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 경찰한테…… 내 번호를 받았다고?
* * *
“아이씨, 재수 드럽게 없네.”
“우리 뭐 잘못한 거 없다니까요?”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서로 가시죠.”
“갑시다. 우리가 뭐 죄졌나? 술 마시고 뻗은 사람 가지고 괜한 오해나 받고?”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난 후 클럽에 경찰들이 도착했다.
어두운 조명과 깜빡이는 사이키 때문에 명확히 보긴 힘들었지만 풀가동한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읽힌 경찰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느껴진다.
현행범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긴장감도 없고 태도 또한 느슨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들을 가장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잠시만요, 미란다 원칙 고지 안 하셨는데요? 제대로 고지 않고 체포하면 저 사람들이 위법성을 주장할 수 있지 않습니까?”
“…….”
전진철을 포함한 쓰레기들을 데리고 가려던 경찰들이 잠시 나를 훑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들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내가 자리를 피하지 않고 또렷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 그는 귀찮다는 태도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기 시작했다.
최진혁이 연재 중인 경찰물, ‘나는 짭새다’를 담당하면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으면 해당 체포의 위법성을 주장할 수 있고 애초에 불법 체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작가인 나도 아는 사실인데, 경찰들 태도가 왜 이래? 납치가 아니라 무슨 의전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정우야, 걱정할 거 없다. 내가 아는 사람도 불렀으니까.”
내 표정에서 불안함이 읽혔는지 옆에 서서 계시던 아버지가 내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아는 사람이요?”
“그래 지금 거의 도착했다니까, 이제 올 거다.”
아버지의 이해 가지 않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때.
클럽 입구 쪽에서 수십 명의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대충 봐도 처음 왔던 경찰들의 수배는 되는 수.
“누구십니까? 여기 우리 관할인데?”
“예에, 예. 광수대 최서준 경위입니다. 사건 이제 저희가 담당할 거니까 피의자들 넘겨주시고 가시면 되세요.”
“광수대?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어? 누구 마음대로?”
할 발 뒤늦게 도착해서 사건을 넘기라는 최서준 경위의 말에 강남 경찰서 경찰들이 이를 갈았다.
“어, 내가 시켰어.”
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더 말을 잇기도 전에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광수대 안쪽으로부터 나왔다.
“참나, 누구세요? 뭐하자는 겁니까?”
강남서 경찰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것도 잠시.
5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사내가 파도처럼 갈린 광수대 인파를 뚫고 점점 앞으로 다가올수록 강남서 경찰들의 표정이 파리하게 일그러졌다.
“처…… 청장님! 충성!”
“어, 그래. 광수대한테 넘기라고 시킨 거 난데. 불만 있어?”
“아, 아닙니다!”
“그래그래, 말 잘 듣고. 서준아, 강남서 애들도 잘 모셔. 난 오랜만에 친구 얼굴 좀 보려니까.”
“예, 청장님.”
옷에 무궁화가 달려 있지 않은 사복 차림이었음에도 50대 중년 사내의 몸에선 형언할 수 없는 아우라가 빛났다.
그리고 그 사내는 우리 앞,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참나, 어떻게 나이를 먹으면서 근육이 더 커져? 무슨 캥거루야?”
“청장님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어이구, 됐습니다. 내가 연락해도 코빼기도 안 비추던 사람이. 그런데…… 이쪽은 누구?”
“제 아들입니다.”
“아, 아들?”
청장의 눈이 나와 아버지를 빠르게 번갈아가면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음으로 낳은 아들이죠.”
아버지의 설명에 청장은 피식 웃음 지었다.
“참나, 대단하단 말이야. 전국을, 아니, 전 세계를 주름잡던 사람이 고아원을—”
“청장님. 말씀 가려서 하시죠. 검은소 누렁소 얘기 모르십니까? 고아 앞에서 고아고아 하면 듣는 고아 기분 좋겠습니까?”
“아…… 아니,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는—”
“명칭도 보육원으로 바뀐 지 오랩니다. 청장이면 그 정도는 아셔야죠.”
