈이긴 하다.
초지일관 변명을 일삼던 놈이 결국 자충수까지 둘 줄이야. 일편단심 변명충 모습을 보이는 조팟놈의 말에 절로 비릿한 미소가 한 쪽 입꼬리에 지어진다.
“아~ 그래요? 원래 한 번 컨택한 작가는 먼저 컨택한 매니저가 담당하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아, 그, 그건…….”
작가들의 등용문인 소설피아.
그리고 이 시대에 출판사가 작가를 컨택하기 위해선 소설피아와 CP(Contents Provider) 계약을 맺은 출판사 레이블 계정으로만 작가들에게 컨택을 할 수 있다.
즉, BS북은 판무 레이블인 파이톤 계정을 통해서만 작가들에게 쪽지를 보낼 수 있는 셈이다.
다만 한 가지 CP 계정을 가지고 작가들에게 컨택을 하기 때문에 어떤 매니저가 작가에게 컨택했는지 구분을 하기 위해 나스 폴더에 있는 작가 컨택 리스트 표에 어느 작가에게 컨택을 했는지를 구분하는 작업을 하는 거고.
‘아주 데굴데굴 대가리 굴러가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구만?’
그리고 내가 조팟놈을 질책한 건 먼저 좋은 작품을 찾아내고 쪽지를 보내 계약하는 건 매니저들의 실적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즉, 조팟놈처럼 다른 매니저가 찜콩을 해둔 작품에 다시 쪽지를 보낸다면 다른 매니저가 그 작품을 읽고 분석을 하고 계약을 준비하려 했던 노고를 빼앗는 파렴치한 행위.
그렇기에 지금처럼 황건일 매니저가 작가에게 쪽지를 보낸 이력이 있는 상황에 조팟이 다시 그 작가에게 연락을 하고 싶다면 원칙적으로 원래 해당 작품을 계약하려했던 황건일 매니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팀장인 내게 보고를 했어야 한다.
그래야 조팟놈 같이 위계로 찍어 누르며 다른 매니저들의 작품 서리를 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멈추게 할 수 있을 테니까.
“팀장님께 미리 보고드리는 걸 깜빡했네요. 건일 매니저님한테는 제가 미리 양해를 구하긴 했거든요. 그쵸, 건일 매니저님?”
“어, 그게…… 예…….”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조팟놈이 뱁새 같은 눈을 부라리며 자신과 입을 맞추라는 듯이 건일 매니저를 쏘아보자. 건일 매니저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을 가동하지 않아도 조팟놈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인 것을 알 수 있었기에 내 입가엔 싸늘한 웃음만 걸칠 뿐이다.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판무 1팀으로 자리를 옮긴 지 얼마 안 지나서 정신이 없었네요. 앞으로는 이런 실수 없이 팀장님께 바로 보고드리도록―”
“정신이 정말 없었나 보네요. 끝까지 거짓말을 하는 걸 보니까?”
“아니, 거짓말이라뇨? 팀장님! 제가 모니터링 리스트 제대로 확인 못한 건 제 잘못이지만 작가 컨택 쪽지 팀장님께 보고드리지 못한 걸로 거짓말을 한다고 하는 건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호오 이렇게 나오시겠다?
황건일 매니저를 완벽히 입막음했다는 얄팍한 생각을 하는지 조금 전까지만 잔뜩 말린 어깨로 쭈굴쭈굴 거리고 있던 조팟놈이 비둘기처럼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따져 든다.
“하하, 너무하다라……. 맞는 말이네요.”
네가 처맞는 말.
안 되겠다 조팟아, 오늘도 눈물 한번 빼 보자.
“예, 제가 팀장님께 바로 보고 드리지 않은 점은 인정합니다만 워낙 좋은 글이라 다른 출판사에 빼앗기기 전에 재빨리 컨택을 하려고 한―”
“무슨 인정 같은 소릴 합니까? 진짜 인정머리 없어지고 싶게?”
