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09화 (109/201)

109화 ― 아버지, 통화 가능하세요?

* * *

“하아…… 돌겠네, 진짜.”

선한 얼굴의 배우, 선한 영향력, 선한 소울, 선한…….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내 한숨은 끊이질 않았다.

“아, 시발새끼.”

혹시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전진철의 이름은 검색했을 때 나오는 말은 온통 ‘선한 어쩌구’ 뿐이었다.

거기다 주르륵 흘러나오는 연관 검색어엔 ‘선함’, ‘봉사’, ‘기부’ 같은 전진철 삽새끼와 상반되는 단어만 가득했고.

“아…… 참나, 진짜 난 놈이긴 하네. 지금쯤에도 열심히 허리 돌리고 있을 새낀데 어떻게 나오는 게 뭐 하나도 없어?’

하긴, 단풍 삼촌이 검색해도 나오는 게 없는데.

내가 검색한다고 뭐가 나오는 게 더 이상하긴 할 테다.

물론 단풍 삼촌한테는 전진철 그 새끼가 뭘 저질렀는지에 대한 정보를 상세하게 밝힐 순 없었다. 단지 건너건너 들은 카더라인데 맞는지 확인을 해줄 수 없냐는 정도로만 말했을 뿐.

하지만 인터넷상에 아무리 깨끗해 보이더라도 실제로 전진철 그 범죄자 놈이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내 골머리를 썩인다.

“내 소설의 첫 드라마 주인공이…… 그 많고 많은 배우 중에 하필이면…… 하아.”

내 심정을 굳이 표현하자면 상한 식자재로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오픈 키친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기분.

아니, 누가 머드팩이라며 내 얼굴에 붙여주는 마스크팩이 설사에 절인 걸 나만 아는 기분이다.

‘지옥이다…… 피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지옥이야.’

전진철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2세대 아이돌 그룹 출신이다. 그 그룹의 비주얼 담당이자 칼 같은 안무 그리고 세련된 가창력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었지.

그리고 2015년인 지금, 전진철은 강력한 팬덤을 바탕으로 브라운관과 충무로를 오가는 대형 배우로 성장한 상황이다.

즉, 스튜디오 해츨링이 보기에도, 아니, 세상의 그 누가 보기에도 전진철은 다재다능하고 선한 팔방미인으로만 보일 테다. 그러니 단풍 삼촌도 그렇게 신나서 내게 연락한 거였을 테고.

“아…… 이 새낄 어떻게 해야 하지? 찾아도 없는 죄를 만들 수도 없고.”

생각지도 못한 복병의 등장에 바이탈이 상승하고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잠깐? 없는 죄를……? 오늘이 며칠이었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빠르게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살폈다.

“11월 6일…… 맞네! 빼빼로데이 되기 바로 전 주!”

전진철 이 양아치 놈은 시골에서 상경한 순박함 그리고 타고나길 선하게 생긴 얼굴을 무기로 힘차게 허리를 휘젖고 다니던 쓰레기.

놈의 허리는 업소, 변기, 노상, 클럽 가리는 곳 없이 활기차게 배회했었다. 그리고 놈의 악행 일부가 드러나는 건 내년인 2016년부터.

하지만 내가 회귀하기 전, 내가 읽었던 책이 떠오른다. 그 책은 한 아역 배우 출신의 여배우가 오랜 공백을 깨고 방송에 복귀하며 출간했던 자서전.

그리고 그 여배우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신도 전진철에게 피해당한 사실을 밝혔었다. 당연히 전진철은 다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고.

‘전진철은 몇 번을 후두려맞아도 부족함이 없는 새끼지.’

연예계에 딱히 관심이 없는 나지만 나는 지금도 그리고 회귀 전에도 활자 중독자였다. 전진철 이 성범죄자 놈이 다른 피해자들과 어떤 식으로 엮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2015년 빼빼로데이의 바로 전주 불토였던 내일 밤!

내일은 아역 배우의 자서전에 적혀 있던 바로 그 날이다. 그녀가 거진 10년 가까이 방송 활동을 쉬면서 대중 앞에 모습을 숨겨야만 했던 그 불행한 일이 생겼던 날.

‘와, 하루! 아직 일이 벌어지기 하루 전이야!’

단풍 삼촌이 내게 ‘인턴사원 회장님’의 주연 배우 명단을 단 하루만 늦게 알려줬더라도 이번 일은 대처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전기가 전신을 훑고 지나치듯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회귀 전이었다면 결코 도움을 받지 않았을 터.

