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19화 (119/201)

119화 ― 와…… 저걸 받네?

* * *

“아니, 오 팀장님. 듣고 있자니 말이 좀 이상합니다? 이전 1팀 팀장이었던 한우석 팀장의 잘못을 꺼내는 건 좋은데, 지금 우리 2팀보다 1팀의 실적이 낫다는 말은 왜 하는 겁니까?”

잠자코 듣고 있으리라고만 여겼던 김동현 팀장의 시선이 오진아 팀장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오진아 팀장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별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단지 대표님께서 개편된 저희 1팀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물어보시니 저희 매출이 인원수가 수배는 많은 판무 2팀보다 높다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지금 우리 2팀 매니저들은 대부분 신입인—”

“자자, 거기까지 합시다, 김 팀장, 오 팀장.”

본격적인 후년도 사업 계획서 발표를 시작하기도 전에 판무 1팀과 2팀 사이에서 맹렬한 불꽃이 튀기 시작하자, 오성민 대표가 그들을 대화를 가로막았다.

‘오 대표도 확실히 변태네. 팀끼리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걸 보고 좋아하는 걸 보니.’

하지만 그만하라는 말과 달리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으로 읽힌 오성민 대표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회사의 발전은 오직 치열한 경쟁 구도를 통해서만 이뤄진다고 여기는 사람이기에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자기 혈육이 저런 상황에 놓인 걸 보면서도 흐뭇해하다니,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게 분명하다.

“솔직히 오진아 팀장이 실적은 지금 출판 본부 1위를 하고 있다지만, 다들 알다시피 워낙 경력이 짧아서 걱정이 좀 되긴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겠네. 여하튼 새롭게 개편한 판무 1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았으니, 이제 내년도 사업 계획서 발표 바로 진행하도록 합시다. 로맨스팀 주 팀장부터 진행하죠.”

“네, 대표님.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로맨스팀 주예림 팀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후년도 사업 계획서 발표가 진행되었고 그녀를 이어 판무 1팀, 판무 2팀, 운영팀의 발표 또한 각 팀의 팀장들에게서 진행됐다.

“……그 정도로 목표 매출을 잡는 건 불가능 합니다. 산출 근거가 어떻게—”

“주 팀장, 다른 출판사 쪽 얘기 못 들어 봤구나? 지금 이름있는 출판사들 목표매출 다 그 정도는 잡았어. 신생인 유니콘만 해도 내년 목표 매출 70억이야. 그런데 종이책 대여점 시절부터 살아남은 우리가 고작 70~80억만 해야겠어? 못해도 90억은 해야지?”

“본부장님, 비록 유니콘이 신생이라지만 판무 쪽으론 드래곤이 있는 출판사입니다. 유니콘이 70억 한다고 해서 저희가 90억을 해야 한다는 건…….”

물론 후년도 사업 계획 발표라고 해서 상당히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회의가 돌아가진 않았다. 로맨스 주예림 팀장은 정병헌 운영본부장의 말에 말문이 막힌 모양새였다.

“그만, 그만. 주 팀장, 올해 목표 매출 얼마였어? 우리 올해가 60억이었잖아. 안 그래?”

“…….”

“신생도 70억을 한다는데 우리가 신생 출판사랑 똑같이 가서야 되겠냐 이 말이야.”

로맨스 팀 주 팀장의 얼굴은 죽상이었지만 나는 흥미롭게 이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도 그런게 정병헌 운영본부장이 말하는 유니콘은 바로 내 회사, LGA컴퍼니의 로맨스팀 레이블이니까.

‘신기하네, 나도 모르는 우리 유니콘 목표 매출을 어떻게 안다는 거지?’

정병헌 본부장의 말처럼 우리 엘가의 로맨스 레이블 유니콘이 올해 새로 생긴 레이블이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엘가는 최고의 작품만 만들자는 의미로 별도의 목표 매출을 정하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는 탑다운 형태의 매출 압박을 주지 않더라도 실력이 되고 인성이 되는 인재들만 모아둔 곳이니까.

사실 목표 매출을 설정하지 않고 사업을 진행한다는 부분에서 엘가의 경영 본부장인 단풍 삼촌과 초반엔 상당한 마찰이 있었다.

‘단풍 삼촌은 아무리 작은 회사여도 목표 매출을 잡지 않고 사업을 운영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했지.’

하지만 내가 엘가를 창업한 이후, 나는 계속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를 회사에 모셔온다고 해도 매출 압박이 온다면 결국엔 글을 돈으로만 보게 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으니까.

출판사를 경영하는 다른 경영자들 입장에선 내 행동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 여길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나는 회사 시작 부분부터 이 원칙을 고수했고 2016년을 목전에 앞둔 지금까지도 엘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렇기에 판무 레이블인 드래곤에 적용했던 방식을 로맨스 레이블인 유니콘에도 그대로 유지한 거고.

‘물론 코즈일과 노원지귀로 집필하는 내 글들이 아직까진 회사를 먹여 살리는 거나 마찬가지긴 하지. 그래도 재미있긴 하네, 우리 엘가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양반에 유니콘의 후년도 매출이 70억이니 같은 소리나 하고 있으니까.’

운영본부장이 대체 무슨 깡으로 저런 유언비어를 대놓고 퍼뜨리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지만, 여하튼 내 회사 이야기가 나오는 걸 지켜보자니 재미가 쏠쏠하다.

