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 이왕 받을 거면.
* * *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직접 전하고 싶었어요.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닙니다. 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아서요.”
퇴근 후 나는 이태원 루프탑 바에 와 있다.
그리고 아역 배우 출신의 여배우이자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민소희와 마주 앉은 상황이다.
‘아, 진짜. 아버지…….’
전날 새벽.
내 응급 연락에 클럽으로 쏜살같이 달려온 민소희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이 큰 피해를 당하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신고자였던 나를 애타게 찾았었다.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면서.
다만 나는 그들의 인사를 받지 않고 밖으로 슬쩍 빠져나왔다. 감사 인사를 받고자 한 일도 아니었거니와 내 얼굴이 많이 팔려서 좋을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더군다나 전진철 그 쓰레기 놈을 내 드라마에서 끌어 내리려고 한 일인데, 그런 일로 인사받기도 민망하잖아?’
하지만 세상일은 늘 그렇듯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걸 이번에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어머니가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해야 한다면서 연락처를 부탁드렸는데, 흔쾌히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하하…… 별말씀을요.”
나중에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민소희의 부모님이 클럽 안으로 들어온 그때 간만의 회포를 풀기 위해 VIP룸으로 들어가던 아버지와 청장이 멀찍이서 그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대충 단풍 삼촌이나 다른 삼촌들이 도왔다고 하면 됐을 걸 굳이…….’
세상일에 타협 따위 없는 아버지는 감사의 인사를 받을 건 자기 아들이라며 청장을 통해 내 연락처를 전달했고. 그게 담당 형사들에게까지 전해진 모양. 그러니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겠지.
거기에 아버지의 팔불출까지 한 스푼 더해져 내 아들이 유명한 작가니 뭐니 하는 말까지 전해졌다고 한다. 즉, 부끄러움은 오롯이 내 몫인 상황이다.
‘그나저나 그때는 상황이 워낙 긴박한지라 제대로 신경을 못 썼는데…… 확실히 연예인은 연예인이네.’
이제 갓 스물이 된 민소희는 소멸할 것 같은 얼굴 크기에 인형처럼 커다란 눈이 인상적이다. 스타작가 윤선미와 마주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
윤선미에게선 노련한 스타의 아우라가 느껴진다면 민소희는 같은 종족이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드는 외모다.
인간 체리 같은 민소희는 다만 직업이 배우여서 그런지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다리는 보기에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은…… 기자회견 때는 당당히 말했지만, 아직도 손이 떨려요. 그런 사람인 줄도 모르고 좋은 동료이자 오빠라고 생각했던 제가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
“항상 제 보금자리가 되어 주겠다던 소속사도 제가 말도 없이 기자 회견을 하니 화를 내더라고요. 피해를 본 건 전데…… 어떻게 회사에 말도 없이 일을 키울 수 있냐면서요…….”
그녀의 자서전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놀랍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노와 불쾌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 또한 회사를 경영하는 대표로서 회사의 매출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되었든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돈이 아닌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내 경영 철학이기도 하고.
해마다 수많은 스타트업이 생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제자리걸음만 하고 더 위의 단계로 발돋움하지 못하는 건 지속적인 자금 조달 혹은 사업 아이템의 부진일 수가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사람이지.’
내가 생각하는 회사의 경영자는 버스 기사다.
업종을 불문하고 각 스타트업의 대표는 성장, 매각, 명예 등 각기 다른 종착지를 목표로 달리니까.
회사라는 버스의 규모는 각기 다르고 사용하는 연료도 다르다. 하지만 버스에 직원들이 탄다는 것 하나만큼은 동일하다.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경영자들의 실수가 여기서 가장 많이 발생하지.’
회사를 창업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어차피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그렇기에 비록 조금 늦을지라도, 버스 타이어가 잠시 퍼질지라도, 결국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구조다.
하지만 사업이란 이름의 거친 도로에서 살아남을 생각에 경영자는 운전대 앞에만 모든 신경이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전진하는 와중에 버스에 누가 타고 또 누가 내리는지를 경영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잊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민소희의 회사도 그런 경우지. 내보내야 할 범죄자 새끼를 보내긴커녕 버스 자체를 반파시켜버린 꼴이니까.’
