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편집자가 뭘 안다고.
* * *
“저…… 파트장님? 작가님이 말한 장소에서 미팅 진행해도 괜찮을까요? 두당 만 원 훨씬 넘을 것 같은데…….”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수원시청역 지하철 개표구를 나오며 황건일 매니저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괜찮아요. 팀장님한테 법인 카드 따로 받았거든요.”
“아하하! 그런가요? 그럼 정말 다행이네요.”
나와 황건일 매니저는 올챙이말랭이 작가와의 미팅을 위해 그가 말한 고깃집으로 이동 중이다.
‘아직 김영란법이 생기기도 전인데, 이런 건 또 기가 막히게 선도적이야.’
그리고 황건일 매니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돈 걱정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BS북의 빌어먹을 접대 비용 한도 때문.
내가 BS북에 입사하기 몇 해 전.
당시 BS북엔 조팟놈과 운명의 단짝이었던 편집자가 있었다고 했다.
‘그 머저리 놈 별명이 셰르파라고 했던가?’
이름을 기억할 가치도 없는 놈이었지만 셰르파라는 그의 별명을 아직도 기억하는 건 그놈이 이 접대 비용 한도를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창윤 매니저의 말에 의하면 셰르파는 조팟놈 저리 가라 하는 무능력한 편집자의 표본. 가스라이팅은 기본에 실력은 없으면서 괜한 고집으로 작가들의 작품을 산으로 보내는 일등 공신이라고 했다.
하지만 셰르파의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천성적으로 말이 많고 주접떠는 게 삶의 낙이던 셰르파는 작가들에게 도움 되는 피드백을 주진 않으면서 뻔질나게 미팅을 다녔다고 한다.
‘다시 생각해도 진짜 기생충 같은 놈이네.’
그리고 어느 날 점심.
셰르파는 작가 미팅을 핑계로 계약도 맺지 않은 작가와 함께 고기 60만 원어치를 처드셨다고 한다.
일을 해야 밥을 먹는다는 격언을 깡그리 무시한 셰르파의 행보는 결국 BS북 오성민 대표에게 올라갔고 대표는 결국 작가 미팅 비용 한도를 인당 만 원으로 줄이게 된 상황이다.
‘인당 만 원 이상 쓰면 안 된다는 소리지. 우리는 총 셋이니까 3만 원이 한도고.’
결국 밥만 축내는 그 돼지 새끼 때문에 피해는 남은 직원들이 고스란히 보게 된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는 회사 경비를 악용해 제 배때기를 불린 셰르파에게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경영자의 측면에서 봤을 땐 오성민 대표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회사 제도를 악용하는 직원이 있으면 그 직원을 내치고 회사 내규를 좀 더 체계적으로 될 수 있도록 가다듬어야 하는 법. 하지만 대표는 마치 자신의 기분이 태도가 되듯 경비를 극단적으로 줄여버렸다.
“여기 같은데요? 조금 일찍 오긴 했는데 먼저 들어가 있을까요?”
“넵, 좋습니다!”
내가 오진아 팀장의 법카를 가져왔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황건일 매니저는 지금처럼 활짝 웃으며 고깃집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을 터다.
‘대표도 웃기는 사람이지. 전자 계약서보다 대면 미팅 계약이 좋다면서, 미팅 비용은 틀어막고 앉아 있으니.’
오성민 대표의 기적의 논리는 간단했다.
서울 평균 점심값이 6~7천 원이기에 작가 미팅으로 만 원이면 밥을 충분히 먹고 남을 거란 뜻이었지.
문제는 지금처럼 저녁에 미팅을 하게 되면 그 비용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실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다. 작가와 안면도 트지 않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만나자마자 바로 밥집으로 간다?
‘이것도 참신한 개소리지.’
작가와 처음 만나는 자리일 경우 대개 카페에서 스몰 토크를 하며 미팅을 진행한다. 그리고 계약이 확정되면 식당으로 옮겨 작품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2015년인 올해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의 아메리카노 한 잔은 4,100원. 작가님은 마시는데 나 홀로 ‘저는 커피가 몸에 안 받습니다, 하하하!’라고 말하며 맹물만 들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커피 2잔을 마시고 저렴한 식당을 가더라도 지출되는 금액은 인당 만 원을 훌쩍 넘어갈 수밖에 없기에 황건일 매니저는 매번 미팅 때마다 가득 긴장을 한다. 그런 꼴이 보기 싫어 나는 내 카드로 결제할 예정이고.