“본부장님께서 해마다 목표 매출을 늘리시는 건 알지만…… 90억은 감당하기 힘든 액수입니다. 이미 사업 계획서에도 65억이라고 설명과 함께 써 뒀는—”

“아이고야, 주 팀장! 진짜 왜 그래? 지금 하는 행동이 무슨 신입 사원처럼 보이는 거 알아? 해마다 목표 매출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거고. 아니, 신생 출판사가 내년에 70억을 한다니까? 이거 듣고도 뭐 드는 생각 없어? 내면에서 들끓는 호승심이나 업계 선두로서 더 분발해야겠다는 그런 들끓는 감정?”

“…….”

‘그딴 게 있겠냐, 새끼야?’가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을 가동한 주예림 팀장의 얼굴에서 읽히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주예림 팀장은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애써 분노를 갈무리하며 말을 이었다.

“물론 업계 선두로서 분발을 해야 한다는 본부장님의 말이 틀린 것은 없지만, 12월인 지금도 올해 목표 매출의 80%를 겨우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년에 갑자기 90억을 맞추라고 하시면 올해보다 2배 가까이 되는 매출을—”

“아니이, 그게 아니지! 주 팀장은 뭐가 문젠 줄 알아?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 그게 문제라는 거야.”

“…….”

운영팀 정병헌 본부장은 지금 감방에서 콩밥을 처먹고 있을 한우석처럼 폭언을 일삼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스라이팅을 섞어 넣는 숨 막히는 화법을 사용하는 인간이었다.

“지금 내가 여러 가지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가면서 내년도 목표 매출을 90억으로 해라! 이렇게 말하면 어떤 방식으로 그걸 하겠다는 걸 강구하는 게 팀장의 몫이지, 어? 안 그래?”

“그렇다면—”

“아, 됐고. 일단 들어 봐봐. 지금까지 우리 본부장이나 대표님이 각 팀에서 요청하는 거 안 들어준 거 있어? 너희 로맨스 팀만 예로 들어도 현로 레이블 따로 만들어야 한다, 로판 레이블 따로 만들어야 한다, BL레이블 따로 만들어야 한다, 19금 레이블 따로 만들어야 한다 해서 다 들어줬잖아?”

계속해서 이어지는 정병헌 본부장의 조언 아니, 가스라이팅에 주예림 팀장의 낯빛은 당장이라도 과호흡이 올 것처럼 창백해졌다.

주예림 팀장의 안색이 종이봉투라도 꺼내 호흡을 진정시켜야 할 것처럼 변했지만, 정병헌 본부장은 조금도 그런 걸 신경 쓰지 않는 사람.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본부장은 제국 공작급의 절대 권력자였기에 귀에 피딱지가 앉을 것 같은 그의 개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며언, 어? 지금 가지고 있는 걸, 어? 이걸 어떻게 조리 있고 야무지게 쪼물쪼물하면서 잘 살려볼까 이런 생각을 해보라, 이 말이야. 자꾸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 이런 말 하지 말고. 안 되면 되게 하라! 이런 말 알잖아? 안 그래?”

“……그러면 내년도에 인력 충원을—”

“자, 그런 건 인사팀장이랑 모여서 따로 이야기하고 지금은 사업 계획 발표 진행하는 거니 목표 매출만 잡고 갑시다. 90억으로, 어?”

“……예.”

올해 로맨스 팀 매출의 배 이상이 내년 목표 매출이 되는 순간, 로맨스 팀장과 그 옆에 앉은 파트장이 나라 잃은 표정이 된 것과는 달리, 정병헌 본부장의 양어깨는 오늘도 한 건 했다는 듯이 으쓱거렸다.

‘와…… 저걸 받네?’

작년까지만 해도 평사원이었기에 사업 계획서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목표 매출이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펼쳐진다는 게 나는 놀라울 뿐이다.

웹소설 출판사의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목표 매출이 얼마든 그냥 되는대로 최선을 다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신북에서는 그게 쉽지 않지.’

BS북의 매니저들은 개인별 목표 매출, 팀별 목표 매출, 본부별 매출을 압박받는다. 그리고 개인별 목표 매출 미달인 매니저는 후년 연봉 협상과 진급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팀별 목표 매출을 달성하지 못한 팀장과 파트장 또한 연봉 협상에 제동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BS북 매니저들에게 월급 인상 따윈 꿈나라 얘기고 동결이 대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해마다 수도 없이 새로운 매니저들이 줄줄이 퇴사하고 그 빈 자리를 경험 없는 신입들이 들어오며, 회사에 남는 이들은 조팟놈 같은 덜떨어진 놈들이라는 게 그간 내가 분석한 BS북의 실체!

오늘도 한결같이 허접한 BS북의 모습에 속으로 감탄을 내뱉는 그때였다.

“자자, 로맨스팀 목표 매출도 끝났으니 그럼 그 정도 하면 될 것 같네. 그럼 강경진 본부장, 이야기하지.”

로맨스팀 주예림 팀장이 맷돌, 아니, 믹서기로 드르르륵 갈리는 소리를 즐겁게 경청한 오성민 대표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강경진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강경진 저 양아치 새끼가 담당하는 웹툰 본부에서 나올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났을 텐데? 대체 또 뭐가 남은 거지?’

나는 왜인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며 강경진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원래 종무식 때 꺼내려고 했는데, 각 팀의 팀장님과 파트장님도 다 모인 자리니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대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들이며 강경진은 평소의 선교사 같은 온화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이번에 새로운 투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시발.

아무래도 강경진이 또 무슨 일을 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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