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 저도 투자할 수 있습니다. 70억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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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스러운 점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디지털 자산 토큰인 NFT의 핵심은 희소성입니다. 쉽게 말해 사치품을 온라인 경매로 사고파는 행위죠.”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읽히는 강경진의 미묘한 표정 변화가 나를 더욱 들뜨게 한다. 회의실 안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눈빛을 받아내며 나는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렇다면 경매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정말로 그 물건의 가치를 알아서? 예,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경매에서 물건을 사고 소유하는 행위는 진정 그 물건의 가치를 안다기보다 과시할 수 있는 징표로 삼는 게 대부분입니다. 마치 손목에 롤렉스를 차고, 누군가는 명품 안경으로 자신의 가치를 뽐내고 싶어하는 것처럼요.”
슬쩍 조팟을 흘기며 뱉은 말에 아니나 다를까, 조팟놈의 얼굴이 바람맞은 개처럼 푸들대기 시작했다. 조팟놈과 강경진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니 나는 되려 피곤한 몸에 수액을 맞은 것처럼 기분이 산뜻해졌다.
“하지만 강 본부장님께서 생각하시는 NFT가 구매자들에게 해당 작품의 일부분을 소유했다는 심리적 만족을 줄 수는 있겠으나, 이를 온라인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과시할 수 있을까요?”
강경진이 내 말에 답하려는지 꾹 다물어졌던 놈의 입술이 살짝 벌려지기 시작했다.
‘새끼가 어딜 감히?’
하지만 나는 조금의 기다림도 없이 바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런 화두를 던진 건 그 답이 궁금해서가 아닌 강경진 이 양아치 놈을 깎아내리기 위함이었으니까.
“물론 미술품을 사는 이들처럼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릴 수 있겠죠. 거기다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트위터 같은 SNS에선 NFT를 프로필 사진 등으로 설정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올 수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NFT화 시키려는 콘텐츠가 그 자체로 명품이 되어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지금 우리 BS북의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는 NFT로 만들 수준이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마치 내 말의 허점을 잡았다는 듯이 강경진은 말허리를 자르곤 그 틈을 송곳처럼 비집고 들어왔다. 악의가 다분한 미소를 지으며 꺼낸 그의 말에 나 역시 속으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강경진은 모를 테다.
크레바스처럼 훤히 드러난 그 틈은 희생자를 먹어치우기 위한 의도적인 균열이라는 걸.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가 BS북의 대표 작품인 걸 부인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독자의 눈높이에서 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박정우 매니저? 대표님과 본부장님들도 모두 계신 자리이니만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아, 하하.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너무 상식적인 부분이라 다들 아시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혹시 이해하기 어려우셨다면 실무자인 제가 찬찬히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강경진이 나를 부르는 호칭에서 ‘님’자가 빠진 걸 보니 슬슬 내가 거슬리기 시작한 모양이다. 평소에는 늘 자신의 속내를 가면 뒤에 숨기지만, 자신이 받는 공격이 그 한계를 넘어서면 사춘기 소녀와 같은 감수성을 자랑하는 놈이다.
“다양한 웹소설 장르를 가장 크게 구분하자면 로맨스, 현로, 로판으로 구분되는 여성향 웹소설. 그리고 흔히 판타지, 무협으로 구분되는 남성향 웹소설이 있죠. 물론 남성 독자라고 해서 로맨스를 안 읽고 여성 독자라고 해서 판무 장르를 안 읽는 건 아니지만, 본부장님들의 이해를 위해 이렇게 부르겠습니다.”
강경진은 내 언행이 고까운 듯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지만 나는 그를 향해 밝은 미소를 지었다. 놈이 늘 그리했듯이.
“그리고 남성향 웹소설 독자들의 경우엔 특이한 성향이 있죠. 작가의 이름값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재미입니다. 작가의 이름값이 아무리 높아도, 전작이 얼마나 흥행했더라도 새로운 작품이 재미가 없다면 조금의 애정도 없이 냉혹하게 등을 돌리는 게 남성향 독자입니다.”
“모두가 다 아는 말 같은데, 무슨 말을 하겠다는 거지? 본론이 있다면 바로 말했으면 하는데?”
