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21화 (121/201)

121화 ─ 70억입니다.

* * *

“제가 대표이사로 이름을 올려놓은 뉴테라랩스는 이미지를 블록체인 안에 기록하고, 최초 제작자와 소유권을 검증하는 기술을 활용하고 있죠.”

강경진의 얼굴에서 한없이 부드럽기만 하던 미소가 가시고, 마치 투자자에게 설명하는 사업자처럼 다소 결연해진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작년인 2014년에는 실제로 제가 시도하려는 기술을 이용한 퀀텀이라는 세계 최초의 NFT가 나오기도 했죠. 뉴테라랩스는 그 기술을 응용하고 발전시켜 NFT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선 초기 투자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아니, 잠시만. 강본, 지금 그 말은 강본이 대표로 있는 뉴트라…….”

“뉴테라랩스입니다.”

한동안 조용히 있던 운영본부 정병헌 본부장의 물음에 강경진이 대답했다.

“그래, 설마 투자를 받는다는 게 우리 BS북이나 BS툰이 아닌 뉴테라랩스가 받는다는 겁니까?”

“…….”

정병헌 본부장이 건넨 질문에 짧지만 길게 느껴지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강경진은 옅은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기술 개발과 시스템 안정화 등 기본적으로 NFT를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은 저희 뉴테라랩스에서만 가능한 일이기에 관련 투자를 받는 건 뉴테라랩스가 될 예정입니다.”

강경진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고, 정병헌 운영본부장과 이상철 출판본부장은 오성민 대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사전에 들은 바가 있냐는 눈빛으로.

하지만 오성민 대표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받지 않고 오직 강경진을 응시할 뿐이었다. 마치 그가 다음 말을 이어 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NFT 관련 기술은 아직 한국에선 만들어지지 않은 기술입니다. 보안 유지를 위해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다른 분들, 특히, 본부장님들께는 미리 전달드리지 못한 점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성민 대표의 마음을 읽었다는 것처럼 강경진의 말은 곧이어 이어졌다.

“본부장님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임직원 분들께서 확신하셔도 아실 수 있는 일이겠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그 어느곳도 NFT 개발에 착수한 기업이 없습니다. 바로 저희 뉴테라랩스를 제외하곤요.”

“흐음, 조금 놀랍긴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도 가상 코인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서 작품을 NFT로 제작해서 팔았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다만.”

정병헌 운영본부장이 짙은 눈썹을 위로 치켜뜨며 강경진을 또렷이 응시했다.

“강본이 개인 사업체를 따로 운영한다는 건 알았지만, 구태여 그 이야기를 왜 이 자리에서 하는지는 모르겠군요. 특히 강본이 말한 투자가 뉴테라랩스와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있는지도요.”

제법 날카로운 정병헌 본부장의 발언에 강경진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부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본부장님들과 임직원분들께 설명을 드리고 ‘협력’을 받기 위해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려는 겁니다.”

다시금 고요해진 정적 속.

모두의 시선이 강경진을 향했다.

그리고 강경진은 결연하지만 자신이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뉴테라랩스는 BS북과 BS툰에 못지 않은 재능이 뛰어난 훌륭한 직원들 그리고 기술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모든 비용을 연구개발에 투자했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는 못했죠.”

아버지와 삼촌들은 늘 달고다니는 말이 있다.

말이 긴 새끼들은 대부분 사기꾼이라고.

그리고 ‘하지만’이라는 단어가 나온 뒤부터가 모든 대화의 핵심이라고.

즉, 강경진 저 쓰레기 놈이 이제부터 본격적인 개소리를 시작한다는 말이었다. 잠시 오진아 팀장과 시선을 교류한 나는, 강경진의 말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거기다 회사의 설립 기간이 이제 1년 정도로 짧아서 연구개발을 마무리할 수 있는 투자 금액을 바로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때문에 제가 대표님께 먼저 제안드렸던 내용은 BS북과 뉴테라랩스의 합병이었습니다.”

이어진 강경진의 말에 본부장들은 다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좁히기 시작했다.

정병헌 운영본부장과 이상철 출판본부장, 저 둘은 최대한 안정적으로 BS북에 빨대를 꽂고 다니기를 원하는 사람들.

“그래요, 만에 하나 BS북과 뉴테라랩스가 합쳐진다면 어디서 투자를 받겠다는 뜻이죠?”

그렇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가 내키지 않을 터였고, 그들은 그런 감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여실히 드러냈다. 하지만 강경진은 그런 기색에도 불구하고 마치 예상했다는 듯, 다시 부드러워진 표정을 가면으로 삼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골드만삭스에서 재직하던 시절부터 알던 투자자들이 계십니다. 특히 가상 화폐와 NFT 그리고 소설 원작을 통한 OSMU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죠.”

“지, 지금…… 사모펀드를 하겠다는 말입니까?”