하지만 이미 나는 달라졌다.

—그래, 정우야.

“아버지, 통화 가능하세요?”

* * *

다음 날 밤 11시 30분.

신논현역 사거리의 대형 호텔 ‘르 플루스 강남’ 입구에 각그랜저 3대와 G 바겐 한 대가 멈춰 섰다.

“워후, 사업장은 오랜마이네이? 어이 아가야, 발렛 안 허냐?”

“예, 주차 도와드리겠습니다.”

“너 면허 1종이여?”

“아뇨. 2종 보통—”

“딴 놈 불러. 이거 수동이여.”

“……예? 수동이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각그랜저 키 3개를 받은 직원에게 다가가 나는 5만 원짜리 지폐를 2장 건넸다.

“앞에 차들 잘 부탁해요. 삼촌들이 아끼는 차라. 제 차 키는 안에 꽂아 뒀어요.”

“예, 감사합니다.”

아버지에게 부탁해 삼촌들 몇의 도움을 받기로 했지만 그렇다고 삼촌들이 모두 출동할 줄은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삼촌들이야 내가 용돈 준다고 하니 다 따라온 거겠지만, 아버지까지 오실 줄은…….’

험상궂은 얼굴의 검은 양복 12인.

그리고 그 중앙에 선 새하얀 정장에 올백머리,

내가 사드린 크롬하츠로 온몸을 도배한 아버지는 인의라는 보육원 이름처럼 남을 도와야 한다는 말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사람이었다.

“흐음……. 이 야심한 밤에 핏덩이들이 이런 곳에 온다니 말이야. 세상이 너무 평화로워졌구나.”

“……아버지. 이 야심한 밤에 선글라스 끼고 앞이 보이세요?”

“흐음…….

스윽—

“벗는 게 낫겠냐?”

“……그냥 들어가죠.”

단언컨대 아버지의 선글라스는 단지 멋이 아니다.

회귀 전까지 합치면 도합 50년을 넘게 봐왔던 그 눈빛인데도 선글라스 안에 드러난 아버지의 안광을 평범한 사람이 버텨낼 리는 만무했을 테니까.

우리들의 존재만으로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묵묵히 긴 줄을 참으며 신분증 검사를 하는 차례가 됐을 때였다.

추운 날씨에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가드가 가자미눈으로 우릴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노골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들, 여기 애들 노는 데예요. 가세요.”

“워매? 우리 신분증 검사도 안 했는디?”

“후우…… 나이트 가세요. 저흰 20대까지만 받아요. 뒤에 줄 기니까.”

“그으후후. 저기요, 저랑 이 동생은 20대요.”

액면가를 본다면 믿기지 않겠지만, 단풍 삼촌은 아직 20대 후반. 내겐 해맑지만 타인에겐 사나운 미소를 지으며 단풍 삼촌이 앞으로 비집고 나왔고, 당당히 자신의 민증을 가드에게 건넸다.

“하아…… 그쪽도 안 돼요.”

“안 되다니 뭐가 안 돼?”

“아니, 쯧. 진짜 몰라서 묻나? 우리 수질 관리하는 곳이라고. 조선족 안 받는다고요, 예?”

“이, 종간나 애미나이? 민증 안 보이네? 내가 어딜 봐서 조선족—”

“삼촌들, 진정해.”

혹시 몰라 출발 직전 클럽을 종종 방문한다던 권미현 본부장에게 물어보길 잘했다.

“조용히 놀다 갈게요. 다들 클럽이 처음이라.”

“마! 우리 처음 아니—”

삼촌들이 뒤에서 뭐라고 발끈했지만 나는 슬쩍 손을 들어 올려 삼촌들의 입을 바로 막았다.

“처음인 건 내 알 바 아니고 그냥 나이트 가서 노시라—”

“VVIP룸 잡을게요. 현금으로.”

“아, 진짜 왜 이러는 거야? 쯧.”

가드 놈은 띠꺼운 표정으로 혀를 차며 핸드폰 앱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VVIP는 오늘 예약 있어요. VIP룸 2개 있는데 룸 당 아르망디 쓰리 바틀은 시켜야 해요. 그렇게 해요?”

역시 VVIP룸은 이미 예약이 되어 있다.

전진철 그 쓰레기 놈이 자신의 매니저를 통해 예약을 완료했을 게 분명하다.

먹지도 않을 술과 안주를 시키는 게 마치 변기에 돈을 버리는 기분. 하지만 선택지는 없었다. 삼촌들과 아버지가 클럽 안으로 들어가야 했으니까.

