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 경쟁은 늘 열의를 불타오르게 한다.
* * *
온종일 신작 집필에만 집중한 추석 연휴가 지나고 한층 더 선선해진 10월이 됐다.
‘후우…… 10월 되니까 시간이 더 빠르게 지나가네.’
‘불 지르는 파이어맨’이 10월의 첫날 512화를 기점으로 완결됐고 노원지귀 필명으로 첫 연재를 했던 ‘혁명적인 작가 생활’의 마지막 회차가 조금 전에 올라왔다.
“공지 올라온 거 봤어요. 혁작생 오늘 완결이라면서요? 완결 축하드려요.”
“하하, 감사해요. BS북 회의실 안에서 축하 인사 받으니 기분이 좀 묘하네요. 어…… 뭡니까? 저 주는 거예요?”
오늘은 10월 12일 월요일.
주간 회의를 끝낸 후, 황건일 매니저만 먼저 보내고 나와 오진아 둘만 소회의실에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 소설피아에 1화가 연재될 전설의 요리물을 알려주기 위해 자리에 잠시 남은 거였는데, 오진아가 축하의 인사와 함께 포장된 상자를 건넨 거였다.
“저 신입 교육 끝났을 때 파트장님도 선물 챙겨 주셨었잖아요. 그 답례인 건 아니지만, 완결 축하 기념으로 챙겨드리고 싶었어요.”
“와…… 정말 감동이에요! 완결 기념으로 처음 받는 선물 같은데요? 지금 뜯어봐도 돼요?”
“마, 마음대로 하세요. 그냥 만년필이에요.”
기분 탓인가?
오진아 매니저의 귓가가 슬쩍 붉어진 것 같긴 한데, 나는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선물을 뜯었다.
“하하, 만년필이네요? 만년필 없었는데 잘 쓸…… 아니, 뭐야? ……금촉 아니에요? 이거 비싼 거 같은데…….”
“파트장님이 사준 것도 50만 원대였잖아요. 그거랑 가격 차이 크게 안 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받아 주세요.”
“아니…… 정말 잘 쓸게요. 감사해요.”
회사 다닌 지 얼마 됐다고 이런 비싼 걸 사요!
라고 한마디 하려 하다가, 문득 그녀가 내가 다니는 회사의 대표 딸이라는 게 떠올라 다시 말을 삼켰다.
“그리고 겉면에 이니셜도 있으니까, 잃어버리지 말고 잘 쓰세요.”
“이니셜? 아, 여기 뚜껑에 J라고 적혀있네요.”
“저, 정우할 때 J에요.”
당연한 얘기를 하면서 왜인지 오진아는 엄청 쑥스러워하는 모습이다. 평소와 다른 그녀의 모습이 흥미롭다.
“선물은 정말 감사히 잘 받을게요. 자 그럼 이제 제가 선물 드릴 차례네요.”
“선물이요?”
“네, 소설피아 바로 들어가 보시죠.”
“아…… 네.”
컨디션이 안 좋은 건지 잠시 버벅대던 그녀는 폰 화면을 키고 바로 소설피아에 접속했다.
“신인연재 코너 들어가셔서 스크롤 조금 더 내리시면, 아뇨, 조금만 더 위로요.”
“어떤 거죠?”
“바로 위에 있는 거네요.”
오진아의 표정이 다시 평소처럼 냉랭해졌다.
“이건가요? 오늘 연재 시작한…… 3화 올라온 글이요?”
“맞아요. 야식의유혹 작가님이 쓴 회귀한 요리 천재.”
“…….”
스윽— 슥—
오진아는 말없이 그 자리에서 ‘회귀한 요리 천재’를 읽어 나갔다. 그렇게 3화까지 다 읽었을 무렵, 오진아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잔잔하니 좋네요. 회귀에 시스템에 요리에. 하지만 잔잔한 요리 힐링물은 초대박이 나기는 좀 힘들지 않나요? 파트장님이 담당하는 피자헛둘 작가님의 이세계 힐링포차도 괜찮은 성적이긴 하지만 딱 그 정도가 한계인 것 같아서요.”
최진혁에게 넘겨받은 피자헛둘 작가의 첫 연재작 ‘이세계 힐링포차’. 그래도 나름 그 글 하나로 월평균 천만 원이 조금 모자란 준수한 성적을 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내가 오진아 매니저의 눈을 너무 높게 키운 모양이다.
“그건 아니에요. 이세계 힐링포차 같은 경우에는 배경이 판타지 세계였는데, 작가님께서 그 세계관을 입체감 있게 집필하시지 못했던 게 가장 큰 아쉬움 중에 하나였거든요. 거기다 주인공이 이세계로 넘어가기만 하고 별다른 이능력은 없었고요.”
