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 첫 제안이 가장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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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2월 11일 금요일.
나는 연차를 내고 집에서 단풍 삼촌의 양복 셔츠 세 번째 단추에 부착된 몰래카메라로 미팅 상황을 실시간으로 염탐하는 중이다.
오진아 팀장을 포함한 BS북의 임직원들이 언주역 인근 킵비트 사무실에서 단풍 삼촌과 날 선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니 으적이는 팝콘이 이리도 고소하고 달달할 수가 없다.
쪼오옥! 쪼옥!
“캬아~. 아주 보는 맛이 좋네. 삼촌, 더는 질질 끌 것 없어 보이는데? 이제 슬슬 마무리하자.”
사이다를 담은 잔을 빨대로 쪽쪽 빨아들이며 화면 너머 단풍 삼촌에게 지령을 내렸고, 단풍 삼촌은 내 아바타처럼 즉각 행동했다.
—오진아 팀장님이 그간 보여주신 실적은 결코 미경력자의 실적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 아닙니까? 나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BS북의 대표는 무조건 오진아 팀장이 되어야 한다고.
—흐음…….
—그 한 가지 조건을 협상할 수 없다면 오늘 미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죠.
그 말을 마친 단풍 삼촌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메라에 잡힌 본부장들과 오성민 대표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는 게 포착됐다.
—좋습니다. 내부 조율이 필요하겠지만 그게 필수적인 조건이라면 49.98%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은 오진아 팀장에게 넘기도록 하죠.
—대표님!
그리고 오성민 대표의 말에 고함을 치면서 반발하는 건 당연히 출판계의 폐기물, 강경진이었다.
—120억이 적은 금액은 아닙니다. 하지만 출판 업계 부동의 1위인 BS북의 잠재적 성장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단풍 삼촌. 10억 더 불러.”
—130억. 어떻습니까?
—…….
브루마블로 땅따먹기를 하듯 툭 내뱉은 단풍 삼촌의 말에 카메라 너머로 요동치는 본부장들 그리고 오성민 대표의 동공이 나를 흐뭇하게 한다.
‘새끼들아, 아주 신났지 그냥? 총알은 낭낭히 준비해 뒀다고. 숨넘어가지 말고 계약서에 지장 찍을 준비나 해라.’
이쪽 업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고작 웹소설 출판사 하나 인수하는 데 100억을 넘게 들이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는 결코 작은 금액이 이니다.
이제 몇 년 후부터 판타지 웹소설의 3대장이라고 불리는 웹월드, 테일랜드 그리고 소설피아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 본격적인 자회사들을 확장해 나갈 생각이니까.
‘아저씨들, 그렇게 놀란 표정 지을 것 없어. BS북이 특별해서 돈을 퍼붓는 게 아니라 BS북을 시작으로 다른 출판사들도 하나둘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할 거야.’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두고 있는 웹월드와 테일랜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투자사와 자회사를 만들기 위해 각축전을 벌일 예정이다.
웹월드는 사양씨앤씨 지분 49.97%에 59억 원을 투자하는 것을 시작으로 광산문화사 투자에 147억, 소원씨아이 투자에 146억, 한국미디어코믹스에 100억을 투자했다.
그뿐만이 한중 콘텐츠 제작 및 배급사인 자온크리에이티브와 게임 퍼블리싱 및 웹툰 콘텐츠 제작사인 데이바자르를 각각 인수하는데 99억, 183억을 쏟아부었지.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었지. 웹월드가 투자했던 회사들의 지분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면서 IP 공룡기업으로 성장해 나갔으니까.’
물론 웹월드와 숙명의 라이벌인 테일랜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테일랜드 또한 신규 투자사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중에서 테일랜드의 가장 큰 업적은 바로 소설피아를 인수한 거였으니까.
한국 웹소설 태동기에 소설피아와 각축전을 벌이던 더노벨은 강경진스러운 대표님께서 코인 투자하시고 플랫폼 운영을 똥구녕으로 하시다가 스스로 말아드셨다.