“작가님이 조금 늦으시나 보네요?”
“조금 더 기다려보고 연락드리죠.”
더군다나 갖가지 기상천외한 이유로 휴재를 때려 오늘 미팅을 하게 된 올챙이말랭이 작가같이 한우 소갈비 전문점에서 보자고 하는 경우 BS북 편집자들은 피가 바짝바짝 말라버릴 수밖에 없을 터. 정말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회사의 매출 증대를 위해 미팅을 하면 할수록 월급은 반대로 줄어든다는 게.’
BS북의 참담한 경비 한도를 곱씹으며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때였다.
“오랜만입니다, 매니저님.”
“오셨습니까, 작가님.”
그리고 글도 안 쓰는 주제에 약속 시각에 20분이나 늦은 작가 놈이 당당한 발걸음으로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작가님. BS북 판무 1팀 파트장, 박정우라고 합니다.”
“예에, 예. 안녕하세요. 배고픈데 일단 주문부터 할까요?”
“그러시죠.”
조팟도 그렇고 가만 보면 또라이들은 자신들의 똘기를 숨길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부터 하면서 들어왔어야 했을 터. 시작부터 보통 놈이 아니라는 생각이 물씬 든다.
“여기요! 안창살로 5인분 먼저 주시고요. 한우 육회 한 접시에, 소주? 맥주? 뭐 드세요?”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온 올망 작가의 말에 황건일 매니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 도와줘야지. 돈도 내가 내는데.
“미팅을 겸한 식사 자리니 술은 마시지 않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저만—”
“작가님도요.”
“……?”
나는 빙긋 웃으며 메뉴판을 슬쩍 잡아 종업원에게 건넸다.
“안창살이랑 육회만 주시고 술 대신 음료수 2개 주세요.”
“네,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챙기고 자리를 비우자 올망 작가는 희번덕해진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거 뭐야? 아니, 파트장님이 왔으면 더 쏠 줄 알았는데. BS북 원래 이렇게 쩨쩨해요?”
‘쩨쩨하다라는 말이 원래 이런 상황에서 쓰이는 단어였던가?’
편집자 그리고 작가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에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단어 활용. 이따위로 단어 조합을 하니 그런 창의적인 공지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정보에 적힌 올망 작가의 올해 나이는 마흔하나.
그리고 지금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이를 똥꾸멍으로 잡수신 게 분명하다.
“작가님과 계약 관련해 이야기를 나눠야 하니 술은 따로 시키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우, 됐어요. 일단 밥부터 먹고 얘기합시다. 먹기도 전에 체하겠네.”
“그러시죠.”
주문한 고기는 금방 나왔고 올망 작가는 불판에 구운 고기를 야무지게 흡입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파트장님은 몇 살? 나이 엄청 어려 보이는데.”
“올해 스물하나입니다.”
“뭐? 스물하나? 엄청 어리네? 뭐야, 여기 황 매니저보다 어린 거 아니야? 황 매니저가 스물다섯이랬나?”
“하하, 스물여섯입니다. 회사에서 나이가 중요한가요? 능력이 중요한 거죠.”
“뭐, 그렇긴 하지. 그런데 불편하지 않나 회사에서?
“하하하…… 아뇨.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
“이야, 파트장님 나이가 내 반밖에 안 되네, 그러면 편하게 얘기할게?”
우리 작가님, 아주 재미난 분이셨네?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면서 불편한 상황을 직접 만들어 주시다니. 그의 사디즘 성향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아뇨, 죄송합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뵙는 거니만큼 존대 부탁드립니다.”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내뱉은 말에 올망 작가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참나, 뭐 그래요. 분위기가 딱딱해서, 거참. 술이라도 해야겠는데. 저기요! 여기 소주 하나! 빨간 뚜—”
“작가님, 미팅을 겸한 자리이니 음주는 하지 않기로 부탁드렸던 건데요.”
올망 작가는 마치 기 싸움을 하는 애새끼처럼 직원이 가져온 소주를 받아 채고선 마치 나보고 잘 보라는 듯 빨간 뚜껑을 휘리릭 돌렸다.
“아, 거참. 뭐가 그리 심각해? 편집자들도 오늘 일찍 퇴근하고 좋잖아? 너무 딱딱하게 그러지 말고. 한잔 받으라고.”