삼촌들과 달리 아버지는 자신의 과거 얘기를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가끔 삼촌들이 말실수를 할 때 듣는 내용을 종합해서 유추하는 정도였을 뿐이었는데.
‘아버지가 경찰하고도 연줄이 있으실 줄이야.’
“오랜만에 봐도 딱딱한 건 여전하네. 미안하다, 미안해. 우리 아들도 미안하고.”
“아닙니다, 청장님.”
“그보다 우리 애 말로는 물뽕을 사용한 거 같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여기 업장 사장이 제가 예전에 알던 앤데, 자기 애들도 마약 판매에 연루되었다고 스스로 고백하더군요.”
“흠, 그래? 그것도 내가 철저히 조사하라고 하지.”
청장은 씩 웃으며 아버지의 어깨 위로 힘겹게 팔을 걸쳤다. 그러고선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드님, 아빠 좀 빌려줄 수 있어? 오랜만에 봐서 소주라도 한잔해야겠는데.”
“물론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다른 술 드시죠.”
“다른 술?”
“안 그래도 갑자기 소동이 벌어져서 술만 시키고 한 모금도 안 마셨거든요. 저기 안쪽 방에서 드시고 가시죠.”
“술 마시면 근 손실이—”
“아이고, 음식 남기면 벌 받지. 자자, 들어가자고.”
내가 사 둔 VIP룸으로 아버지와 청장이 들어갔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려면 거의 1년은 더 남았으니까.
‘그럼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되겠네.’
이제 내일쯤이면 인턴사원 회장님 드라마의 주인공이 바뀌게 될 테다.
* * *
다사다난했던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이 돌아왔다.
“……말씀드린 대로 진행해주시면 되세요. 그럼 금주 주간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할게요. 다들 추가로 하실 말들 없으시죠?”
그리고 BS북 소회의실에서 한 주의 시작을 알리는 주간 회의가 마무리될 무렵, 황건일 매니저가 슬쩍 말을 꺼냈다.
“업무 얘기는 아닌데요, 다들 그거 들으셨어요? 2세대 아이돌 전진철이 아역 배우 출신 민소희한테 강제로 마약 복용시킨 거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전진철이 인턴사원 회장님 주연 배우 됐다고 기사 나온 지 단 하루 만에 이런 일이 생기네요.”
황건일 매니저가 놀라는 게 딱히 특이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늘 아침 출근을 하자마자 황건일 매니저뿐만이 아니라 사무실 전체에서 온통 다 그 얘기뿐이었으니까.
“저도 많이 놀랐어요. 민소희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더라고요.”
“그러니까요! 아니, 진짜로! 전진철 그 사람 아프리카 가서 우물도 파고 도서관도 짓고 온갖 선한 영향력 다 끼치는 사람인 줄로 알았는데! 유튜브에 음성 파일 올라온 거 들으면서도 믿기가 어렵더라니까요?”
오진아 팀장의 말에 황건일 매니저가 흥분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파트장님, 코즈일 작가님은 괜찮으시데요? 주연 배우 교체 때문에 엄청 상심하셨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이런 말이 나올 것 같긴 했다.
이미 어제부터 이지연 본부장, 권미현 본부장, 오진아 팀장, 천명 작가, 사랑과평화 작가, 도준이 형 그리고 윤선미 작가까지, 내 정체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온종일 걱정 섞인 연락을 받았으니까.
“코즈일 작가님 완전 괜찮으시대요. 배우 캐스팅만 된 거였고 아직 촬영은 시작 전이었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쓰레기 같은 놈 미리 거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좋아하시더라고요.”
“하…… 정말 다행이에요.”
“제가 보기엔 실보다 득이 더 커요. 이번 사건이 하루 만에 뉴스에도 나오고 포털 사이트 실검에도 뜨면서 코즈일 작가님의 글까지 재조명되고 있으니까요.”
“…….”
오진아는 정말 한결같이 기계 같은 사람이다.
