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34화 (134/201)

134화 ― 대체 회사 왜 다니는 겁니까?

* * *

“……예? 회사를 왜 다니냐니, 그게 무슨—”

“거진 2년간을 조 파트장님하고 함께 회사를 다니지 않았습니까? 같은 팀으로 지낸 시간만 해도 1년이 넘고요.”

대회의실에 남은 사람은 나와 조팟 단둘뿐.

어금니를 훤히 드러내며 내뱉는 말에 조팟놈의 얼굴에 당혹감이 가득 차올랐다. 회사에서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다.

“그 기간 동안 BS북을 다니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조 파트장님이었죠.”

“이해가 안 간다뇨? 대체 아까부터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직장 생활하는 게 돈 버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겠어요?”

최대한 화를 억누르려 애쓰는 조팟의 말에 절로 웃음이 입가로 세어 나왔다. 나는 더 이상 그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직장 생활은 돈이라……. 맞아요. 조 파트장님처럼 그런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시는 분들이 적지는 않겠죠. 그런데 저는 아직 이해가 안 가네요. 조 파트장님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시는 건지.”

“지금 말씀드렸잖아요, 다른 직장인들처럼—”

“예에, 예. 다른 직장인들처럼 돈 벌고, 먹고 살기 위해 다닌다, 그런 말씀 하시려나 본데, 조 파트장님은 BS북 말고도 갈 곳 많으시다면서요?”

“예?”

툭 뱉은 말에 조팟놈의 커진 동공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린다.

“하하, 뭘 그렇게 놀라세요? 파트장님이 입버릇처럼 하시는 얘기들 있지 않습니까? 매일같이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얘기들이요.”

“그,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내가 아닌 누가 보더라도 거짓을 말하는 표정과 행동. 굳이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을 가동할 필요도 없이 거짓만 가득한 조팟을 바라보니 떡 끝까지 차오르는 조소를 숨길 수가 없다.

“에이, 왜 그러세요 파트장님? 그 왜, 출근 시작부터 하는 말 있잖아요.”

“……?”

운을 띄워줘도 모른 척을 하시겠다?

그럼 친히 떠오르게 드려야지.

“아, 회사 때려치고 싶다.”

“……?”

“보통 이 말로 시작하시죠?”

내 말에 항변하려는지 조팟놈의 입술이 살짝 달싹였지만 나는 그의 헛소리가 나오기 전에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월급도 쥐꼬리만큼 주는 회사를 왜 다녀야 하지? 여기 계속 다닐 바에는 플랫폼이나 다른 곳 이직하는 게 낫지 않나? 대표는 무능력하고 본부장들은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월급만 축내네 등.”

“아, 아니…… 그런 말을 왜?”

“파트장님 아주 표정 연기가 일품이시네요? 이게 다 조 파트장님이 입에 달고 사는 말들인데 처음 듣는 것처럼 이야기 하시네요. 아, 그리고 잠깐.”

반골 기질이 다분한 조팟놈이 오리발을 내밀기 위해 입을 열기 전, 나는 한쪽 손을 슬쩍 올려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판무 매니저님들 뿐만이 아니라 BS북 직원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파트장님은 그런 적 없다는 말로 서로 시간 낭비하지는 말죠.”

“…….”

“그러니 다시 묻죠. 늘상 말하듯 회사에 불평 불만이 그렇게 많은데 왜 BS북을 계속 다니시냐는 말입니다. 파트장님이 말하는 것처럼 BS북을 다니는 게 단지 돈이 목적이고 다른 곳에 가서도 더 좋은 대우를 받으리란 확신이 있다면 굳이 BS북을 더 다닐 필요는 없는 게 아닙니까?”

“…….”

이어진 질문에도 조팟놈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하지. MSG 한 톨 담지 않은 담백한 말에 거짓은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으니까.

“조성훈 파트장님. 저희 BS북은 이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겁니다, 이전과 같은 모습, 체계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요.”

나는 웃음기를 뺀 채 건조하면서도 날카로운 표정으로 그를 향해 말했다.

“그동안 조성훈 파트장님이 어떤 식으로 회사를 생각하고 다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새롭게 개편된 BS북에서 그리고 제가 팀장으로 있는 판무 1팀에서 지금과 같은 태도로 회사 생활에 임하신다면 저는 상부에 파트장님의 해고 처리를 요청할 겁니다.”

