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25화 (125/201)

125화 ― 간단한 산수 한번 해보시죠.

* * *

“부담스럽다니? 대체 킵비트의 대주주가 누구이길래 그러는 거지?”

내게 묻는 오성민 대표뿐만이 아니라 본부장들 또한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다. 그리고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읽힌 오진아 팀장 또한 놀란 감정을 완전히 갈무리하지 못했다. 왜냐면 그녀 또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감을 잡지 못했을 테니까.

‘오진아도 당연히 킵비트의 대주주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겠지. 애초에 내가 킵비트에 관해선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기도 하고.’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이라는 말처럼 나는 오진아에게 킵비트에 관한 언급을 한 적이 없다. 킵비트는 내 몸을 상해 가면서 꾸며 내는 고육지책이 아니다.

강경진만을 죽이기 위한 칼도 아니며, 애초에 무기로써 사용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진아 씨, 그렇다고 너무 서운해하진 말라고. 킵비트에 관해선 엘가의 수뇌부인 이지연 본부장이나 권미현 본부장도 전혀 모르는 사실이니까.’

브루나이 정부와의 협업을 통해 제작 중인 해외 플랫폼 사업은 출판사들과의 투닥거림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들, 바로 플랫폼과의 결전을 위한 준비였다.

그리고 킵비트는 그 전투의 화력을 보충해줄 금광.

그렇기에 킵비트의 존재는 그간 극비 중의 극비로 다뤄졌지.

“49.98%를 제외한 BS북의 나머지 지분 소유자가 오진아 팀장님이 되길 원하는 분은 킵비트의 대주주이자 LGA컴퍼니의 이무진 본부장님입니다.”

“뭐? LGA?!”

“이무진?”

그리고 플랫폼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극비리에 진행한 프로젝트, 바로, 가상화폐 거래소인 킵비트를 설립하고 대주주로서 킵비트를 관리하는 건 바로 단풍 삼촌이다.

오성민 대표, 이상철 본부장, 정병헌 본부장, 강경진 그리고 오진아 팀장까지 모두가 경악했다는 듯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강경진, 영광인 줄 알아라. 고작 너 같은 쓰레기 새끼를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꼴이니까.’

내겐 표정으로 상대의 의중을 간파하는 마이크로 익스프레션, 그리고 10년 전 과거로 회귀하게 된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건 회귀도 마이크로 익스프레션도 아닌, 한번 본 소설의 내용을 잊지 않는 기억력의 공로가 가장 컸다.

‘가상화폐 거래소 킵비트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한번 본 것은 잊지 않는 내 기억력 덕분이지.’

처음 과거로 회귀했을 때만 하더라도 단순히 쓰고 싶었던 내 글을 정당한 계약 조건에서 쓰고, 각종 사기 계약을 통해 나를 나락에 빠트렸던 강경진을 무너뜨릴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강경진을 잡기 위해선 BS북을 잡아야 했고, BS북을 잡는다고 해도 그 뒤엔 플랫폼이라는 거대한 방벽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BS북에 입사해 몸소 편집자 생활을 하면 할수록 나는 강경진과 BS북만 무너뜨리는 것만으론 결코 웹소설 출판계의 부조리를 없앨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비록 내 기준으로는 각종 사기 계약으로 내 숨통을 조였던 강경진이 가장 먼저 단두대에 올려야 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한우석이, 혹은 파브르가 그런 존재일 수도 있을 터.

출판계의 해충을 싸그리 박멸시키기 위해 나는 회귀 후 단풍 삼촌과 함께 일을 하기로 한 후, 단순히 코인을 매수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상화폐 거래소인 킵비트를 설립하기로 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극비리에서.

‘단풍 삼촌은 나보고 투자의 신이 아니냐고까지 했었지.’

단풍 삼촌이 엘가에 합류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코인 투자와 가상화폐 거래소 킵비트 설립을 위한 준비 기간 동안 단풍 삼촌은 혀를 내둘렀었다.

대체 그래프 하나도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몇 월 며칠, 얼마에 어떤 종목을 사고파는지는 대체 어떻게 아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다시 한번 ‘한강 물은 여름에도 차다’의 ‘코인개망’ 작가에게 들리지 않을 감사 인사를 전한다. 비록 그의 삶은 험난했지만, 그가 각혈하면서 얻은 정보가 회귀 후 내 삶에는 그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부디 이번 생엔 잘 안전 투자 하시길 바랍니다, 작가님.’