작가 중에서는 간혹 나이빨로 뻗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올망 작가의 지금 보습을 보니 그중에서도 분명한 탑 티어 상위 클라스.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면 나도 더 좋게 말할 필욘 없지.’
나는 올망 작가가 건네는 술을 받지 않고 그를 가만히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작가님, 처음 작품 계약하시고 주 7회 연재하시다가 유료화 전환 후엔 주 5회 연재로 진행하셨죠.”
“아, 거참! 내가 일 얘기는 밥 먹고—”
“저희 일하러 온 겁니다, 작가님. 놀러 온 게 아니고요.”
결연한 표정으로 건넨 말에 올망 작가의 눈빛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는 쾅 소리가 나도록 소주병을 식탁 위에 내렸다.
“그래서 뭐요? 무슨 일 얘기를 하고 싶으신 건데?”
“이미 황건일 매니저님께 불성실 연재는 계약 위반사항이라는 내용 전달받으셨을 겁니다. 매니저분들이 담당 작가에게 보내는 메일은 파트장급에도 참조되기에 저도 확인한 부분이고요.”
올망 작가는 피식 웃으며 가득 채운 소주잔을 들이켰다.
“그래서,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고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상관없다던데? 안 그래, 건일 매니저?”
“……작가님. 작가님께서 공지로 올려주신 부분은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계약서상에도 적혀 있지만 특별한 사정이란 가족이 사고를 당했거나 작가님 본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신 경우같이—”
“아니! 그걸 왜 출판사에서 정하는 건데? 작가가 심적으로 힘들어서 글이 안 써지고 하는 건데, 내가 뭐 안 쓰고 싶어서 안 쓰나? 이게 어디서 갑질이야?”
우리 작가님께서 또 단어를 창의력 넘치게 쓰신다.
갑질이란 결코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니거늘.
‘이런 새끼를 한우석 같은 놈이 맡았어야 서로 치고받고 통수 치고 난리 나는 건데.’
하지만 세상 일이란 웃기게도 겸손하고 올곧게 사려는 사람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작가 태도가 이 모양 이 꼴이니 늘 힘차고 당당한 황건일 매니저도 이렇게 주늑 드는 거겠지.
“작가님, 이건 갑질이 아닌 을질입니다.”
“뭐요? 을질? 이게 진짜—”
“전월 연재일 22일 중 휴재 6일. 그리고 금월 연재일 총 21일 중 이미 휴재 8회 하셨죠. 특별한 휴재 사유 있으면 미리 전달 부탁드린다고 건일 매니저님이 연락드렸을 겁니다.”
“아니, 공지 썼잖아? 공지를 썼는데 왜 자꾸 쪼잔하게 그래?”
아까부터 단어를 참 거지 같은 상황에 골라 쓰는 재주가 있다.
“아니죠. 작가님께선 별도 연락 없이 휴재하신 후 연재 시간이 훌쩍 지난 후에 공지를 올리신 건데, 이게 미리 휴재 사항 알려주신 게 맞습니까? 거기다 타로, 점, 사주 등을 이유로 휴재 공지를 하신 게 제대로 된 공지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더는 대화를 길게 이어 나갈 필요가 없어 보인다.
갱생이 불가능한 게 확실한 작가 놈이니까.
“이런 경우 저희 BS북이 입는 타격은 물론이거니와 작가님의 글을 기다려 주신 독자들에게도 안 좋은 이미지를 주시는 걸 모르십니까?”
“참나, BS북 이미지가 이미 나락인데 뭐 신경 쓸 게 있나? 작가들 다들 LGA컴퍼니나 다른 출판사로 가려 하는데? 당신들이나 고맙게 생각해야지. 나야말로 의리로 꾹 참고 계약 해지 요청 안 하는 거구만? 마음 같아서는 진작에 LGA로 갈아탔어!”
아, 그래? LGA컴퍼니?
꿈 깨라. 너는 절대 못 들어올 테니까.
“작가님께서는 그럼 앞으로도 지금처럼 불성실 연재를 지속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사람 앞날을 내가 어떻게 알아? 글은 삘이 와야 쓰는 거지.”
이제 작가의 글러 먹은 태도부터 그의 불성실함까지 사유는 충분해 졌다. 이제 계약 해지만 전달하면 되는 순간이었다.
“쯧, 편집자가 뭘 안다고, 글도 못 쓰면서.”
그런데 올망 작가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