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 본격적인 매질이 진행될 때.
* * *
병신년이 밝고 BS북엔 아직 적응되지 않은 여러 변화가 도사리고 있다.
‘윗층에는 지연 씨가 있고 대회의실 근처 자리엔 단풍 삼촌이 앉아있으니…… 참, 기분이 묘하네.’
물론 이지연의 경우엔 LGA컴퍼니의 대표직과 웹툰 본부장을 그리고 단풍 삼촌의 경우엔 킵비트의 대표직과 LGA컴퍼니의 경영 본부장직을 함께 겸하고 있었기에 BS북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진 않았다.
단풍 삼촌 그리고 이지연과 한 공간에서 일하는 걸 꿈꾸긴 했는데, 막상 그 일이 실현되니 좋으면서도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는 기묘하면서도 두근거리는 감정이 봄날의 살랑임같이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건일 매니저, 표지 제작 왜 컨펌도 받지 않고 진행해요? 내가 분명 2팀에 있을 때도—”
“조성훈 파트장님.”
물론 다른 의미로 내 마음에 설레임을 주는 이도 있었으니, 그는 바로 조팟놈이었다.
“……예?”
그를 부르는 말에 조팟놈은 적개심이 가득 묻어나는 뱁새 눈으로 나를 흘기듯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지난 1월 4일 대망의 인사 이동을 거행하고 한 주가 흘렀다. 그럼에도 조팟놈은 아직도 자신의 몸에 배인 썩은내를 빼내지 못한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간간이 따스한 말로 놈의 썩은내를 환기시키는 자상함을 보이고 있다.
“저희 전사 공지에 분명 직급 상관없이 이름에 님 자 붙이고 상호 존대하기로 했잖아요? 건일 매니저님 부르실 때도 예의 지켜서 대화 부탁드립니다.”
“아, 바빠서 공지를 못 봤네요.”
“…….”
어이구 공지를 못 보셨어요?
한 주의 시작부터 이런 식으로 나와 주신다면 나야 편하지. 대놓고 조질 명분이 생긴 거니까.
“조성훈 파트장님. 태도가 왜 그럽니까?”
“예? 지금 뭐라고요?”
조팟놈이 눈을 치켜뜨고 나를 노려본다.
이런 일이 조만간 생길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싹수가 없다.
바로 전 주까지만 해도 전관예우를 떠올리며 조팟을 딱히 나무라진 않았다. 자신의 팀장 승진이 날아가고 자신의 직속 부하였던 이창윤 매니저가 자신을 밟고 올라가는 걸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으니까.
“들었잖아요. 지금 팀장이 말하는데 그 태도가 뭐냐고요? 아니, 공지가 지난 월요일에 올라왔는데 일주일 동안 확인을 안 한 게 자랑입니까?”
“하, 휴가 쓰고 왔는데 그걸 제가 어떻게 다 압니까?”
자기가 실수했다는 말까지는 아니라도 주의하겠다는 말 한마디면 될 것을, 조팟은 능지가 딸리는 것을 증명하듯 일을 키우고 있다.
‘조팟놈이 또 사리분별 못 하기 시작했네.’
턱을 부들대며 나를 노려보는 조팟이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는 익히 알고 있다.
팀장 자리를 빼앗긴 것도 억울한데 작년 초까지만 해도 판무 2팀 자리를 지키던 내가 팀장이 되고 그 아래로 자신이 들어온 상황이니 미칠 노릇이겠지.
내가 조팟을 좋아하진 않아도 쿠쿠다스 멘탈 같은 조팟놈이 겪었을 마음의 상처를 고려해 최대한 상냥하게 봐주려 한 거였는데,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물론 결국은 이런 상황이 오리라 예상했지만.
“조 파트장님, 잘 들으세요. 제가 단지 위계질서 따지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전사 공지가 올라온 건 지난 월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조 파트장님이 연차를 쓴 건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삼 일이었죠.”
“그래서요?”
조팟놈은 이제 대놓고 뻔뻔하게 나가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조팟놈의 수준을 넘어서는 최대한의 예의로 대우해 주려 한 거였는데, 이런 태도를 보인다고?
상황 파악 못 하고 계속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더 이상의 당근을 줄 필요는 없지. 버르장머리 없는 조랑말을 위해 이제 당근 대신 합법적으로 채찍을 잡아 들어도 괜찮은 때가 되었다.
“무슨 말인지 일일이 다 설명을 해야 합니까? 저번 주 금요일에 출근해서도 공지를 안 읽었으면서 무슨 연차 핑계를 대고 있냐는 말입니다. 공지 하나 제대로 확인을 안 하고 핑계만 대면서 파트장 자리에 있는 게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뭐, 뭐라고요?”
“핑계 대지 말라고요. 같은 말 반복해야 할 정도로 이해력이 부족한 겁니까?”
“…….”
내 목소리 톤은 올라가지 않았다.
하지만 싸늘하게 굳어진 표정으로 건넨 말에 조팟놈은 그제야 상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다.
신입 매니저들로 바글바글한 판무 2팀과 달리 내가 팀장으로 있는 판무 1팀은 나와 황건일 매니저 그리고 조팟까지 딸랑 3인 체제.
거기다 나는 김동현 팀장과 달리 자신의 지랄병을 받아주지 않을 사람이란 게 이제야 떠오른 모양이다. 조팟놈은 꽉 움켜쥔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들대기만 할 뿐 더는 무논리로 대들지 않았다. 물론 나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지.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으세요. 그동안 조 파트장님이 어떤 식으로 회사 생활을 했든 그건 다 잊으세요. 여긴 판무 2팀이 아닌 1팀이고 팀장은 김동현 본부장님도 조 파트장님도 아닌 바로 접니다.
