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08화 (108/201)

108화 ― 진짜 그러면 안 된다고.

* * *

오늘은 11월 6일 금요일.

싸늘해진 추위와 함께 어느덧 2015년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저…… 조성훈 파트장님 안녕하세요?”

“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웹월드에 심사 넣은 작품 결과가 나와서요.”

“아, 그거요? 런칭 언제래요?”

“그게…… 웹월드에서 연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연락이 왔거든요.”

“예에? 거, 거절됐다고요?”

그리고 판무 2팀의 조팟놈은 연초부터 연말까지 한결같은 다사다난함을 보여주고 있다.

‘조팟놈…… 또 한 건 했구만?’

BS북이 그리 넓지 않기도 하고 내 자리는 판무 2팀 신입 매니저들과 등을 맞댄 형태. 즉, 판무 1팀 매니저들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기에 귀만 쫑긋 새워도 운영팀 매니저가 조팟에게 다가가 하는 얘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게요…… 파트장님께서 보내주신 신작은 프로모션 없이도 연재 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해서…… 아무래도 다른 플랫폼에서 연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가만히 듣고 있던 김동현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 섰다.

“조팟 그거 표지 제작도 다 미리 한 거 아니야?”

“네…….”

“아니, 하…… 진짜. 어쩌려고 그래? 그러니까 내가 표지 미리 만들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왜 말을 안 듣고, 쯧. 지금 소회의실에 사람 없지? 둘 다 회의실로 따라와.”

“네…….”

“예…….”

굳이 고개를 돌려 보지 않더라도 운영팀 매니저와 조팟놈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고개를 떨구고 가고 있을 게 눈에 훤히 그려진다.

‘조팟아…….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서 편집자 하겠냐?’

너드 같은 꼬라지와 달리 조팟놈은 힙스터 병 중증 환자. 특히 최근 들어 놈의 힙스터 병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데 이는 특이한 소재의 작품 계약을 담당하려는 신입 편집자들이 주로 걸리는 질병이다.

조팟놈이 웹월드에 심사를 넣었던 작품 제목이 ‘무림에 간 기갑 세종’이란 글이었는데 무림 배경에 세종대왕이 전이하는 얼토당토않은 글이었다.

‘거기다 세종 대왕님이 로봇을 타고…… 정신이 나간 건가?’

무림에 간 기갑 세종을 웹월드에 심사를 넣은 건 지금으로부터 대략 3달 전. 내가 아직 판무 2팀에 있을 시기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다른 편집자의 작품에 거의 터치하지 않는 김동현 팀장마저 이 작품은 너무 마이너할 것 같다고 했었는데, 그때 조팟놈은 ‘팀장님은 아재픽이라 힙스터 감성을 모르시는 거거든요?’라며 입으로 똥을 쌌었지.

이건 무조건 먹히는 글이라며 박박 우기고 심사 결과 전에 표지까지 미리 제작해놨다가 저 모양 저 꼴이 된 상황이다.

‘운영팀 매니저만 불쌍하네. 아니, 본인 책임도 있긴 하지.’

판무 2팀 자리로 가 소식을 전했던 운영팀 매니저가 함께 소회의실로 끌려가는 건 출간 회의 때문이다.

BS북에선 판무 매니저들이 작가의 신작 원고를 검토하고 플랫폼에 전달하기 전에 운영팀 매니저에게 원고를 넘겨 해당 플랫폼에 심사를 넣어도 괜찮을지 검토하는 자체 심사 과정이 있다.

이를 출간 회의라고 부르는데, 기갑 세종 같은 기괴한 글이 웹월드 심사에까지 들어갔다는 건 소회의실로 끌려간 운영팀 매니저 또한 그 글을 재미있게 봤다는 뜻이다.

‘조팟놈이 어거지로 우겼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됐든 기갑 세종을 웹월드에 심사 요청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운영팀 매니저의 실책이 없는 게 아니지.’

—권미현 출판본부장: 대표님!

웹월드에서 연락 왔어요!

판무 2팀의 개탄스러운 일에 낮게 혀를 차고 있는 그때.

권미현 본부장에게서 카톡이 왔다.

—심사 결과에요?

이세계 기사식당?

—권미현 출판본부장: 네! 비축도 충분하고

표지도 이미 제작해뒀다고 하니까

3주 뒤에 바로 런칭 가능 구좌 줄 수 있다는데요?

11월 27일이요

—가능하다고 전해주세요

고생했어요

—권미현 출판본부장: 네!

‘봐라 조팟아. 글은 이렇게 쓰는 거란다.’

