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편집자의 이중생활-106화 (106/201)

106화 ― 제목은…… 이게 좋겠네.

* * *

엘가 임원진들과 해외 플랫폼 및 에르미스 베타 버전에 관한 미팅이 끝나고 하루의 시간이 더 흘렀다.

타다닥— 탁— 타닥— 타다다닥—

그리고 오늘은 추석 전날인 토요일.

화요일까지 장장 4일간의 황금연휴가 이어질 예정이기에 나는 온전히 내 글을 쓰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더욱 고심하며 조심스럽게 집필을 진행했다. 지금 내가 집필 중인 글은 넷플렉스에서 계약한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완결 회차였기 때문이다.

‘불지파도 벌써 완결이라니…… 진짜 시간 빠르네.’

내가 BS북에 입사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무렵.

당시 웹월드 런칭 일정을 앞두고 연재 원고가 준비되지 않았던 피자헛둘 작가 대신 불 지르는 파이어맨을 웹월드에 연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은 연재와 간간이 진행된 연참으로 9월 26일인 오늘, 불 지르는 파이어맨은 506화가 연재될 예정이다.

타다닥— 타닥— 타다다다닥—

그리고 내가 지금 집필하는 회차는 완결 회차인 512화.

한 주 앞으로 다가온 10월 1일에 511화 그리고 512화를 연참해 불 지르는 파이어맨의 대장정을 마무리 지을 예정이지.

엘가에서 대외적으로 불 지르는 파이어맨을 담당하는 출판 본부장 권미현은 500화가 넘어가는 회차임에도 불구하고 연독률이 거의 떨어지지 않았기에 조금 더 연재를 이어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줬었다.

‘미현 씨 입장에선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지. 지난달에 불지파 웹툰이 런칭 되었는데, 원작 소설 연재가 계속된다면 매출도 연재를 하는 기간 동안은 훨씬 높게 유지될 테니까.’

하지만 나는 고심 끝에 원래 계획에 맞춰 불지파를 완결 짓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깟 돈 때문에 억지로 글을 늘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니까.

타다다닥— 탁— 탁— 탁—

“후우……. 불 지르는 파이어맨……. 고생 했다.”

좋아하는 글이 완결이 났을 때 마음의 여운이 크게 남는 것처럼, 자신이 직접 집필하는 글의 완결이 났을 때 또한 묘한 감정이 든다.

더 잘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그동안 함께 해준 독자들에 대한 고마움 등이 소용돌이처럼 뒤섞여 학창 시절 한 학년을 졸업한 그런 뭉클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심지어 불지파는 넷플렉스에 투자를 받기로 결정된 작품이기에 영화 제작 발표 홍보가 진행된다면 불지파 웹툰은 물론이거니와 원작인 웹소설 역시 길게 쓰면 쓸수록 이슈가 되리란 게 당연하다.

“그래도 여기서 끝내는 게 맞지. 지금까지 한 화, 한 화 정성을 다해 읽어주신 독자님들을 위해서라도. 어차피 웹툰은 이제 막 시작하는 거니까 원작 매출 방어도 한동안은 계속될 테고.”

원작을 베이스로 한 불지파 웹툰이 지난 8월 15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웹월드에서 연재되고 있다. 웹툰 수익도 어차피 다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구조이기에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바로 마무리한 완결 원고를 권미현의 업무 메일 주소로 보내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끄으으읍……. 순식간에 작품들이 완결됐네.”

불지파 완결 원고를 전달했으니 이제 내가 실연재로 연재 중인 작품은 ‘인턴사원 회장님’ 그리고 노원지귀의 필명으로 연재 중인 ‘혁명적인 작가 생활’ 단둘뿐.

불지파 뿐만이 아니라 혁멱적인 작가 생활 역시 이제 몇 주 후인 10월 12일에 완결할 예정이다. 이 역시 완결 회차까지 이미 거의 준비가 다 된 상황이기도 하고.

‘사실상 이제 남은 실연재는 장기 연재 중인 인턴사원 회장님 하나만 남았단 소리지. 이제 슬슬 신작 준비를 해야 하겠는데?’

만약 내가 전업 작가 생활만 했다면 하루에 5편 이상씩도 충분히 쓰고 남았다. 오탈자 검수와 퇴고를 미루고 빠르게 원고만 집필하면 하루에 10편도 너끈히 썼으니까.