들리지 않을 감사의 말을 코인개망 작가에게 전하는 그때, 정변헌 본부장이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엘가의 이무진? 그 조폭같이 생긴 인간 말하는 거야? 그 뭐냐, 얼굴에 칼자국 가득한?”

“네, 맞습니다.”

“하……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를 제외하고 BS북 임직원들 중 실제로 단풍 삼촌을 마주친 적이 있는 사람은 운영본부장 정병헌이 유일하다.

그리고 정병헌 본부장은 단풍 삼촌의 사나운 얼굴이 떠올랐는지, 그게 아니면 킵비트라는 가상 화폐 거래소의 대주주가 단풍 삼촌이라는 게 너무 갑작스러웠는지 체한 사람처럼 낯빛이 창백해졌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갑작스럽게 말씀드리긴 했지만,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닙니다.”

“지금 이 사람이? LGA컴퍼니는 우리 경쟁 업체 아니야? 심지어 정우 파트장은 담당 작품도 LGA컴퍼니에 뺏겼으면서 뭐? 말이 안 되는 소리가 아니야?”

‘재미있네, 이제야 우리 엘가를 경쟁 업체로 생각하는 거야?’

장급 회의에서 종종 엘가나 다른 출판사를 비하하는 데 앞장서던 정병헌 본부장의 입에서 엘가를 경쟁 업체로 여긴다는 말이 나오자 감개무량한 기분이다. 원래 인정은 적에게 받을 때가 가장 뿌듯한 법이지. 딱히 필요는 없지만.

“제가 담당하던 코즈일 작가의 작품이 엘가로 이관된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그건 제 탓으로 뺏긴 게 아니라, BS북 때문에 뺏긴 게 아닙니까? 그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겠는데요?”

“이 사람이 지금?”

“본부장님들도 다 아시다시피, 그건 코즈일 작가님이 계약하셨을 때 제13조 비밀유지의무 조항 아래 넣은 특약 위반 때문 아닙니까?”

정병헌 본부장의 눈이 매섭게 치켜 떠졌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덤덤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BS북과 작가가 계약이 유지되는 3년의 기간 동안 작가의 동의 없이 소설피아 내서재에 있는 비공개 글을 함부로 확인하거나 유출할 시, 그리고 쪽지함 등에 있는 쪽지함을 열람하는 등 작가의 신뢰를 잃는 행동을 했을 시, 계약 기간 만료 전에도 계약 파기 및 타 출판사로의 작품 이관이 가능하다.’ 이걸 떠올려 보자면 BS북에서 가장 억울한 건 제가 아니겠습니까?”

“…….”

내게 공격을 쏟아부으려던 정병헌 본부장도, 그리고 다른 본부장들 역시 안색을 붉힐 뿐 아무 말도 이어가지 못했다.

‘본부장급이면 다들 알 테지. 천명 작가 그리고 사평 작가가 보냈던 작가방 가입 권유 쪽지 삭제를 사주한 게 니들 중 하나라는 걸.’

그런 치졸하고 음습한 짓을 한 사람이야 보나 마나 강경진일 게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본부장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지 아니면 모르쇠로 일관하려는지 다들 구겨진 미간으로 입만 꾹 담을 뿐이다.

“코즈일 작가의 계약 해지는 담당자인 제가 아닌 BS북 내부 소행으로 인한 일이었습니다. 코즈일 작가님이 저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시니 논란을 키우지 않고 계약 해지만 하신 거였고요. 만약 제가 담당자가 아니었다면 정글북 같은 작가 커뮤니티나 근래 들어 점점 활성화되고 있는 작가방에서까지 그 정보가 다 퍼졌겠죠.”

“크흠…….”

“흠…….”

넉 달 전이었던 올해 8월.

드디어 익명 아래 소통이 가능한 카톡 오픈 채팅이 출시됐다. 그리고 오픈 채팅을 이용한 작가방이 하나둘 활성화되는 중이다.

이미 코즈일의 작품은 모두 엘가로 이관되었기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강력한 한방을 넣기 전에 잔잔바리 펀치를 꾸준히 넣어야 타격이 누적되는 법이지.

“정우 파트장님, 고마워요. 이제부턴 제가 말씀드리죠.”

“네, 팀장님.”

내가 시간을 끄는 사이 오진아 팀장은 어떤 식으로 대화의 흐름을 진행해야 하는지 파악한 모양이다. 나는 그녀에게 바통을 넘겼고 그녀는 여전히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포문을 열었다.

“일개 팀장인 제가 그분과 미팅을 하게 된 건 사실 업무 관련 미팅이 아닌 헤드 헌팅 면접이었습니다.”

