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 우주와의 전쟁을 시작해야만 한다.
* * *
“축하드립니다 김동현 본부장님. 이쪽으로 나와서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 아하하핫! 예! 대표님!”
영문 모를 상황에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던 김동현 팀장.
그는 이내 퉁퉁한 팔을 점점 힘차게 휘저으며, 임원진 테이블에서 연단 쪽으로 빠져나온 오진아를 향해 이동했다.
‘역시, 곰 같은 여우라니까?’
내가 BS북에 처음 입사하고 배정 받았던 판무 2팀의 팀장이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서 평생을 마감할 사람으로 보였던 김동현 팀장. 그는 곰 같은 체구와 달리 BS북 내에서 그 누구보다 영악한 사람 중의 하나다.
김동현 팀장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를 세상 물정 모르는 순박한 사람, 혹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으로 분쟁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적인 사람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동현 팀장의 두툼한 살집 속을 파고들면 사춘기 소녀 같은 엉큼함이 자리 잡고 있다.
‘아주 좋아 죽으시네. 우리 김동현 팀장님, 그렇게 진급하고 싶어 하셨는데 해드려야지, 암.’
신혼 3~4년 차에 애까지 딸린 김동현 팀장은 아내와 자식까지, 지킬 게 많은 가장이다. 그래서인지 기존 임원진들을 제외한 장급에선 BS북에서 가장 긴 경력을 지닌 김동현 팀장은 늘 더 높은 지위를 갈망했다.
김동현 팀장은 늘 BS북 판무 1, 2팀의 종합 팀장 자리를 원했지만, 그건 오성민 대표 그리고 강경진이 만들어 낸 허구의 자리, 사실상 그림의 떡 같은 존재하지 않는 자리였다.
“안녕하십니까, BS북 임직원 여러분. 참…… 제가 이런 자리에 올라 감개무량하다는 말을 먼저 드립니다.”
하지만 오진아는 아니, 나는 김동현에게 그 자리를 만들어 줬다. 그리고 곰 같은 여우 김동현은 결코 그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저런 거 보면 대단하다니까? 임원진 테이블 쪽으로는 아예 시선조차 안 돌리네?’
김동현은 연단 앞으로 걸어가며, 오진아가 걸어 나온 임원진 테이블에서의 묘한 기류를 포착했을 테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오진아에게 건네받은 마이크로 우렁차게 새로운 출판 본부장이 된 감사의 소감과 앞으로의 포부를 거침 없이 쏟아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준비했던 사람처럼.
‘내가 BS북의 출판 본부장 자리를 김동현에게 넘겨준 건 결코 그가 일을 잘해서가 아니지. 단지 김동현이 장기말로 필요할 뿐이니까. 아직 까지는.’
LGA컴퍼니의 대표이사이자 웹툰 본부장인 이지연의 실력과 실적은 모두가 알고 있기에 비록 외부 인력이라도 반감이 적을 수 있다.
하지만 킵비트의 BS북 인수와 더불어 갑작스러운 오진아의 대표이사 진급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정체도, 실적도 알 길 없는 단풍 삼촌이라는 외부 인력의 투입으로 기존 임원진들이 순식간에 물갈이 된 상황이다.
기존 BS북 직원들이 아무리 회사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 그것도 낙하산과 BS북과 아무런 관계 없어 보이는 외부 인력의 투입을 달가워 할 리가 없다.
그렇기에 회사 내에서 입김이 세면서도 던져 주는 먹이를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 개…… 아니, 장기말이 필요한 거다.
‘그리고 그 자리엔 김동현 만한 사람이 없지.’
비록 업무 시간에 핸드폰 자동 사냥만 줄창 돌려놓거나, 특유의 팔은 안으로 굽는 특성 때문인지 자기 팀이 일처리를 개떡같이 해도 자기 팀 우선 위주의 정책을 펼치는 편향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이라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그런 출판 본부장이 된 김동현 팀장은 이제 그런 고질병에서 고쳐질 테다. 자동 사냥이야 계속되는 외부 플랫폼 미팅으로 핸드폰 만질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쥐어짤 테고, 이제 팀 단위가 아닌 출판 본부의 장이 된 만큼 최소 출판 본부 하나만큼은 잘 케어할 테니까.
‘최고의 선택지는 아니어도. 최선의 선택지지.’
만에 하나 본부장급에 올라도 일처리를 지금처럼 한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다.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책상 빼버리면 되는 거니까.
“김동현 본부장님! 최고! 진짜 최고드아악! 다들 박수 더 안 쳐? 우리 팀장님이 본부장이라고!”
“축하드립니다 본부장님!”
“축하드려요!”
그리고 김동현 본부장의 인삿말이 이어지는 그때 가장 열화와 같은 성호를 보내는 건 다름 아닌 조팟놈. 그리고 굳이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을 가동하지 않아도 조팟놈이 왜 저 지랄이신지는 불 보듯 훤하다.
‘우리 조팟새끼 신나셨어요? 이제 팀장 자리 공석이니 그 자리 조팟님이 가실 것 같으세요?’
조팟놈은 결코 팀장이 되지 못할 테다.
아무리 좋게 보려 애써도 조팟놈은 업무 능력, 인성 모든 게 하타치, 하남자인 놈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인성 외모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빻은 조팟을 당장 자를 생각은 없다.
회사 내에서의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인 퇴사는 조팟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사하는 것뿐, 조팟은 결코 그런 호사를 누려서는 안 된다.
‘BS북에서 남고 싶으면 얼마든지 남아. 치졸하게 복도로 책상 빼는 짓은 안 할 거거든.’
대신 아이언 메이든 안에 몸을 넣고 그 위에 뜨거운 기름물을 주기적으로 부어주는 것처럼 조팟놈은 끊임 없이 고통 받을 테다.