그렇기에 대기업에게 인수되지 않은 제대로 된 남성향 플랫폼은 오직 소설피아 하나 남은 상황이었기에 대기업을 등에 업은 웹월드와 테일랜드는 서로 소설피아를 인수하기 위해 피튀기는 경쟁을 벌였다.
‘그리고 나는 그 꼴을 볼 생각이 없지. 그러기 위해서 BS북을 인수하는 거고.’
모니터 화면 너머에서 강경진이 오성민 대표에게 하는 말은 사실 틀린 게 하나 없다. 그의 말처럼 웹소설 시장은 앞으로 천문학적으로 커질 테고 웹소설의 1차 IP를 통해 게임, 웹툰,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등 OSMU 사업 또한 무궁무진하게 발전해 나갈 테니까.
하지만 눈 앞에서 130억을 살랑살랑 흔드는 데 미래를 모지 못하는 오성민 대표가 넘어가지 않을 리 없다.
—흐음……. 확실히 적은 금액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대표님께서 말한 조건을 충족하면서 진행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군요.
2015년도인 올해 가장 고해상도인 Full―HD 카메라 화면에 찍힌 오성민 대표는 최대한 차분한 표정을 지으려 하고 있었지만 그의 엉큼한 속내가 두근거리는 게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훤히 보인다.
여기서 더 두근거리면 그건 돈줄 때문이 아니라 경동맥 때문일 텐데, 여하튼 그렇게 드시고 싶으면 드려야지.
나머지 지분을 오진아 팀장이 가져간다고 해도 우리가 맺은 계약에 따라 그 지분의 반은 내가 더 챙겨갈 테니까.
“단풍 삼촌 5억 더 얹어줘. 여기가 끝이라고 하고.”
—135억. 여기까지가 제안할 수 있는 마지노선입니다. 계약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빈 손으로 나가시겠습니까?
—음…….
욕심 많은 오성민 대표님께서 치솟아 오르는 광대를 누르기 위해 애를 쓰신다.
‘더 불러도 상관 없기는 하지. 나와 단풍 삼촌이 예상한 BS북의 지분 절반을 가져오는 데 들어가는 가치는 170억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도 170억을 모두 태울 생각은 없다. 비록 기가막힌 투자로 내가 돈을 불렸다고 한들 회귀 후 짧은 기간 안에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미래의 정보를 아는 것과 달리 우리 엘가와 킵비트 임직원들에게 들어가는 금액과 회사 임대료 등에 매달 고정으로 빠져나가는 비용이 있었으니까.
즉, 그런 상황을 모두 고려하자면 여유 있는 상황 속에서 내가 던질 수 있는 금액은 150억 원.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현재 수익 창출을 위해 묶어둔 돈까지 빼내야 한다.
‘오성민 대표, 저 양반이 물어야 하는데…….’
아직 15억 원 정도의 총알이 더 남아있긴 하지만, 점점 한계선에 다다르고 있기에 135억 원이라는 금액에서 최대한 협상을 해야한다.
—흐음…….
팝콘을 으적이던 걸 멈추고 조금은 초조해진 마음으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하는 그때, 오성민 대표의 입에서 다시 한번 옅은 신음이 나왔다.
—죄송하지만 그 금액으로는 타협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BS북은 웹소설 출판업계 탑일 뿐만이 아니라 종이책 출판도 진행하고 있죠. 시장의 트렌드가 점점 종이책에서 웹소설로 넘어가고 있다고 하긴 하지만 대여점에서 나오는 매출 또한 그리 적지 않다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오 대표님께선 그러면 어느 정도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단풍 삼촌의 말에 오성민 대표는 잠시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짧은 침묵이 흘렀지만 오성민 대표는 이미 답을 정해뒀을 게 분명하다.
—BS북의 지분 인수 49.98%의 적정 가치는 145억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오성민 대표의 말에 강경진을 제외한 다른 본부장들은 맞장구를 치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단풍 삼촌은 아무런 대답 없이 침묵을 지켰다.