미세히 떨리는 듯한 이상철 본부장의 말에 강경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사모펀드라고 해서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사모펀드는 회사 경영에 직접 참여하거나 경영 혹은 재무 자문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가 아닌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이니까요.”

“흐음…….”

“…….”

이어진 강경진의 설명에 본부장들이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강경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로 말을 이어 나갔다. 마치 먹이를 포착한 하이에나처럼.

“사실 뉴테라랩스의 NFT 제작 기술은 현재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희 기술에 관심 있는 투자자들을 통해 사모펀드를 조성해 기금을 마련하게 되면 모든 기술은 내년인 2016년 상반기, 아무리 늦어도 5월이 되기 전에 완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춰 나 혼자만 아수라발발타의 NFT를 발행해 즉각적인 수익을 만드는 게 가능합니다.”

즉각적인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꼬드김에도 본부장들의 별다른 말 없이 입을 다물고 있자, 강경진이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사모펀드 조성 예정 기금이 70억입니다.”

툭 뱉어진 강경진의 말에 본부장들의 눈이 빠질 듯이 튀어나왔다. 대회의실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이제 몇 년 되지도 않은 스타트업에 쉽게 투자할 만한 금액은 아니죠. 이 뜻은 투자자들이 뉴테라랩스의 기술력을 우수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올댓스토리에서 받았던 금액보다도 훨씬 더 큰 금액이었기에 본부장들의 눈은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사실 강경진이 하는 말은 대놓고 회유하는 거나 마찬가지. 자신의 회사인 뉴테라랩스와 BS북을 합병하면 70억이란 기금이 강경진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뿐만이 아니라, BS북의 손아귀에 들어온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70억 줄 테니까 회사 합치자는 말을 어렵게도 하네?’

강경진이 꿍꿍이가 뭔지는 아직 명확히 알 수 없다. 강경진이 따로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얘기는 오진아 팀장을 통해 어렴풋이 듣긴 했었지만, 그게 가상화폐와 관련된 회사인지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 전제 조건으로는 BS북과 뉴테라랩스의 합병이 필수적인 상황입니다. 사모펀드 투자자들에겐 일종의 안전장치로 볼 수 있는 거니까요.”

강경진은 반달처럼 휜 눈으로 대회의실의 모두를 훑은 뒤, 부드러운 미소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흐음…… 즉각적인 수익이 발생한다면 딱히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운영본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출판본부장 오성민의 시선이 정병헌 운영본부장을 향하자, 그 또한 오성민 본부장과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출판본부장님과 비슷합니다. 경영참여형도 아니니 크게 문제가 될 만한 부분도 없을 테고요.”

“하하, 좋군요. 안 그래도 제가 대표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오늘 이 자리를 갖게 된 건 본부장님들과 다른 임직원분들의 의견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본부장님들께서도 별다른 이견이 없으시다면 그러면 이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견 있습니다, 본부장님.”

“……?”

본부장들의 마음이 모두 사모펀드 투자를 받는 쪽으로 좁혀진 그때, 오진아 팀장이 기계 같은 표정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 오진아 팀장의 행동을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강경진이 잠시 쓴웃음을 짓는 게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읽혔다.

“하하, 좋습니다. 이견이 있으시다면 얼마든지 말해보시죠. 오진아 팀장님 외에도 다른 팀장님들이나 파트장님들도 이견이 있으시면 편히 말씀해주십시오.”

하지만 강경진은 금세 제 속내를 감춘 뒤 아무렇지 않은 양 함께 대회의실의 모두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조금은 더 날카로워진 강경진의 시선이 다시 오진아 팀장을 향해 쏘아졌다.

“그럼 우선 오진아 팀장님 얘기부터 들어보도록 하죠. 이번 투자에 관해 어떤 이견이 있으신지요?”

“사모펀드 조성을 통해 뉴테라랩스가 70억을 투자받는다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 전 세계적으로 생소하지만 저희 BS북의 원작을 활용한 NFT를 제작한다는 것 또한 신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요.”

부드러운 강경진의 태도에 아랑곳 않고, 오진아는 여전히 기계처럼 냉막하고 딱딱한 표정로 말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모펀드 기금 조성이 BS북과 뉴테라랩스의 합병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라면, 저는 반대하고 싶습니다.”

단호하면서도 당돌한 오진아 팀장의 말에 강경진의 얼굴이 다시 살짝 일그러졌다. 하지만 오진아 팀장은 다시 거침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비록 웹에 기반을 두고 있긴 하지만 저희 BS북은 엄연한 출판사입니다. 강경진 웹툰 본부장님께서 대표이사로 계신 뉴테라랩스는 이와 전혀 관련되지 않은 가상 화폐 관련 기업이죠.”

“…….”

“저희 BS북 그리고 BS툰의 미래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강경진 본부장님께서 제안하신 합병은 진행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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