조팟놈이 심사에만 3달 걸린 것에 비해 내 신작 ‘이세계 기사식당’의 심사 결과는 1달 만에 나왔다. 조팟놈의 담당작처럼 일반적인 웹월드 심사 결과 연락이 2~3달 정도 걸리는 것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다.

‘테일랜드 쪽은 노원지귀가 코즈일인 걸 모르긴 하지만…… 전작이 잘 돼서 결과도 빠르게 나온 것 같네.’

내가 노원지귀로 처음 연재했던 ‘혁명적인 작가 생활’의 연재 플랫폼은 소설피아였었다.

비록 전작이 다른 플랫폼에서 연재가 됐다고 하더라도 모든 플랫폼은 현재 신작의 내용 그리고 전작의 지표를 확인하기에 전작이 어느 정도 흥했느냐 또한 심사 지표에 반영이 된다.

사실 이렇게 빠른 런칭이 가능한 건 비단 내 전작의 성적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낸 원고의 퀄리티 그리고 비축이 충분한 것뿐만이 아닐 테다.

‘엘가가 아니라 다른 출판사였으면 이렇게 빠른 일정을 받아도 힘들었겠지.’

실시간으로 독자 반응 지표를 확인할 수 있는 소설피아와 달리 웹월드나 테일랜드 같은 플랫폼은 처음 작가의 글을 유통하는 출판사가 심사 원고를 넣고 그 심사 원고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표지 제작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심사를 넣는 원고가 출판사 매니저들이 보기에는 재미있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넣지만 출판사 매니저들이 느끼는 재미와 플랫폼 매니저들이 느끼는 재미가 다를 수가 있으니까.

‘문제는 자기는 망해도 좋으니 무조건 웹월드나 테일랜드에 심사부터 넣어달라는 작가들도 상당히 많다는 거지.’

이런 부탁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데뷔하고 싶은 열정은 가득하지만 실력은 미흡한 작가들에 의해 빈번히 일어나는데, 편집자들은 이런 작가님들은 상당히 주의해야 한다.

까딱하다간 조팟놈의 담당작 기갑 세종처럼 심사를 넣은 원고가 플랫폼에서 거절될 수 있기 때문에.

‘김동현 팀장님 분노가 아주 하늘을 찌르겠어. 표지도 이미 다 제작됐다니까.’

평소 조팟에게 관대했던, 아니, 타인을 향한 관심이 딱히 없던 김동현 팀장이 저렇게 성을 내며 조팟놈을 회의실로 데리고 간 건 표지 제작 비용의 출처가 BS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바꾼 업적이기도 하지.’

2014년 초.

내가 BS북에 처음 입사했을 때만 하더라도 BS북은 좋소스럽게 표지 제작 비용을 작가에게 부담시켰었다.

하지만 당시 코즈일로 엄청난 실적을 냈던 내가 추가 계약을 하면서 표지 제작 비용은 출판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강력히 어필을 했었고.

그리고 내가 BS북에 입사한 지 거의 2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표지 제작 비용을 출판사가 부담하는 게 기본적인 계약 조건으로 변경된 상황이다.

—이창윤 매니저님: ㅈ댐

조팟님 표지 심지어 PSD도 아니라는데

—??? 진짜요?

—이창윤 매니저님: ㅇㅇ 이미지 파일로

그냥 통으로 붙여서 받았다는데…

—1개만요? 다른

플랫폼 표지는 없이?

—이창윤 매니저님: ㅇㅇ

웹월드 표지만 만드심

야수의 심장임

—……

비록 1팀으로 자리를 옮겼어도 이창윤 매니저와는 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냈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종종 나눴는데.

‘와…… 플랫폼별 이미지 규격이 다른 건 상식일 텐데?’

여전히 조팟놈의 일 처리를 보면 놈이 어떻게 파트장이 됐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소설피아, 웹월드, 테일랜드 등 각 플랫폼의 웹소설 표지 규격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웹소설 표지 제작을 의뢰할 때는 무조건 포토샵 파일인 PSD 파일로 받아야만 하고.

그래야지 한 플랫폼에서의 독점 연재가 끝나고 다른 플랫폼에 풀릴 때 해당 플랫폼 규격에 맞게 표지 크기를 조절하고 할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 조팟놈처럼 한 플랫폼 규격에만 맞춰서 이미지 파일을 맞추면 다른 플랫폼에 표지를 올렸을 때 원본 이미지와 다르게 표지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저런 신입도 안 할 실수를…… 창윤 매니저님 진짜 조팟 밑에서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겠네.’

회사에서 일을 할 땐 어느 회사에서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일하냐다.