이어진 설명에 오진아는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그렇긴 하네요. 회귀한 요리 천재 같은 경우엔 배경도 현대니 그런 문제는 없을 것 같긴 한데…… 이건 선인세 어떻게 할까요?”
“바로 1억 지르시죠. 조건 8:2로. 팀장 진급하면서 선인세 가용 금액 1억으로 올랐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러면 올해 추가 작품은…….”
남은 선인세를 홀라당 다 쓰면 이제 연말까지는 선인세를 주고 하는 추가 계약은 어렵겠지. 하지만 야식의유혹 작가는 앞으로 2년간 쉬지 않고 달릴 사람이다. 찬란한 매출과 함께.
‘오진아가 얼마 전에 계약한 글만쓰고살지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꾸준히 큰 연재 펑크 없이 집필한 작가님이지.’
하지만 내가 야식의유혹 작가를 오진아에게 추천하는 건 단지 작가의 성실성뿐만이 아니다. ‘회귀한 요리 천재’는 웹소설 계에서 요리물 부흥을 일으킨 최고의 요리물 작품으로 불리는 소설이니까.
“한 번 더 믿어 보세요. 어차피 팀장님도 지금 담당 종 수 거의 꽉 차서 이 작품 계약하면 추가 계약은 빠듯한 상황이잖아요. 그리고, 저도 신작 요리물로 쓸 거예요.”
“네? 파트장님이요?”
토끼눈이 되어 놀라 되묻는 오진아를 향해 피식 웃었다.
“네 노원지귀로 쓸 신작은 저도 요리물로 진행할 거예요. 요리물 붐 올 수 있으니까, 계약 꼭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저랑 계약해요! 케어 잘 해드릴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아시죠? 어차피 웹월드에서 연재할 거예요. 이미 심사 원고도 전달했고요.”
노원지귀의 신작을 소설피아가 아닌 웹월드에서 진행한 건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혁명적인 작가 생활을 썼을 때처럼 소설피아에서 연재를 해도 되었겠지만, 혹여 내 글의 이름값에 묻혀 야식의유혹 작가의 글이 묻히는 일은 없어야 했었으니까. 내 말을 들은 오진아의 눈이 매처럼 날카로워졌다.
“좋아요. 회의는 여기까지로 하죠. 저는 바로 야식의유혹 작가님 컨택 하러 갈게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회의실 문밖으로 나서려던 오진아는 회의실 문고리를 잡은 채 고개를 휙 돌려 나를 매섭게 쳐다봤다.
“기대하세요. 비록 플랫폼은 다르지만 정우 씨의 신작보다 훨씬 더 인기 있는 작품으로 만들 테니까요. 나중에 저한테 맡기지 않아서 아쉽다는 소리 해도 저는 몰라요.”
“하하, 기대할게요.”
경쟁은 늘 열의를 불타오르게 한다.
* * *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지연 본부장님, 무슨 일이세요?”
—대표님, 퇴근하셨어요?
퇴근 시간에 받는 전화는 늘 나를 긴장시킨다.
작가의 전화도 그렇지만 특히 엘가 임직원들에게서 받는 전화는 늘 대부분 이슈가 터졌을 때니까.
“네, 지금 막 회사 나와서 집으로 가는 중이에요. 무슨 일 있나요?”
—아뇨, 저도 퇴근 이제 막 하는 참인데. 대표님 저녁 안 드셨으면 식사나 같이하실래요?
“진짜 무슨 일 없는 거 맞죠? 갑자기 이러니까 무서워지는데.”
일개 평사원으로서와 달리 대표로서 직원에게 받는 전화는 늘 두려움을 동반하게 한다. 특히 지금처럼 이유를 말하지 않고 밥을 먹자고 하는 행위 등은 때때로 퇴사의 전조로 느껴지기도 하니까.
—에이, 진짜 별일 없어요. 다른 본부장님들은 다 약속 있다고 하셔서요.
“아, 그래요? 그럼 어디서 뵐까요?”
—제가 주소 보내드릴게요.
“네, 거기로 바로 갈게요.”
이지연과 통화를 마치고 카톡으로 전달받은 레스토랑 근처로 이동했다. 그곳엔 먼저 도착한 이지연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대표님, 여기요!”
“줄 서고 계신 거예요?”
“아뇨, 이미 예…… 아니, 자리 있어서 들어가기만 하면 돼요. 대표님 못 찾으실까 봐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늘 회사에서 오진아도 그렇고 이지연도 그렇고 다들 뭔가 허둥대는 기분이 든다.
‘하긴, 월요일이면 기분이 좀 그럴 수도 있지.’
10월 첫 주는 추석 연휴로 인해 3일만 회사에 출근했고 바로 전 주도 금요일에 한글날이 껴 있어서 4일만 출근했었다. 금, 토, 일 3일을 연속으로 집에서 쉬다 보니 바이오리듬이 살짝 깨질 수도 있는 노릇일 테지.