“자, 잠시만요! 해고라뇨! 제가 회사에 무슨 피해를 줬다고—”

“조성훈 파트장님!”

또 다시 변명을 하려는 조팟놈의 말에 버럭 소리를 내지르자 꿈틀대던 그의 입이 다물어졌다.

“몇 년 전 일까지 들출 필요도 없이 파트장님 작년 실적만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죠. 파트장님이 재미있다고 계약했던 작품들 중 예상 목표 매출 달성한 작품이 단 하나라도 있습니까?”

“…….”

지난 2015년 조팟놈이 한 해 동안 런칭한 작품의 종수는 김동현 팀장, 아니, 이제 출판 본부장이된 김동현보다도 적었다.

솔직히 종 수가 적은 걸로 뭐라 할 생각은 없다.

종수가 작더라도 매출을 충분히 낸다면 그건 문제 사항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조팟놈은 종수도 적고 매출도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황건일 매니저보다도 적은 수준이기에 솔직히 실적만으로 보자면 언제 잘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조팟놈이 그동안 BS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단지 김동현 본부장이 군기 반장 역을 자처하던 조팟놈을 이용해 먹었을 뿐일테다.

‘하지만 군기 반장 따윈 이제 내 팀에도 BS북에도 필요가 없지. 기껏 해봐야 고작 몇 년 일찍 입사한 주제에 지가 뭐라고 군기를 잡아? 능력도 안 되는 놈이?’

회사란 망망대해를 뚫고 가는 한 척의 함선이다. 그리고 직장인들은 목적지를 도달하기 위해 모두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항해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 열과 성을 다 한다.

하지만 회사라는 함선을 타고 항해를 하는 도중 연봉, 복지, 워라벨, 인간 관계 같은 악천후가 발생하기 시작한다면 선원들은 탈주를 준비한다.

그리고 BS북은 그동안 연봉도, 복지도 개판인 회사였다. 그나마 장점을 하나 뽑자면 담당 작품의 매출이 잘 나온다는 가정하에 끝내야 할 업무를 모두 처리한다면 칼퇴를 할 수 있다는 장점 정도?

그러니 염전 수준의 연봉을 받고 탕비실 음료수 따위가 복지의 끝인 BS북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로 서로 으쌰으쌰 하며 버티는 게 유일한 낙인데, 조팟놈은 그것마저 망쳐버리는 일등 공신이다.

그렇기에 새롭게 1팀 팀장이 된 이창윤처럼 편집자 외길 인생을 살고 싶어 하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조팟놈의 밑에서 오래 버티지 못했다. 실제로 그걸 증명하듯 판무 2팀의 나스 폴더 구석에는 퇴사자들의 인수인계 폴더가 가득했고. 그렇기에 조팟놈의 이런 태도는 이제 멈춰야 한다.

“비단 실적뿐만이 아닙니다. 직원 하나하나가 모두 성장해 나가야 하는 회사에서 사원들을 이끌어야 하는 파트장님이 지금껏 보여주신 태도는 팀원의 사기를 위축시키는 행동입니다.”

“…….”

자신의 부하 직원들은 진급하고 심지어 자신은 그 부하 직원 중 하나의 밑으로 들어오게 된 상황. 이미 조팟놈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치욕을 하루하루 맛보는 중일 테다.

“그러니 파트장님 입으로 지금 분명히 말해 주세요. BS북이 변화하는 만큼, 파트장님도 변화에 따라가실 수 있으신지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는지를요.”

“…….”

그렇기에 나는 조팟에게 기회 아닌 마지막 기회를 아낌없이 주려고 한다. 조팟놈이 분을 참지 못하고 나가겠다면 두 팔 벌려 환영의 싸커킥을 차주면 되고, 그게 아니라면…….

‘제대로 굴려 줘야지. 뼛속까지 제대로 된 참 편집자가 될 수 있도록.’

가능하다 혹은 가능하지 않다로 구분되는 간단한 대답이 나와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조팟놈의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내 표정과 말투 그 모든 것에서 조팟놈은 느꼈을 것이다.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선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길들은 모두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저…… 저는 BS북에서…….”