“오진아 팀장!”

그간 이어진 내 설명 내내 차분히 말을 경청하던 오성민 대표는 오진아 팀장의 말 한마디에 바로 언성을 높였다.

‘그럴 만도 하지 자신의 딸이 경쟁 업체 면접을 봤다고 면전에서 밝히는 꼴이었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킵비트의 대주주 이무진, 아니, LGA컴퍼니의 이무진 본부장과 미팅을 진행했던 건 단지 최근 웹소설 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영향력 있는 LGA컴퍼니의 경영자가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해서였기 때문이니까요.”

“재미있네요. 오진아 팀장님은 그럼 단순히 그 사실을 위해 면접을 나갔고 거기서 투자 제안까지 받았다는 말을 하는 겁니까?”

잔뜩 일그러진 오성민 대표의 말이 더 이어지기도 전에 강경진이 그 틈을 송곳처럼 비집고 들어왔다. 하지만 오진아 팀장은 여전히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맞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작가님 중에 저희 측 그리고 LGA컴퍼니 측과 동시 계약을 진행하신 작가님이 계시죠. 그 작가님을 통해 이무진 본부장님이 저에 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헤드헌팅 제안도 받은 거였고요.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건 경진 오빠도, 아버지도 다 아실 텐데요?”

“진아 팀장님! 지금 무슨?!”

오진아 팀장은 자신의 정체를 여실히 드러내기로 한 모양이다. 갑작스러운 오진아 팀장의 말에 강경진과 오성민 대표뿐만이 아니라 운영 본부장과 출판 본부장 또한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곁눈질했다.

“정우 파트장님도 제 신분을 알고 있어요. 낙하산이 아닌 능력으로 인정받을 생각이라 더 숨길 생각도 없고요.”

“…….”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아버지 그리고 경진 오빠뿐만이 아니라 본부장님들도 다들 BS북을 키워서 매각하실 생각이잖아요?”

하지만 그들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뒤로 한채 오진아 팀장은 결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이무진 본부장과 처음 했던 미팅은 LGA컴퍼니의 정보를 최대한 빼 올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이무진 본부장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지금과 같은 경영 방식을 고수한다면 BS북은 후발주자인 LGA컴퍼니를 결코 이길 수 없으리란 게 확실해졌죠.”

설명을 이어 나가던 오진아 팀장의 시선이 잠시 나를 스쳤고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오진아 팀장이 어떤 식으로 대화의 흐름을 끌고 나가려는지 나 또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대화의 방향키를 잡은 건 그녀였다.

“그래서 그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거예요. LGA컴퍼니라는 회사가 단지 출판 쪽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그 LGA의 실질적인 대표나 마찬가지인 이무진 본부장이 뒤에서 거대한 자금력을 조달할 수 있는 큰손이란 걸, 그리고 결국 우리가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아신다면 아무런 해결책도 없는 상황에 다들 심기만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

“흠…….”

그리고 오성민 대표는 마치 오진아 팀장의 말을 방증하듯 굳게 다문 입술로 옅은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하지만 정우 파트장님뿐만이 아니라, 제가 생각해도 더는 이대로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입사하기 전에 경진 오빠가 처음 받아온 올댓스토리 투자로 제대로 된 것도 없고, 이번 사모펀드 투자 건은 BS북의 가치를 더 떨어트릴 것 같으니까요.”

“가치를 더 떨어트리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BS북의 사람들은 강경진이 성골인 줄 알지만, 따지고 보자면 그는 진골에 가깝다. 진짜 성골은 대표를 아빠로 둔 오진아 팀장이니까. 그리고 오진아 팀장은 자신의 낙하산이 강경진의 것보다 더 크고 강한 것을 증명하듯 더욱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제 뜻도 아버지 그리고 본부장님들과 별반 다를 게 없어요. 회사를 더 높은 가치로 매각하는 것. 그게 제가 BS북에 들어온 이유니까요.”

이어지는 설명에 강경진의 가면이 반 이상 벗겨졌다.

하지만 사납게 일그러진 강경진의 표정과 행동에 오진아 또한 가면을 벗었고 그 안엔 진골 따위의 시선은 가볍게 흘러버리는 오진아의 비릿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그동안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녀가 어금니가 드러나도록 환히 미소 지으며 BS북이란 왕국의 절대군주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오성민 대표를 향해 말했다.

“경진 오빠가 말한 70억 원, 그리고 제가 말하는 100억 원. 어떤 게 더 나을지 간단한 산수 한번 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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