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15화 (115/201)

115화 ― 일본에서 연락 왔다.

* * *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작가님?”

“아니, 맞는 말이잖아요? 정글북 들어가 봐요. 거기서 작가들이 BS북을 뭐라고 하는지. 이미 이미지가 나락인데 뭘 자꾸 이미지를 신경 쓰고 어쩌구 같은 말을 해요?

“그간 BS북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나쁜 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기에 그 이미지를 쇄신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하지만 제가 지금 여쭌 말은 그게 아닙니다.”

나는 한층 매서워진 눈빛으로 올챙이말랭이 작가를 응시했다.

“편집자가 뭘 안다니요? 글도 못 쓴다니요? 담당 편집자와 저를 면전에 두고 상당히 무례한 발언을 하셨습니다. 사과부터 해 주시죠.”

“하…… 사과? 진짜 가지가지 하네.”

무례를 범한 건 정신 나간 올망 작가였지만 그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며 다시 소주잔을 들이켰다.

“내가 편집자님들 보다 거의 2배는 산 인생 선배로서 조언 좀 해주려고 하는데, 사회 생활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지금 글 쓰는 것만 해도 바빠 죽겠는 사람 불러서 뭐 하자는—”

“계약 해지하시죠.”

“뭐?!”

나는 본론을 바로 꺼내 그의 말을 끊어 냈다.

더 들어봤자 개소리일 게 뻔했으니까.

“오늘 작가님을 뵙기로 한 건 작가님께서 연재를 꾸준히 이어나가시려는 의지가 있는지 확인하려던 거였습니다. 그런데 의지가 없으신 것마저 분명한 마당에 저희 편집자들을 폄하하는 발언마저 스스럼없이 하시는데 작가님과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겠군요.”

“하, 계약 해지? 누구 마음대로? BS북에서 하라는 대로 공지까지—”

“그걸 공지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작가님 말씀대로 저희보다 거진 2배 가까이 사신 인생 선배시면 잘 아시겠네요. 어느 회사에서도 별자리, 운세, 타로 같은 걸 예시로 들면서 함부로 공지를 하는 독자 기만행위를 하진 않는다고요. 계약 해지 관련 내용은 메일로 전달 드리겠습니다. 일어나시죠, 건일 매니저님.”

황건일 매니저는 평소에 내가 보인 적 없던 단호한 모습에 놀랐다는 듯이 눈을 끔벅이며 나를 따라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하지만 가장 놀란 표정을 짓는 건 올망 작가였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그는 한 박자 늦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작가를 두고 누가 먼저 일어서!”

“왜 안 돼! 작가가 갑이고 편집자가 을인 줄 알아?”

나는 더는 올망 작가의 개소리를 듣지 않고 바로 그의 말을 되받아 쳤다.

“똑바로 들으세요 작가님. 글을 쓰고 창작하는 건 작가지만 그걸 편집해서 유통시키는 건 우리 편집자입니다. 작가님께서 글 한 편을 쓰실 때 저희 편집자는 수십 개의 다양한 장르의 글을 읽죠. 재미있는 글 재미없는 글을 가리지 않고요.”

마음 같아선 쌍욕을 박고 싶었다.

하지만 BS북은 이제 단지 없애야 할 게 아니라 내가 안고 가야 할 회사이기에 BS북을 대표해 나온 상황이다.

“단지 읽는 게 아니라 플랫폼별로, 회차별로 비교 분석을 하면서 어떤 전개 방식, 어떤 연출, 어떤 소재를 활용하면 더 작가님의 글을 좋게 만들 수 있는지 연구하고 작가님을 돕는 게 저희의 일입니다. 그런데 편집자가 뭘 아냐고요? 글을 못 쓴다고요?”

글도 배설물같이 쓰는 게 작가 뽕에 취해 편집자들을 하대하는 행동을 참기 힘들 정도다.

“작가님 말대로 편집자가 글을 못 쓸 수 있죠. 하지만 필드에서 잘 뛰었던 선수가 무조건 훌륭한 감독이 되진 않는 것처럼 작가님의 영역과 저희 편집자들의 영역은 엄연히 다릅니다.”