회사 대표의 분노, 담당 매니저의 회유 등 민소희의 입에서 이어져 나오는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말에 점점 인상이 찌푸려진다. 비록 출판사가 아닌 연예기획사에 관한 설명이었지만 결코 그딴 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면 안 된다는 것 하나는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아…… 죄송해요.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와서는 너무 하소연만 했네요.”
“아닙니다. 단지…… 너무 화가 나서요.”
나도 모르게 찌푸린 인상을 봤는지 민소희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주제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소희 씨가 최고의 선택을 하셨다고 생각해요.”
“……그럴까요?”
확신 없는 눈빛으로 되묻는 민소희를 향해 나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금 당장은…… 마음도 추스르셔야 하고 소속사도 새로 알아보셔야 하니 과연 내 선택이 옳았는지 후회하는 일도 생기실지 모르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금 소희 씨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소희 씨도 그리고 모두가 알게 될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어진 설명에 민소희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내가 건넨 말은 그녀가 했던 말이니까.
“안 좋은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 훌륭한 선택을 했다고 말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소희 씨 자신에게요.”
“……정말 감사해요.”
내가 전한 말은 그녀가 듣고 싶어 했던 말.
하지만 전생엔 아무도 그녀에게 해주지 않았던 말이었다. 이어진 설명에 조금은 마음이 진정이 됐는지 민소희는 슬쩍 고개를 숙이며 수줍게 웃었다.
“어머, 우리 코즈일 작가님 그렇게 멋진 모습도 보여 주는 사람이었어?”
“영업일도 아닌데 빌려주셔서 감사해요.”
“감사는 무슨, 우리 후배님 도우려는 건데.”
“서, 선배님!”
윤선미의 등장에 민소희는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윤선미는 민소희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근히 얹었다.
“오랜만이야 소희야. 고생 많았더라.”
“선배님…… 여기 선배님이 어떻게?”
윤선미의 등장에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윤선미가 민소희를 감싸 안고 토닥이자 민소희는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민소희에게 연락을 받은 후 나는 바로 윤선미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남들 눈에 띄지 않을 조용한 장소가 필요한 상황인데 루프탑을 빌려도 되는지.
자초지종을 설명 들은 윤선미는 흔쾌히 장소 대여를 허락했다. 어차피 매주 월요일은 바 운영을 하지 않는 휴일이라고 하면서.
“재작년 시상식 때 보고 처음이네. 울지마, 뚝! 너처럼 예쁜 얼굴로는 우는 게 아니야.”
“선배니임…….”
드라마에서 나오는 모습은 어른스럽기 그지없지만 카메라가 꺼진 민소희의 모습은 그 나이 또래의 애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오히려 워낙 어린 나이부터 아역 배우 활동을 해서인지 더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윤선미의 품에 안겨 한참을 눈물 흘린 민소희는 그제야 마음을 가다듬은 듯 눈가를 훔쳤다.
“죄송해요 선배님, 그리고 작가님. 이렇게 울기만 해서…….”
“죄송은 무슨.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보다 소희 너랑 코즈일 작가님이랑 아는 사이란 게 정말 놀랍네.”
윤선미는 천상 배우긴 배우다.
이미 사전 설명을 다 해놔서 내가 어떻게 민소희와 아는 사이인지 알면서도 저런 능청을 떨다니.
“그보다 내가 오면서 슬쩍 들었는데, 소속사 옮길 생각 없니? 소희 너만 원하면 우리 소속사로 옮겨줄 수 있는데.”
“저, 정말요? 제가 선배님이랑 같은 소속사를요?”
깜짝 놀라 토끼눈을 뜨는 민소희에게 윤선미가 밝게 미소 지었다.
“그러엄, 소희같이 연기도 잘하고 인성도 좋고 예쁜 배우랑 같은 식구가 되는 거면 내가 더 영광이지. 우리 소속사 대표는 신나서 춤이라도 출걸?”
“저, 정말 감사해요. 제가 유명한 배우는 아니지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한국에서 브라운관의 요정이라고 불리는 윤선미를 모르는 사람은 간첩 취급을 받는 것과 달리 아직 이 시절엔 민소희의 인지도는 높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단지 지금일 뿐이지. 민소희는 나중에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월드 스타가 될 사람이니까.’