“삼촌, 140억에 합의하고 안 되면 145억으로 가자. 그래도 5억은 여유 있으니까.”
툭— 툭—
내 말을 들은 단풍 삼촌이 카메라가 달린 단추 앞에서 가볍게 손뼉을 두차례 쳤다. 저 뜻은 내 말에 반하겠다는 수신호다.
—145억이라…… 제가 분명히 전달했을 텐데요. 거래는 135억에 계약을 할지 아니면 밖으로 나갈지.
그리고 내가 아무 말도 없자 단풍 삼촌은 그 신호를 긍정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바로 자신의 작전을 시행했다.
—저희 LGA컴퍼니 같은 신생 출판사와 달리 BS북같이 대여점 시절부터 있던 출판사는 보장인세를 지급하죠. 그러니 종이책을 계속 발행하는 거고요.
종이책 시장에선 작가들이 2천 부도 팔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이 경우 출판사에선 최소 4천 부의 고료를 보장하겠다는 개념의 보장인세를 제공하는 식이었고.
하지만 웹소설 시장에서 보장인세의 개념은, 권당 주는 돈에 더 가깝다. 웹소설 시장에서 보장인세를 부르는 정식 명칭은 ‘종이책 계약’이다.
‘7:3인 전자책 계약 조건을 6:4로 하는 대신, 종이책 계약을 따로 맺는 식이지. 그래야지 대여점에 단행본을 뿌려 수익을 늘리는 거고.’
—그런데 말입니다. 그건 저희 LGA컴퍼니에선 있으나 마나한 조건입니다. 사실 메리트라고 치기에도 애매하죠.
—애매하다뇨? 종이책 출간으로 나오는 수익은 무시할만한 게 아닙니다.
—우리 LGA컴퍼니가 창립한 지 만 2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보장인세 같은 계약 없이도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죠. 설마 제가 BS북을 인수하려는 이유 중에 대여점 시장 같은 푼돈까지 생각하는 줄 아신 겁니까?
오성민 대표의 말에 단풍 삼촌이 조소 섞인 코웃음을 내뱉었다.
—오 대표님께서 BS북의 가치를 그런 곳에 중점을 둔다고 생각하시는 걸 보면 이번 지분 인수는 다시 한번 고려해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요.
—대표님, 좀 더 고민해 보시죠.
이어진 단풍 삼촌의 말에 강경진은 이때다 싶었는지 대화의 틈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걸 보고만 있을 단풍 삼촌이 아니었다.
—이런, 제 말을 아직도 제대로 못 들으신 것 같습니다? 고민할 건 없습니다. 제가 내건 조건 그리고 135억에 오늘 계약을 진행하시던지 그게 아니면 그대로 나가시면 됩니다.
—이 대표님. 싫다는 게 아니라 협상 금액을 조율해보고 싶다는 뜻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10억씩 쭉쭉 올리던 단풍삼촌이 돌연 단호한 입장을 취하자 애가 닳는 건 오성민 대표였다. 그리고 단추 카메라에 찍힌 본부장들의 표정 또한 오성민 대표와 비슷했고.
—135억이면 BS북이 아닌 소형 출판사 두 곳의 지분 100%를 인수할 수도 있는 금액입니다. 더는 말 하지 않겠습니다. 계약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나가시겠습니까?
—대표님 일단 이번 미팅은…….
—조용히 좀 해!
거듭되는 강경진의 말에 오성민 대표는 언성을 높였다. 그리고 이어진 짧은 정적을 파고든 건 단풍 삼촌이었다.
—만에 하나, 오늘 정하지 않고 내일 다시 돌아오신다 해도 지금과 같은 제안을 받으실 순 없을 겁니다.
—…….
단풍 삼촌이 더는 말하지 않아도 카메라에 비친 표정을 보니 본부장들과 대표는 이제야 모두 깨달은 모양이다. 첫 제안이 가장 달콤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