개새끼야 내 필명 까 봐?

글을 잘 쓰고 매출이 잘 나오면 다 너처럼 편집자들을 하대해도 되는 줄 아냐?

같은 말이 목 위로 솟구치려는 감정을 나는 가까스로 참아냈다.

“작가님께서 BS북과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출판사와 계약하신다면 꼭 잊지 마시죠. 작가와 편집자는 서로 공생하는 동등한 관계지 상하가 나눠져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요.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작가님.”

나와 황건일 매니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식당 밖으로 나섰다. 여기서 끝났다면 그나마 아름다운 이별이 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아름다운 이별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 어린놈의 새끼들이! 계약 해지? 누구 맘대로! 이대로 가면 무사할 줄 알아? 정글북에 내가 뭐라고 쓸 줄 알고!”

아, 거참.

새끼가 계속 반말을 찍찍 씨불이네.

나이를 똥구멍으로 잡수셨는지 학습 능력이 아예 없어 보인다.

“건일 매니저님, 지하철 쪽으로 먼저 가 계세요.”

“하, 하지만…….”

“믿어 주세요. 아무 일 없이 해결할 수 있으니까 먼저 가서 기다려 주세요. 금방 갈게요.”

“……네, 파트장님.”

술기운이 올라왔는지 아니면 자기 나이의 반밖에 안 되어 보이는 내게 들은 말이 수치스러웠는지 가게 문밖으로 뒤따라 나온 올망 작가는 벌게진 얼굴로 우릴 향해 씩씩거렸다.

‘진짜 또라이 새끼인가 이거?’

내가 황건일 매니저를 먼저 보낸 건 올망 작가와 따로 나눌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보다 작가놈의 손엔 소주병도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내 눈치를 보며 주춤거리던 황건일 매니저가 골목을 빠져나가 먼저 시야에서 벗어났을 무렵,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였다.

“작가님, 제가 작가님과의 대화했던 내용 모두 녹음 했습니다. 제 폰에 불 깜빡이는 거 보이시죠?”

“지, 지금 허락도 없이 불법으로—”

“불법이라뇨. 몰래 녹음을 했다고 하더라도 제가 대화 당사자 중 하나라면 증거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통신비밀보호법상 불법도 아니고요.”

당혹감이 가득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올망 작가에게 나는 손수 핸드폰 화면을 켜 녹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 그리고 지금 녹음을 껐습니다 작가님.”

나는 실제로 미팅에 들어온 순간부터 녹음 기능을 켜 뒀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앞에서 녹음을 끈 것 또한 사실이고.

“나도 이제 말 좀 하자 개새끼야.”

“……뭐, 지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감히!”

“그치? 너도 반말 듣고 욕 처먹는 거 기분 나쁘지? 그럼 너도 하지 말았어야지, 인마.”

“뭐 이런 미친놈이……?”

올망 작가는 고개를 회까닥거리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말을 멈출 생각이 없다.

개 같이 행동하면 그에 맞게 대우해줄 수밖에 없으니까.

“미친 건 작가라면서 글을 안 쓰는 너지. 독자들이 한 편에 100원 내고 본다고 우습냐? 편집자들이 작가님, 작가님 하면서 예의 차리고 말하면 네가 왕이라도 된 것 같냐고 이 쓰레기 새끼야!”

“이 미친놈이!”

올망 작가는 더는 분을 참기 어려웠는지 소주병을 거꾸로 든 손을 내게 날렸다.

스윽—

하지만 나는 고아 출신.

그것도 한가닥 하는 삼촌들과 아버지가 득실거리는 인의 보육원 출신이다.

“크어억.”

나를 향해 세차게 팔을 휘둘렀던 느린 손짓을 위빙으로 피해 거리를 벌렸을 뿐인데, 올망 작가는 스스로 무게 중심을 잃고 자빠졌다.

찰칵— 찰칵—

“끄으으으…….”