김동현이 출판 본부장으로 진급하면서 생긴 판무 2팀 팀장 자리. 그리고 조팟은 모레인 1월 2일. 사내 전사 메일로 쏘아질 판무 2팀의 새로운 팀장 진급을 보며 피눈물을 흘릴 테다.
“어? 본부장님들이랑 대표님은 가시나 본데요? 자리에서 일어나셨어요.”
“……?”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마친 김동현 팀장이 박수갈채 속에서 자리에서 돌아온 그 순간, 레스토랑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임원진들의 테이블에선 하루아침에 실직된 기존 본부장들이 오진아를 향해 거친 제스처를 취하면 살짝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건 본부장들 뿐만이 아니라 오성민 대표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황스럽겠지. 비록 자기 주머니는 두둑이 챙겼지만 오른팔, 왼팔이 헌신짝처럼 버려졌으니까.’
하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는 걸 몸소 증명하듯 오성민 대표는 언성을 높이는 본부장들을 가로막고 마치 자신이 총대를 메듯 앞에 나서 오진아에게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 보이네? 그럼 도와주면 되지.’
짝! 짝! 짝! 짝! 짝!
“대표님! 본부장님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어? 들어가시나 보다.”
“고생하셨습니다, 대표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대표님, 본부장님!”
“감사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챙길 거 챙겼으면 꺼지셔야지 어디서 훈계질이야? LGA와 킵비트 뿐만이 아니라, BS북 또한 이제 내 손아귀에 들어와 있는 내 소유물이다.
‘그동안 방만한 운영으로 ‘Best Story 북’이라는 이름을 병신북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게 한 장본인들이 뭐 잘한 게 있다고 인상을 찌푸려? 퍼뜩 갈 길 가십쇼.’
우레와 같이 쏟아지는 기립 박수에 오성민 대표와 본부장들은 억지로 표정을 관리하며 결국 문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저리도 체면이 중요한 걸까?
입을 꾹 닫은 채로 발걸음을 옮기는 오성민 대표와 다른 본부장들과 달리 강경진은 마지막 순간에도 다시 가면을 뒤집어 쓰고 선교사 같은 온화한 미소를 건네며 레스토랑 밖으로 빠져나갔다.
내가 사비로 부담해야 했던 표지 제작 비용.
계약을 해지하면 매출의 2배로 물어야 했던 위약금. 교묘하게 꼬아둔 9대 1의 정산비 등.
회귀 전 그 모든 악행을 내게 저질렀던 강경진이 자신보다 어린 사촌 동생에게 자리를 빼앗긴 것마저 모자라 BS북에서 완전히 쫓겨났다.
묘한 기분이다.
폐기 처리되는 음식물처럼 쫓겨나는 강경진의 뒷모습을 보며 속이 시원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후련하지는 않다.
결코 내가 강경진에게 당했던 그 모든 일들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회귀 전엔 작가의 삶만 살았던 것과 달리 이번 생에선 출판사의 편집자 생활도 함께 시작했다. 그리고 편집자로 살아가는 동안 나는 강경진 뿐만이 아니라 이 출판계를 좀먹는 이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고작 강경진뿐만이 아니야. 한우석도, 다른 사람들도 그리고…… 가장 큰 적은 결국 플랫폼이야.’
각각의 출판사들이 하나의 행성이라면 플랫폼은 그 행성을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우주. 이제 우주와의 전쟁을 시작해야만 한다.
더는 강경진, 오성민, 한우석 같은 피래미가 아니라.
“이제 더는 새롭게 소개시켜 드릴 분 없으니 다들 편하게 그리고 많이 드세요. 술도 부족하시면 더 시키고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감사합니다!”
레스토랑 밖으로 빠져나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강경진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오진아가 모두가 전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하며 내가 있는 테이블로 다시 돌아왔다.
“고생 많으셨어요, 대표님.”
“고생은요. 이제 시작인걸요?”
“그렇죠. 이제 시작이죠.”
내가 건넨 말에 오진아는 자신의 잔을 들어 올렸다. 원래 이렇게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 놀라움이 들 정도로 밝은 미소와 함께.
* * *
다사다난하고 화려했던 BS북의 종무식이 끝나고 나는 구 엘가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아하하, 아새끼 고생 많았구나 야.”
“고생은 무슨. 삼촌이랑 지연 본부장님이 고생 많았지.”
“저도 재미있었어요. 무진 본부장님이 절대 술 마시면 안 된다고 해서 와인 한 모금도 못 마셨지만요.”
입을 삐죽 내미며 말하는 이지연의 말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단풍 삼촌과 이지연이 오늘 BS북 종무식 자리에 오기 전에 나는 단풍 삼촌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알쓰 오브 알쓰인 이지연에게 알콜 한 방울, 아니, 알콜 향도 맡게 해서는 안 된다고.
“흥, 저도 갔으면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못 가서 아쉽네요.”
구 엘가 사무실에는 이지연과 단풍 삼촌 뿐만이 아니라 권미현 본부장 또한 함께 있었다.
“술 잘 드신다고 들었어요. 다음에 기회 되면 같이 드시죠, 미현 본부장님.”
“얼마든지요. BS북 대표님이랑 술 마실 날을 기대하리라곤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그리고 이 자리엔 이제 막 BS북의 대표가 된 오진아까지 함께였다.
“자, 다들 집중해 주세요. 이제 정말 시작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계획을 짜 보죠. 우리가 한국 웹소설 출판계를, 아니, 전 세계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그리고 이제 LGA컴퍼니 그리고 BS북이 보여줄 차례다. 우리가 어떻게 출판계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