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24화 (124/201)

124화 ― BS북의 대표로서.

* * *

“하하, 내가 뭐 잘못 들었나? 70억 원이 땅 파면 나오는 돈도 아니고.”

“정우 파트장 그동안 월급 많이 모았나 보죠. 월급 아껴 쓰고, 예적금 들고, 주식에 좀 돌리고 하면 그 정도는 나오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강원랜드라도 갔다 왔나?”

“에이, 강원랜드는 아니겠죠. 가서 잭팟이라도 터지나, 으흐흐.”

“그러게 말입니다, 으하하하.”

70억을 투자할 수 있다는 내 말에 출판본부장과 운영본부장의 입에서 비웃음 섞인 조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입꼬리를 꿈틀대며 웃음을 참던 강경진 역시, 사람들의 반응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잘못 들은 것 같지만, 혹시나 해서 묻습니다. 박정우 파트장의 말이 지금 BS북에 70억을 투자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아, 죄송합니다. 제가 말을 좀 모호하게 전달드렸군요. 제 말뜻은 70억을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가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렇습니까? 박정우 팀장이 누구와 어떤 인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곳에서 BS북에 70억을 투자할 수 있다는 건지 참 궁금하군요.”

그래, 언제까지 그렇게 웃을 수 있나 보자.

네 입가에 가득한 미소가 이제 곧 사라지게 해줄 테니까. 강경진의 말에 나 또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공교롭게 제가 아는 업체도 가상 화폐 업체입니다. 킵비트라는 업체인데 70억, 아니,그 이상도 투자할 수 있을 정도로 자금력이 있는 회사죠.”

이어진 내 설명에 다시 한번 본부장들의 입가에 실소가 자아졌고, 조팟놈 역시 내가 객기를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명품이라며 자랑하던 뿔테 안경을 쓸어 올리며 낄낄댔다.

‘역시, 그래도 너는 알아 채는 구나?’

하지만 오직 단 한 사람.

강경진의 표정은 창백하리만큼 차가워졌다.

“킵비트…… 지난 10월에 오픈 베타를 시작한 가상 화폐 거래소를 말하는 겁니까?”

그리고 창백해진 얼굴로 묻는 강경진의 말에, 다시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허무맹랑한 소리로만 여겼던 내 말이 강경진의 반응으로 인해 묘한 기류로 변하게 되었으니까.

“어? 강 본부장님께서는 알고 계셨군요? 맞습니다. 아직 원화 입금은 되지 않지만 미국의 가상 화폐 거래소인 비트베이스와 독점 제휴를 맺어서 국내 타 거래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가상 화폐를 보유하고 있죠.”

“……정우 파트장님이 킵비트 관계자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 겁니까?”

반신반의하는 듯한 강경진의 물음에 나는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피식 미소 지었다.

“이런, 제가 계속 설명을 애매하게 드리는군요? 킵비트의 대주주님과 아는 분은 제가 아니라 저희 오진아 팀장님이십니다. 저희 팀장님께서 아까 이 말을 하시려다가 얘기를 마저 다 끝내지 못하신 것 같아서 제가 대신 설명드린 거고요.”

오진아 팀장을 바라보며 건넨 말에 그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을 통한 내 눈에만 감정이 읽혔을 뿐이지, 다른 이들이 보기엔 여전히 감정 없는 기계 같은 표정이었지만.

“오진아 팀장이 킵비트 쪽과는 어떻게……?”

강경진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오진아 팀장을 바라보았다. 물론 눈치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빠른 오진아 팀장은 바로 내 의도를 눈치채곤, 잠시 당황했던 표정을 얼굴에서 지우고 말없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비록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이대로 뒀다간 강경진에게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이란 걸 그녀가 모를 리 없다.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강경진의 표정처럼 오진아 팀장 또한 답답하긴 매한가지일 테다. 왜냐면 그녀 또한 아는 게 없었으니까.

“이 얘기를 오진아 팀장님께서 선뜻 하지 못하셨던 이유는, 단순한 투자로 보기보단 인수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인수? 허,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회사가 출판계 넘버원인 우리 BS북을?”