“작가님, 소주병을 드셨네. 그거 일반 폭행이 아니라 특수폭행인 거 아시죠?”

나는 나긋나긋한 어조로 깨진 소주병과 함께 널브러진 그의 사진을 찍고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냐.

“아버지, 청장님 잘 지내시죠?”

* * *

오늘은 11월 30일.

올망 작가와의 계약 해지를 끝내고 한 주가 더 흘렀다.

“건일 매니저님 계약 해지는 순조롭게 잘 끝나서 다행이네요. 표지 제작 비용도 반환 받았고요.”

“네. 안 그래도 성격이 보통인 분이 아니라 이걸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는데…… 알아서 표지 제작 비용 반환하시고 그동안 무례를 저질러서 죄송하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분인지도 모르겠어요, 하하.”

그리고 월요일인 오늘, 주간 회의를 하며 황건일 매니저는 사람 좋은 소리를 하고 있다.

‘좋은 분은 무슨, 폭행 합의해주는 대신 처리한 건데.’

올망 작가와의 지난 미팅 때 사실 공권력까지 이용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처럼, 이런 잔잔바리 양아치 놈들을 초장에 착실히 잡아놔야 나중에 더 큰 양아치로 발전하지 않는 법. 이왕이면 영원히 웹소설 판을 떠났으면 하는 바람이긴 하다.

“이제 내일부터는 올해 마지막인 12월이에요. 그동안 새로운 팀에서 다들 고생하시느라 힘들었겠지만 앞으로 마지막 남은 한 달 마무리까지 긴장의 끈 놓지 말고 힘내주셨으면 해요. 그럼 이번 주 주간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네, 팀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이번 주에는 추가로 계약할 만한 작품도 없었고 더군다나 오진아 팀장 역시 자신의 한계치까지 담당 작품을 계약한 상황이었기에 주간 회의가 끝났지만 따로 자리에 남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때였다.

지이잉— 지잉—

바지 안쪽에서 울리는 진동음.

단풍 삼촌이었다.

지금이면 무조건 내가 BS북에 있으리란 걸 단풍 삼촌도 알고 있을 거기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팀장님.”

“통화하고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내가 바로 전화를 받지 않고 머뭇거리는 행동을 취하자 눈치 빠른 오진아는 바로 소회의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어, 무슨 일이야 삼촌?”

—그으흐흐, 메일 아직 못 봤지? LGA컴퍼니로 온 메일.

“아직 못 봤지. 나 아직 회사잖아.”

—그으흐흐흐.

단풍 삼촌이 옅은 웃음을 내뱉는 걸 보니 다행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무슨 일인데 그래? 나 길게 통화 못 하니까 빨리 말해.”

담풍 삼촌의 섬찟한 웃음소리를 혹여 누가 들을까봐 볼륨키를 가장 낮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세계 기사식당 제안 왔다.

“뭐어?!”

지금 내가 BS북에 있다는 걸 잠시 망각할 정도로 생각 없이 큰 소리를 내질렀다.

그도 그럴 만한 게 노원지귀 필명으로 웹월드에 출간한 내 신작 ‘이세계 기사식당’은 런칭한 지 고작 나흘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코즈일뿐만이 아니라 내 세컨 필명인 노원지귀의 이름값도 전보다 확실히 높아졌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아니, 근데 어디서 연락이 온 거야? 이세계 기사식당 배경이 완전 판타지인데 그걸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기 어렵지 않나? 3D 엄청 빡세게 들어갈 것 같은데. 그럼 제작비도 상당할 테고.”

단지 배경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세계 기사식당은 인간이 아닌 엘프, 드워프, 오크, 오우거 등 다양한 아인종이 주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렇기에 이걸 어떻게 영상화 작업을 한다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는 생각이 가득 들었는데.

—무슨 소리니, 지금. 영화 아닌데? 드라마도 아니고?

“뭐? 둘 다 아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으흐흐. 일본에서 연락 왔다. 애니메이션 제작 요청이다, 간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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