하지만 당분간은 BS북의 파트장, LGA컴퍼니의 대표 그리고 작가 생활까지 쓰리잡을 하는 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실연재 작품은 코즈일 필명으로 한 작품 그리고 노원지귀 필명으로 한 작품 총 두 작품씩만 연재하는 게 가장 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책상 위에 놓인 펜을 빙글빙글 돌렸다.

“불지파는 완결 회차 보냈고, 혁작생도 완결 회차까지 이제 3화 남았고…… 흐음, 노원지귀로 어떤 걸 쓰는 게 좋으려나?”

신작을 구상할 때는 늘 고민이 많아진다.

특히 코즈일이나 노원지귀같이 전작이 상당히 흥행했을 경우, 작가는 더욱 신중해지게 되지.

최소 반년 이상은 더 연재를 하게 될 인턴사원 회장님의 장르는 현대 판타지. 노원지귀로 새로 쓰게 될 글은 현판이 아닌 다른 장르였으면 한다. 이전에 내가 쓰지 않았으면서 지금 시류에 맞을 만한 작품.

‘그러면 나도 그걸 써볼까? 오진아한테는 어차피 그걸 줘야 하니까.’

혁명적인 작가 생활은 원래 예정대로라면 10월 중후반에 완결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연참을 해서라도 10월 12일에 완결을 내려는 건 최대한 웹소설 독자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함이다.

‘바로 그날 2015년 하반기 최고의 작품 중 하나가 될 ‘회귀한 요리 천재’가 런칭할 예정이니까. 오진아나 내가 아닌 다른 매니저들의 눈에 그 작품이 들어오면 안 돼.’

‘회귀한 요리 천재’는 요리에 꿈을 지니고 있던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주인공이 과거로 회귀하면서 스타 쉐프로 성장해가는 쿡방 웹소설이다.

아직 오진아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10월 12일이 되면 바로 오진아의 실적을 위해 이 작품을 건네줄, 아니 추천해 줄 예정이다.

‘하지만 오진아의 실적이 중요한 만큼 나도 누릴 건 누려야겠지.’

회귀한 요리 천재는 ‘먹방 웹소설’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요리물의 기틀을 잡은 웹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도 회귀한 요리 천재가 만들어내는 거대한 시류에 탑승하려 한다.

“요리물이 주제지만 회귀한 요리 천재와는 전혀 겹치지 않게. 하지만 나 또한 관심은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타닥— 타다닥— 타다다다닥—

노원지귀로 쓸 신작의 기본 틀을 잡기 시작했다.

키워드는 요리, 힐링. 장르와 배경은 판타지.

노원지귀의 필명으로 웹월드에서 좋은 성적과 프로모션을 받았으니까 신작 역시 웹월드에서 진행하는 게 좋을 테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타다닥— 타닥— 탁—

주인공과 조연들, 주인공의 목적성 등을 이어 잡고 완결까지의 기승전결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다시 잘게 나눠서 권별로, 회차별로 간략하게 정리를 이어 나갔고.

타다다닥— 타닥— 타다다닥탁—

“다양한 요리를 하는 게 꿈인 기사식당의 만년 주방 보조. 그리고 자신의 식당과 함께 이세계로 전이. 그러면 제목은…… 이게 좋겠네.”

나는 스크리브너에 새로운 프로젝트 폴더를 하나 생성했다. 폴더명은 ‘이세계 기사식당’이다.

* * *

하루가 더 지난 추석 당일.

나는 자동차 뒷좌석과 트렁크에 선물을 가득 싣고 내가 나고 자란 곳, 인의 보육원으로 이동 중이다.

“일찍 출발했는데도 은근히 막히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전후로 인의 보육원의 아이들은 구광적 원장의 인솔하에 대게 해외나 휴양지로 여행을 간다.

그런데 이번 추석엔 올해 수능을 보는 수험생인 아이들이 많아서인지 단체로 여행을 가진 않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보낸다고 했다. 인의 보육원에서 수험생은 왕이었으니까.

내가 인의 보육원에 가는 건 추석을 맞아 동생들에게 줄 선물을 챙기고 삼촌과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려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방문 목적은 내가 아는 사람 중 칼을 가장 잘 다루는, 아니, 요리를 가장 잘하는 사람이 인의 보육원에 있기 때문이다.

‘흑싸리 삼촌만 슬쩍 만나고 올 생각이었는데, 다른 삼촌들하고 애들도 모두 있다는 게 좀…… 부담스럽긴 하네. 뭐 별 일이야 있겠어?’