민소희에게 부족한 건 오직 단 하나.
그건 바로 자신감이다. 실제로 그녀의 자서전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연기를 하자마자 주위에서 호응이 좋았다고 했었고.
“아유우, 귀여운 것 좀 봐. 그러면 바로 내가 우리 대표한테 말할게.”
“정말…… 정말 감사해요, 선배님.”
사실 조용한 장소를 찾는 게 필요하다면 어느 장소든 구하지 못할 게 없었다. 하지만 내가 굳이 민소희를 이곳으로 데려온 건 윤선미와의 접점을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같은 아역 배우 출신이기도 하고 윤선미는 누구보다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역시, 생각대로 잘 풀리네.’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민소희와 어차피 만나야 한다면 그녀를 위해서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서로 득이 되는 관계를 맺는 게 좋겠지.
“두 분 오랜만에 만나신 것 같은데, 제가 자리 비켜드리는 게 낫겠네요.”
“아…… 죄송해요 작가님. 제가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왔는데, 시간을 너무 뺏었네요. 그럼 가시기 전에 이걸…….”
인사를 마치고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민소희가 무언가가 담긴 종이봉투를 내게 건넸다.
“글 쓰시는 작가님이라고 들어서 눈에 좋다는 루테인이랑 다른 영양제들 조금 챙겼어요. 그리고 술…… 자주 드시는 것 같아서 밀크씨슬 같은 간 보호제도 같이 넣었구요.”
내가 술을 자주 마셔?
그게 무슨 소린가 하고 짧게 고민하다가 내가 그녀와 처음 마주친 곳이 클럽이라는 게 떠오른다.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처음 가 본 클럽이었기에 정말 억울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저 그날 클럽 처음 간 거였는데요? 라고 말하기엔 너무 구차하기에 나는 잠자코 그녀가 건넨 선물을 받을 뿐이다.
“감사합니다. 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해야 했을 일인걸요. 감사히 먹을게요.”
“작가님께서 주신 도움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선물이지만…… 대신 어떤 방식으로도 제가 보답할 수 있으면 꼭 보답할게요!”
“어머, 뭐야? 우리 소희 설마 작가님 마음에 드는 거니?”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아, 아니 마음에 안 든다는 게 아니라! 그, 그게…….”
민소희의 태도를 보니 작전을 계획보다 빨리 실행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오늘은 얼굴 정도만 트고 다음에 천천히 말을 꺼내 볼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보답한다고 하시네? 그러면 또 안 받을 순 없지.’
그리고 내가 어떤 보답을 요구할지는 처음 민소희가 내게 연락을 줬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걸 티내는 건 하수의 무브.
“하하, 보답은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죠.”
“아니에요! 정말 제가 도울 게 있다면 꼭 연락주셨으면 해요!”
“음……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서 다시 말을 이었다.
“이건 어떨까요?”
“……?”
민소희 자신도 인사치레처럼 한 말이었는지 내가 냉큼 보답을 바란다는 뉘앙스의 말을 건네자 잠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내 꿍꿍이를 모르는 윤선미 또한 비슷한 표정이었고.
“제 소설 원작으로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인데요. 혹시 액션물 관심 있으신가요?”
“액션…… 영화요?”
“네, 액션 영화요. 주인공이 소방관인 내용인데요. 전반적인 스토리가…….”
정말 흑심을 채울 생각은 처음부터 1도 없었다.
하지만 음식이 차려졌는데 냄새만 맡고 가는 것도 낭비잖아?
회귀 전 민소희가 10여 년 만에 복귀작으로 선택했던 작품 역시 혈향이 가득 묻어나는 아포칼립스 물. 비록 배경이나 배역 등은 전혀 다르지만 전반적인 작품의 분위기는 ‘불 지르는 파이어맨’과 무척 비슷하다.
“……이런 내용인데, 여주인공 관심 있으실까요?”
선행을 하면 복을 받는 법.
그리고 이왕 복을 받을 거면 나는 제대로 받아 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