이상철 출판본부장이 강경진의 지원 사격에 나서는 모양이다. 나는 그의 말에 화답하듯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제 말의 요지는 오늘 회의에서 강 본부장님이 말씀하신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의 인기가 독자 기준이 아닌 저희 BS북이라는 출판사의 기준에 맞춰진 거란 뜻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남성향 독자들은 오로지 해당 작품의 작품성과 재미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어느 출판사에서 어느 작품을 냈는지는 아예 관심도 없죠.”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읽힌 강경진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보니 이제야 놈은 내가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한 것 같다.
그런데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네?
그러면 내가 대신 벌려줘야지.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는 좋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보자면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 만큼의 재미를 지닌 작품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를 NFT로 제작을 한다?”
내 시선이 강경진을 향해 옮겨졌다.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독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일반 대중에게도 생소한 NFT. 그리고 NFT화 시키려는 작품이 독자들의 기준으로서는 수많은 킬링타임용 작품 중 하나인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가 합쳐진다면 이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일회성 이벤트가 될 게 분명합니다.”
“하하, 일회성이라……. 일회성으로 보이는 이벤트에 사모펀드 투자자들이 아무런 계산도 하지 않고 70억이란 거금을 태운다는 게 박정우 파트장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까?”
자신이 생각해도 논리적으론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강경진은 이번 투자의 핵심이자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70억을 다시 들먹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투자자분들이 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저는 강 본부장님처럼 아이비리그를 나온 인재가 아닙니다. 단지 소설을 사랑하는 고졸 출신의 활자 중독자 편집자일 뿐이죠. 하지만 그렇기에 더 독자의 눈으로 냉철하게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어진 내 말에 학력 보기를 금같이 하는 정병헌 운영본부장이 냉소와 함께 혀를 찼다.
“결국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박정우 파트장 눈에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가 재미가 없었으니 NFT 제작도 힘들 것 같다는 말 아닌가?”
“아뇨,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실제로 지표가 좋은 작품이기도 하고요. 유료화 전환되기 전에 관심작 2만 그리고 완결까지 관심작 1만 5천에 평균 구매수는 2,000 초반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런 지표의 작품이 웹소설 판무 장르판을 두고 보면 수두룩한 게 사실 아닙니까?”
새끼들이 꼭 뼈를 때려야 말을 알아 처먹는다.
강경진이 좋아하는 숫자 놀이, 웹소설 작품에 한해서는 나도 빠지지 않는다. 내가 읽었던 작품이면 정확히 몇 월 며칠에 관심작 수와 구매 수 끝자리가 어땠는지까지 나는 기억하니까.
“게다가 가상 화폐에 관심을 보이는 대부분의 투자자는 이삼십 대입니다. 강 본부장님의 뉴테라랩스에서 현재 열심히 기술 개발 중이신 NFT에 관심을 보이는 연령층 또한 비슷한 연령대겠죠.”
물론, 실제로 가상 화폐에 가장 많은 금액을 쏟아붓는 연령대는 40대 그리고 그다음이 30대다.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빈약한 20대는 50대 아니, 60대 이상의 연령대보다도 투자 금액이 작지만 지금은 그 사실을 호도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어찌 됐든 현시점에서 장년층이 가상화폐에 대해 무관심한 건 사실이니까.’
그 사실을 눈치챈 강경진이 뭐라 항변하기 위해 입가를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이자 나는 빈틈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의 독자 연령층은 어떻습니까? 실례가 안 된다면 소설피아에서 구매자 통계 화면 한 번만 띄워주실 수 있으실까요? 직접 보여드리면서 설명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아…… 예.”
타다닥— 딸칵—
빔프로젝터 화면을 조정하는 운영팀 파트장에게 눈빛으로 부탁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설피아에 들어가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를 검색했다.
드르륵— 드륵—
적막만 감도는 대회의실 안엔 운영팀 파트장이 마우스 휠을 내리는 소리만 가득 울려 퍼졌고, 작품 가장 하단에 있는 독자 성별 분포도와 연령 분포도가 나오는 페이지가 나오기도 전에 나는 슬쩍 입가를 미소 지었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의 평균 구매수가 2,000 초반은 되는 줄 알았는데 300화 넘어가면서부터는 거의 1,000대였군요. 애사심에 의해 제가 잘못된 통계를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아수라발발타의 평균 구매수는 대략 1,700정도로 보는 게 더 정확하겠군요.”