“…….”
“거기다 지금 지적하는 건 업무적인 부분도 아닌 기본적인 예의에 관해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파트장으로서 옆에 두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덤덤히 내뱉은 이어진 설명에 조팟놈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비록 내가 팀장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이렇게 강경한 모습으로 나올 줄은 몰랐을 테지.
“조 파트장님의 평소 태도가 회사 메뉴얼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본인의 기분대로 행동한다면 그리고 조 파트장님의 기분이 태도가 된다면 저는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이 없습니다. 오진아 대표님께서도 분명 메뉴얼을 지키시라고 말씀하셨고요. 같은 지적이 반복된다면 바로 대표님께 보고드릴 테니 행실 똑바로 처리해 주시죠.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조팟놈은 마치 지옥의 염화 속에라도 빠진 듯 체념한 듯이 대답했다. 물론 조금도 안쓰럽진 않았다. 조팟놈은 그동안 뿌린 대로 거둘 뿐이니까.
“그리고 건일 매니저님한테 표지 제작 왜 컨펌도 받지 않고 진행하냐고 묻던데, 설마 그 공지도 확인 안 한 겁니까?”
“…….”
“한 번 물었으면 대답하세요. 제가 조 파트장님한테 같은 말을 반복해야 됩니까? 이런 기본적인 예의까지 제가 가르쳐야 하는 거냐고요?”
“……아닙니다.”
애새끼도 아니고 물은 말에 하나씩 대답해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재주에 조팟놈은 아주 도가 텄다.
하지만 조팟놈은 사람을 잘못 만났다.
병신년 새해부터 그런 병신 같은 짓을 나는 가만히 보고 있을 생각이 없으니까.
“내가 물은 게 그게 다가 아닐 텐데요.”
“예?”
“…….”
내가 무슨 말을 묻는지 알면서 뻔히 묻는 치졸한 화법. 초등학교 저학년도 하지 않을 기싸움을 내게 하려 하다니 절로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를 가만히 쳐다보는 조팟놈을 그대로 응시했다. 그럼에도 조팟이 아무런 말을 않자 나는 바로 내 자리에 있는 수화기를 잡아 들고 휴대폰 번호를 하나하나 꾹꾹 눌렀다.
“네, 대표님. 판무 1팀 박정우 팀장입니다. 팀원 관리에 관해 전달드릴 사항이 있어 전달드렸습니다.”
“바, 박정우 팀장님! 제가, 제가 정신이 없어서 실수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새끼가 진작에 이럴 것이지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만들까? 조팟놈을 채용한 머저리들에게 따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아, 실례했습니다, 대표님. 제가 해당 내용 정리해서 다시 전달드리겠습니다.”
상황 파악이 끝난 조팟놈이 당황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다급히 나를 불렀고 나는 그의 시선을 응시하며 수화기를 딸칵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조 파트장님, 앞으로 기본적인 태도 주의 그리고 직무상 명령 불이행에 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주세요.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제 말이 이해가 안 된다면 그때는 바로 대표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채찍으로 강하게 후두려 맞은 조팟놈은 붉어진 눈시울로 재깍 대답을 이었다. 이제야 놈의 몸에서 풍기는 허세의 악취가 조금은 덜어진 느낌에 나는 슬쩍 미소 지으며 내 자리 옆의 개인 프린터에서 출력한 주간회의록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병신년 둘째 주 주간 회의 진행하러 가보도록 하죠. 다들 대회의실로 들어와 주세요.”
“……네.”
“예, 팀장님.”
축 처진 목소리의 조팟과 달리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선 황건일 매니저는 지옥 같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싶었는지 힘찬 목소리로 안간힘을 썼다.
‘건일 매니저님 그렇게 고생하실 거 없다고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니까.’
황건일 매니저는 살얼음장 같은 분위기를 어떻게 해서라도 띄워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제 그의 노력이 무색해지리라는 것을 수 분 내로 황건일 매니저와 조팟 모두 알게 될 거다.
“그럼 병신년 2주차 주간 회의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조 파트장님 전달사항부터 먼저 말씀드리도록 하죠.”
대회의실의 문은 꽉 닫혔다.
이제 본격적인 매질이 진행될 때다.
“우선 아까 황건일 매니저님께 했던 말에 관한 대답을 듣지 못해서 다시 묻는데요, 공지사항에 있던 부분 확인 못 하셨습니까?”
“……그건.”
그렇게 사람 대우를 해줬건만, 조팟놈은 또다시 사람 속을 터지게 할 작정인 모양이다.
“하하, 진짜 한 주 시작부터 재미있게 하네요. 황건일 매니저님. 조 파트장님하고 둘이서 먼저 이야기 좀 나눠야 할 것 같으니 잠시 자리 좀 비워 주시죠. 제가 준비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어…… 네, 알겠습니다, 팀장님.”
황건일 매니저가 다소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이제 대회의실 안은 지독한 적막감 속에 나와 조팟놈 단둘만 남게 된 상황이다. 그리고 조팟놈은 아직도 상황을 파악 못 했는지 얼을 타는 모양이고.
“조 파트장님, 제가 BS북에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정말 궁금했던 거였는데. 하나 물어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시죠.”
예의와 공손함이 가득 담긴 말에 조팟놈은 잠시 고장 난 기계처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를 향해 방긋 웃으며 늘 묻고 싶었던 그 질문을 조팟에게 건넸다.
“대체 회사 왜 다니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