이 상황에서도 실익을 따지는 접근을 할 줄이야.
‘뭐, 결과적으로 보자면 나뿐만이 아니라 드라마 제작사에도 엘가에도 그리고 민소희에게도 다 잘된 일이긴 하지.’
바로 어제였던 지난 일요일.
단풍 삼촌은 ‘르 플루스 강남’에서 도청했던 대화 내용을 편집해 바로 유튜브에 올렸다.
‘대화 내용에서 민소희 이름만 삐 처리 해서 올렸지. 그것도 클럽 사장의 유튜브 계정으로. 이름이 뽕구라고 했었나?’
내가 회귀하기 전 정도로 유튜브가 활성화된 시기는 아니었지만, 내용이 워낙 심각했기에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지. 민소희 본인이 바로 등판했으니까.’
그제 밤.
정확히는 어제 새벽, 사건이 발생하고 정신을 회복한 민소희는 곧장 기자회견을 했다.
해당 사건의 당사자가 자신이고 클럽에 있었던 다른 손님의 도움으로 큰 추가 피해를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서.
‘솔직히 민소희가 아니었으면 유튜브에 올리진 않았을 거야. 애초에 증거 채택도 어려운 불법 도청이었으니까.’
내 부탁으로 인한 삼촌들의 진솔한 설득.
그리고 설득이 충분히 납득된 클럽 사장 뽕구 씨를 통해 유튜브에 녹음 파일을 올리고 기사화가 되기를 노린 건 순전히 민소희를 위해서였다.
회귀 전.
민소희가 긴 공백기를 끝내고 출간했었던 자서전에서 그녀는 당시 경찰도, 소속사도 다들 해당 일을 얼버무리려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당시엔 이 사실을 가족한테도 알리지 못해 혼자만 속으로 앓으며 10년 가까이 공황 장애와 우울증 그리고 조현병까지 앓았다고 했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고민까지 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고.
‘민소희는 세상에서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자신에게 이 모든 사실을 밝힐 용기를 줬으면 좋겠다고 썼었지.’
하지만 긴 약물 치료로 자신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는 동안 그런 구원의 손길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비록 뽕구 사장의 손길을 빌리긴 했다만, 유튜브에 올린 내용으로 등을 한 번 밀어줬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날 경찰들이 도착하기 전, 나는 민소희의 핸드폰에 있는 가족 번호로 전화를 걸어 일목요연하게 사건 정황을 전달했다.
각종 매체에 올라온 여론의 형성.
그리고 가족의 지원에 용기를 입은 민소희는 단 하루 만에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 사실을 고백하게 된 상황이다.
“코즈일 작가님도 무사하다니 다행이고. 그럼 여기서 회의 마치도록 하죠.”
“네, 팀장님!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 어? 팀장님 저 전화 좀 받고 가도 될까요? 작가님 전화 같아서요.”
“네, 그러세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이런 경우 십중팔구는 내가 컨택 쪽지를 보낸 작가들에게서 온 연락이 대부분이다.
작가들에게 쪽지를 보낼 때 계약에 관심이 있다면 연락을 달라고 내 자리 전화번호와 핸드폰 번호, 이메일 주소 등을 기재하기 때문이니까.
“여보세요? 전화 받았습니다.”
하지만 내게 걸려온 이 전화는 작가가 아닐 게 분명하다. 내게 걸려온 전화가 BS북 업무용 폰이 아닌 코즈일로 사용하는 번호였으니까.
“저…… 코즈일 작가님 맞으실까요?”
젊은 여성의 낯선 목소리.
최근에 내 필명과 함께 번호를 알려준 이는 아무도 없기에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누구시죠?”
“아…… 죄, 죄송해요. 제 소개를 먼저 드렸어야 했는데. 어머니가 경찰분께 번호를 전달 받았다고 해서요.”
경찰한테…… 내 번호를 받았다고?
“저를 구해주신 분이 코즈일 작가님이라고 들어서요. 저는 민소희라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