“이상철 본부장님, 일단 이야기는 들어 봅시다.”

허울뿐인 회사 몸집을 물 먹여 얼린 생선처럼 부풀리고 한몫 두둑이 챙겨 엑시트 하는 것!

그게 바로 중소기업 오우너들의 오랜 꿈이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향한 이야기를 하는데 오성민 대표의 심장이 요동치지 않을 수 없겠지.

‘그래 눈을 그렇게 계속 빛내 보라고. 우리 대표님의 꿈을 내가 현실로 만들어줄 테니까.’

오진아 매니저와 함께 손을 잡은 후로, 강경진의 실체가 기업 가치를 높이고 그걸 팔아먹으려는 데 혈안이 된 놈이라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강경진이 처음 사모펀드 투자를 말할 때만 해도 나는 긴가민가 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BS북을 집어삼키는 행동을 하려는지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었으니까.

“킵비트의 대표이사 님께선 소설 및 웹툰사업 부문을 분할해, BS북의 지분 49.98%를 확보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하, 거의 BS북을 자회사로 만든다는―”

“킵비트에서 제안한 금액은 백억 원입니다.”

“배…… 백억?”

운영본부장 정병헌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툭 내뱉은 말.

정확히는 백억 원이라는 그 웅장한 단어에 정병헌 본부장뿐만이 아니라 대회의실 안의 다른 이들 또한 모두 숨이 막힌 듯 입을 벌리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네, 49.98% 지분 확보에 정확히 백억을 얘기했습니다. 강 본부장님이 말하신 사모펀드 투자금액보다 무려 30억 원이 더 높은 금액이죠.”

하지만 강경진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분명 사모펀드 투자자들과 강경진은 긴밀한 커넥션이 있으리란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오진아 팀장이 내게 말했던, 단기간에 극단적인 기업 운영을 강행해 몸집을 불려 나가려는 행동임이 분명했고.

“대표님, 백억 원 투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아니,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50%에 달하는 BS북의 지분을 챙긴다면 이는 사실상 경영권을 넘기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출판사와 전혀 관계도 없는 킵비트에 회사를 팔아넘기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닙니까?”

“흠…… 이상하네요? 킵비트나 강 본부장님의 뉴테라랩스나 둘 다 가상 화폐 투자 회사 아닙니까? 회사의 규모 면이나 자금력만 비교해 보더라도 뉴테라랩스가 훨씬 앞서는 것 같은데요? 머슴살이도 대감 집 머슴이 낫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아니겠습니까?”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릴―”

“그만. 장급 회의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고 본부장님들 그리고 오진아 팀장은 따로 이어서 회의 하도록 하지.”

선교사 같은 얼굴로 포장 되었던 강경진의 가면이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고, 오성민 대표가 부리부리한 눈을 빛내며 그의 말을 멈춰 세웠다.

‘강경진, 이 양아치 새끼야. 당혹스럽지? 그러게 왜 예고도 없이 선빵을 치고 그랬어. 나도 때릴 수 있는데.’

역사를 통튼 모든 전투와 싸움 중에서 가장 당혹스러울 때가 자신이 한 공격을 그대로 당했을 때다.

사모펀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말로 BS북을 집어 삼키려 한 강경진이 자신이 한 행동 그대로 카운터 펀치를 맞게 되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박정우 파트장도 고생 많았고, 회의실에서 나가 보세요.”

“아뇨, 대표님. 킵비트의 인수 관련 회의엔 정우 파트장님도 함께 동석했으면 합니다. 정우 파트장님이 꼭 필요하기도 하고요.”

장급 회의가 끝났다는 말에 판무 2팀의 김동현 팀장과 조팟, 그리고 운영팀과 로맨스 팀의 팀장과 파트장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성민 대표의 축객령이 떨어졌음에도 오진아 팀장은 내가 그대로 있기를 요청했다.

‘미안해요 진아 씨, 상황이 워낙 갑작스러워서.’