한참을 머뭇거린 조팟놈의 입이 스르륵 열리고 다시 닫히기를 반복했다. 그래, 결정이 힘들다면 상급자로서 도움을 줘야겠지.

“하긴, 파트장님은 BS북에서 썩힐 만한 인재가 아니시죠. BS북이 성장한다고 해서 감히 파트장님을 뒤따라 갈 수는 없는 일이죠. 파트장님이 말마따나 다른 데 가서도 더 높은 연봉 받고 좋은 대우 받으실 수 있다면 그쪽으로 가시죠.”

“아, 아니 그게—”

“어디로 가실지 무척 기대되네요. 파트장님 경력이면 플랫폼이든 출판사든 프리패스라고 하셨잖아요? 비상하는 새처럼 훨훨 날아가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어요.”

“그, 그게 아니라—”

“파트장님이랑 큰 사람을 담기에 BS북이라는 그릇은 아무래도 너무 작은—”

“BS북에 남겠습니다!”

우뚝—

등받이에 허릴 깊게 기댔던 몸을 바짝 세웠다.

그러고는 조팟놈이 그런 말을 할 줄은 조금도 몰랐다는 듯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조팟놈을 응시했다.

“흐음…… 의외네요? 다른 출판사든 플랫폼이든 갈 곳이 넘쳐난다면서요? 우리 회사 연봉도, 복지도, 임원진도 다 쓰레기인데 대체 왜 계속 다니신다는 겁니까?”

“그, 그건…… 티, 팀장님도 말하셨잖아요. 저희 BS북의 복지부터 전반적인 개혁이 이뤄질 거고 저도 그럼 BS북을 한 번 더 믿고 일해보겠다는 거죠.”

“아아, 그래요? 파트장님 말씀은 그럼 BS북에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겠다?”

“예, 뭐, 그런 뜻이 되겠네요.”

조팟놈 보게.

이걸 이런 식으로 받아친다고?

자신의 마지막 순간이 될지 모를 이 순간까지 알량한 자존심을 부리는 걸 보니, 당장이라도 조팟이라는 썩은 가지를 잘라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럴 생각이 없지.

조팟이 내게 보여준, 그리고 판무 2팀 운영팀, 등록팀 가릴 것 없이 그동안 보여줬던 분탕질을 보자면 해고라는 조치는 그에게 너무 자비로운 처벌이니까.

“조성훈 파트장님.”

“하하, 예?”

“웃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들으세요.”

“……?”

놈과 함께 BS북을 다니면서 단 한번도 보인 적 없던 싸늘한 표정과 눈빛에 조팟놈은 당황이 가득 어린 표정을 지었다.

“파트장님이 달라진 BS북에 다니고 싶다면 기회를 얻어야 하는 건 파트장님입니다. 회사가 아니라.”

“그, 그게…… 딸꾹!”

조팟놈의 입에서 딸꾹질 소리가 새어 나온다.

하지만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입을 틀어막는 조팟놈을 향해 잔뜩 날이 선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자신의 능력은 한참 미달이면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혜택은 다 받고 싶다? 회사가 무슨 봉사 단체인 줄 아십니까?”

회사는 땡깡을 부린다고 해서 반찬이 더 나오거나 뱀 허물처럼 팽개친 옷을 걷어 빨래를 해주는 자상한 엄마처럼 챙겨주는 꿈동산이 아니다.

필요시엔 사랑의 매로 뒤지게 처맞아야 하는 곳에 가깝지. 특히 조팟놈 같이 정신 못 차리는 덜떨어진 놈한테는.

“앞으로 계속 BS북에, 그리고 내 아래에서 파트장으로서 다니겠다고 하니 분명히 말합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파트장님이 보여준 업무 능력으로 미루어 보자면 파트장 직책을 달고 있는 것도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업무 능력으로만 보자면 강등이 된다고 해도 마땅하지만—”

점점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조팟놈의 딸꾹질 소리를 들으며 나는 싸늘한 웃음을 내지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건 파트장님이 아닌 회사입니다. 이 말 명심하고 정신 똑바로 차려서 일하세요. 그리고 파트장님을 대상으로 한 OJT는 앞으로 제가 따로 진행할 겁니다.”

새로운 BS북.

조팟놈 같은 머저리 또한 새롭게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부숴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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