“예? 그, 그게 무슨……?”
사악하게 보일 정도로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자 조팟놈의 얄팍한 입술이 다시금 떨렸다.
“내가 기가 막혀서 원. 조팟님, 시마브로 작가 허큘리스 전속 계약인 거 몰랐죠?”
“……예? 저, 전속이요?”
당당하게 펼쳤던 조팟놈의 어깨가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빠르게 말려 들어갔다.
“예, 전속. 뭐? 건일 매니저님한테 허락을 받아? 기회를 몇 번이나 주는데 하다하다 못해 이제 거짓말까지 합니까? 그것도 동료 직원 겁박해서 맞장구나 치게 만들고?”
“아, 아니…… 그, 그게…….”
“도둑질을 하려면 제대로라도 해야지, 어설프게 이게 뭡니까? 참나. 시마브로 작가님한테 쪽지만 보냈지 쪽지 보관함은 확인할 생각도 못 했죠? 정신 똑바로 안 차립니까!”
지난달, 황건일 매니저가 컨택을 보냈던 시마브로 작가는 출판사 활자세상의 판무 레이블 허큘리스와 전속 계약이 된 작가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고?
지난달 건일 매니저가 했던 계약 제안에, 시마브로 작가가 제안은 고맙지만 앞으로 전속 계약이 2년은 더 남은 상태라 계약은 힘들다고 말했으니까.
“모니터링 리스트도 확인 안 해, 컨택 리스트도 확인 안 해, 거기다 다른 매니저가 컨택한 줄도 모르고 쪽지함만 확인하고 쪽지 보관함은 확인도 안 해. 파트장 맞습니까? 예? 도대체 신입도 안 할 실수를 대체 몇 개를 하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제야 조팟놈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나왔다. 이미 한참 늦었다 이 새끼야.
“죄송하면 다 끝납니까? 내가 분명히 말했죠? 앞으로 BS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거라고. 그런데 조팟님이 망치는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파트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
“긴말 할 것 없고 시말서 써서 제출하세요. 인사 고과에도 당연히 반영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두시고.”
시말서라는 말에 조팟놈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럴 만도 하지 연봉 협상이 바로 다음 달이니까.
“티, 팀장님! 제가 정말 실수를…… 아니, 잘못을 한 건 정말 잘못했지만 시말서 만큼은…….”
“조성훈 파트장님. 지금 본인 행동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모르고 하는 말입니까? 조성훈 파트장님이 보낸 쪽지를 보고 시마브로 작가님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겠어요?”
“그, 그게…….”
“바로 한 달 전에 전속 계약이라고 답변 했더니 다른 매니저가 또 연락해서 계약하자고 하는 정신머리 없는 행동을 하는 출판사 이야기를 작가들 사이에서 안 하겠습니까? 제발 행동을 하기 전에 생각이란 걸 좀 하고 하세요!”
거센 호통과 함께 이어진 질책에 조팟놈은 더는 뭐라 항변하지 못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그가 한 행동은 이미 넝마가 된 회사 이미지에 토사물까지 얹은 꼴이었으니까.
“빨리 시말서나 써서 제출하고 일 좀 하세요. 지금처럼 시늉만 하지 말고 제대로 된 일을!”
“……예, 알겠습니다.”
조팟놈은 결국 촉촉해진 뱁새눈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시말서를 쓰기 위해서.
‘새끼가 진작에 말 좀 잘 들을 것이지. 왜 되도 않는 거짓말을…… 어?!’
조팟놈이 시마브로 작가에게 한 쪽지 실수를 보여주기 위해 켜 둔 소설피아 화면이 아직도 그대로 켜진 상황. 그리고 이왕 들어온 김에 새로 올라온 신작을 빠르게 훑어보던 와중, 내 눈에 그 작품이 발견됐다.
한국 웹소설계에 한 획을 그었던 작품.
그리고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했던 그 작품을.
‘나 혼자만 상하차가 오늘 올라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