잠시 우릴 본 오성민 대표가 허락의 의미로 턱짓했다. 들리지 않을 사죄의 말을 오진아 속으로 읊조리며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 나와 오진아 팀장의 모습을 보던 오성민 대표는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정우 파트장이 일을 잘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진아 팀장의 신뢰를 이렇게 얻은 줄은 몰랐네? 대표도 모르는 얘기를 파트장이 알고 있고?”

대표와 본부장들 그리고 오진아 팀장을 제외한 모두가 나가고 대회의실 문이 닫히자, 오성민 대표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다만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읽힌 오성민 대표의 감정은 질책이 아닌 희열. 마치 자기 앞에 놓인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가늠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진아 팀장님께서 이 얘기를 듣고 바로 전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회사 입장으로서는 좋은 제안일 수도 있지만, 진아 팀장님이 이 얘기를 꺼내긴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테니까요.”

오성민 대표의 질문은 자신의 딸을 향했지만 대답은 내 입에서 나왔다. 오진아와 내가 입을 맞추기 위해선 그녀에게도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한 상황이니까.

“부담스럽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오진아 팀장을 향했던 대표의 시선이 나를 향했고 나는 마지못해 입을 여는 아이처럼 잠시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대여점 시절부터 장르소설을 대표한 BS북이 여전히 부동의 1위 출판사인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50%에 가까운 지분 투자에 백억 원을 넣는다는 건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조건이 진아 팀장이 말하기 부담스러워하는 그 이유인 건가?”

오성민 대표의 말에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오진아 팀장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이제 기다려 왔던 말을 할 차례다.

“49.98%의 지분 확보를 위한 백 억 원 투자. 그 조건은 남은 지분의 소유자가 오진아 팀장님이 되시는 겁니다. BS북의 대표로서.”

“하, 박정우 파트장!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회사가 무슨 장난인 줄 압니까?”

“강 본부장, 그만. 진정하고 이야기를 마저 듣도록 하지.”

강경진 이 양아치 새끼야.

회사를 장난으로 생각한 건 너겠지.

그러니 수익성도 없는 NFT를 대단한 것으로 부풀려 헛소리나 했을 테고.

‘그런데 코인 준비는 너만 한 게 아니야. 그동안 내가 벌은 인세가 다 어디로 갔을 것 같냐? 물론 알 턱이 없겠지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강경진의 표정을 보니 절로 비릿한 비웃음이 마음 속으로 지어진다.

앞으로 반년 정도 뒤면 웹월드에 출시될 전설의 웹소설 ‘나 혼자만 상하차’는 142억 뷰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만들어 내는 웹툰화 대성공을 이뤄냈다.

그리고 142억 뷰라는 실제 IP를 이용해 ‘나혼상’은 한정판 디지털 작품 유통 서비스를 통해 NFT를 판매 했었지.

‘나혼상 NFT가 망하진 않았지, 1분만에 모조리 완판 됐으니까.’

나혼상의 경우 최종화의 마지막 장면을 담은 메인 NFT가 당시 시세로 80만 원, 나혼상의 주인공이 세계관 최강자로 거듭난 모습을 담은 서브 NFT의 금액이 16만 원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직 국내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나혼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 강경진이 NFT사업으로 구상한 것처럼 단순히 웹툰 이미지가 아닌 해당 장면을 애니메이션화 시킨 NFT인 것으로도 차이가 있었고.

그런데 나혼상급의 인기도 아닌, 특정 연령층의 구매자만 대거 포진된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의 메인 NFT가 100만 원에 서브 NFT가 50만 원?

바보가 아닌 이상 아무도 투자하지 않을 테다.

“그런데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에 앞서 진아 팀장이 킵비트의 대주주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지?”

오성민 대표의 시선이 오진아 팀장을 향해 쏘아졌고, 오진아 팀장은 도움을 바라는 요청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비록 나와 오진아가 한 편을 먹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나에 관한 모든 사실을 밝힌 게 아니었으니까.

“그 부분 또한 진아 팀장님께서 밝히기 부담스러워 하신 부분이었죠. BS북을 인수하기 원하는 킵비트의 대주주, 그 분은 본부장님들과 대표님도 아시는 분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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