“많이 붐비니까, 조심히 오세요.”
“네.”
그 정도로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이지연이 내 옷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나를 레스토랑 안으로 이끌었다. 회귀 전에도 그렇고, 이지연은 가만 보면 참 타인을 배려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이다.
“어서오세요, 예약하신—”
“아하하, 그 주문은 제가 먼저 했어요, 대표님. 유명한 곳이어서 추천 메뉴로 시켰는데, 괜찮죠?”
“아, 네. 물론이죠. 저는 원래 다 잘 먹잖아요.”
잠시 후 웨이터가 식전 빵을 가져다줬다.
“으음. 맛있네요!”
“다행이네요, 좋아하셔서.”
“그런데 진짜 무슨 일 없어요? 그냥 저녁 먹자고 한 거예요?”
“네, 간만에 식사도 같이할 겸…… 그리고 오늘 불 지르는 파이어맨 완결도 축하드릴 겸 해서요.”
오진아의 축하도 그랬지만 이지연에게까지 축하를 받으니 뒤늦게 내가 완결을 낸 게 실감이 난다.
“하하, 진짜 감사해요. 와 오늘 진짜 여기저기서 축하받네요.”
“네?”
“아아, BS북 오진아 씨 아시죠? 진아 씨가 완결 기념이라고 선물을 주셨거든요.”
“선물…… 이요?”
“네, 이니셜도 넣어서 줬어요.”
BS북에서는 자랑할 수도 없었기에 이지연에게 선물 받은 만년필을 보여줬다. 그런데 잠시 그걸 살피던 이지연의 표정이 살짝 굳어진 것 같은 게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에 읽히는 기분이다.
“잘됐네요.”
“……?”
잠시 묘한 기류가 느껴졌지만 깊은 고민을 할 새도 없이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여기 진짜 맛있네요? 자주 와보셨어요?”
“아뇨, 저도 오늘 처음이에요. 근데 대표님…… 그러지 마세요.”
스테이크를 썰던 이지연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네? 뭐를요?”
“오늘은 진짜 제가 살 거니까 먼저 계산하거나 그러지 마시라구요. 그러면 정말…… 섭섭할 거예요.”
“에이, 저 공짜 밥 좋아해요. 제가 왜 그러겠어요?”
라고 말하며 꺼내 놨던 카드를 다시 슬쩍 주머니 속에 넣었다. 얼핏 봐도 비싸 보이는 파인다이닝인데 우리 본부장님께서 저리 강경하게 말씀하시니 오늘은 따라드리는 게 도리인 것 같다.
‘어차피 나중에 인센을 더 챙겨주면 되는 거니까.’
식사를 하면서 명절에 어떻게 보냈는지, 요즘에도 새벽에 일어나서 조깅을 하는지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부드러운 스테이크와 달리, 뚝뚝 끊기던 대화가 점점 딱딱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 이유가 왜 그런지 파악하기도 전에 이지연과의 식사는 마무리됐다.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 본부장님 덕분에 완결 축하 제대로 했네요.”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이지연은 그제야 배시시 미소 지었다.
“다행이에요. 그럼 들어가세요. 저는 지하철역 쪽으로 가야 해서요.”
하지만 이내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는 생각을 하는 그 순간, 이지연이 매고 있던 윗면이 뚫린 크로스백에 작은 포장지 같은 게 보였다.
“근데 본부장님, 저 완결 기념 축하 선물은 없어요?”
“네? 서, 선물이요?”
가방 안에 있는 그 포장이 내 선물이 아니라면 밥을 산 게 자신의 선물이라고 했을 터. 하지만 잔뜩 당황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가방을 살짝 움켜쥐는 걸 보니 내 선물이 맞는 것 같다.
“진짜 없어요? 본부장님이 주는 선물이면 뭐든 다 좋을 것 같은데.”
“…….”
짧은 정적이 흐르고 이지연이 손바닥 크기의 상자를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꺼냈다.
“실은…… 준비하기는 했는데, 제 선물은 만년필처럼 그렇게 비싼 게 아니어서요. 죄송해요…….”
이제야 이지연의 입술이 왜 비쭉 나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뭔지 뜯어봐도 돼요?”
“지, 진짜 별거 아니에요. 그냥…… 방수 노트에요.”
“방수 노트요?”
이지연은 뭐가 그리도 부끄러운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물에 안 젖는 노트랑 전용 펜이에요. 대표님이 샤워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 많이 떠오르는데 그걸 잊을 때 너무 아쉽다고 한 게 생각나서…….”
근래에 받았던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진 선물이다.
가격에 상관없이 내가 필요로 했던 선물이니까.
“오늘 받은 선물 중 가장 마음에 들어요. 고마워요.”
나는 이지연의 선물을 품에 꼭 안고선 밝게 미소 지었고, 그녀 또한 미소로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