사람들이 바글거릴 게 예상되기에 살짝 긴장되는 기분.

하지만 요리하는 과정, 그리고 흑싸리 삼촌이 칼잡…… 아니, 요리사 생활을 했던 생생한 경험을 조사하면 확실히 내가 신작 집필의 디테일한 부분에 큰 도움이 될 테다.

“여어, 정우 왔냐? 새끼 홀쭉해진 것 좀 보게? 밥 안 묵고 다니냐?”

“오랜만이야, 삼촌.”

인의 보육원 담벼락 뒤편에 주차하기 시작하자 내가 오는 걸 기다렸는지 귀 한쪽이 반만 남은 오동 삼촌이 살벌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런데 다른 삼촌들을 어디 있어? 선물 날라야 하는데?”

“서…… 선물? 너, 너 이 새끼! 신성한 명절날에 불량 식품 사 온 거 아니지?”

작년 화이트 데이 때 애들 먹을 빵을 사갔다가 보육원이 발칵 뒤집혀 졌던 게 떠오른 건지, 오동 삼촌은 선물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밀수꾼 같은 표정으로 내게 속삭였다.

“그런 거 아냐. 그냥 애들 입을 옷 같은 거 몇 개 사왔어.”

“아, 다행이네. 다른 놈들은 지금 애들이랑 명절 놀이하기 바쁘지. 큰형님한테나 퍼뜩 가서 인사 올려라. 선물은 애들이랑 내가 챙겨갈 테니까.”

“고마워, 삼촌.”

나는 보육원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오동 삼촌의 말과 달리 아버지는 원장실에 계시지 않았다. 옥상에도 계시지 않았고.

“애들이랑 같이 1층에 계시나?”

애들이 모여있는 1층으로 가니 그곳에선 명절 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삼촌들이 보였다. 물론 그중에서 단연 내 시선을 가장 잡아끄는 건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거구의 근육질 사내.

지난 어버이날 내가 사드렸던 크롬하츠 목걸이와 반지 그리고 팔찌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아버지, 구광적 원장의 모습이었다.

“동작 그만, 밑장 빼기냐?”

“뭐래에?”

“내 패하고 흑싸리 패를 밑에서 뺐지.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이노무 쉐끼?”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어린노무 쉐끼. 먹여주고 재워주고 키워줬더니만!”

“아버지…… 애들하고 뭐 하세요?”

애들과 명절 놀이를 적극적으로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참……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오오! 정우 왔구나!”

“왔냐 정우야!”

“정우 혀엉!”

“오빠아!”

아버지와 삼촌들 그리고 동생들까지 모두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오동 삼촌과 다른 삼촌들이 선물이 든 상자를 낑낑대며 가져왔다.

“어이, 핏덩이들! 니들 형이 명절이라고 옷 사왔다. 사이즈별로 사왔다니까 다들 하나씩 챙겨가.”

“우와아! 고마워 정우 형!”

“고마워, 오빠!”

새 옷을 선물 받고 까르륵대는 동생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삼촌들하고 아버지 선물은 따로 챙겼어요. 필요하신 거 직접 사시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으아니, 이 쉐에끼! 사람 됐구만 이제?”

“그아하하하! 선물은 흰 봉투가 최고지! 암! 잘 쓰마 정우야.”

역시 어른들에게는 현금 선물이 최고다.

“에? 뭐야? 구찌 티셔츠였네? 우리 이거 있는 거잖아?”

“쉬잇! 조용히 해 바보야! 정우 오빠 신경 쓰게 하지 말고 그냥 좋아하는 척해.”

“…….”

얘들아, 이미 다 들렸어.

아이들이 속삭이는 말을 들으니 아버지나 삼촌들이 이미 구찌 티셔츠는 다 사준 모양. 동생들이 어느덧 커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배운 모양이다.

‘뭐…… 티셔츠는 많으면 좋은 거니까.’

잠시 착잡해진 마음을 달래고 나는 꼬맹이들과 섞여 연신 화투패를 내리치는 흑싸리 삼촌에게 다가갔다.

“삼촌, 지금 시간 괜찮아? 전화로 부탁했던 거?”

“2땡! 2땡 맞지? 가져간다 꼬맹아, 으흐흐.”

“나 4땡.”

“아, 아니…… 이게 뭔?!”

“흑싸리 삼촌!”

“어? 정우. 왜, 인마?”

“하아…….”

앞으로 자료 조사는 그냥 유튜브로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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