“네, 그렇게 해주세요.”

“에이씨. 오늘 수질, 쯧.”

아르망디 한 병에 180만 원.

거기에 샴페인과 음료 몇 개 껴주는 220만 원짜리 세트를 6개 시키고 VIP룸 값은 별도로 결제한 후에야 우리는 클럽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빰 빠바바 빰빠~ 빰빠바바밤~

“아니, 뭔…… 노래가 뭐 이따구여?”

직원의 안내에 따라 룸으로 들어온 삼촌들은 고막이 윙윙 울려대는 소리를 들으며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삼촌들. 다들 집중해. 우리 여기 놀러 온 거 아니니까. 내가 말한 배우는 분명 VVIP룸으로 들어갈 거야. VVIP룸 위치는 다 확인했지.”

비록 VIP룸을 2개나 시켰지만 내가 따로 임무를 시킨 단풍 삼촌을 제외한 모두가 룸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상태. 결연한 표정으로 뱉은 말에 삼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입장하느라 시간이 좀 허비됐기에 벌써 시간은 자정이 넘은 상황. 그리고 전진철에게 피해를 입은, 아니, 피해를 입을 예정인 아역 배우 출신의 민소희가 이제 곧 입장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는 그때, 단풍 삼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삼촌, 설치 끝냈어?”

“간나 새끼? 나 어디 출신인지 잊었니?”

단풍 삼촌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내게 무전기 같은 기계와 연결된 이어폰 한 짝을 건넸다.

“오케이. 내 쪽 준비는 다 됐고. 이제 검은 모자에 마스크 쓰고 들어올 거니까 눈에 띌 거야. 남자 다섯에 여자 하나고. 삼촌들은 VVIP 룸 쪽에 들어가는 사람들 주시하고 있다가 바로 톡으로 상황 보내줘. 시끄러워서 전화는 잘 안 들리니까.”

“걱정 마라, 마! 매우 자연스럽게, 티 안 나게 싹 그냥 내가 어?”

“범죄자 새끼가 있으면 말이 안 되지. 암.”

“…….”

누구보다 범죄자 같은 얼굴로 범죄자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삼촌들이 불안하면서도 감사한 복합 미묘한 감정이 든다.

작전에 따라 삼촌들이 모두 룸 밖으로 나갔고 이제 나는 아버지와 함께 비교적 조용한 룸 안에서 밖의 상황을 전송해 줄 삼촌들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정우야.”

“예?”

삼촌들과 아버지가 있는 단톡방만 뚫어지라 바라보는 그때 아버지가 나를 나지막한 소리로 불렀다.

“나는 누가 뭐래도 너를 믿는다. 하지만 어둠의 길에 손을 대는 거라면—”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어제 설명드렸잖아요.”

아버지에겐 웬 아역 배우 출신의 여배우가 드라마 종방연 겸 2차 회식을 클럽에서 하는데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한 게 다였으니까.

‘스타작가 윤선미의 부탁이라 도우려고 하는 거라고 말씀드리긴 했는데…… 뭔가 숨기는 게 잔뜩 느껴진다는 생각을 지울 순 없으셨겠지.’

하지만 별다른 수는 없다.

내가 사실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왔다고 하거나 그게 아니면 신기가 있어서 미래를 본다고 하거나, 등. 사실 이 상황을 뭐라고 설명하든 말이 안 되는 사실이었으니까.

“흐음…… 정우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믿겠다.”

“이상한 거 아니에요. 그 배우이신 담당 작가님이 걱정된다고 가능하면 꼭 한번 별일 없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받은 거여서요. 연예인들끼리 도는 찌라시가 원래 더 정확할 때도 있잖아요. 아무 일도 없으면 삼촌들이랑 같이 술 마시고 가면 되는 거잖아요.”

“그래, 그러자꾸나.”

라고 아버지가 피식 미소 짓는 그때.

띠링 소리와 함께 카톡이 울렸다.

—오동 삼촌: 입구 쪽에서 마스크 무리 오는 거 발견

—흑싸리 삼촌: ㅇㅇ 지금 안내 받고 이동 중이다

—난초 삼촌: 내 쪽에서도 보인다

—모란 삼촌: (사진)

—모란 삼촌: 들어감

—공산명월 삼촌: 이제 어떻게? 기다려?

—응, 아직이야

내가 다 듣고 있으니까

‘민소희 씨. 미안하지만 조금만 기다려요.’

이번 생에는 피해 받는 일 없게 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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