이어진 설명에 강경진 그리고 70억에 눈이 멀어 그를 지원 사격했던 본부장 놈들의 안면 근육이 꿈틀댔지만, 나는 다시 빔프로젝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쇠귀에 경 읽기를 다시 친히 진행해줘야 했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파트장님. 하단 부분 화면만 확대해 주시면 감사하겠…… 네! 거기요! 지금 딱 좋네요!”
나는 다시 강경진과 본부장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안타까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입가에 가득 머금은 채로.
“하…… 이런, 구매자 통계를 보니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군요. 지금 보시는 것처럼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의 경우엔 50대 이상의 유료 독자가 가장 많고 이어서 40대와, 30대, 20대, 10대 순이죠.”
나는 설명을 이어 나가며 아예 빔 프로젝터 화면 앞으로 나가 연령대별로 대각선 모양으로 기울어진 그래프 위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여기서 특히 주목하셔야 할 부분은 50대 이상 독자의 압도적인 비율입니다. 대개 진중함이 가득 느껴지는 구무협이나 40대 이상 독자층을 메인 타깃으로 잡는 재벌물 등만 보더라도 50대 이상 독자층과 40대 아래 독자층의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강한 악센트를 주며 빔프로젝터 화면, 그것도 50대 이상을 가리키는 그래프를 콕 찍자 빔프로젝터 화면이 물결치는 커튼처럼 흔들렸고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해 맹렬히 쏠렸다.
“구무협이나 재벌물이라 하더라도 기와집의 지붕처럼 살짝 기운 느낌으로 50대 이상이 45%, 40대가 33%, 30대가 21%인 것 같이 슬로프의 경사면이 낮죠. 하지만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의 경우 남성 독자 98.2%, 50대 이상이 72%입니다. 무협의 전설인 김용 선생님의 글을 올려도 50대 이상에 이 정도로 독자층이 몰리는 일은 없으리란 뜻입니다.”
내 설명이 이어지자 대회의실에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본부장들의 입가에서 옅은 한숨이 쉬어져 나왔다.
정말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았던 건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다른 작품도 아니고 50대 이상 독자층에 몰빵인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를 NFT 코인으로 만든다? 이건 무조건 망할 수밖에 없다.
‘아니, 비단 아수라발발타가 아니더라도 망할 수밖에 없지.’
내가 썼던 글을 NFT로 만들어 판다고 하더라도 지금 시기에는 시기상조다. 앞으로 몇 년이 더 흐르더라도 단지 깜짝 이벤트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리란 걸 나는 미래의 정보로 명확히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70억 원을 미끼로 흔들어 재끼면서 NFT를 이용해 꾸준히 수익을 내자고? 앞구르기 하면서 라면에 밥 말아 먹는 것보다 더 현실감 없는 소리다.
“정우 파트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했듯이 나 혼자 아수라발발타는 단지 NFT와 소설을 접목하는 활성화 사업의 시발점일 뿐입니다.”
하지만 강경진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다.
“NFT사업을 준비하는 사이에 판무팀 혹은 로맨스팀에서 아수라발발타 이상의 작품을 낸다면 언제든 그 스타트를 끊을 작품을 교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중요한 점은 이겁니다.”
강경진의 입가엔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작품이야 정우 파트장 같은 매니저님들이 새로 발굴해 주시면 언제든 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이번과 같이 70억이 달린 투자자들의 투자 제안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죠.”
이야아, 70억을 못 받을 것 같으니까 그 탓을 또 출판본부에 넘기겠다?
“그게 아니라면 정우 파트장은 70억 투자를 대체할 만한 고견이라도 있는 겁니까?”
NFT가 시발점이 아닌 씨발점이라는 걸 강경진은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겠는 모양이다.
그러면 인정하게 해줘야지.
나도 믿는 구석은 있으니까.
“고견까지는 아니지만, 저도 투자할 수 있습니다. 70억 정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