회사 월급, 복지 이 모든 게 아무리 좋아도 조팟놈 같은 실력도 없고 히스테리만 심한 빌런 새끼가 같은 팀에 있다? 복식호흡을 내뱉으며 수차례 반야심경을 되뇐다고 해도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렵다.

—오진아 팀장님: 파트장님

대체 어떻게 안 거예요?

—뭐가요?

—오진아 팀장님: 회귀한 요리 천재요

벌써 관심작 16,000명 넘었어요

—말했잖아요 잘될 거라고

—오진아 팀장님: 솔직히 이렇게 잘 될 줄

모르고 표지 제작 미루고 있었는데

바로 진행해야겠어요

—잘될 거예요

걱정 말고 표지

제작하세요

‘아직 놀라긴 이르지 회귀한 요리 천재는 관심작 3만 이상까지 올라갈 작품이니까.’

오진아에게 만년필을 선물 받았던 지난달.

내 강력한 추천으로 오진아는 야식의유혹 작가와 계약을 마무리했다.

오진아 팀장은 내가 조언한 대로 바로 선인세 1억을 불렀었지만, 아직 신인인 야식의유혹 작가는 그렇게 큰 금액은 부담스럽다며 선인세 5천에 정산비 8:2로 계약을 하게 된 좋은 상황이다.

사람은 터가 중요하다는 말처럼 판무 1팀으로 옮기니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흘러가는 기분이 가득 든다.

오진아 팀장이 야식의유혹 작가로 싱글벙글한 만큼 나 또한 실적을 쭉쭉 내는 중이다. 지난 9월 최진혁, 아니, 갈린잡초 작가와 계약한 신작 ‘나는 짭새다’ 덕분에.

—갈린잡초 작가님: 안녕하세요 파트장님

나짭세 신규회차 전달드립니다

늦어서 죄송해요ㅜㅜ

—괜찮습니다 작가님

계속 늦어지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찾아갈 테니까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제 신인작가가 된 최진혁에게서 후속 회차 원고가 도착했다.

—갈린잡초 작가님: 아니……

통조림 시킬려구요? 아직

비축은 충분한 거 같은데……

—에이, 잘 아시는 분께서

왜 이러십니까? 다음 달에

성탄절 연휴, 다다음 달에

신정 있는 거 아시죠?

—갈린잡초 작가님: 네……

알고 있습니다

—연휴 일정 고려하면

비축 고작 일주일 아니

6일 치 남았는데요?

설마 라이브 연재

하시려는 건 아니시죠?

—갈린잡초 작가님: 하하……

물론 아니죠……

—글 막히면 부담 없이

말씀하세요 작가님

간만에 얼굴도 뵙고

작가님이랑 맛있는 것도

먹으려고 하는 거니까요^^

—갈린잡초 작가님: 아……

감사합니다…… 저는 그럼

다시 글 쓰러……

우리 갈린잡초 작가님께선 처음 의욕과 달리 점점 집필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자신이 담당했던 작가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몸소 실천하고 계신 모습을 보니 뿌듯한 마음이 가득하다.

‘물론 통조림은 별개지. 편집자 출신인 사람이 원고가 안 나온다? 그땐 진짜 갈아버릴 거야.’

갈린잡초 작가님을 어떻게 더 갈아야 좋은 원고가 나올까 궁리하는 그때, 단풍 삼촌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에 있는 걸 뻔히 아는 시간대에 걸려오는 전화는 십중팔구 긴급한 내용일 터. 나는 오진아 팀장에게 잠시 통화를 하겠다고 한 후 밖으로 나왔다.

‘진아 씨한텐 이제 딱히 숨기지 않아도 돼서 편하단 말이야?’

공범, 아니, 같은 편이 있다는 게 얼마나 편하고 큰 차이를 느끼게 하는지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나는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업무 시간에 무슨 급한 일이실까요?”

“배우 라인업 정해졌어!”

“아니 벌써? 불지파?”

넷플렉스 그리고 제작사와 계약을 체결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배우가 정해졌다고?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생각마저 든다.

“간나야, 불지파는 아직 이르지. 인턴사원 회장님. 주연배우 확정됐댄다.”

“아! 넷플렉스 영화화 때문에 깜빡했었네. 누구야?”

“일단 남자 주연배우부터 어마어마하다. 전진철이라고—”

“아니, 잠깐. 누구? 전진철?”

“그으흐흐. 그래 깜짝 놀랐지?”

“말도 안 돼…….”

“말 돼! 전진철이 주인공이라고! 그아하하하!”

아니…… 시발.

진짜 그러면 안 된다고.

2015년 최고의 주가를 자랑하던 배우 전진철.

몇 년 후 범죄자가 될 새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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